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8>가톨릭이 축복한 죽음의 항해, 악마의 노역,  그리고 교황의 사과 선언②

세계 종교 탐구 <58>가톨릭이 축복한 죽음의 항해, 악마의 노역, 그리고 교황의 사과 선언②

▣ 교황들의 칙서로 노예제를 축복하다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이러한 잔혹 행위와 대학살의 가해자는 지금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가톨릭 왕과 군주들(Catholic kings and princes), 그리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다른 주요 유럽 기독교 국가 정부로만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도덕적 권위를 지녔어야 할 교회와 교황이 오히려 이러한 잔혹 행위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축복하고 승인하며 노예제의 확산과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0년 4월호 뉴 아메리카 매거진은 대서양 노예무역에 교회의 역할을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아프리카 최초의 유럽 노예 상인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1455년에 교황의 축복을 구하고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윌런 연구원의 오케레 교수도 “유럽이 아프리카에 가한 중대한 불의를 시작하고, 조장하고, 축복하는 데 있어 교회와 성직자들의 역할은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며 교회가 노예무역을 조장하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 제도의 오랜 악행에 축복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12세기 십자군 원정을 비롯해 가톨릭 국가들이 이교도의 땅을 정복했을 때, 이를 정당화하고 축복한 교황 칙서들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이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칙서로는 1452년과 1455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발행한「둠 디베르사스(Dum Diversas)」와「로마누스 폰티펙스(Romanus Pontifex)」,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발행한「인테르 카에테라(Inter Caetera,)」가 꼽힌다. 1452년「둠 디베르사스」가 이교도를 침략하고 정복해 영구 노예로 삼을 수 있다는 원칙적 허가를 내린 문서였다면, 1455년「로마누스 폰티펙스」는 그 권한을 더 구체화한 문서였고, 1493년「인테르 카에테라」는 새로 발견된 땅에 대한 스페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문서였다. 이러한 칙서들로 인해,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이교도의 땅을 빼앗고 사람을 노예로 삼는 행위가 교황의 권위로 정당화되었고, 그들은 오히려 이교도를 벌하고 기독교를 선교하는 공로로 죄의 사면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1452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발행한「둠 디베르사스」의 주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교도 침략과 노예화의 권한을 부여하고, 그 폭력을 신앙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이를 거역하는 자에게는 신의 진노를 내세워 위협하는 구조를 관찰할 수 있으며, 이 구조는 이후 발행된 비슷한 유형의 정복·노예화 문서들의 원형이 되었다. “우리는 사도적 권위를 부여받아 이 문서를 통해 귀하에게 사라센인(무슬림)과 이교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수인 모든 불신자들을 그들이 어디에 있든 침략하고 수색하며 사로잡고 정복할 수 있는 완전하고 자유로운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그들의 왕국과 공국, 토지와 도시, 그 밖의 모든 재산을 차지하고, 그들을 영구적인 노예로 삼을 수 있도록 허가한다. 나아가 그들의 모든 통치권과 소유물, 모든 재산을 귀하와 귀하의 후계자, 곧 포르투갈 왕위에 영구히 귀속시킬 수 있도록 허가한다. (…) 우리는 귀하에게 죄 사함을 위한 완전한 사면을 허락하며, 또 이 신앙의 싸움에서 당신 편에 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적들을 공격하는 데 힘쓰는 지휘관과 군인들,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도 같은 사면을 허락한다. (…) 누구도 이 칙령을 무모하게 거역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만일 누군가 감히 이를 시도한다면, 그는 전능하신 하느님과 복된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진노를 사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tibi Saracenos, et Paganos, aliosque infideles, et Christi inimicos quoscunque … Regna, Ducatus, Comitatus, Principatus, aliaque Dominia, Terras, Loca, Villas, Castra… invadendi, conquerendi, expugnandi, et subjugandi, illorumque personas in perpetuam servitutem redigendi … plenam, et liberam, auctoritate Apostolica, tenore praesentium concedimus facultatem (…) Duces, Principes, Barones, Milites, aliquique Christi fideles … in hac fidei pugna concomitants … plenariam remissionem omnium, et singulorum peccatorum, criminum, delictorum, et excessuum … devotionis tuae eadem auctoritate indulgemus. (…) Nulli ergo omnino hominum liceat hanc paginam nostrae concessionis, restitutionis, voluntatis, indulti, et decreti infringer, vel ei ausu temerario contraire. Siquis autem hoc attentare praesumpserit, indignationem Omnipotentis Dei, ac Beatorum Petri et Pauli Apostolorum se noverit incursurum.)” 이러한 권한 부여는 니콜라스 5세 한 사람의 칙서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칼릭스투스 3세, 식스토 4세, 알렉산데르 6세, 레오 10세 등 후대 교황들도 가톨릭 군주국에 부여된 정복과 노예화의 권리를 확인하거나 강화하는 문서들을 잇달아 발행했다. 결국 이교도 침략과 흑인 아프리카인 노예화는 일회성 허가가 아니라, 여러 교황의 문서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승인되고 제도화된 권한이었다. 1548년 교황 바오로 3세는 인신매매를 승인하는 자의교서를 내리기도 했다. 바오로 3세는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사목적 직무에 따라 하느님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인들이 노예 부족으로 겪는 어려움을 기꺼이 돕고자 하며, 노예가 많을수록 상속 재산이 풍족해지고, 농지가 더 잘 관리되며, 도시가 확장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로마인이든 비로마인이든, 세속인이든 성직자든, 신분이나 지위, 계급,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남녀를 불문하고, 다른 곳에서 관례대로 노예를 자유롭고 합법적으로 매매하고, 노예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노예를 공개적으로 소유하고, 그들의 노동을 이용하고,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도록 명합니다. 