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플러스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2>누구를 위한 파산인가?  가톨릭교회 파산 심리에서 드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산산조각난 삶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2>누구를 위한 파산인가? 가톨릭교회 파산 심리에서 드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산산조각난 삶

볼티모어 대교구도 성학대 피해자 배상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챕터 11장에 의한 파산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대교구는 2023년 9월 29일에 파산을 신청했는데, 이 시점은 메릴랜드주의 성학대 소송과 관련된 새로운 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이었다.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 학대가 얼마나 오래 전에 발생했는지에 관계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므로, 볼티모어 대교구가 이를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파산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볼티모어 대교구 파산 사건에 대한 심리에서 성학대 생존자 8명이 자신들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성학대가 피해자들의 삶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에 대해 증언했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성학대, 끔찍함으로 점철된 삶으로 이어져 58세 여성의 사례 “지금 나를 보고 계신가요?” 현재 58세인 한 여성은 윌리엄 로리 대주교를 향해 외쳤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저는 PTSD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불안, 우울증, 공황 발작을 앓고 있어요. 저는 장애인이예요. 오늘 이야기를 하고 회복하려면 며칠이 걸릴 거예요. 제 진실을 듣고 제가 겪었던 고통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학대로 인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파괴 되었고, “끔찍한 결정”으로 점철된 삶으로 이어졌다고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녀는 성적 방종, 약물 남용, 섭식 장애, 학대적인 관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대교구에 의견을 전하는 이유는 매우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학대자를 폭로하고 그녀가 겪은 일을 보고했을 때 교회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증언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로리 대주교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특권이라 생각했던 늦은 밤 사제의 초대 마크 이즐리의 사례 독실한 가톨릭 가문 출신인 마크 이즐리는 1960년대 시민운동 당시 세인트 빈세트 드 폴 교회가 “안전한 피난처”라고 믿었다. 때문에 이 교회의 사제인 에드먼드 스트라우프는 이즐리 어머니의 신뢰를 얻었다. 그래서 6, 7살쯤 된 이즐리와 그의 남동생이 스트라우프에게 초대받아 교회에서 밤을 보내자고 했을 때, 그들은 “특권”이라고 믿었다. 스트라우프는 그들을 사제관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었다. 스트라우프 사제는 아이들에게 잠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한 뒤 욕실에 들어갔다가 알몸으로 나왔다. 이즐리는 “저는 그를 신의 사자 중 한 명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사제복을 벗은 모습을 그때 처음 봤습니다”라고 했다. 이즐리는 이 사실을 말하기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결국 이즐리는 학대로 인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없었고,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이즐리는 “그의 끔찍한 성적 학대 행위로 인해 저는 고립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술과, 마약, 자살시도… 두려움과 고통을 잊기 위해 레베카의 사례 법정에서 레베카로만 밝혀 달라고 요청한 한 여성은 볼티모어의 세인트 피터 클라버 가톨릭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끔찍한 학대가 그녀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는 처음 학대가 발생했던 날을 기억했다. “어느 날 학교의 대교구 직원이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나를 구석으로 몰았어요. 그가 처음 이런 짓을 한 건 제가 겨우 12살 때였던 것 같아요. 그는 어른이었고 저보다 컸어요.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또 있었어요” 레베카는 학대사실을 한 신학생에게 털어놓았고, 그가 자신이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레베카는 학교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선생님을 도와드리다가 조금 늦게 학교를 떠나려고 했는데 ‘쾅’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사람이었어요. 그는 제게 오라고 했고, 무서웠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는 화를 내며 왜 자신을 고발했냐고 물었어요.” 이후 레베카는 직원에게 끌려가 화장실에서 강간을 당했다. 결국 그녀는 전학을 가게 됐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또한 ‘두려움과 고통을 잊기 위해’ 19살 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과 마약 남용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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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3>‘신의 사역’이라던 오푸스 데이, 인신매매와 노동 착취 혐의로 검찰 수사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3>‘신의 사역’이라던 오푸스 데이, 인신매매와 노동 착취 혐의로 검찰 수사

