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의 배반(4)

끝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했다.
발행일 발행호수 2064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신앙의 혁명기에 적응하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 끝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했다.

1955년은 이 땅에 이슬성신의 역사가 시작되어 신앙의 혁명적 전환기를  맞이한 해였다. 그러나 당시 종교계의 지도자들이었던 목사들은 종내 이 신앙의 혁명에 적응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하여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안수 안찰로 은혜를 부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그들이 받은 바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를 알지 못하고 성신의 역사를 반대하는 대열에 서고 만 것이다.

목사들의 배반에, 직접 은혜를 부어 주신 하나님의 실망과 노여우심은 매우 컸다. 당시 윤재춘 관장(68세. 서대문교회)이 목격한 두려운 일화 한가지가 있었다. 1957년 어느 날 그는 포항에서 시무하다가 서울로 발령을 받고 올라와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소사 신앙촌으로 가는 중이었다.

`제가 경인국도에서 신앙촌까지 약 1.2km 되는 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하나님 차가 오는걸 보고 인사를 드리니 저를 보고 차에 타라고 하셔서 동승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댁이 정문 뒤편에 있었는데 차가 댁에 도착하니 무학교회의 강용서 목사가 하나님을 뵈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강 목사는 무학 장로교회 담임목사였는데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이슬성신의 은혜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무학교회로 초빙하여 집회를 가졌고 천막집회에 열심히 참석하여 받은 바 은혜를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권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이단으로 몰자 재빨리 그들의 앞장에 서서 노회장(老會場)에 나가 하나님을 이단이라고 규탄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지 은혜를 배반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기 위해 소사 신앙촌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여기 뭐 하러 왔느냐라고 물으시니까 강 목사가 한번 뵙고 싶어 왔다고 하더군요. 만날 일이 없으니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하나님 표정이 마치 백지장 같이 하얗게 변하셨는데 그렇게 진노하신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 나가라고 하시니까 강목사가 그러시지 말고 한번만 만나 뵙게 해 달라고 애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안내원에게 당장 끌어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하나님 은혜를 받고 배반한 죄는 사함을 받을 길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당시 목사들의 배반에 관한 증언을 들어 본다.

`집회가 끝나는 날 아침, ‘이제 집에 돌아가면 받은 은혜 잘 간직하고 은혜 받은 목사님 받들어 전도 많이 하세요’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헤어져 며칠 후 주일날 교회에 나가 낮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우리 교회 강 목사도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은 간증설교를 하시는데 그 얼굴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에 장로교 총회가 소집되어 거기에서 결의한 통고문이 왔는데 ‘박 장로는 사이비 종파의 이단이다. 그러므로 그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모조리 파면 조치하여 출교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통고문을 받은 강 목사는 돌변하여 단에서 의도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마침내 깡패를 동원시켜 강제로 광주 공원집회에 참석했던 우리를 몰아냈습니다. 그때 우리는 궁궐이나 초막이나 주 하나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임을 알았기에, 받은 바 은혜 쏟지 않으려고 그들과 싸우지 않고 빈손으로 나와서 저의 집에 모여 따로 예배보기 시작한 것이 천부교 영산포교회의 시작이었고, 그때가 1956년 10월 7일이었습니다.` (김영환 전직 교역자. 92세.  기장신앙촌)

`당시 저는 신마산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중앙 장로교회에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부흥 집회를 하시니 참석해 은혜를 받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그날 바로 중앙 장로교회로 찾아갔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는 큰 키의 박 장로님이 단에 서서 설교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집회 이후 저희 교회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전에는 교인들 사이에 편이 나뉘어 다투는 일이 많았는데, 박 장로님을 모시고 연 부흥집회 때 모두 기쁨의 은혜를 받고 난 후부터는 신마산 장로교회가 하나된 분위기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박 장로님의 집회에 가 보라고 권유했던 교회 목사님이 이번에는 박 장로님이 이단이라며 그분이 집회하시는 곳에 못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자유인데 왜 못 가게 하는 걸까?’ 생각하며 목사님의 말씀에 개의치 않고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리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신마산 장로교회 교인들도 많은 수가 이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날은 마산전도관이 세워져 개관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박달막 권사. 85세. 덕소신앙촌)

`1956년 3월경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예배 시간에 남문 장로교회 이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서울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이 각 지방에 다니며 집회를 하시는데 전주에도 집회를 하러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날짜와 장소를 가르쳐 주시며 다들 가서 은혜를 받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바로 그 주 일요일이었습니다. 남문 장로교회 예배 시간에 단상에서 이 목사님이 박태선 장로님을 이단이라고 치면서 비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서 말씀을 들어보니까 참으로 의로운 말씀을 하시던데.’ 생각하며 목사님의 말씀에 납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체험한 저로서는 ‘저분이 모략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날로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들이 찾아와서 다시 교회에 나오라고 하였지만 ‘은혜 받은 데로 나가겠다.’고 얘기하며 단호히 거절을 하였습니다.` (김종래 권사. 73세. 전주교회)

`당시 저는, 집 근처 무학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박태선 장로님을 모시고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한강 집회가 끝나고 얼마 후, 무학교회 목사님이 갑자기 박 장로님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박 장로님께서 인도하시는 집회에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박 장로님을 무학교회에 모셔다가 부흥집회를 열기도 하고, 다른 교회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있으면 목사님 본인도 참석을 했는데, 느닷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저는 목사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박 장로님이 부흥회를 하신다고 하면 교회는 텅 비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박 장로님 집회에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나금순 권사. 85세. 서울 성동교회 )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이전 기사

목사들의 배반(3)

리스트로 돌아가기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