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0>부활이라는 믿음에 대하여-①

세계 종교 탐구 <40>
발행일 발행호수 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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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죽은 이가 며칠 만에 다시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다. 그러나 종교에서는 생명체가 생명을 잃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일어난다고 얘기한다. 부활은 고대부터 종교에서 흔히 사용되는 주제였지만,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며 현대에서는 보통 신화적·종교적 이야기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나 신이 부활한다고 믿는 종교들이 있다.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부활을 주장하는 종교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 믿음에 대하여 검토해 본다.

▣ 부활을 믿는 종교들이 있다

오늘날 부활을 믿는 종교라 하면 흔히 기독교를 떠올리지만, 부활은 기독교 이전 고대부터 널리 존재해 온 종교적 주제였다. 문자가 해석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비롯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인도 등 고대 세계 각지에서 부활 신앙이 관찰된다. 간략히 살펴보면, 서기전 2100년경 기록된 수메르의 문헌에는 저승에 간 이난나 여신이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로 나무못에 매달려 있다가 생명초와 생명수로 3일 만에 다시 부활했다는 내용, 목자의 신 두무지와 포도주의 여신 게쉬티난나가 반년씩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죽음과 부활을 반복한다는 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신이 동생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부활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리스에서는 제우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온몸이 찢기는 불행을 당했지만 부활했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의 기적을 행하는 포도주의 신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미트라, 아도니스, 아티스, 페르세포네 등 부활을 했다고 알려진 다양한 신들이 존재했고, 로마에서는 인간이 부활해 추종자들 앞에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었다. 아폴로니우스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기적을 행하다 반대자들에 의해 고발당해 처형되었는데, 그가 죽은 후 몇몇 추종자들이 그를 목격했고, 자신들이 그를 만지기도 했으며 그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는 기독교의 예수 이야기와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이들을 신으로서 섬기는 현대인들은 거의 없다. 캐나다 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에 따르면, 숭배받지 못하는 신은 무력한 신이 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신들도 열렬한 추종자들이 있던 당시에는 부활하는 신이었지만, 숭배하는 신자들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신적 존재가 아닌 신화와 이야기 속의 허구적 존재로 변하게 된 것이다. 현존하는 종교들에는 아직도 고대에 널리 퍼져있던 부활에 관한 교리들이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다.

힌두교와 불교는 죽은 뒤 환생을 반복하는 윤회설을 믿는 종교지만 부활에 대한 기록도 일부 있다.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타 푸라나 제11권 31장에서는 힌두교의 주요 신 중 하나인 크리슈나가 죽은 후, 요가 수행에 집중했던 덕분에 직접 초월적인 거처로 돌아갔다고 기록돼 있다. 불교 선종의 창시자인 인도 승려 달마도 부활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사(唐史)>에 의하면, “달마라는 승려가 배를 타고 중국에 와서 죽었다. 그 후 위나라 사절 송운이 서역에서 돌아올 때 총령에서 그를 보았다. 송운이 돌아와서 문도에게 말한다. 그의 무덤을 파헤치니, 오직 신발 한 짝만이 남아 있었다.”고 되어있다. 이는 빈 무덤으로써 달마의 부활을 묘사한 것이라 해석된다.

유대교의 부활 신앙은 신의 부활이 아닌 인간의 부활을 말한다. 메시아가 올 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이다. 예를 들어 유대교 경전 다니엘서 12장 2절에는 “(마지막 때에) 이미 죽어서 땅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며 그 가운데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도 있고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유대인 중에서도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바리새파 사람들만 의로운 사람이 소생하여 다시 사는 힘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바리새파 유대인 출신이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은 자신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 주장하고, 부활과 믿음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닌 사람이다. 그는 사도행전 23장 6절에서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새인이며 내 부모도 바리새인입니다. 내가 이렇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바리새인들이 믿는 대로 나도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유대인이었던 바울에게 부활이란 개념은 새롭지 않았고, 예수의 부활을 자신있게 주장하고 다녔다. 그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고린도전서 15장 13~15절)”라고 할 정도로 부활을 중요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바울과 달리 다른 유대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당대 영향력있던 유대인 태생 지도자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부활한 그를 여러 명이 목격했다는 파격적인 사건임에도, 미국의 성서학자 바트 D. 어만에 따르면 예수의 사후 80년이 지날 때까지 예수 부활에 대한 언급은 성경을 제외하고는 이방인의 어떤 자료들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하는 이슬람에서도 예수의 부활은 부인한다. 이슬람 경전 꾸란을 보면 부활을 논하기 이전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은 꾸란 4장 157장의 내용으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고 주장하나, 예수와 닮아 보이는 자였을 뿐이며,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이를 부정하는 자들은 잘 알지 못하면서 억측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였다고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못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할 따름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할 뿐이라.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현대에도 예수가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담은 책과 다큐멘터리들이 발표된 바 있다. 이들은 진술은 있지만 증거는 없는 고문헌, 꾸란, 성경과 달리 현대의 지식과 과학기술을 동원해 나름의 고증을 거쳤다. 1982년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으며, 프랑스로 도망가 마리아와의 자식을 낳았고, 그 후손이 현재도 살아있다는 내용의 책『성혈과 성배』가 출간되었다. 저자들은 예수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실제 프랑스 등지를 돌며 고증하고자 했고, 10년간 추적한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내린 결론이었다. 2007년에는 예수 일가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예수의 잃어버린 무덤』이 방영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1980년 예루살렘 인근에서 2,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가족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관에 쓰여진 문자를 해독한 결과 ‘요셉의 아들 예수’, 2명의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아들 유다’라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DNA를 분석한 결과 가족 관계가 일치했고, 특히 ‘예수의 아들 유다’라고 기록된 관은 예수가 아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발견은 고고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될 것이며 기독교의 근본을 뒤흔들만한 중대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종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믿어주지 않고,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는 여러 논란 속에서도 예수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그의 부활을 믿는다. 기독교에 있어 예수의 부활은 수많은 교리의 하나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부활이 사실이어야만 인간이었던 예수를 신이라 주장할 수 있고, 사망을 이기고 죄를 사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활의 진위가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 참고자료1 > 예수를 찔렀다는 창이라고 믿다

