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의 배반(2)

총회장 한마디에 이단이라고 돌변
발행일 발행호수 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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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천막집회에 가서 은혜 받으세요` 권면하던 목사들, 총회장 한마디에 이단이라고 돌변

1955년 하나님의 천막집회에 당시의 전국 기독교인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다시피 하였다. 천막집회는 보통 한 장소에서 일주일 이상 개최되었는데 부산서 집회하다 대구로 가면 경상남도의 기성교인이 다 따라갔고 대구에서 서울로 가면 또 전체가 몰려 따라가는 형편이었다.
한 번 집회 때마다 4, 5만 명까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옥내에선 할 장소가 없어서 한강 모래사장이나, 큰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하지 않으면 안 되어 천막집회가 된 것이었다.

그때 교인들뿐 아니라 2,000여 명이나 되는 목사들도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 그중에는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안찰을 받고 나은 중환자도 여러 명이 있었다. 집회기간에 하나님의 설교는 보통 낮과 밤에 각각 5시간 정도 있었고 그 이외 14시간 동안에는 목사들이 번갈아 단에 서서 은혜 받은 것을 간증하는 식으로 집회가 계속되었다.

또 교회를 짓다가 돈이 모자라 못 짓게 되면 하나님을 초빙하려고 수백 명의 목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으니, 하나님을 모시고 가서 집회를 하면 교회를 짓고도 남는 연보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자신들이 천막집회에 나가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직접 증거 했을 뿐 아니라 자기 교인들에게도 적극 권면하여 천막집회에 나가서 은혜를 받으라고 하던 목사들이 정작 교인들이 물밀듯이 천막 집회로 모여들고 자기들 교회는 텅 비게 되자, 총회와 노회를 잇달아 열고 박태선 장로님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면서 교인들을 못 나가게 막았다.맹경순 전직 교역자의 증언을 들어 보자.

`부흥회 때 참 목자라고 북을 치며 증거하던 2,000여 명의 목사들은 밥줄이 떨어지겠으니까 갖은 중상모략을 해서 못 나가게 역사를 했으나, 그럴수록 더 몰려와 이만제단을 지은 것이다.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교인들이 구분해 회개하고 따르는데 그 누가 말리겠는가! 영적인 명 의사를 찾은 우리는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다시 조남준 권사(83세, 기장신앙촌)의 간증을 들어 보자.

`창동교회에 다닌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창동교회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서 권연호 목사(노회 총회장)는 옆구리에 창이 생겨 진물이 나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했던 것을 하나님께 안찰받아 그 시로 완쾌되었는데, 그 후 집회마다 다니며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눈물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렇게 간증하던 권 목사가 하나님을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은혜 받은 서울, 경기도 등 각지에 있는 교인들이 하나님 은혜에 갈급한 나머지 원효로에 있는 하나님 자택에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조그만 기도처에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구제단을 짓게 되었습니다.`

김영정 전직 관장(기장신앙촌)의 증거.

`1955년 하루는 당시 제가 다니던 한일교회 장해진 목사가, 박태선 장로라고 유명한 사람이 한강에서 부흥집회(1955. 7. 4.~11.)를 하니 모두 참석하라고 하면서 단에서 광고를 하였습니다.
전에 남산과 중앙교회에서도 집회를 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가지 않았는데, 목사님이 가라고 하여 얘기로만 듣던 박 장로님 집회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부흥집회에 참석하라고 권유하던 장해진 목사가 ‘박 장로는 이단이다.’라고 하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람나무라 하고 이슬성신을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기성교단이 우리 하나님을 이단으로 몰았던 이유는 뻔했습니다. 기성교회에 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그분을 따르니 자연히 자신들이 목회하는 교회에는 신도 수가 줄었고, 하나님 부흥회 하실 때마다 나오는 헌금을 자신들이 챙겼었는데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겠다고 하시니 기성교단에서는 비상이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장해진 목사가 하나님을 이단으로 몬 이후 제가 다니던 한일교회에서도 신도 70명 중 50명(그중에는 한일교회 7명의 장로 중 4명이 포함됨)이 하나님을 따랐으니 기성교회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께 갖은 중상모략을 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에게 핍박을 하니, 그 핍박에 못 이긴 나머지 제단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김말연 권사(60세,부산 동래교회)의 증언.

`교회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며칠 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집회를 하시니 다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김해 장로교회 목사가 말하길 ‘나도 못 고치는 병을 박태선 장로가 고치니 이단이다.’라고 하면서 박태선 장로의 집회에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하나님을 우리 교회에 모셔서 집회를 열었던 목사가 완전히 다른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김해 장로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장로교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고, 물론 저와 어머니도 그 얘기를 들은 다음 날부터 장로교회에는 발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장로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공터를 빌려서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열었고, 1956년에는 김해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홍길순 권사(76세, 기장신앙촌)의 증언.

`당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라는 말씀을 하셔서, 저는 그때부터 영등포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영등포 감리교회의 유 목사님은 단에 서면 언제나 ‘한국 땅이 복이 많아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 하시며 늘 박 장로님에 대한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예배 때에 목사님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오더니 ‘이제는 불의 사자가 변하여 교만이 차 마귀가 들어갔다.’고 하면서 누구든지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가는 자는 교적부에서 제명시키라는 공문이 총회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새벽까지만 해도 박 장로님의 칭찬이 자자하시더니 왜 저러나?’ 하고 목사님을 쳐다보는 순간 머리에 큰 투구를 쓴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교회에 가니 눈을 뜰 수가 없고 머리가 눌리는 답답한 느낌이 들어 그 교회에는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어 발을 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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