그리고 사도적 권위로, 이 문서들의 취지에 따라, 자유를 호소하는 노예들은 결코 그들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라고 영구히 제정하고 선포합니다.(By reason of our Pastoral Office, we gladly attend to the troubles due to the lack of slaves of individual Christians as far as we can with God’s help, and having regard to the fact that the effect of a multitude of slaves is that inherited estates are enriched, agricultural property is better looked after and cities are extended, we decree that each and every person of either sex, whether Roman or non-Roman, whether secular or clerical, and no matter of what dignity, status, degree, order or condition they be, may freely and lawfully buy and sell publicly any slaves whatsoever of either sex, and make contracts about them as is accustomed to be done in other places, and publicly hold them as slaves and make use of their work, and compel them to do the work assigned to them. And with Apostolic authority, by the tenor of these present documents, we enact and decree in perpetuity that slaves who flee to the Capitol and appeal for their liberty shall in no wise be freed from the bondage of their servitude.)” 변증론자들은 이후 교황들이 노예제를 반대하는 문서를 냈다고 주장하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세례받은 카나리아 제도 주민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예화를 문제 삼았을 뿐, 대서양 흑인 노예무역 전체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교황청은 노예제와 실제로도 단절하지 않았다. 1488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스페인 왕 페르난도에게서 무어인 노예 100명을 선물로 받아 추기경들과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1629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교황 함대 유지를 위해 노예 40명을 구매하도록 명령했다. 흑인 아프리카인 노예무역을 직접 거론한 문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나왔는데, 그마저도 이미 세속 사회에서 노예제 폐지 여론이 거세진 뒤였으며, 위반자에 대한 파문 처벌도 담지 않았다. 결국 교황청의 태도는 일관된 반노예 선언이라기보다, 시대적 압력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뒤늦게 나온 제한적 반응에 가까웠다. ▣ 망각의 문화 조장이 아닌 진실한 사과와 보상 요구돼 『교황들, 가톨릭교회와 흑인 아프리카인의 대서양 노예화 1418-1839』의 저자 아디엘레는 이 주제를 연구한 동기를 대서양 노예무역의 책임 소재를 정확히 하기 위함임을 밝히며 다음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이 종식된 지 150년이 지났지만, 그 기간 동안 가톨릭교회의 행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중요한 핵심은 가톨릭교회와 그 지도부가 노예무역이 끝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 아프리카인 노예화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계속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교회의 지도부는 흑인 아프리카인 노예화에 대한 교회의 공모의 심각성을 축소했고, 결과적으로 ‘망각의 문화’를 조장하고 노예화 국가 정부들과 한통속이 되어, 아프리카 흑인들 스스로가 노예화의 장본인이며, 따라서 이 수치스럽고 악랄한 행위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는 선전을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joining the governments of the enslaving nations of Europe and America in spreading widely the propaganda that Black Africans themselves are the architects of their enslavement and therefore are to be blamed for the shame and the evil of this slave trade.) 이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학술 연구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독교를 옹호하는 변증적인 글을 쓰는 경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이전 교황들이 교황 칙서를 통해 흑인 아프리카인들의 대서양 노예무역을 시작하고, 축복하고, 지원함으로써 노예제도를 지속적으로 옹호해 왔다는 상당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전체의 이미지에 입힌 수치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었다.” 이번에 발표한 회칙에서 레오 14세는 이전 교황들이 사과문에 사용하던 ‘가담했다’, ‘연루됐다’, ‘방관했다’, ‘침묵했다’라는 표현 대신 교황청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미국 출신의 교황 레오 14세(본명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루이지애나 크리올 혈통으로, 노예였던 조상과 노예 소유주였던 조상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는 노예제를 비판했던 19세기 후반 교황 레오 13세를 기리기 위해 교황명을 선택했을 정도로, 이 역사를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레오 14세가 새 회칙에서 ‘가톨릭교회가 직접 노예를 부리고, 노예제 합법화를 주도했던 사실’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며 사과하자, 이제는 그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시작되었다. 지난 6월 10일, 미국의 법률 뉴스·해설 매체 JURIST에는 “교황의 사과가 진실됨을 보이기 위해선 구체적인 보상과 기록 공개, 제도적 책임 인정 및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는 취지의 논평이 다음과 같이 실렸다. “진심 어린 용서는 단순한 상징적 제스처에 그치지 않는다. 수 세기 동안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규범을 형성해 온 가톨릭교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불의 중 하나에 관여했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교황의 칙서들은 기독교 군주들이 비기독교 지역을 정복하고 그 주민들을 노예로 삼는 것을 허용했고, 이는 유럽의 식민지 확장과 대서양 노예무역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했다. 사실상 교회는 아프리카인과 원주민의 대량 노예화를 초래한 관행을 신성시하고, 노예 제도를 기독교의 도덕적 틀 안에 자리 잡게 했다.(In effect, the Church sanctified practices that led to the mass enslavement of Africans and indigenous people, embedding slavery within the moral framework of Christendom.) 