기독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는 종교다. 그들 경전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한 군인이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있는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데, 이때 사용한 창을 예수의 피가 묻은 성스러운 창이라 하여 ‘성창’이라 부른다. 이 장면은 요한복음서 외에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집필 당시 예수가 죽지 않았다는 논란이 있자 죽었음을 확실히 하고자 집어넣은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에서는 이 창이 실존한다고 믿으며, 여기저기서 성경 속의 창이라 주장하는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성창들을 소개해 본다.

(출처: 마리아사랑넷, 위키피디아)

■ 튀르키예 안디옥의 창
1098년 1차 십자군이 발견했다는 창이다. 1098년 6월, 십자군 피에르 바르텔레미 수도사는 누군가 성창이 튀르키예 안디옥의 대성당에 묻혀 있다고 알려주는 환상을 보았다 주장했고, 성당을 파낸 끝에 창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창의 발견 배경과 발견자에 대한 기록이 하나가 아니다. 은자 피에르 레르미트도 자신이 안디옥에서 성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피에르는 성창의 진위 여부때문에 시죄법 재판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또다른 기록으로는 피에르의 반대 세력이 꾸민 자작극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기록이 사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실존하는 유물도 없다.

(출처: NCR, 위키피디아)

■ 바티칸 베드로 성당의 창
바티칸이 보유하고 있다는 성창은 창촉의 앞부분이 부러진 상태이다. 6세기에 최초로 언급된 이 창은 614년, 예루살렘이 페르시아군에 점령당했을 때 두 개로 나뉘었는데,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교황 인노첸시오 8세에게 기증하면서 아랫부분은 이때부터 베드로 성당에 보관되었다. 부러진 창의 앞부분도 프랑스 생트 샤펠 성당에 보관되는 등 성유물로 전해져왔으나 프랑스 대혁명 때 행방불명 됐으며, 창의 온전한 모습은 그림으로만 남아있다. 18세기 중반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바티칸의 것과 생트 샤펠의 두 조각이 한때 하나의 칼날을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을 그림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토 14세는 그것이 진짜 성창이라고는 밝히지 않았다. 이는 교황조차도 그 진위를 확신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현재까지도 바티칸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포함해 그 어느 것도 진품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있다.

(출처: 어도비스톡)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창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 궁전의 빈 미술사 박물관에도 성창이 있다고 한다. 4세기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손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성창을 소유한 사람은 천하를 주름잡는다는 전설이 있다. 2003년, 박물관 측에서는 영국의 금속학자 로버트 페더에게 성창의 연대 조사를 의뢰했다. 로버트 페더는 X선 회절, 형광 테스트 및 기타 비침습적 절차를 기반으로 창의 연대를 측정했고, 7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엔나에 있는 학제간 고고학 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엑스레이와 기타 기술을 사용하여 창의 연대를 조사했는데, 8세기경에서 9세기 초까지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이 창이 예수 시대인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 아르메니아의 창
13세기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창으로, 사도 유다 타대오가 아르메니아로 가져온 것이라 주장하며, 현재는 아르메니아 에치미아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르비아 역사가 알렉사 부코비치는 창 끝이 너무 넓다며 “이것은 순전히 의식용 창이며, 아무것도 뚫지 못하기 때문에 무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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