아르헨티나 검찰은 1983년부터 2015년까지 남미 오푸스 데이의 최고위 간부들이 최소 44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인신매매와 노동 착취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해 형사 수사를 시작할 근거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그 기간 동안 오푸스 데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볼리비아의 사제 또는 지역 평의원으로 재직했던 인물들을 소환해 증언할 것을 연방 판사에게 요청했다. 해당 인물들은 카를로스 난네이(1991-1997), 파트리시오 올모스(1998-2014), 빅토르 우르티사라주(2014-2022)이다. 추가로 2015년까지 오푸스 데이 여성부를 담당했던 지역 비서 가브리엘 돈도에 대한 심문도 요청하고 있다. 오푸스 데이(Opus Dei), 라틴어로 ‘신의 사역’은 스페인 신부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1902~ 1975)에 의해 1928년에 설립되었으며, 70개국에 9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2002년 에스크리바를 시성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큰 지지를 받았던 이 평신도 단체는 교회에서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교황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세속적인 직업과 가족을 가진 평신도 남성과 여성들로, 일부 회원은 사제나 독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2022년에 제기된 고소에 따라 검찰팀은 조사를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70년대 초부터 2015년까지 “오푸스 데이 내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 최소 44명의 여성, 대부분은 소녀와 청소년을 모집하기 위한 구조를 설립하여 이들을 노예와 유사한 생활 조건에 처하게 했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오푸스 데이가 저소득 가정의 소녀와 청소년을 선발했으며, 이들은 대개 조직의 활동 센터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 지역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훈련을 받고 취업 전망을 개선한다는 약속”아래 모집되었다. “입소 후 이들은 ‘영적, 전문적, 직업적 훈련’ 체계에 따라 교육을 받았으며, 만약 보조 수녀(Numerary assistants)로서의 소명을 보이면, 국내외 오푸스 데이 센터에서 평생 가사 업무를 수행하도록 배정되었습니다”라고 검찰은 덧붙였다. 피해자 히메네스(59세)는 14세에 고향 파라과이의 오푸스 데이에 가입하여 교육을 받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수학이나 역사 대신 요리, 청소 및 기타 집안일에 대한 훈련을 받으며 오푸스 데이의 거주지와 요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18년 동안 그녀는 옷을 세탁하고 욕실을 청소하며, 하루 12시간씩 단체의 필요에 따라 일 했으며, 식사와 기도를 위한 휴식 시간만 있었다.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손에 돈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며, “저는 무릎의 통증과 샤워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에 질렸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들은 생각하거나 비판할 시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견뎌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신에게 완전히 항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봉사 기간 동안 겪었던 신체적, 심리적 요구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며 단체에서 떠나기를 요청했다. 이들은 오푸스 데이를 떠난 후 돈도 없이 방치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심리 치료가 필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들은 오푸스 데이에 재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오푸스 데이가 학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언론인 가레스 고어(Gareth Gore)의 생생한 증언과 철저한 연구로 완성된 책 『오푸스(OPUS):다크머니, 비밀스러운 컬트, 그들의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그들의 사명』은 한 젊은 스페인 신부의 꿈에서 시작해 가톨릭교회의 의제를 형성하고 스페인 최대 은행 중 하나와 심지어 미국 대법원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국제 네트워크로 성장한 집단의 책임을 재조명하고 있다. 고어의 기록에 따르면,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오랜 시간 동안 이 단체의 규칙은 바티칸에서도 비밀로 유지되었다. 초창기 오푸스 데이의 거주지는 도청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고, 내부의 책과 신문은 검열 대상이었다. 회원들의 약점이 담긴 정보는 비밀 서류에 보관되었으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이들은 진정제로 다스려졌다. 이 단체를 떠나려 한 사람들은 파멸을 경고받았고, 조직의 비밀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았다. 에스크리바는 전 세계로 진출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불타는 야망에는 상당한 현금이 필요했다. 돈과 이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곧 에스크리바 조직의 핵심 역량이 되었다. 