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전도관에서 빈민 위한 ‘공민학교’ 열어 무료 교육

시온 고등공민학교
발행일 발행호수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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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지금은 획일화된 교육이 싫고 공교육에 염증을 느껴 대안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실정이지만,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정 형편상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이후 온 국민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1950~60년대에 배움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청소년들에게 초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던 ‘공민학교(公民學校)’,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고등공민학교’ 제도가 있었는데 천부교에서 이 교육에 앞장을 섰던 것이다.
공민학교는 1946년 ‘공민학교설치요령’에 근거해 정상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국민 생활에 필요한 보통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제도로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면서 교육법상 초등학교와 동급의 교육기관으로 편성됐다. 대부분의 공민학교는 전쟁 후 피폐해진 교육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실 하나 갖추지 못한 채 천막과 창고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고마운 곳이었다.
하루에 한 곳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전국 방방 곡곡에 개척되던 전도관에서는 단순히 전도와 포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사업의 일환으로 공민학교를 열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1960년대를 살았던 세대는 알 것이다. 온 사회가 다 ‘재건’이었다는 것. 재건복, 재건스타일, 재건학교까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자봉도라는 전남 여수 앞 바다의 작은 섬에도 전도관이 세워졌고, 4개월 만에 재건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야기가 신앙신보 1962년 9월 3일자와 1963년 2월 18일자에 크게 보도되었다. 일종의 공민학교였다. 당시의 보도가 낙도인 자봉도의 상황을 잘 설명할 듯하여 옮겨본다.
“라디오 한 대도 없는 어촌에다가 그나마 자녀들의 교육기관이라곤 국민학교도 없어 40여 적령기 아동들은 이웃섬 월호국민학교로 선편을 이용해서 통학하고 있었는데 자봉전도관의 전도사는 우선 4학년 과정까지 두고 신앙촌의 지원을 받아 유니폼을 사서 입히고 모자까지 쓰게 하였으며 청소를 할 땐 입에 마스크를, 여자들은 앞치마를 두르게 하는 등 실생활 개선의 산교육을 시키고 있다.” 지금 여수시에서 소개하는 자료에 의하면 자봉도에는 전도관만이 유일한 종교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이다. 1967년에야 화정국민학교 자봉분교가 개교한다.

초등학교 또는 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중학교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학교가 고등공민학교이다. 고등공민학교도 공민학교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의무교육이 점진적으로 확대 실시됨에 따라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도관에서 세운 고등공민학교도 전국에 많이 있었다. 대도시와 산골, 낙도까지 대한민국에 전도관이 있는 곳중 교육의 기회가 필요한 곳이면 어김없이 고등공민학교가 세워지고 전도사들은 학생들 교육에 앞장섰다. 고등공민학교란 긴 이름이 불편했던 학생들은 시온중학교란 간단한 이름으로 불렀고, 전국에는 참 많은 시온중학교가 세워진다.
1966년 공주전도관에서는 중등과정의 고등공민학교를 세우고 무상교육을 실시하여 주위의 칭송을 듣고 있었는데, 외국인 엘렌 테일러 공주 사범대학 교수도 감명을 받아 2주에 한 번씩 나와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신앙신보 1966년 11월 28일자는 보도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군 팔탄면의 시온고등공민학교는 교실을 증축하는 등 빈민의 교육기관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1968년 경에는 배구부의 활동까지 두드러졌다고 한다.
한편 경기도 연천군 전곡에는 제법 큰 규모의 전곡 시온고등공민학교가 있었는데 1969년 신입생 모집을 위해 교실을 증축하고 신입생 모집 광고를 내기도 했다. 농구대, 탁구대 등 운동시설들도 기성교육기관 못지 않게 잘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1962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덕소신앙촌에서는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전국 각지에 세워지는 공민학교에 슬레이트 같은 건축 자재를 지원해 교사를 신축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어느 곳이나 꼭 피아노를 한 대씩 선물로 보내 주셨다.
시온고등공민학교에서는 대체로 전도관의 전도사가 교장이었으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전도사들은 지역사회 단체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지금엔 이름도 생소하고 낯선 ‘공민학교’이지만 공민학교는 한참 공부하고 싶던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하나님을 만날 길도 열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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