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향기속에 듣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가을... 사색(思索)의 벗붉은 색으로 물들어 바스락거리는 단풍잎이 길가에 떨어져 나부낄 때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시인처럼 자연을 돌아보며 내면의 침잠 속에 잠긴다. 자연의 흐름과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사람이 만든 음악은 때론 조악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깊은 사색의 순간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고즈녁한 저녁, 가을바람 사이로 정적을 느낄 때면 이 음악이 훌륭한 사색의 벗이 되어줄 것이라 여겨진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Op.15
유태계 러시아출신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모스크바 독주회…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피아니스트는 전속 조율사를 대동하여 자신의 피아노를 미국 자택에서 비행기로 공수하는 등 연주회는 시작 전에 벌써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1924년, 21세로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간 호로비츠는 유럽과 미국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며 대 피아니스트로서 확고한 위치를 다졌지만 정작 러시아에는 동서이데올로기가 팽배한 당시의 상황으로 인하여 가기가 어려웠다.
1986년에 성사된 모스크바에서의 귀향연주회는 82세 거장의 위대한 예술혼을 보여주는 명연으로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에 61년만에 돌아와 담담하고 정감있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그를 잘 알고 마음을 열고 기다려온 청중들과의 감동적인 교감을 느낄 수 있다. 연주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마침내 앵콜곡으로 잔잔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연주되자 객석은 조용한 한숨,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기며 한 중년 신사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13곡의 피아노 소품을 모은 모음곡 ‘어린이 정경’의 7번째 곡으로 1838년에 완성되었다. 작곡자 자신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이곡은 순수한 어린이들의 따뜻한 동심의 세계를 단편적인 표제를 붙여 모은 곡이며, 트로이메라이는 꿈을 뜻하는 트라움(Traum)에서 파생된 시적인 표현으로 시와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작곡가의 이면이 엿보인다.
슈만의 작품 중에도 가장 독창적이며 서정적이란 평가를 받는 트로이메라이는 느리고 애조 어린 멜로디에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꿈을 그려내고 있다.
/협회 음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