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성신으로 주시는 진정한 구원

먼저 이제 구원의 말 하는. 세상에 종교는 많아요. 굉장히, 몇만, 몇십만을 헤아릴 수 없는 정도, 그 교파가 갈라진 것까지 하게 되면 많아요 그럼 이제 그 종교들은 왜 믿느냐. 그 삶이 곧 죽는. 평균 80년이면 80년 살고 죽는 이걸 갖다가 영원히 살 수가 없나 하는 문제에 있어서, 각 종교가 저승에 간다, 극락세계 간다, 구원을 얻는다, 천당을 간다, 낙원에 간다 하면서 좋은 곳에 간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도 갈 수 없다는 걸 오늘 내가 발표할래요. 구원 얻을 수가 없어요. 그럼 이제, 이 지구상에 있는 인간이 이 구성체가 똥의 구성체야, 똥의 구성체. 먹으면 8시간 만에 똥이 돼. 어디 여기에 똥을 만드는 위장을 안 가진 사람 손들어 봐요. 누구도 똥을 만드는 위장을 가지지 않은 자 없어. 그럼 이 똥의 구성체 가지고 영원히 살 수가 있어? 구원 얻는 거는 이 육신, 똥의 구성체, 마귀 구성체, 이게 바뀌어야 돼. 그거를 예수도 모르고 예수의 아비, 성경에 하나님이라고 한 아비도 몰라. 그걸 모르고는 구원 얻을 길이 없어. 이제부터 구분 지으려는 거야. 성경에 구약 전체, 신약 전체 다 봐도, 구원 얻는 표준을 어디다가 뒀나 하면, 영원히 산다는 기준을 아담과 해와 거기에다 둔 게 전 세계 인류야. 해와하고 아담은 쿨쿨 자는 인생, 또한 땅에서 나는 것 먹는 인생, 똥을 만드는 위장이 있고 배 속에 똥이 가득 차 있어. 똥 싸는 인생이 영생이라는 것 없어. 피곤해서 자고 점점점점 늙어져 가지고 꼬부라져 가지고 마지막에는 해롱해롱 하다가 죽어. 육신은 그렇게 죽어. 그럼 지금 기성교인, 목사, 신학자, 예수 전부 다 육신이 구원 얻는 줄 안 거야. 그런고로 그 사람들 구원이 없어. 그럼 예수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 하는 것은 무얼 믿는 거야? 십자가에서 흘린 피, 피로 죄 씻음 받으면 구원 얻는다는 거야. 이제 봐. 그 이건 늘 말한 거야. 육신 중에, 뼈, 힘줄, 살 껍질, 살, 피, 다섯 가지 중에 뼈가 제일 먼저 썩어요? 힘줄이 먼저 썩어요? 제일 먼저 썩는 게 뭐예요? 피가 제일 먼저 썩어요. 최고로 썩는 게 피야. 이 육신 중에도 제일 먼저, 죽으면 똥이 되는, 썩어지는, 송장이 되는, 제일 먼저 썩는 피 가지고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1) 하는 게 안 되게 돼 있어요. 제일 먼저 썩는 피를 가지고 입을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피로 구원이 없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된다』2)는, 『생명에게 삼킨 바 된다』고 그러는. 예수는 무엇을 생명이라 했나 하면 자기 피를 생명이라고 했어. 그 육신의 생명은 피가 생명이야. 소의 피는 소의 생명, 개의 피는 개의 생명, 닭의 피는 닭의 생명, 나무의 진액은 나무의 생명. 나무의 생명인. 예수 피는 예수의 생명인. 그럼 그 예수의 피, 생명은 영존할 생명이야, 금방 썩어 버리는 생명이야? 피는 이거 죽으면 최고로, 똥과 같이 최고로 썩는 게 피야. 그럼 예수는 수많은 사람을 속여서 구원을 준다고 하면서 구원을 못 주면 그게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야, 마귀의 아들이야? 이걸로 예수는 마귀로 오늘 단정되는 거야. 한국일보 신문 12면(1988. 10. 7. 표제 ‘구원보다 현실 개선의 이념으로’) 전체에 났어. 내 설교를 할 적에도 기성교회에서 보내 가지고 녹음을 다 해 가. 해 가기 때문에 이젠 구원은 틀렸고 예수는 여지없다는 걸 알고, 그 성경의 하나님이라는 건 아주 그 거짓 것 중의 거짓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신문의 내용이 뭐냐. ‘이제는 구원 얻는 거는 단념하겠다.’ 포기하는 게 단념하는 거야.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양심껏 살아 보자.’ 그럼 예수에게 구원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구원 얻을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구원 얻기 위한 게 아니면,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구원 얻는 걸 포기하고 단념을 한다면 그 종교를 안 나가는 게 낫다 그거야. 그 악신이 작용하는 그게 돼 놓으니 마귀가 들어갈 대로 들어가게 돼 있어. 그럼 양심대로 한다는 게 성신이 작용을 안 하면 사람이 선해질 수가 없어. 선해지려야 선해질 수가 없어. 그럼 이제 성신 중에 어떠한 성신이 필요하냐? 어떠한 성신. 이 육신, 썩을 똥으로 구성된 이것을 성령의 구성체로 바꾸는 성신이 최고로 필요한 거야. 