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조 있는 기도’ 찬송으로 은혜를 간구하는 신앙생활

발행일 발행호수 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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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의 초창기 천막집회에서 찬송하는 모습(1955년 서울 여의도)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 주시며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성신의 은혜를 받아 간직하는 구체적인 행함이라 하셨습니다. 은혜 받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와 찬송은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는 찬송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때의 기쁨은 참으로 크고 감사하다는 것을 많은 신앙체험기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설교보다 찬송이 더 많은 은혜를 입게 된다는 말씀과 같이 찬송을 부를 때 마음 문이 열리고 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나님 집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냉랭한 마음이었던 백태신 승사(87세, 신앙촌)는 찬송을 부를 때 향취 은혜를 받게 되고, 마음이 열린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1955년, 어머님 권유로 남산 집회에 갔습니다. 천막 안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뒷자리에 겨우 앉았는데, 사람들은 며칠씩 집에 가지 않고 집회장에 머무른 것 같았고 예배 시작 전이라 그런지 장내가 소란했습니다. 그 분위기가 경건하지 못하게 느껴져서 예배를 마치면 바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곧이어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찬송을 인도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 된 듯 집회장이 떠나가라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를 때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만개한 꽃동산에 파묻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은은한 향기가 아니라 아주 진한 향기가 계속 맡아졌습니다. 저는 제일 좋다는 프랑스제 향수를 맡아 본 일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향수도 오래 맡으면 머리가 아프고 좋지 않은데, 그 향기는 맡으면 맡을수록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옆에 계신 어머니에게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화장한 사람도 안 보이는데 향수 냄새보다 훨씬 좋아요.”라고 하자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분들이 성신의 향기라며 제가 은혜를 받은 거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향기를 맡고부터는 밥 먹을 생각도 없고 집에 갈 생각도 잊은 채 집회장에서 철야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와서도 예배 시간에 불렀던 찬송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하루는 거리를 걸어갈 때 집회에서 불렀던 ‘구주는 산곡의 백합~’이라는 찬송을 속으로 가만가만 부르면서 ‘이 찬송 부를 때 향기를 맡았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서 깜짝 놀라 꽃이 피었나 하고 둘러봤지만 그런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마음은 왜 그리도 기쁜지 하늘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감동을 전해 줍니다. 학창 시절, 은은하게 울리는 찬송 소리에 이끌려 전도관에 다니게 된 송정선 권사(75세, 수원교회)는 그 찬송을 들었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 나이 열다섯 살, 경상남도 김해에 살던 때였습니다. 평소 잘 다니지 않는 길로 가던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 오네~” 그 찬송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은지, 기성교회에 다니면서 찬송을 많이 불러 봤지만 찬송이 그렇게 감동적으로 들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음속 깊이 울리는 듯한 그 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가 봤더니 흙벽돌로 지은 아담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날 교회 옆에 서서 한참 동안 찬송을 듣다 돌아왔는데, 며칠이 지나도 찬송 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며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몇 주가 지난 일요일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마침 창문이 열려 있어 한참 동안 창문 앞에 서서 예배 광경을 들여다보았는데, 어느 교인이 나오더니 예배실로 들어오라며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김해전도관이었습니다. 예배실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진지한 얼굴로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사람들이 하는 대로 손뼉을 치며 힘차게 찬송을 부르고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아주 좋은 향기가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기는 부드럽고 향긋하면서도 너무나 산뜻한 느낌이어서, 그에 비하면 꽃향기는 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향긋한 그 냄새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냄새로 바뀌었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또 어느 순간에 다시 맡아지곤 했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지?’ 하며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냄새가 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음 덩어리가 목에서부터 가슴으로 쭉 내려오는 것같이 가슴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기분이 왜 그리 좋은지 희열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기쁘고 즐겁다는 말을 다 모아도 그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예배 마친 후 제 또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는데, 제가 맡았던 좋은 향기가 바로 하나님 주시는 은혜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찬송 소리에 이끌려 김해제단에 첫발을 디딘 저는 그때부터 새벽예배도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가족들도 전도했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은은히 울리던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찬송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저를 생명길로 이끌어 주었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제 마음의 찬송입니다.

찬송으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 주시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하나님을 직접 뵌 분들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 생각했던 고등학생도 찬송을 통해 하나님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양산 천부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정소영 학생관장(28세)이 들려준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신앙촌에 있는 시온실고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을 때 기숙사 생활이 걱정스러웠다. 엄마 품에서 떠나 독립을 한다는 흥분된 느낌이 있는가 하면 단체 생활에 적응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

일요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나서는 새벽 운동길도 점점 적응되었다. 학교 마치고 늦은 시간 라면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마음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학교를 가도 즐겁지 않았고 기숙사에서도 재미가 없었다. 나의 이런 상태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기 힘들었다.

나는 무작정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가 기도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기도를 해도 마음에 변화가 없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에게도 말못한 속마음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니 눈물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2010년 2월 7일, <그리운 하나님> 사진 전시회.

그리고 일요일 예배 시간 처음 부르는 찬송가 82장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 주의 손을 붙잡을 때 무슨 두려운 것 있을까, 내 곁에 항상 계셔 보호하시는 주니 참 아름다운 친구일세’ 내게 힘든 일이 있어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고 용기를 주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부르면 부를수록 감사하고 벅찬 마음에 눈물이 끊이지 않았고 정말 하나님께서 옆에 계셔서 내 찬송을 들으시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얼마나 기쁨이 솟구쳐 올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언제 힘들었나?’ 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기쁘고 바쁘게 살게 되었다.

하나님을 뵌 적이 없는 나는 신앙신보에 실린 하나님의 모습, 체험기에 쓰여 있는 이슬성신의 체험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 마음을 진실하게 말씀드리며 찬송으로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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