이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비판은 너무 늦었다. 세속 사회에서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이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후인 19세기에 들어서야 교회는 노예 제도에 대해 뒤늦은 비판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이를 인정한 것은 교회가 가장 기본적인 인권 중 하나인 자유를 옹호하는 데 뒤처졌다는 도덕적 실패를 시인하는 것이다.(Pope Leo’s acknowledgement of the delay is an admission of moral failure as the Church lagged behind in defending one of the most fundamental human rights –freedom.) 과거를 부인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오히려 대중의 교회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킨다. 죄를 직면하기를 거부하는 신앙 공동체는 위선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레오 14세는 교회의 제도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인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과는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조치가 수반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는 배상이 적절한지 고려해야 한다.(The Church must consider whether reparations are appropriate.) 배상은 노예제도로 인해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던 공동체에 대한 재정 지원, 교육 투자 또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 등의 형태가 있을 수 있다. 구체적인 약속이 없다면, 사과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그칠 것이다.” 6월 2일, 범아프리카 배상 운동 네트워크 ‘배상 치유 국제 연대(Global Circle for Reparations and Healing)’도 이번 회칙에 어떠한 배상도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 단체는 2022년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회의 책임 인정과 사과, 노예제도와 관련된 교황령 폐지, 배상 위원회 설립, 그리고 수 세기 동안의 피해 복구를 위한 상당한 재정적 약속을 요구하는 공식 배상 청원서를 전달한 바 있었다.<참고자료1>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한다면서 정작 단체가 요구했던 배상에 대한 약속은 하지 않았고, 노예제도와 관련된 교황령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았으며, 노예무역으로 인한 지속적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더 광범위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 영국 로이터, 가디언지 등에 따르면 6월 17~19일 가나 아크라에서는 ‘Next Steps’ 컨퍼런스(정식명: 아프리카 노예 매매에 관한 유엔 결의안의 다음 스텝을 위한 고위급 협의 회의)가 열렸다. 지난 3월 유엔 결의안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인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였으며, 이에 따른 배상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이번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회의에는 가나를 비롯해 나미비아, 라이베리아, 세네갈, 상투메 프린시페의 대통령과 베이도스 총리, 적도 기니의 부통령 등 80개국 이상에서 국가 원수, 정부 수반, 장관, 시민 사회 대표, 역사가, 연구원 및 법률 전문가들이 참석했으며, 19개 항의 국제 배상 정의 추진안이 논의 및 채택되었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단순한 인정’에서 ‘배상을 위한 구체적 조치’로 전환하는 것으로, 회의를 주최한 가나의 존 드라마니 마하마 대통령은 “역사는 죄책감을 물려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물려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History does not ask us to inherit guilt, but it asks us to ​inherit responsibility.)”라고 연설했다.<자료6> 노예제 피해 배상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2023년 2월 미국 국제법 학회(ASIL)와 서인도제도대학(UWI)이 공동 주최한 ‘아프리카 노예자들에 대한 국제법상 배상’ 제2차 심포지엄에서 경제·금융 컨설팅 업체 브래틀 그룹(The Brattle Group)은「대서양 노예제 피해 배상액 산정(Quantification of Reparations for Transatlantic Chattel Slavery)」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브라질 등 각 노예무역 가담국의 배상 책임을 산정해, 전체 배상 규모를 ‘약 131조 달러(2023년 기준 약 17경 1,186조 원)’로 최종 산정했다. 브래틀 그룹은 노예가 된 사람들이 평생 빼앗긴 임금이 당시 얼마였는지 계산하고, 수백 년 동안 받지 못한 손실을 이자로 반영해 오늘날 금액으로 환산했다. 여기에 생명 손실, 자유 박탈, 신체·정신 피해, 성폭력 피해 보상액을 더하고,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계속된 차별로 세대를 이어 벌어진 부의 격차도 반영해 131조 달러라는 배상액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산정 방식은 경제학적 손해 산정 모델에 따른 것으로,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가족 해체, 문화 상실, 정체성 파괴 등의 피해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보수적 추정치다. 이에 보고서는 이 배상액도 실제 피해액에 비해 과소평가된 것임을 강조했다. 피해 산정 범위 자체도 15~19세기 대서양 노예무역에만 국한된 것으로, 원주민 집단 학살과 토지 약탈, 원주민 기숙학교 피해, 근대 이후의 노예 착취, 아시아 노예무역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이 거대한 배상 규모 앞에서, 바티칸은 책임을 축소하거나 회피할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들이 축복하고 노예무역에 앞세웠던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과 협력해서라도 배상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천문학적 숫자로도 그 크기를 다 담아낼 수 없는 깊은 죄악에 대한 책임의 무게다. 교황의 권위와 그들 신의 축복을 등에 업은 유럽 제국들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전역에서 벌인 노예화와 착취의 대가는 몇 마디 사과 표명으로 덮을 수 없다. 사과는 책임의 끝이 아니라, 배상의 시작이어야 한다. 사실 아프리카인들이 겪은 역사적 상처와 고통은 그 뿌리가 너무도 깊고 광범위하여, 그 어떤 형태의 배상으로도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피해자들에게 진실된 사과를 할 의지가 있다면, 사과를 선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금전적 배상에 한계가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보상해야 하는 것이 예의다. 수백 년간 자행한 만행의 무게에 비하면 이는 마땅히 감수해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다. 