조직의 학생들은 프란시스코 프랑코(스페인 독재자,1892-1975) 독재 정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하고,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정부 장관과 산업계 거물로 승진하기 시작한다. 한편, 오푸스 데이에 모집된 많은 여성들은 오푸스 데이 센터에서 무급 가사 노동을 하며, 가족과의 대화가 금지된 채 갇혀 지낸다. 오푸스 데이는 방코 포퓰라르(Banco Popular: 스페인의 주요 상업은행)와 부유한 회원들로부터 들어오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글로벌 부동산 제국을 건설해 나간다. 에스크리바는 로마에 있는 빌라 테베레라는 궁전을 매입하여 자신을 위한 호화로운 아파트뿐만 아니라 12개의 식당과 14개의 예배당을 마련했다. 그는 이 같은 사치를 “우리가 먹는 것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초창기 오푸스 데이는 바티칸과 불안정하고 명확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운영되었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오푸스 데이와 그 창립자는 가톨릭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에스크리바는 1975년에 사망했지만, 보수적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3년 후 선출되면서 오푸스 데이는 마침내 로마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고, 이후 에스크리바는 이 폴란드 출신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고어가 보기에 오푸스 데이가 현대 세계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미국에서의 성장이다. 책의 후반부는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오푸스 데이가 미국의 보수적 가톨릭 엘리트들과 동맹을 맺고, 강력한 ‘다크 머니’ 자금 시스템을 구축하며, 레너드 레오(Leonard Leo) 같은 법조인을 지원해 미국 대법원의 판세를 좌우하고, 낙태 권리와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온 과정을 다루고 있다. 고어는 “설립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오푸스 데이는 문화 전쟁을 부추기고 사회를 분열시켜 결국 우리 사회를 파탄에 이르게 할 위험을 초래하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현재 오푸스 데이는 진보적인 교황과 마주하고 있으며, 역사적 학대 혐의와 관련된 법적 소송에 직면해 있고, 국제적인 명성 또한 실추된 상태다. 창립 100주년을 앞둔 지금, 『오푸스(OPUS)』와 같은 책들이 공론의 장에서 적어도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비밀스럽고 극도로 보수적인 가톨릭 종파 오푸스 데이의 신도들이 세계 최대 은행 중 하나에서 빼돌린 수십억 달러를 이용해 교회와 전 세계에 급진적인 의제를 밀어붙인 과정을 담은 스릴 넘치는 폭로. 방코 포퓰라르는 반세기 이상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은행 중 하나였다. 2017년 어느 날,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기 전까지. 가레스 고어가 이 사건을 보도하기 위해 파견되었을 때, 그는 역사상 가장 노골적인 기업 약탈 ​​사건 중 하나를 밝혀냈는데, 이는 독신과 자기 채찍질을 맹세한 남성 집단이 저지른 것이었다. 고어는 은행 기록에 대한 독보적인 접근 권한과 오푸스 데이 내부 고발자들과의 독점 인터뷰를 바탕으로 은행의 돈이 어떻게 순진한 신도들, 그중 일부는 어린이들을 노예의 삶으로 유인하는 데 사용되었는지를 밝힌다. 또한 그는 오푸스 데이가 전 세계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추적하여 미국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등 우익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역할을 폭로한다. 오푸스 데이의 비밀 역사를 처음으로 기록한 이 스릴 넘치는 탐사 스토리텔링 작품은 우리 사회를 형성하는 어두운 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43>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①

세계 종교 탐구<43>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①

오늘날 마약은 범죄와 퇴폐, 부도덕의 상징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은 불법이며, 종교 역시 대부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마약은 천연 치료제 및 진통제, 종교제의의 도구로써 다양하게 활용되며 전 세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마약은 ‘신의 선물’이라 불리며 천혜의 식물로 여겨졌다. 신의 선물이었던 마약이 언제부터 금지된 ‘악마의 식물’이 된 것일까? 많은 연구에서는 마약과 종교의 역사가 맞물려 있음을 지적한다. 종교의 역사에서 마약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마약의 사용, 전파, 억압의 역사를 통해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 마약으로 종교적 능력을 얻다 자연에는 꽃, 풀, 버섯과 곰팡이 같은 천연 마약이 존재한다. 현대인들은 마약이 무엇인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대의 사람들에게 마약이 일으키는 마취나 환각 증상은 분명 신비로운 것이었다. 마약은 곧 영험만 물질이자 신성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원시시대, 마약을 사용하여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초월적 존재로 부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술사, 마법사, 혹은 주의(呪醫) 등으로 불렸던 샤먼이다. 샤먼은 미래에 대한 예언, 자연재해에 대한 해명, 질병에 대한 치료 등을 주도하면서 신과 인간의 중개자 역할을 자처했다. 신과의 소통을 유도하는 정신적 도구는 주로 마약식물이었다. 향정신성 마약식물만큼 샤먼의 망아(忘我)상태를 극적인 효과로 유도한 방법은 없었다. 이를 통해 샤먼은 자신이 주관하는 원시종교와 공동체의 생존을 유지했다. 