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묻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과 영성은 기만인가, 사기인가?

오래전부터 인간은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근원적 한계 앞에서 초월적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간절한 갈망에 응답이라도 하듯 종교는 신의 존재를 말하며 구원을 약속했고, 수천 년 동안 기적과 신비, 초월적 신의 개입을 주장하며 인간 사회 위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자연현상과 질병, 인간의 심리와 사회 구조까지 과학의 언어로 설명되면서, 종교가 독점해 오던 기적과 신비는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의심과 검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종교는 더 이상 “신이 개입한다”는 선언만으로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고, 신의 작동을 증명해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이상한 변화가 발생한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과거 종교인이었으나 현재는 무교가 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종교 없이도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종교는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 이탈을 넘어, ‘영적’이라는 개념이 교회 내부에서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종교는 초월적인 의미를 가진 ‘영성’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마치 영적인 실체가 작동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냈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안정, 정서적 균형, 자기만족과 수양 정도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신의 개입을 증명하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을 현혹하여 진실을 가리는 혹세무민(惑世誣民,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임)의 전형이며, 동시에 신의 부재를 스스로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신의 실제 개입이 없는 종교가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는가? 그 구조의 중심에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믿음은 논리적 검증을 차단하는 강력한 언어다. 기독교 신학의 틀을 세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는다(갈라디아서 2:16)”,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에베소서 2:8~9)”고 선포했다. 믿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종교는 신의 작동 여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고, 오히려 신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충분히 믿고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믿음을 강조한다 해도, 만약 신의 실제 작동이 자신들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확인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종교는 자기 방식대로 신을 해석하고 통제하던 독점권을 잃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구축된 제도 종교의 역사와 권력이 동시에 무너지는 사태를 의미한다. 균열은 내부에서 먼저 감지될 것이다. 신자들 사이에서 “저쪽에서는 신이 실제로 작동한다는데, 왜 우리 교회에는 늘 설명과 해석만 있는가?”하는 질문이 누적되고, 이 질문 앞에서 침묵하는 종교는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종교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그 영향이 인간과 사회 전체로 돌아온다는 데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동하고 노력하고 성취하려는 존재’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구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종교는 이 당연한 상식을 거꾸로 뒤집어서,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이는 좌향기성(坐享其成, 가만히 앉아서 성과를 누리다)이고, 불로이획(不勞而獲, 노력 없이 이익을 얻다)이다. 앉아서 구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신앙은, 인간이 행동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실천의 동력 자체를 서서히 마비시켰다. 영성이라는 개념을 변질(變質)시키고, 믿음으로 행함마저 마비시킨 이 행위가 종교라는 이유로 묵인될 수 있을까? 이는 영적 세계를 지향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검증 불가능한 영역 뒤에 숨어 현실의 기득권을 누려온 종교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구원을 약속하고 심리적 위안만을 제공하며 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붙잡아두는 행위. 만약 이것이 일반적인 사회 계약이었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이를 ‘기만’ 혹은 ‘사기’라 불렀을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짓 영성으로 초월적 실재를 찾을 기회에서 멀어지게 했다면, 그 책임에 대해 그들은 이제 답해야 할 것이다.

시온논단

신앙신보 창간 70년을 맞이하며

2025년 2월 7일, 신앙신보가 진실의 전파자로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70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과 체험담, 그리고 교단의 소식을 전하는 데 집중해 온 신앙신보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참된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신보를 통해 참된 길을 찾고 천부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보람과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천부교 초창기에는 많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직접 안찰을 받고 은혜를 체험했으나, 이후에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천부교를 중상모략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기성 교단과 일부 언론은 천부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장하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퍼뜨려 왔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역사와 신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때 박수를 치며 예배드리는 천부교의 예배 방식을 비난하던 기성교회도 지금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최고로 가치있는 생명물에 대해서 불신과 비난을 이어왔지만, 신앙촌의 생명물은 여전히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며, 시신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신보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 사명을 다하며 진리를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동안 끊임없는 사랑으로 신앙신보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참된 신앙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편집자 주