교황과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이 행한 죄악을 진정으로 직시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실질적인 행보를 통해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회칙은 여론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퍼포먼스적인 사과로 증명되는 것이며, 그 사과는 교회의 뿌리 깊은 위선만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결과로 남을 것이다. 한편, 가톨릭이 축복한 노예화의 영향은 대서양에만 머물지 않았다.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들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이 폭력의 구조는 일본과 조선의 역사 속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되었다. 다음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임진왜란과 조선인 인신매매, 그리고 그 배후에 얽힌 기리시탄 다이묘와 가톨릭 선교의 그림자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②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②

▣ 소금으로 부패를 막으며 성스러움을 연출해오다 우선 현행하는 성수 예식에서 성수를 어떤 식으로 축복하는지 살펴본다. 가톨릭교회의 미사 공식 전례서인 『로마 미사 경본』의 ‘성수 예식’에 따르면, 사제는 성수를 만들 때 축성할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을 앞에 놓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낭송한다. 이때 다음과 같이 죄 사함과 병 치유를 구하는 구절이 낭송된다. “믿음으로 이 성수를 사용하는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온갖 질병과 원수의 함정에서 보호하소서.” 또 소금을 넣기 전에도 소금을 축복한다며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낭송한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예언자 엘리사(구약의 선지자)를 시키시어 물에 소금을 넣어 썩지 않게 하셨으니, (중략) 주님, 소금이 든 이 성수를 뿌리는 곳이면 어디서나 성령께서 함께 계시어, 원수의 온갖 공격을 물리치고 언제나 저희를 보호하게 하소서.” 그 후 사제는 말없이 소금을 물에 넣는다. 그리고 나서 성수채를 들고 자신과 봉사자, 성직자,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린다. 또 성당 안을 두루 다니면서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확인한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소금을 탄 성수에 병을 치유하고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로마 미사 경본이 1962년에 현재와 같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보다 노골적으로 질병 치유와 구마의 힘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면 “이 물이 악령을 쫓아내고 질병을 없애게 하소서.”, “어떤 감염의 기운이나 질병을 옮기는 공기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소금이 닿은 모든 것에서 모든 부정함을 없애시고 악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소서”와 같은 구절들이다. 물에 소금을 넣을 때도 그냥 넣어서는 안 되고 십자가 모양으로 넣어야 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행위들이 축소 및 간소화된 것은 현대인의 지성이 더 이상 노골적인 주술적 연출을 그대로 용인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와 달리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물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더러움을 씻어내는 특성을 지닌 물에는 치유와 정화의 힘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고대의 종교들은 일반적으로 강과 시냇물의 물을 성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숭배 의례에서도 입문자는 목욕을 한 뒤, 사제가 깨끗한 물을 뿌려 정화하는 절차를 거쳤고, 로마의 미트라교 신전은 샘이나 하천 가까이에 지어졌으며, 입문할 때 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구약성경 민수기 19장에 의하면,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에서도 부정함을 정화하기 위해 재를 탄 샘물을 우슬초 가지에 적셔 사람과 사물에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기독교보다 먼저 성행했던 여러 종교들에서 이미 물을 정화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성수를 뿌리는 행위는 이교적’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세기의 기독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저서 『세례에 대하여』에서 성수 의례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영적 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들이 물에 똑같은 효능을 불어넣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렇게 믿지만) 실은 효능이 사라진 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씻는 행위는 그들이 악명 높은 이시스나 미트라스의 신성한 의식에 입문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을 들고 다니며 뿌림으로써, 시골 저택, 집, 신전, 그리고 도시 전체를 곳곳에서 정화한다. 그들은 아폴로니아 축제와 엘레우시스 축제에서는 물에 몸을 담그며, 이를 자신들의 죄로 인한 벌을 사면받는다 믿는다.” 그런데 4세기경, 세라피온 주교의 《교황 예식서》에서 다음과 같은 축성 기도문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물과 기름을 축성합니다. 이 피조물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허락하소서. 이 물을 마시거나 이 기름으로 바르는 이들에게서 모든 열병과 모든 악령과 모든 질병이 물러가게 하시고,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제가 되게 하소서.” 이런 주문을 외움으로써 이교의 물과 차별화하고, 자신들의 물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와 구마의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명분을 만든 것이다. 이후 신자들 사이에서 성수가 치유와 구마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수가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는데,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구내염과 눈병 치료를 위해 성수를 바르고, 광견병 치료를 위해 성수를 마시는 행위가 민간요법처럼 퍼졌다. 성수의 사용이 공식 전례로 제도화된 것은 9세기다. 교황 레오 4세는 “매주 주일 미사 전에 성수를 준비하여, 신자들과 성소에 뿌릴 수 있도록 하라.”며 모든 사제가 매주 일요일 자신의 성당에서 물을 축복하고 신자들에게 뿌리도록 명령했고, 랭스의 힝크마르 대주교도 신자들이 성수를 가져가 집, 밭, 포도원, 가축, 가축의 사료, 심지어 음식에까지 뿌리도록 권장했다. 이로써 성수 예식은 가톨릭에서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또 일상적인 의식으로 완전히 자리잡았고, 신자들이 성수의 영험한 힘을 기대하게 만드는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오랜 세월 성수를 단순한 상징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성수에 현실적 효과가 있는 듯한 예식을 제도화하고 신자들에게 권장해 왔다. 