1955년 광주공원집회에 비친 이슬성신의 빛
'직선이 아니라 모두 곡선으로 돼 있어 더욱 신기해'감시하러 갔다 백합화 향취 맡고
마음문이 활짝 열려
1955년 당시 28세 젊은 청년이었던 저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남 영산포 장로교회의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그 무렵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 부흥집회’라는 벽보가 광주 시내 이곳저곳에 붙어 있기에 자세히 봤더니 장소는 광주 시내 공원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같은 교회에서 시무하는 당 회장 강희석 목사에게 보고했더니 어떤 집회인지 교인은 누가 참석했는지 감시 차원에서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집회 날이 되어 광주 공원에 마련된 대형천막 집회장소를 찾아가 보니 대형천막을 쳐놓았는데 그 안에는 헤일 수 없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의 신분이라 일반교인이 앉아 있는 가마니에 앉기가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천막 가에 서서 집회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밤 집회시간이 가까워지자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셨지만 저는 팔짱을 끼고 계속 뒤에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단상에 서신 장로님께서는 웃옷을 벗으시고 흰 와이셔츠 바람에 잠시 하늘을 우러러 묵도하신 후 단상을 꽝꽝 내려치시며 “마음 문 활짝 열고 나를 바라보세요”하고 찬송 인도를 하시는데 찬송을 한참 반복해 부르다가 말씀하시기를 “방금 ‘받은 증거 많도다’하고 찬송을 불렀는데 교회 다니면서 은혜 받은 체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체험도 없으면서도 ‘받은 증거 많도다~’하고 부르면 거짓 찬송이니 부르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찬송을 부르시는데 생각해 보니 신학공부를 마치고 전도사를 하고는 있지만 영적 체험은 전혀 없었기에 ‘받은 증거 많도다’하고 찬송을 부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백합화 향취가 제 코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구의 머리 기름 냄새인가 하고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향취는 금방 사라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 다시 깊은 향취로 다가왔습니다. 사람의 머리 기름 냄새라면 사람이 운집한 공간에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다시 사라지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향취를 맡고부터 저는 마음 문이 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굳게 끼고 있던 팔짱을 조금씩 풀고 가마니로 가서 앉아 손뼉을 치며 찬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색한 손뼉은 어느새 힘차게 박자에 맞춰 목청껏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광주공원집회 사진을 보며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저 사진 속 저 만치에 내가 앉아 있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 속 내리시는 이슬성신이 직선이 아니라 모두 곡선의 빛으로 되어 있으니 더욱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하게 하나님께서 향취를 맡게 해주셔서 마음 문을 열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어 은혜를 받아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오게 해주신 것 같습니다.
오성민전직관장/기장신앙촌
하나님 머리 위에
광채가 빛나는 것을 보다
저는 장로교회에 다니던 중, 광주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였습니다. 집회가 시작되어 하나님께서 천막으로 들어오시는데 하나님 머리 위로 광채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또 바람도 하나 안 불던 날 찬송 중에 제 앞으로 낮게 휘감는 바람과 강한 향취가 세 번 연속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집회 이틀째 되는 토요일, 하나님께서 광주에 사는 교인들은 각자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다른 지역에서 온 교인들은 이 공원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각 교회 목사들은 서로 자기 교회로 하나님을 모셔 가려고 했고 결국 중앙교회 목사가 모셔 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하나님 계신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 중앙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머리 위로 빛나는 광채를 또 보았습니다. 옆에 앉은 집사에게 물어보았지만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하나님께서 광주집회에서 하시는 말씀이 어제 중앙교회에서 내 머리 위에 광채가 둘러져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하셔서 저는 손을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영예승사/부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