감람나무가 내리는 이슬성신이야, 이슬성신이야. 성경에 기록돼 있어도 안 자가 없고 박사들도 성경을 몇만 번을 봤어도, 만독(萬讀)을 했어도 그 이슬성신이 뭐인지를 알지 못해. 그런고로 나는 그걸 가지고 왔고 내릴 수 있게 왔고 그걸 부어 줄 수 있게 왔어. 그럼 그게 바로 『내가 이슬같이 임하리니 그 은혜를 내리는 자 감람나무와 같고』3) 이거야. 하나님의 신을 내린다는 게 감람나무와 같고. 초창기에 남산집회, 한강모래사장집회, 한강 제1한강교 바로 위의 모래사장 거기에, 그다음에 또 그 영등포 앞의 모래사장 거기에 이슬 같은 은혜가 최고로 많이 내렸어요. 뽀얗게 내렸어. 그러면 뭐 그저 그 환자도, 뭐 차판으로 막 실어 오는 거야. 그래 그 넓은 장소가 아니면 되지 않아. 그럼 들것으로 들고 오는 것, 뭐 송장 냄새가 다 나는 정도야. 그런데도 그때 임영신 총장 이런 사람들도 그 환자들 많이 온 거기에 전부가 손바닥 치며 집회에 참석한. 그 임영신 총장 음성이 아주 애기 음성 같아. “아, 내 주위에 전부 다 그 고름투성이의 환자들이 있는데 고름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무슨 향취가 그렇게도 코를 찌르게 기도 막힌 향취가 납니까?” “그게 하늘의 향취요, 하나님의 신이 내리는 고로 하나님의 신의 향취입니다.” 그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린 게 바로 하나님의 신이야. 그걸 내린 자가 바로 감람나무인 동시에 하나님이야, 바로. 그럼 이 손으로 쉭하면, 그 태평양이라도 쉭하면 전체 생명물이 되는, 그 시험해 볼 수가 있어. 태평양 물 드럼으로 100드럼을 갖다 놓고 해도 쉭 한 번 축복하면, 그 생명물로 시신에 바르면 환하니 피어. 바로 하나님의 신, 그 이슬의 은혜가 하나님의 신이야. 그걸 가지고야 구원을 주게 돼 있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거를 입겠고, 입혀주고, 성신의 구성체로 화하여져 영원무궁토록 살 수 있는 이슬의 구성체로 화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감람나무야. 그럼 그게 완전히 벗어져야 하는데 꼭 이거와 같아. 굼벵이가 매미 되는 것 알아? 굼벵이가 그게 자라서 매미가 돼 가지고 이슬 먹게 돼. 똥구더기 같은 그 인간이 변해야 돼. 변해야 되는데는 그날에 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자면 그 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살 수가 있게 돼 있어. 그 뜻을 어느 정도 이룰 때가 되면 이제 하나님이 『네가 빛을 발하라』4) 하게 돼. 그러면 이걸 탁 바꿔서 빛을 발하게 돼. 그러면 『네 머리에 영영한 기쁨이 되고 네 머리에 영영한 빛이 되리라』5) 『너는 영원무궁토록 나와 같이 거하리라』6) 하는 거야.
그때에 이슬성신이 나가는 건 말할 수 없어. 그게 이제 비쳐 나가고 이슬 같은 은혜가 나가는 동시에 마귀가 빠져나가. 빠져나가는 중에 요 심장과 폐, 혈관은 그 마지막에 10억 분지 1초에 탁 바뀌어야 돼. 숨 쉬다가 숨을 안 쉬는 걸로 바뀌게 돼. 그럼 이제 완전히 투명체가 돼. 심장도 없어. 폐도 없어. 왜? 거기에는 공기가 없어. 하나님의 몸에서 나가는 빛을 가지고 그 끝도 한도 없는 우주가 환하게 비치게 돼 있어. 그거 왜 그렇게 되나?
전부 이슬성신으로 우주에 꽉 차 있는 게 그 성신이야. 이슬성신이야. 이슬성신이 꽉 찼으니까 그 빛이, 하나님께서 비추는 빛이 이슬성신으로 연결돼 나가 가지고 환하게 비추는 거야. 이슬성신이 충만하니까. 그 이제 마지막 날, 하나님이 이제 빛을 발하는 때에 그때 탁 바뀌게 돼 있어. 최고가 뭐이냐 하면 죽어도 죄 안 짓는 게 최고야. 그러면 화하게 돼 있어.
이게 이슬성신의 구성체로 화하여 영원히 살게 돼 있어. 어느 종교도 구원이 없어. 하나님이 성신의 구성체로 바꿔 주기 전엔 구원 얻을 길이 없어. 그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틀림이 없어. 1) 고린도전 15:53
2) 고린도전 15:54
3) 호세아 14:5~6
4) 이사야 60:1
5) 이사야 60:19~20
6) 마태복음 28:20 천부교 『하나님 말씀』의 저작권은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및 한국천부교전도관유지재단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허가없이 말씀을 출판ㆍ복사ㆍ전재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행위로 민ㆍ형사상의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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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부 행함의 종교