그렇다면 성수의 권능에 대한 실증 요구에 ‘믿음에 기반한 정화와 치유의 상징’일 뿐이었다는 해명은 2천 년간 이어온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파렴치한 변명이자 명백한 기만행위다. 그들의 연출을 믿고 성수를 몸에 바르고, 마시고, 환자와 병실에 뿌려왔던 신자들의 믿음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 책임의 범위는 살아있는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가 성수에 부여해 온 정화와 보호의 이미지는 죽은 이의 마지막 자리까지 따라가, 사람의 임종 직후, 장례 의식, 고인의 무덤에도 성수가 뿌려진다. 그러나 질병과 감염 앞에서 철저히 무력했던 성수의 한계는 죽음 너머 영역에서도 똑같은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 성수로는 막지 못한 교황 시체의 부패 1958년 10월 9일, 교황 비오 12세가 이탈리아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사망 직후 당시 추기경단장이던 외젠 티세랑 추기경은 교황의 시신에 성수를 뿌렸고,<자료7> 곧 교황의 장례 준비가 시작되었다. 교황의 경우 시신이 공개 조문되기 때문에, 장례식에 앞서 인위적인 방부 처리가 필수적이다. 인간의 신체는 사망 직후부터 조직 분해가 시작된다. 세포 내부 효소(細胞 內部 酵素)에 의한 ‘자가분해(自家分解,autolysis)’와 체내 미생물 증식에 따른 ‘부패’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제어하지 않으면, 가스가 발생해 몸이 붓고 피부색이 변하며 악취(惡臭)가 난다. 때문에 역대 교황의 시신은 대부분 방부(防腐) 처리되어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돼 있다. 온몸의 혈액과 가스를 제거하고 방부액을 주입하는 현대의 화학적 시신 보존법을 ‘엠바밍(embalming)’이라고 한다. 엠바밍은 주로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된 방부액을 사용해 신체 조직 단백질을 화학적으로 고정하는 시술이다. 포름알데히드는 단백질 분자들을 서로 연결해 구조를 안정화하고, 미생물이나 자가분해 효소에 의한 분해를 막는다. 동시에 살균 효과로 부패 원인균을 제거한다. 시술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동맥으로 방부액을 주입해 기존 혈액과 체액을 밀어내는 ‘혈관 엠바밍’, 두 번째는 배나 가슴 속 빈 공간에 방부액을 직접 채워 넣는 ‘체강(體腔) 엠바밍’이다. 이후 외형 유지를 위한 표면 처리와 복원 작업을 거쳐 고인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하면 방부 처리가 마무리된다. 교황 비오 12세의 사례는 이런 방부 처리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비오 12세의 방부 처리를 맡은 사람은 당시 그의 주치의였던 리카르도 갈레아치-리시였다. 비오 12세는 생전 자신의 시신에서 장기(臟器)를 제거(除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리카르도는 고대의 방식을 따른다며 시체 표면을 오일과 레진(resin) 혼합물로 덮은 뒤 셀로판으로 감싸는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체액, 장기 제거나 혈관 약품 주입 없이 시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으며, 게다가 예수의 방부 처리 과정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곧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졌다. 셀로판이 공기 순환을 차단하면서 시신 내부에 가스가 축적되었고, 이는 화학 반응과 혐기성 분해를 촉진했다. 그 결과 시체의 부패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급하게 추가 방부 처리를 시도했지만 부패를 막지 못했다. 결국 제대로 된 방부 처리에 실패한 채 비오 12세의 시체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3일간 공개 안치되었다. 비오 12세의 시체가 공개된 지 사흘째 되는 날, 조문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교황의 시체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교황의 몸은 병든 에메랄드색으로 변하며 심한 악취를 풍겼다. 악취가 너무나 지독해서 교황의 시체를 지키던 근위병들은 구토를 하고 심지어 기절하기까지도 했다. 특히 교황의 가슴 부위가 내부 가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팽창하다가 급기야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코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면서 일반 조문은 황급히 종료되었다. 바티칸은 부패로 훼손된 교황의 시신을 급히 수습해 관에 안치한 뒤, 장례 절차를 그대로 강행했다. 가톨릭에서는 장례 미사 후 ‘망자의 죄 사함과 영원한 안식’을 청하는 사도(赦禱)예절이란 의식을 치르는데, 이 예식에서도 성수를 살포한다. 교황의 시체 위에는 또다시 성수가 뿌려졌다. 그리고 시체를 덮은 관뚜껑 위에도 또다시 성수가 뿌려졌다. 이러한 행위들은 실제로 망자(亡者)의 죄(罪) 사함과 영원한 안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교황의 시체 폭발 사건은 성수가 과연 신성한 힘을 지녔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비오 12세의 사망 직후, 그의 시체에는 분명히 성수가 뿌려졌다. 그러나 성수라 믿었던 물은 교황의 급격한 부패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끝내 아무런 효과도 보이지 못하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들 신의 능력이 담겼다는 성수는 교황 시체의 부패를 막을 수 없었던 반면, 인간이 개발한 엠바밍 기술은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망자의 안식은 화학약품으로 썩어갈 몸을 억지로 보존하는 데 있지 않다. 만약 그들의 신이 실제로 질병과 부패, 악과 더러움을 물리치는 힘을 성수에 부여할 능력이 있었다면, 교황의 시신은 화학약품의 힘을 빌려 방부 처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수의 현실적 능력을 검증하는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객관적 사실로 비추어 ‘성수라 믿는 물’에서 믿음을 걷어내자, 성수는 ‘세균에 오염되어 건강을 위협하는 물’,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넣어야 하는 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가톨릭교회 스스로도 ‘성수는 그 자체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의미를 갖는다(holy water, a remembrance of baptism, does not have an effect by itself, but only to the extent to which it is received with faith)’며 현실적 효과가 없음을 인정한 바 있다.<자료8>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가톨릭교회의 행보는 그 해명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질병과 악의 공격에서 보호해달라 낭송하며 성수를 만드는 모습, 성수채를 흔들며 각종 의례에서 성수를 흩뿌리는 모습은 성수에 실제로 어떤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심지어 오염되거나 오래된 성수를 폐기할 때도 하수구에 버려서는 안 된다는 지침도 있다. 이는 오염된 성수도 여전히 성스럽기 때문에 더러운 하수구에 버리는 것은 종교적으로 무례한 행위가 된다는 논리로, 마지막 폐기의 순간까지 성스러운 연출을 유지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2024년 8월, 스페인 소리아의 마르티네스 시장은 마을에서 열린 수호성인 축제에서 가짜 포프모빌에 올라타 교황처럼 사람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흉내를 냈다.