그들이 믿었던 마약의 영험한 힘은 실은 향정신성 작용이 일으킨 환각이었고, 고통을 줄여주는 마취 효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영험한 식물을 통해 신과 소통하는 초자연적 힘을 지니게 되었다고 믿은 덕분에 인류의 가장 초기 형태의 종교인 샤머니즘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이후 마약은 계속해서 종교 제의의 중심이 되었고, 고대 종교에서 마약을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 고대 종교에서 마약 사용은 보편적이었다 마약을 사용하는 신성한 의식은 고대의 많은 문화권과 종교 집단에서 나타난다.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밀교는 열흘 동안 진행되는 ‘엘레우시스 제전’의 마지막 날, ‘키케온’이라는 술을 마셨다. 키케온은 보리와 박하를 넣은 술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맥각균에 오염된 보리를 사용해 환각제 LSD의 원료인 맥각을 넣는다. 키케온을 먹은 신도들은 ‘밤의 성스러운 환상’을 본 뒤, 춤을 추며 신을 만나거나 사후세계를 보는 등 거룩한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말린 대마 잎을 갈아 만든 음료인 방(Bhang)을 마신다. 시바 신과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성한 물질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방을 섭취하면 죄에서 자유로워진다고도 믿는다. 힌두교에서는 현재까지도 방을 만들어 마시는데,<자료1> 인도 대마의약협회의 캠벨은 ‘방을 마시는 자는 시바신을 마시는 것이다’라며 방의 음용을 권장했다. 이밖에도 중국 도교의 도사들은 종교 제의에 대마초를 사용해 미래를 점쳤고, 고대 멕시코 원주민들도 환각버섯을 ‘신의 고기’(God meat)라 부르며, 신이나 죽은 자를 만난다는 목적으로 먹었다. 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마약 선인장 페이오트(peyote)를 신의 연결고리라 믿으며, 말려서 종교의식과 민간요법에 사용했다. 당대의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 제의에 사용된 공예품들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제단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레위기 16장, 히브리서 9장, 역대기하 2장 등 유대교 경전에 나와 있는데, 2020년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종교 의식 중 대마초를 태웠다는 사실이 고고학 연구에서 밝혀졌다. 네게브 사막에서 발견된 이스라엘 성전의 제단에서 향을 태우고 난 잔여물이 발견되었는데, 한 제단에서는 유향이 발견되었고, 두 번째 제단에서는 대마초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올(THC), 칸나비디올(CBD) 및 칸나비놀(CBN)이 발견되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近東)과 주변 지역에서 제의 목적으로 환각 물질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유다 왕국에서 물리적 증거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고의적으로 정신자극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 대마초를 태운 것’으로 결론 내렸고, 이는 초기 유대교 예배에서 향정신성 약물이 사용되었다는 증거라고 20년 5월 30일 이스라엘 타임즈는 보도했다.<자료2> 마약의 사용이 일반적이며 마약의 대량소비에 대해 관용적이었던 것은 로마와 초기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01년 로마의 아편 가격은 대마 가격의 두 배로 판매되었으며, 312년 로마시에만 약 800개의 아편 상점이 있었고, 로마당국 총세입의 15%를 차지했다. 초기 기독교는 당시 사회문화적 풍습에 따라 대마와 아편을 포도주에 섞어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2장 11절에서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선물한 몰약(머르, myrrh)도 아편이었다. 이것은 당시 아편이 매우 귀중한 물건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7장 34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그에게 쓸개(gall)를 혼합한 포도주를 제공했다고 나와있는데, gall도 아편이었다. 아편을 섞은 포도주는 당시 소아시아에서 만연한 진통제였다. (myrrh는 아랍어로 ‘맛이 쓰다’는 뜻이며, gall도 실제 쓸개가 아니라 ‘쓴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강한 쓴맛이 나는 ‘아편’을 가리킨다.) 또한 당시 국가에 복종하지 않는 미신적 종교였던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탄압을 받았었는데, 탄압을 피하기 위한 지하생활은 많은 고통을 수반했으며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편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대 사회에서 마약의 사용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알아볼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배경이다. ▣ 마약으로 치유 기적을 설명하다 현대와 같은 과학적 의학 지식이 없던 고대에서는 주술과 함께 고통을 줄여주는 마약 식물을 치료제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마약 중에는 마비효과로 고통을 줄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대마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대마초가 약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대마로부터 기름과 향을 추출했다. 또 치료를 위해 대마를 연고처럼 바르기도 했다. 대마의 의약적 특성은 카나비노이드(대마종 식물에서 분리되는 자연 발생적인 화합물) 전문가 에단 루쏘의 논문『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어서의 의약용 대마: 과학적 증거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조사』에 잘 알려져 있다. 