시온포럼

AI시대의 국가전략

AI시대의 국가전략

AI(인공지능)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두뇌’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로봇과 결합해 인간을 대신할 존재가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현실화하려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최근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속속 증명되고 있다. 18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서 선진국으로 부상된 국가들은 각 산업혁명의 시기를 선도해 왔다. 우리는 제1차 산업혁명에 뒤지고 폐쇄적 세계관과 국가체제를 유지하려다 국권을 잃고 극도의 압제와 수탈에 시달렸다. 애국지사들의 끝없는 저항과 희생을 바탕으로 국권을 회복한 이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후손에게 이 지긋지긋한 가난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산업의 꽃을 피우고 우수한 전통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를 선도함으로써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치열한 국가간, 기업간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 AI시대다. 이 글에서는 바야흐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AI시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 발전전략을 생각해 본다. 그 첫 단계는 AI시대를 위한 준비기, 혹은 인프라 구축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AI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등을 양성하는 시기다. 정부가 100조 규모의 AI R&D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 시기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다. 다만, R&D 투자만으로 AI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을 수행할 우수한 연구인력의 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문인력이 세계적 수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수혈해야 한다. 대학입시의 자율화와 경쟁 촉진, 이민정책의 전면 개편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우리의 대학교육 정책은 지난 50년 이상 평준화와 경쟁 제한을 강화해 왔고, 입시생들도 첨단 과학기술 분야보다 의과대학을 선호해 왔기에 AI시대에 적합한 고도의 전문인력 양성에 취약한 상태다. 기업들도 수많은 규제 속에서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이겨낼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 AI시대의 무한경쟁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 아울러 AI를 가능하게 할 거대 데이터센터의 구축과 이의 운영을 위한 전력공급 기반을 구축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모든 국가들이 친환경 청정 에너지원으로 원자력발전을 확정하고 수많은 원자로 건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값비싼 신재생에너지로는 AI시대 전력공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연구개발·인력·인프라 기반 구축 규제완화와 창의적 활용 확대 AI시대 세계 선도 체계 마련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주요 AI 정책을 모니터하고 이를 단계별로 평가해 세계적 기준을 넘어선 경우에만 다음 단계를 위한 지원을 시행하는 일이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 국내와 국외의 최고 전문가들을 평가위원으로 위촉하고 정부나 정치권의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평가지표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각종 AI 기술의 산업화와 활용 단계다. 여기에는 창의적 산업화를 가능하게 할 규제완화와 다양한 이용자들의 수요에 부합할 분야별 활용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활용되고 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의 창의적 및 윤리적 활용 능력 중심의 교육 제도와 내용 개편, AI로봇의 보편화로 대체될 노동계 설득 정책 등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민간의 창의적 노력이 제한되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끝으로 AI혁명으로 인한 역기능을 예방하고 AI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선제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특히 노동과 윤리, AI 기술의 악용을 예방하거나 엄단하는 기술적,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일은 AI시대를 선도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규제완화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 가능한 AI 활용이나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어야 하며, 새로운 AI 문화의 창출을 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는 급격히 변화한다. 역사는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한 국가나 개인에게 성공이란 보상을 준 적이 없다. 지금 우리의 AI 국가전략이 저항이나 제한이 아니라 적극적 선도와 변화의 수용이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온포럼

미국의 보호무역과 한국의 대응

미국의 보호무역과 한국의 대응

미국이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경제에 보탬이 될까? 중국 견제 등의 정치적 이유는 제외하고 경제적 측면만 살펴보자.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에는 관세(tariff)와 쿼터(quota), 자발적 쿼터(VER:Voluntary Export Restraints)가 있다. VER는 한국이 스스로 수출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물론 세 경우 모두 교역량은 줄고 미국 내 자동차 가격은 올라간다. 관세는 수출 가격의 일정 비율을 한국 기업으로부터 미국 정부가 걷어가는 것이고, 쿼터는 수입량을 제한하는 것인데, 미국 내 가격 상승분을 수입상이 가져간다. 반면에 VER은 관세나 쿼터로 올라갈 가격에 준하는 제한된 양을 수출하여 미국 내 가격 상승분을 한국 기업이 가져온다. 이 짧은 글에서 관세, 쿼터, VER에 의한 보호무역이 양국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주요 결론만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양국이 거래를 통해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교역(수출입) 규모가 축소되므로 양국 모두 손해를 본다. 둘째, 보호받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고용은 늘고 임금도 오른다. 이는 눈에 보이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내 자동차 가격이 올라 사용 대수가 줄어 자동차 소비자들의 이익은 줄어든다. 미국의 자동차 생산비용도 올라간다. 또 미국 수출 산업의 고용은 줄고 임금은 내려간다.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여 획득하는 달러화가 줄어 미국 상품을 적게 수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는 소비자 부담 증가와 경쟁력 약화 등 손실이 더 커 한국은 자유무역 기조 유지, FTA 기반 협상 통해 불리함을 최소화하고 장기적 전략 마련해야 더구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되므로 새로운 발견이나 혁신을 게을리하고 경쟁력을 잃어간다. 경쟁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다. 셋째, 한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자동차를 생산하면 미국 내 자동차 산업의 고용은 늘고 임금도 올라간다. 물론 미국 내 자동차 생산비용이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이득도 줄어든다. 또 한국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쓰이지 않는다면, 미국 수출 산업의 고용은 줄고 임금은 내려간다. 즉, 두 번째 경우와 유사하다. 결국 미국의 보호무역은 미국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를 궁핍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도 보호무역을 지속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미국이 보호무역을 하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역은 국가 간 교환이다. 교환은 나에게 없거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만드는 것을 내가 받고, 상대방에게는 없거나 내가 그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만드는 것을 그에게 줌으로써 서로 이익을 얻는 행위다. 즉 무역의 일차적 목적은 수입이고, 공짜가 없으니 수입하려면 수출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 보호무역을 한다고 해도 한국은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이익이다. 또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임을 상기시켜 관세 장벽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최선이다. 아울러 미국과 협상하여 VER 조치를 한다면 미국 내 자동차 가격 상승분을 한국이 얻을 수 있다. 한국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