<자료9> 주목할 점은 코르시카에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수채를 들었다면, 시장이 손에 든 것은 변기 속 오물을 닦는 변기솔이었다. 이는 그동안 가톨릭에서 공들여 연출해온 성수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성수를 신적 권능이 깃든 물처럼 믿게 만들어온 종교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과학과 이성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 ‘평범한 물을 성수라 선언한다고 해서 진짜 성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단한 사고만으로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들 신의 축복이 임했다는 소금물이 실제로 성스럽다는 근거를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가톨릭교회는 정화와 보호를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을 인질로 잡은 ‘영적 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①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①

2024년 12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 코르시카 섬을 방문했다. 교황이 코르시카를 찾은 것은 가톨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당일 아침 거리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바티칸 공보실에 따르면, 교황은 교황 전용차 포프모빌을 타고 군중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다가 성 요한 세례당에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포프모빌 위에서 군중을 향해 성수라며 가져온 물을 뿌렸다. 성수채 끝에서 물방울이 공중에 흩어졌고, 사람들은 이를 보며 핸드폰으로 촬영하거나 손으로 십자가를 그리며 기도했다.<자료1> 이렇게 성수를 뿌리는 행위는 교황의 특별한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각종 의례에 성수를 사용하는 것은 가톨릭의 오랜 전통으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익숙한 장면이다. 성당 입구에는 늘 작은 물그릇이 놓여 있다.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서며 그 물에 손가락을 적신 후 이마와 가슴에 십자를 긋는다. 가톨릭에서 성수라 믿는 이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악을 쫓고 죄를 씻으며 보호와 축복을 가져오는 물로 여겨진다. 이에 교회는 신자들이 각 가정에서도 성수를 사용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일반 물을 성수로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톨릭 용어 사전에 따르면, 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소금을 넣은 후, 사제가 축성을 하면 성수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성스러운 물이라는 성수와 일반 물 사이에는 실제로 확인 가능한 차이가 있을까? 이것은 믿음의 차원으로 남겨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 믿음으로 인해 성수는 매번 신자들의 손과 몸에 직접 닿고, 상황에 따라 환자와 병실, 장례식장과 묘지, 가정과 공공장소, 구마의식 등에 뿌려지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성수의 능력을 검증했던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고, 성수의 능력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례가 있는지 검토해 볼 것이다. ▣ 성스럽다던 물을 바티칸 스스로 치워버리다 성수가 악을 정화하는 신성한 힘을 지녔는지 어떻게 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퇴마 영화 속에서는 성수가 성스러운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에서 성수는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였으며, 악령을 퇴치하는 즉효약으로 묘사돼 왔다. 예를 들어 성수가 몸에 닿자마자 악령의 살이 타들어가는 장면은 이미 영화팬들 사이에 익숙하다. 2005년, 퇴마를 소재로 한 영화 《콘스탄틴》에서는 주인공이 은십자가를 물탱크에 넣어 대량의 성수를 만들고, 이를 천장의 스프링클러로 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2019년 7월, 콜롬비아의 항구도시 부에나벤투라에서도 구마를 목적으로 대규모 성수 살포가 진행된 적이 있다. 구마에 성공한다면 성수의 힘이 실증적으로 증명되는 것이었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도시 전체에 성수를 뿌리겠다는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를 계획한 것은 부에나벤투라의 주교 루벤 다리오 야라밀로 몬토야였다. 몬토야 주교는 이 지역의 불안한 치안과 계속되는 마약 밀매 및 흉악범죄가 악령의 세력이 커진 탓이라 판단했고, “부에나벤투라 섬 전체에 성수를 뿌려 항구를 파괴하는 모든 악령을 쫓아내고, 하느님의 축복이 임하여 거리의 모든 악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며 이 계획을 예고했다.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이 대규모 퇴마의식은 7월 13일 치러졌는데, 헬리콥터를 확보하지 못해 실제로는 소방차를 타고 도시를 돌았다. 주교는 소방차 위에 양동이째로 성수를 받아놓고 성수채를 이용해 사람들과 거리에 뿌렸으며, 최근 살인이 발생한 곳과 폭력 피해가 컸던 지역 위주로 축복했다.<자료2> 그러나 성수 축복 이후 영화와 같은 대단한 퇴마 효과가 관찰될 수 있을지를 묻는 물음에, 몬토야 주교는 “성수의 효과는 서서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난다.”며 둘러댔다. 그리고 1년이 지나도록 흉악범죄가 얼마나 줄었는지 교회 측의 공식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에나벤투라시와 법무부가 공개한 마약 압수량은 성수를 살포한 해인 2019년 약 6톤에서 이듬해인 2020년 약 16톤으로 2.6배 증가했고, 부에나벤투라시와 콜롬비아 국민권익옹호기관에서 공개한 살인 사건 발생 건수는 2019년에 111건, 2020년에도 111건, 2021년에는 194건으로 살인 사건이 줄어들지 않거나 증가했다. 실험 결과, 성수가 악령을 퇴치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악령의 소행이라던 흉악범죄가 증가했다는 결과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 이번에는 미국 미시간주 먼로 카운티에서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대규모 성수 살포를 진행했다. 때는 2020년 4월 5일,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망자 수가 폭증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성 미카엘 대천사 성당의 필 칭 신부는 물을 축복해 성수를 만들고, 그 성수를 펌프가 달린 용기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2인승 비행기를 타고 약 한 시간 동안 먼로 카운티의 모든 교회 위를 비행하며 성수를 뿌렸다. 칭 신부는 “주님께서 온 지역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예수님의 보혈이 교구 전체를 덮어 치유뿐 아니라 코로나19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라고 말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을 물리치고, 주님께서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성수를 살포한 날로부터 먼로 카운티, 미시간주 전체, 미국 전체 사망자 수는 여전히 폭증했다. 