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간장
`한 번 맛보면 뗄 수 없는 맛`“1960년대 초 부천군 소사읍 범박리에 소재했던 신앙촌에서 생산 판매하던 왜간장은 아직도 향수가 깊다. 뜨끈한 밥에 달걀 한 개 깨뜨려 넣고 왜간장을 쳐서 비비면 그야말로 일미였었다.”
요즘에도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면 뜨끈한 밥에 달걀 프라이 해서 얹고 신앙촌 간장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비벼 먹는 것은 일미다. 그것은 맛있는 간장이 있기에 가능한 메뉴인데, 그 맛있는 간장 한가운데 신앙촌 간장이 있다.
초창기부터 간장장사를 20년 했다는 최종성 승사(소사교회)는 “예전에는 우리가 이고 메고 다니며 집집마다 덜어서 팔았어. 한 말 반을 들고 다닌건데 덜어서 팔면 됫병 14개 정도 됐지. (1되=1.8리터) 그때도 신앙촌간장이라고 하면 (신앙촌은) 손 씻은 물 먹고 발 씻은 물 먹는 데 아니냐고 했어. 그러면 요즘같이 달나라에도 가고 별나라에도 가는 세상에 손 씻은 물 먹으라고 줄 사람은 누구고, 먹을 사람은 어디 있겠냐며 설명을 해주면 ‘그럼 그렇겠지’ 하며 그때부터 고객이 되는 거야. 간장을 팔다보면 메리야스를 갖다 달라고 하고, 그래서 다음 번에 주문받은 걸 갖다 주고, 그러면 ‘신앙촌 아주마이 왔냐’며 일가나 온듯이 반가워하고 그랬어.”
소비조합이 직접 들고 다니던 시대를 지나면 덕소 시절엔 큰 나무통에 간장을 담아 지역별로 부쳐줬다.
“덕소에 가서 주문을 하면 한 아름도 더 되는 커다란 나무 통에 간장을 담아 부쳐주면 기차로 와서 그걸 통운에서 배달을 해줬어. 나무 통이 위에만 뚜껑이 있었는데 석유 덜 때 쓰는 펌프(석유자바라)로 병에다 덜어서 팔았어.” 40여 년 전 김천에서 신앙촌가게를 시작했던 김미숙 관장(전농교회)은 당시를 회고했다.
1980년대 중반 신앙촌간장 가운데 명품인 생명물간장이 출시되었다.
생명물간장이 태어날 당시 공장장이던 진하옥 집사(74.신앙촌)는 “1985년 기존 시설이 노후해 품의를 올려 10월 29일 기계를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본 기꼬망 간장보다 더 맛있게 간장을 만들라고 하시며 2만 개 생산 오더를 내려주셨습니다. 그해 12월 9일에 첫 제품이 생산되었는데 처음 생산된 제품에 직접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생명물간장이란 상표에 대해서도 진하옥 집사는 이야기를 해줬다. “처음엔 생수간장이라고 하자고 하셨는데 그 때 소주 만드는 진로에서 물을 팔면서 생수라고 했어요.”
지금에야 포장해서 파는 물에 대해서 먹는 샘물이라고 하지만 처음 포장된 물을 팔던 당시엔 생수라고 해서 팔았다. 그래서 천부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물을 생수라고 하다가 ‘생명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2003년엔 생명물간장을 비롯한 생명물두부, 생명물식초의 제품에서 식품 등의 표시 기준상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생명수’와 유사하다고 ‘생명물’ 용어를 삭제해 달라는 부산시 가장군수 명의의 소송에서 “제품의 품질에 부정확한 인식을 갖도록 소비자를 오도하거나 식품의 위생적인 취급을 저해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로 이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