성신은 죄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초창기부터 늘 말하였다. 내가 성신은 벌과 나비에, 마귀는 쉬파리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아름다운 백합꽃이 피어 향기를 발하면 벌과 나비는 그 향기를 맡고 꽃에 날아오지만, 쉬파리는 아무리 향기가 나고 단꿀이 있어도 백합꽃으로 오지 않고 똥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 버린다. 벌과 나비는 똥 근처에만 갖다 놔도 싫다고 도리도리하면서 아름다운 꽃에 가서 붙는다. 그러나 쉬파리에게 “너는 왜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있느냐?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아라.” 하며 꽃에 붙여 놓아도 100번이면 100번을 꽃향기가 싫다고 하며 똥에 가서 붙는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을 좋아하는 쉬파리는 곧 마귀를 비유한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더러운 똥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으므로 그곳에는 쉬파리 같은 마귀가 붙게 된다. 아름다운 백합꽃에 날아오는 벌과 나비처럼 성신은 성결한 마음속에 거한다. 자유율법을 지켜 눈길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고 성결함을 소유하면 성신은 떠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 마음속에 생명의 은혜가 담겨 성신이 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향기가 나고 꿀 냄새도 나는 것 같은 꽃송이에 벌과 나비는 떠나고 쉬파리가 달라붙는다면, 인간은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 속에 부패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향기 나는 백합화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가도 조금이라도 쿠린내 나는 죄가 개재될 때 성신은 거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다. 죄를 씻어 그 마음에 성신이 충만히 담겼더라도, 자유율법을 어겨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죄를 짓는 순간 성신은 떠나게 된다. 성경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93)라고 기록한 대로 성신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신을 받아 완전무결하게 죄를 씻어서 구원의 자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생각으로 조금 죄를 지으면 이미 구원의 자격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성신은 죄와 타협하지 않는다. 자유율법을 어기면 성신은 떠나신다는 것을 이것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율법을 알고 그것을 지키는 자라야 성신을 간직할 수 있다.