미시간주 보건복지부 기록에 따르면, 4월 5일까지 사망자가 없었던 먼로 카운티는 일주일 만에 6명으로 늘어났고, 미시간주 전체는 617명에서 1,487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같은 기간 미국 전체의 사망자 수도 10,618명에서 23,885명으로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그들 성수의 능력은 신부의 간구를 들어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신과 가장 가까이 소통한다는 교황이 머무는 곳, 가톨릭의 중심부인 바티칸의 선택은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자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2020년 3월 4일 일찌감치 성수대를 비웠다. 전염병이 몰고 온 현실적인 죽음의 위협 앞에서, 바티칸은 성수의 능력 대신 현대 의학의 방역 원칙을 믿은 것이다.<자료3>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바티칸 밖에서는 성수가 악령을 몰아내고,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며 하늘에서 성수를 뿌렸지만, 가톨릭의 본부에서는 성수를 신자들의 손이 닿지 못하게 치워 버렸다. 악을 물리치고 신자를 보호하길 기원하며 비치해 놓았던 성당의 성수가, 감염병 앞에서는 가장 먼저 치워져야 할 위험 요소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현실적인 성수의 한계를 외부 검증자가 아닌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이 직접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意義)가 있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성수가 세균의 온상이며 질병의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연구 보고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 오염된 물도 성수로 믿다 2002년 환경 미생물학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Microbiology》에는 「성수대는 병원성 세균의 온상이다」라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스페인 세비야의 여러 유명 성당 성수대의 미생물 오염 실태를 조사한 내용이었다. 연구진은 성당에 들어오는 신자들이 손가락을 성수에 담근 뒤 그 손으로 이마에 십자 성호를 긋고 입술까지 만지는 모습, 유아들이 성수를 만지고는 손가락을 입에 넣는 모습 등을 확인했고, 이에 성수대가 병원균 전파 경로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성수에서는 분변 오염 가능성의 지표인 대장균군을 비롯한 장내세균, 각종 병원성 세균이 널리 검출되었다. 한 성당에서는 일반 세균과 대장균군(Coliforms)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분석될 정도였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세균이 많이 검출됐다는 사실보다 병원성 세균이 검출됐다는 사실이다. 성수에서 검출된 37종의 세균 가운데 30종이 인간 병원체로 알려져 있다. 검출된 균에는 살모넬라(Salmonella spp.), 슈도모나스(Pseudomonas spp.), 바실러스(Bacillus spp.),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spp.),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spp.) 등이 포함되었다. 연구진은 오염된 성수가 면역이 약한 사람, 영유아, 노인, 병약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성수대가 병원성 세균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지적했다. 연구진은 또한 오염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가톨릭의 전통을 존중하여 다량의 소금을 첨가하는 방법을 검토했다. 실험 결과 20% 이상의 농도가 되어서야, 위 조사한 세균들이 모두 억제되었다. 이는 소금 농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바닷물보다 6배 이상 진한 수준이었고, 연구진은 이 농도의 소금물은 성수대의 대리석을 손상시킬 수 있다며 주의를 주었다. 이 정도로 소금을 넣어야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면, 그 성수는 소금물 정도가 아니라 방부용 염장액(鹽藏液)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12년 오스트리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수질과 공중보건 분야 국제학술지《Journal of Water and Health》에는 「성스러운 샘물과 성수: 간과된 질병의 원인인가?」라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비엔나 의과대학 위생 및 응용면역학 연구소는 오스트리아 동부의 성스러운 샘물 (성수로 여겨지는 성당 주변의 지하수 샘) 21곳에서 50개 샘플, 비엔나의 성당 16곳과 병원 내 예배당 2곳의 성수대에서 53개 샘플을 채취해 미생물 및 화학 검사를 진행했다. 사람들이 마시거나 몸에 뿌리는 성수가 실제로 위생적으로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조사 결과, 성스러운 샘물 중 식수 기준을 충족한 것은 14%뿐이었고, 취수 시설의 위생 상태와 오염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조사 대상 중 어느 곳도 식수로 권장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0개의 샘플 중에서 분변 오염 지표균인 대장균군(Coliforms)은 76%, 분변성 세균인 대장균(E.coli)은 38%가 검출되었고 일부 샘물에서는 화농성 감염과 패혈증을 유발하는 녹농균(P. aeruginosa), 염증성 설사를 유발하는 캄필로박터 균(C. jejuni)까지 검출되었다. 또한 많은 샘물들이 농업 비료, 분뇨 오염에서 기인하는 질산염(窒酸鹽,Nitrate)으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성당과 병원 내 예배당의 모든 성수에서도 일반 세균이 고농도로 검출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성당에서는 분변 지표균(Coliforms), 병원성 세균인 녹농균(P. aeruginosa), 황색포도상구균(S. aureus)도 검출되었다. 이에 연구진은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이 드나드는 병원 내 예배당의 경우, 성수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료4> 실제로 성수가 병원균 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된 사례들도 다수 보고되었다. 1992년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 BMJ)》에서는 「성령? 다발성 외상 환자에게서 발생한 녹농균 감염의 특이한 원인」이라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1989년 2월, 영국 버밍엄 병원에 19세 남성이 입원했다.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생명을 위협하는 다발성 외상을 입었지만, 수술 후 어느 정도 회복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혼란, 발열, 빠른 호흡, 초록색 가래가 나타났고, 검사 결과 녹농균 폐렴으로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감염원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의료진 중 한 명이 환자의 이모가 병문안을 와서 환자에게 성수를 듬뿍 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의료진은 즉시 중단시켰고, 남은 성수를 검사실로 보냈다. 그 결과 성수에서 녹농균이 검출되었고, 환자에게서 나온 녹농균과 세부 유형까지 일치했다. 병원 안에서는 이와 유사한 균이 검출되지 않았고, 연구진은 환자에게 뿌렸던 성수가 질병 감염원이었다고 결론지었다. 