루쏘 박사는 의료 목적을 위해 대마가 수많은 국소제제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서 전체에서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 “대마는 종기 연고의 원료로 쓰였으며 찜질용으로도 활용되었다. 또한 오늘날 간질로 추정되는 고대 시기의 질병 치료에 사용된 국소 연고에 관한 기록에도 대마초가 주요 성분으로 포함되어 있다. 대마를 비롯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여러 약제는 흉부 및 폐병, 위장병, 피부 병변, 기생충, 관절 염좌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활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해 고대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대마를 치료제로 사용해 왔다.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국소 대마초 제제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발가락과 손톱 그리고 질의 염증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의학서『신농본초경』에도 서기전 2800년 전부터 대마를 결석, 변비, 각기병, 류머티즘 및 월경불순 치료제로 처방하는 등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2003년, 대마초 역사가 크리스 베넷이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도 대마를 사용해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성경에는 예수가 성스러운 기름을 발라 병자를 고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관유의 재료가 대마라는 것이 어원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0장 22~25절에는 거룩한 관유를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는데, 창포(calamus)로 오역된 부분이 원래는 대마(kannabus)였다고 한다. “너는 제일 좋은 향품을 취하되, 순수한 몰약을 오백 세겔, 향기로운 육계를 그 절반인 이백오십 세겔, 창포(또는 향기로운 향초 줄기로 번역됨)를 이백오십 세겔, 계피를 오백 세겔, 이렇게 성소 세겔로 취하고, 올리브 기름 한 힌을 취하여라. 너는 향을 제조하는 법을 따라 이 모든 것을 잘 섞어서,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라. 이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 것이다.” – 출애굽기 30장 22~25절 유대의 관습과 전통을 연구하는 폴란드 어원학자 슐라 버넷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역성서 본문에는 종교적인 축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의 대마에 관한 언급이 있다”고 밝혔다. 어원의 비교연구를 통해 베넷은 “히브리어 성경의 아랍어 번역에서 대마는 q’neh bosm(케네보셈, keneh bosem)이라고도 하며 이것이 전통 히브리어로 kannabos 또는 kannabus로 변했다. 이 단어의 어근인 kan은 ‘갈대’ 또는 ‘대마’를 의미하고, bosm은 ‘향기로운’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케네보셈이 대마인 것은 어원학자 슐라 버넷을 비롯해 언어학자, 식물학자 및 기타 연구자들도 확인하였다. 예수를 지칭하는 말인 그리스도가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것은 이것이 다른 종교와 차별화된 점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는 관유 사용을 제사장이나 왕처럼 신이 택한 소수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엄격한 구약의 금기를 깨트리고 치유와 입교식에 자유롭게 사용했다. 관유란 주로 제사장을 임명할 때 사용되는 기름인데, 예수는 이 대마 기름으로 제자들과 함께 병자를 치료했다. “제자들은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주었다.” – 마가복음 6장 13절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 야고보서 5장 14절 대마는 간질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질병의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나병, 눈병, 하혈하는 여자를 고친 이야기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다.<자료3> 실제로 설익은 대마 식물의 생성물인 칸나비디올산은 살균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많은 미생물에 대해 항균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도 있고, 간질치료에 있어 대마의 칸나비디올이 발작을 조절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연구, 미국 약국에서 자궁 출혈 및 신경통, 관절염 등에 대마가 처방된 기록도 있다. 누가복음 8장 43~48절에는 자궁 출혈로 하혈하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자 순식간에 피가 멎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은 이를 예수의 능력이 나간 것으로, 또 예수가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고 얘기함으로써 믿음으로 치유된 사건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대마의 효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정신약리학자 줄리 홀랜드 박사의 저서 『올 어바웃 카나비스(all about cannabis)』에는 위 내용을 소개한 크리스 베넷의 글이 실렸다. 그는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설명한 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대마를 이용하여 치료를 했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믿기 어렵겠지만,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능력으로 기적의 치유를 행했다는 믿음보다는 대마를 의료용으로 사용했다는 설명이 더 확실하다”고 적었다. 기획기사 속 마약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