제7부 행함의 종교

하나님은 마음이 성결한 자, 마음이 아름다운 자, 마음이 깨끗한 자, 마음이 결백한 자, 마음이 순박한 자를 기뻐한다. 이 다섯 가지는 같은 말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를 볼 때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은 마음의 성결이다. 마음이 성결해야만 하나님의 신이 그 마음속에 거(居)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마음이 수정같이 맑아지는 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신이 거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제일 기뻐한다. 자유율법을 지켜서 의식의 죄라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은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지 못하지만 성신은 그 사람 속에서 전부 살피고 있다. 사람의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신(神)이 각 사람의 머릿속과 심장 속과 주변에 셋씩 따라다니는 것이다. 죄를 지으려고 하면 가슴이 방망이질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신이 그 사람의 양심을 두드려 주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두드려 주시는 대로 바르게 행동하며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양심대로 산다고 해도 성신이 작용하지 않으면 성결한 마음을 소유할 수 없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의 양심대로 사는 것만이 아니라 자유율법을 지켜서 모든 죄에서 떠나야 하고 성결한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항상 은혜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가운데,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살얼음 위를 걷듯 생활하는 것이 귀하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애쓰며 노력하는 자를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그 향방이 구원의 길에 부합되고, 하나님이 기꺼이 여기시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귀하다. 『마음이 성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오』89)라고 한 것과 같이 자유율법을 지켜서 성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 마음과 생각을 소유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찬송가 326장 ‘기도하는 한 시간’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고하여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 시간이 가장 즐겁다.’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속삭이는 시간, 그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순간, 은혜가 허락될 때에 얻어지는 환희와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 진실로 구하면 그 음성을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하나님의 귀는 먼 곳에 있지 아니하고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속삭이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는 그 이상 좋은 것이 어디 있는가? 찬송가 418장 ‘진실하신 친구’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고한 사람 복 받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모든 것을 고찮나 기도는 하나님께 고(告)하는 것이다. ‘걱정 근심 모든 것을 고한 사람은 복 받네.’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고하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찬송이다. 세상에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이 없는 자가 어디 있는가? 주께 고함이 없는 고로, 구하지 아니하는 고로, 기도를 드리지 않는 고로, 호소를 하지 않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하는 사람, 기도를 드리는 사람, 호소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그러나 이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를 구하는 것은 『헛되고 헛되다』90)라고 한 대로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마는 안개와 같고 구름과 같이 헛된 것이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한다는 그 복은 하늘의 복인 것이다. 복 받을 모든 조건을 갖추고 향할 때 하나님은 한없는 복을 주시게 되어 있다. 그와 같이 향하는 자에게 『너 쓸 것 미리 아시니 염려할 것 없다』91)라고 하는 것이다.

제7부 행함의종교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내가 초창기부터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는 것을 말하였다. 찬송은 노래로 하나님께 애원하는 것이요, 노래로 기도하는 것이다. 찬송은 성경 중에서 요절(要節)을 뽑아 만든 것으로 그 전체가 하나님께 향하는 기도이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다. 찬송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고 주시게 되어 있다. 구하는 것이 생명이니 생명을 주는 것이다. 구하는 자의 진심을 보고 주는 것이다. 나는 초창기부터 손뼉을 치며 찬송을 하도록 했다. 『손바닥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하라』88) 하는 구절을 내가 성경에 삽입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기성교회에서 조롱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기성교인도 손뼉을 치며 우리를 따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계속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것이다. 은혜를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찬송할 때,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손뼉을 치며 그 은혜를 구하고 또 구하는 것이 귀하다. 하나님을 분명히 안 다음에는 찬송으로 은혜를 입어야 된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찬송으로 더 큰 은혜를 입을 수 있다. 찬송을 하면서 모두의 마음문이 활짝 열려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은혜가 순환되면서 얼굴에 광채가 날 정도로 은혜를 입게 된다. 찬송을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한없이 흐르게 된다. 성신이 주시는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눈물이 솟구쳐 올라와서 견디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눈물, 남 보기가 창피해도 멈출 수 없는 눈물, 그것이 바로 성신이 주셔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다. 하나님께 향한 진심의 정도대로 찬송이 은혜롭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잘한다고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진심으로 애원하고 안타까이 구하는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진정과 진심이라는 것이 귀하다. 찬송은 뜻을 알고 불러야 한다. 하나하나 뜻을 알고 부르면 맛이 나게 된다. 찬송은 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것이다. 열흘을 지속해 불러도 싫지 않다. 은혜로써 화해 나가면 그와 같이 된다. 찬송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섬기는 심정으로 드려야 할 기도이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1장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 곧 성신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간직하여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성신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에 부합하는 생활, 즉 자유율법을 지켜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천부교는 성신이 임하는 체험의 종교요, 성신을 받은 다음에는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다. 이와 같이 행함의 종교라는 것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성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제6부 구원과 심판