1996년 병원감염학 국제학술지 《Journal of Hospital Infection》에 실린 연구 「성수—병원 감염의 위험 요인」에도 영국 병원 화상 환자의 감염 사례가 실렸다. 1994년 5월, 53세 남성이 전기 사고로 전신의 80%에 3도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의 가족들은 상태가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환자에게 성수를 반복적으로 뿌렸다. 이후 환자의 화상 부위와 기관 흡인물에서 폐렴 등의 중증 감염을 유발하는 항생제내성균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가 검출되었는데, 가족이 사용한 성수에서도 같은 균이 검출되었다. 연구진은 성수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성수 샘플 13개를 추가로 검사했다. 검사 대상은 치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프랑스 루르드의 물 9개, 성모 순례지로 알려진 영국 월싱엄의 물 2개, 예수가 세례를 받은 강으로 알려진 요단강의 물 2개였다. 13개의 샘플 모두 세균 수가 높게 측정되었고, 검출된 균에는 녹농균, 대장균, 엔테로박터, 에어로모나스, 아시네토박터 등이 포함되었다. 일부 샘플들에서는 질염을 유발할 수 있는 곰팡이 칸디다균(Candida spp.)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에 연구진은 환자나 병실에 성수를 직접 뿌리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성수가 병원성균에 오염돼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음에도, 유명 성지인 루르드의 물과 요단강의 물은 가톨릭 성물 판매 사이트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활발히 판매되고 있으며,<자료5> 치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루르드 성수의 경우, 일부 판매자는 여전히 환자에게 선물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2025년에는 심지어 성수로 인한 감염으로 환자가 사망까지 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감염병 사례보고 전문 학술지 《IDCases》에 실린 논문 「그다지 성스럽지 않은 성수」에 따르면, 항암치료를 받던 67세 여성에게 갑자기 폐렴 증상이 나타났는데, 조사 결과 환자의 기관 흡인물에서 수인성(水因性) 세균인 엘리자베스킹기아 아노펠리스(Elizabethkingia anophelis)가 검출되었다. 이는 주로 물을 통해 전파되며, 면역저하자에게 폐렴과 균혈증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로, 일반적으로 병원 내부 경로로는 감염될 수 없는 균이었다. 그런데 추가 조사 과정에서 환자 가족이 성수를 비위관(鼻胃管)을 통해 직접 투여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 성수를 유력한 외부 감염원으로 결론지었다. 이후 환자는 같은 균에 의해 균혈증까지 겪었고, 항생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추가 감염과 장기부전, 출혈이 겹치며 결국 사망했다. 성수의 효과를 기대했던 간절한 믿음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다수의 의학 연구가 실제 감염 사례를 동반한 성수의 오염 실태를 명백히 증명해 왔음에도, 성당을 찾는 이들에게 성수는 세균의 번식처가 아니라, 여전히 신의 축복이 깃든 영험하고 거룩한 물로 소비되고 있다. 어떻게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수가 신성한 물이라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2017년 물 연구 분야 학제간 학술지 《WIREs Water》에 실린 논문 「성수: 거룩함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물의 작용」에서는 여러 종교에서 성수가 어떻게 거룩함의 매개로 이해되는지를 분석했다. 논문은 시체, 각종 폐기물, 하수로 오염된 강을 신성한 강으로 여기며 그 물에서 목욕하고 마시는 힌두교, 예로부터 성수를 장례 의식, 질병 치료, 악령 퇴치, 밭, 재산, 가축을 보호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해왔던 기독교의 사례를 들며, 성수는 실제로 정화되는 물이어서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믿음과 의례 속에서 정화와 축복의 상징성을 부여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교황청 신앙교리부 산하 신학 자문기구인 국제신학위원회에서 밝힌 ‘성수는 그 자체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의미를 갖는다’는 지침과도 일치한다. 성스러움이 물 자체의 실질적 효능이 아니라 믿음과 상징 속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라면, 오염된 성수도 여전히 거룩하고 성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2012년 3월, 인도 뭄바이의 한 성당 예수상 발끝에서 성수가 흘러내린다는 소문이 퍼지며 수천 명의 신도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며 이 물이 모든 병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으로 예수의 발에서 흐르던 그 물을 받아 마셨다. <자료6>성당의 신부도 기도 중간에 그 물을 신도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국제합리주의자 협회장 에다마루쿠가 성수의 출처를 추적한 결과, 근처 화장실의 하수도 물이 예수상 안으로 흘러들어가 발끝의 작은 구멍을 통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화장실 물을 성수라며 마시고 있던 것이다. 이에 가톨릭교회 측은 에다마루쿠를 신성 모독죄로 고소했다. 종교적 믿음에 고의로 흠집을 냈다는 이유였다. 에다마루쿠는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소한 그 더러운 물을 사람들에게 더는 나눠주지 않게 도와줬잖아요.”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감사 대신 돌아온 것은 살해 협박이었다. 에다마루쿠는 결국 외국으로 피신해 망명자 신세가 되었다. 인권변호사 곤실베스는 “신성모독죄가 성립하려면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가 뭘 잘못했습니까? 가설이 아닌 합리적인 설명을 한 것뿐이에요.”라며 성수라고 알고 있던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했을 뿐, 애초에 모독할 신성이 없었음을 지적했다. 믿음과 의례가 성스러움을 만든다는 논리라면, 병원균에 오염된 성수도, 예수상 발끝에서 흘러나온 화장실 물도, 성수라 믿는 순간 성수가 되어버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교회는 분명히 성수의 힘이 물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례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성수는 현실을 직접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화와 축복을 상징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에서 가톨릭은 성수를 단순한 상징처럼만 다루지 않았다. 성수가 실제로 악을 물리치고, 병을 고치는 영험한 효력이 있는 것처럼 연출해왔다. 심지어 물에 소금을 넣어 썩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였다. 물 자체의 효능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반 물보다 우수한 힘이 있길 바랐던 것이다. 여기서 결국 성수 신앙의 모순이 생겨난다. 오염된 성수, 효능이 없는 성수에 대해 해명할 때는 ‘믿음의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바람대로 성수가 현실에 작용하는 능력 있는 것처럼 다루어 온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성수에 정화와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연출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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