제6장 영원한 천국

제6장 영원한 천국 천국은 영원한 세계 1 이 지구에서 인간이 구원을 얻으면 2차 천국에 가게 된다. 2차 천국은 내가 지금부터 연구해서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영원무궁토록 연구한 것이다. 나에게 그것을 창조할 능력이 있으며 이미 1차 천국과 1차 지옥을 창조한 실적이 있다. 2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창조학을 연구했고 지금도 신의 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3 성경에 […]

천국과 구원의 근본을 밝혀주신 하나님

2019 추수감사절 방영 말씀

이제 하는 설교는 인간의 차원에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하늘세계 창조 단계를 말하는 고로, 이건 세상에서 들어 보지 못하던 말을 하려니까 어떤 타임이 돼야 뼈대만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게 되죠. 그런고로 하늘세계에서 되어지는 것을, 여러분들이 영원토록 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영원무궁토록 하늘세계 것 말해 줄 수가 있어요. 세상 교리는, 세상 인간은 하나도 몰라요. 그런고로 천국에 보내 준다 하면서 천국에 가서 그 어떠한 구성으로, 어떠한 구조로 되어져 있는 그 형체를 모르고, 어떻게 돼서 영원히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이유는 뭐인지, 여긴 100년도 못 살아 죽는데 거기에는 영원무궁토록 죽음이 없이 산다는 그 이유는 뭐이고, 어떠한 걸 먹고, 여기같이 위장이 있냐 없냐 하는 이 모든 것을 창조주가 아니면 알지를 못해요. 거기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그 조건이 어떻게 돼서 화장실이 없는지, 그 구조를 인간은 알지를 못해요. 그런고로 세상 교리에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고, 하늘세계에 가서 움직이는 걸 도저히 몰라요. 불교는 극락세계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극락세계 가서 뭘로 구성된 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걸 표시된 게 없어요. 그럼 기독교에 예수의 가장 유식하다는 제자가 사도 바울이에요. 그 유식하다는 사람인데 허풍 떤 게 있어요. 자기가 삼층천엘 갔다 그거에요. 사도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삼층천(천국)에 갔다』(고린도후서 12:2~3). 가 봤으면 쥐꼬리만치도 본 걸 그대로 표시해야지, 『그건 말할 수 없다』(고린도후서 12:4) 하는 게 결론이에요. 이거 허풍이에요. 보지 못하고 본 것같이 한 거예요. 못 봤다 하면은 그가 자기가 체면이 안 서니까 본 것같이 하면서 허풍을 떤 거예요. 그게 전체 전 세계의 종교예요. 그대로 그 교리에 드러난 게 그 세계 움직임이 드러나야, 그 세계 움직임을 알아야 그 세계 가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이 서겠지요? 모르고도 가게 할 수 있나요? 가게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럼 하늘세계에서 움직이는 걸 잠깐만 말하죠. 거기에는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아요. 그럼 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되냐 하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 밤샘해 보면, 한 이틀 새워 놓으면 뭐 그저 흐느적흐느적, 근드렁근드렁 하며 자꾸 졸죠. 그런데 어떻게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고 견디냐 이거예요. 그 이유를 알아야죠. 하늘세계의 존재와 땅의 존재는 완전히 달라요. 첫째가 재창조예요. 없이하곤 또 창조하지요. 자꾸 새로이 되지 않으면 영원토록 살 수가 없어요. 하늘세계에는 신으로도 표현하기가 어렵게 아름답지요. 그러나 그 얼굴 그대로 살면 10년도, 10년 아니라 1년도 가지 못해 벌써 지루하게 돼요. 그런고로 재창조라는 게 되는 거예요. 기도 막히게 표현할 수 없는 하늘세계 아름다운 그 모습이지만 더 기도 막히게 아름다운 걸로 바꿔지는 동시에 거기에 그 광채가 나게 돼 있어요. 그러면 ‘내 얼굴은 요렇게 되면 좋겠다.’하는 그 마음보다 더 앞선 걸로 착착착착 밸런스가 맞춰져 바뀌어져 나가죠. 그런고로 얼굴 변하는 것만 봐도, 영원무궁토록 그것만 봐도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그렇게 아리따운 얼굴 그대로 전체가 변하는, 바꿔지는 상태에서 눈이 그대로 있지 않고 더 빛나고 더 아름다운 눈이 바뀌어요. 눈이 아름다운 걸로 화하는 고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고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눈만 아름다운 걸로 바뀌어지는 게 아니고 시각의 도수가 높아져 가요. 시각의 도수가 높아 가는 고로 천태만상의 것을 그대로 1초만 둬 두면, 창조를 안 하면 그 눈이 보기가 싫어서 볼 수가 없게 돼 있어요. 끝도 한도 없는 그 가짓수가 전체 주위 환경이 화해 나가죠. 그게 한 번이라도 빠지면 결함, 그건 천국이 아니에요. 코가 모양이 예쁜 걸로 자꾸 바뀌어지는 것뿐만이 아니고 취각의 도수가 자꾸 높아 가요. 그런고로 우주의 향기가 1초만 창조한 그 냄새 그대로라면 냄새 맡는 도수가 높아 가는데 향기 창조한 그대로 있으면 구역질이 나서 맡을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그 우주의 향기를 재창조를 해요. 그런고로 거기에는 어떤 보화를 주고라도 쉬쉬한 냄새, 쿠린 냄새, 똥 냄새, 영원무궁토록 가도 맡으려야 맡을 길이 없어요. 향기뿐이에요. 거기에는 기쁨과 즐거움 이외엔 없어요. 그것도, 기쁨도 감수(感受)하는 도수가, 감각이 자꾸 높아 가는 고로 같은 기쁨 가지고는 즐거울 수가 없게 돼 있어요. 즐거움이 빠지는 시간이 없어요. 그러게 영원무궁토록 살지, 지금 이 세상 같으면 어떻게 살아요? 못살아요. 그러니 이게 천국이지요. 내가 설계한. 틀림이 없어요. 누구도 말할 수 없어요. 한 토막을 누구도 꾸며서 말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 보세요. 사도행전 1장에 『500명이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걸 본 거와 같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사도행전 1:9~11) 했는데는 그 항공기가 가는 층만도 못 가는 예수의 천당이라는 건 거기예요? 여객기 타 본 사람이면 새까만 구름에 천둥을 치며, 그 소낙비가 악수 같이 쏟아지는데도 항공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점점 허연 구름이 나타나다간 구름층 위에 올라가면 해가 쨍쨍 뜬 맑은 하늘 뜨지요? 구름이 가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 세상의 인간들이 그거 모방한 게 많아요. 그래 가지고 대개 천사, 선녀, 신선 뭐 하면서 그려 놓은 거는 전부 구름 같은 그 위에 이렇게 서 있지않아요? 그거 하나만 봐도 예수가 그게 신의 하는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신격으로 다 알아야 되는데 요 구름층 위에를 모르는 거예요. 그게 인위적이라도 그런 너절한 글은 없다 하는 게 곧 그거예요. 그럼 이제 예수 설계한 천국은 묵시록에 다 있어요. 그건 천국이 아니고 지옥 중의 지옥이다 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거예요. 『영원토록 서서 할렐루야 영광 돌리고 찬송만 하면』(묵시록 7:12) 아무리 신이라도 끝도 한도 없는, 영원무궁토록 서서 있으면 그게 신이라도 벌서는 중에 그 이상 벌이 없어요. 그런 놈의 천국이라면 여지없다 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설계한 천국의 그 형체는 창조력이 없는 고로, 땅의 물질 가지고 전부 장식을 했다 그거예요. 창조력이 있으면 땅의 물질 가지고 안 할 텐데, 창조력이 하나도 없어요. 『열두 진주 문이요, 홍보석이요, 녹보석이요, 홍마노요』(묵시록 21:19~21) 세상 보석이에요. 그걸 가지고 잔뜩 장식만 한 것같이 만들어 놓은 그런 천국이면 너절해요. 『12,000리의 성 길이와 사방 척수가 나와 있고, 그 성의 높이는 상당히 높고』(묵시록 21:16) 색깔이 다른 걸 알록달록하게 딱 서낭당, 그 노랗고 파랗고 칠한 거와 같은 그런 문이 열두 개 빗장이 꽂혔으니 그게 천국인가요? 도적놈이 한없이 있는 고로 높은 성이 필요하지, 도적놈이 없는, 마귀가 다 박살이 된 천국이야 빗장은 무슨 필요가 있고 담장은 무슨 필요가 있나요? 그런 게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그 세계 사는 것도 모르며 그거 뭐 추상적으로 뭐 그럴 거다 하는 것 가지고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거기의 움직임을 전체 알아야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근본 정확한 걸 벗기죠. 하늘세계에는 흙이 없어요. 흙이라는 것은 썩어지는 게 나오게 돼 있어요. 창세기 1장이 흙으로 빚었다는 것부터가 그거 엉터리예요. 어떤 물질 쪼꼬방살이(소꿉질)같이 흙을 빚어 가지고 그걸 영생하는 자 만들었다는 그거부터가 허풍이에요. 하늘세계 영원히 사는 건 거긴 흙이 없는 곳이죠. 흙으로 구성된 자는 반드시 썩게 되어 있는데 그래 아담은 흙으로 빚었으니 영생의 인간이 아닌 거예요. 천국은, 영원한 세계는, 아까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그 원인을 말했지요. 그런데 영원한 세계는 잠이 없는 곳인데 아담은 쿨쿨 잤으니 그 허풍이에요. 그 창세기가 허풍인 걸 아세요. 구원을 도저히 모르는 소리입니다. 하늘세계에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이거 육신은 썩어지게끔 돼 있어요. 이틀 만이면, 여름 무더운 날이면 송장내가 나죠. 이건 썩어지게끔 창조를 했어요. 아무리 신사고 숙녀고, 그 미남 미녀 해도 그거 위장에서 8시간 만에 똥이 돼 가지고 그 장을 통과해 가지고, 어느 타임이 지나면 항문으로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배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는 너절한 구조예요. 거긴 썩지 않는 세계예요. 완전히 구조가 달라요. 거기는 피가 없어요. 영원무궁토록 가도 피 한 방울, 피가, 심장이 없고 혈관이 없어요. 혈액이 있으면 거기도 썩어 죽어요. 피 가진 자는 죽지 않는 자 없어요. 피가 썩는 근원입니다. 그러게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 준다는 게 허풍 중의 허풍인 걸 말하지요. 인체에서 뼈, 힘줄, 껍질, 살, 피 다섯 가지 중에 어느 게 제일 빨리 썩어요? 피가 제일 먼저 썩습니다. 썩는 근본이 그거예요. 그럼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어떻게 썩지 않는 걸 입겠냐 하는 거 그거 허풍 중의 허풍이에요. 예수의 피 여지없다는 걸 까 버리기 위하여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고린도전서 15:54) 하는 것 삽입했어요. 고린도전서 15장에 있습니다. 썩지 아니함을 입어야 되게 돼 있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돼야 된다』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신이요, 성신이에요. 완전히 신의 구성체로 바꿔져야 된다는 걸 표시한 거예요. 요게 아주 포인트입니다. 만 가지가, 바로 예수 믿는데 피 가지고 구원 얻는 줄 아는데 구원이 없어요. 구원 없다는 결정적인 설교예요. 기성교회 소경 만들어서 끌고 가는 것같이 소경이 소경을 끌고 가, 같은 구렁텅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가다 지옥 가면 안타깝지 않느냐 그거야. 창세기 허풍인 거, 예수의 보혈로 죄 씻어 준다는 것,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썩지 않을 걸 입혀 준다는 이게 허풍이면 예수 구원이 있어, 없어? 구원이라는 건 없어요. 창조주 아니면 지적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내가 진짜 하나님이야. 창조주 틀림없어요.

제6부 구원과 심판

제5장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한 이래 3조 년 동안 평균 5,000년마다 인간을 심판하였다.
이 지구는 좁아서 평균 5,000년이면 한계점에 이르러 심판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더 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번씩 지구를 심판할 때마다 몇 명만 넘어오게 하고 나머지는 전멸 상태가 되게 하였다. 노아 심판 때는 여덟 명이 넘어오게 하였고 그전 심판 때는 네 명이 넘어오게 하였다. 노아 때는 하나님이 물로 심판을 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할 것을 알리고 방주를 지을 것을 명하여 120년 후에 방주가 완성되자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지게 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노아가 120년에 걸쳐 전도와 경고를 했어도 그것을 무시했던 사람들은 마침내 홍수가 시작되자 모두 산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물이 점점 차올라 설 땅이 없어지자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투극을 벌이고,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비참한 광경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결국 가장 높은 산까지 물에 잠겨 육지를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노아의 여덟 식구가 탄 방주만이 떠 있게 되었다. 그런데 ‘40일 정도 폭우가 쏟아진다고 어떻게 세상의 제일 높은 산까지 다 잠겨서 육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강우량과 비가 내리는 시간, 땅의 면적과 물의 유속을 계산해 보면 40일 동안 폭우가 아무리 쏟아져도 지구가 모두 물에 잠길 수는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온 세상이 물에 다 잠기기까지는 하늘에서 내린 비의 양보다는 땅에서 흙이 매몰돼 올라온 물이 더 많았다. 40일간 쏟아진 폭우로 산 둘레의 흙이 무너져 강과 바다를 메워 물이 산꼭대기까지 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또 폭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노아의 방주가 어떻게 그 물에 부서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지금과 같이 육지가 있어도 바다의 파도에 배가 파선하는데 노아의 홍수 때는 산이란 산은 다 잠겨 버렸고 거치는 데가 없이 지구 전체가 모두 물바다로 변했다.
그때 바람이 불면서 치는 파도의 크기란 태평양의 파도보다 10배, 20배의 유(類)가 아니었다.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므로 노아의 방주는 유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시일이 지나서 노아가 방주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놓아 주니 감람나무 이파리를 물고 돌아와서 육지가 드러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물고 온 것은 세상을 구원할 존재는 감람나무인 것을 상징한 것이다.

제6부 구원과 심판

제4장 인간의 행함과 구원의 조건

하나님이 구원의 조건을 공포하면 그것을 어떠한 결과로 만드는가 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만약 하나님이 죄로 인해 어떤 나라를 멸한다는 조건을 공포했을 때 그 경고를 듣고 그 백성이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멸할 것이로되, 그 백성 전체가 통회하고 자복할 때는 뜻을 돌이켜서 구원해 주는 하나님이다.
니느웨성의 회개는 오늘날 이 교훈을 위하여 내가 예비한 것이다. 니느웨성은 악한 도성으로 하나님은 요나를 통하여 그 성이 멸망한다는 것을 선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가는 그 성에서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채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큰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요나를 삼켰다가 며칠 후 육지에 토하게 하였다. 고기 배 속에서 잘못을 회개한 요나는 니느웨성에 가서 “회개하라. 이제 40일이 지나면 이 도성은 멸망한다.” 하고 외친 것이다. 요나의 외침을 듣고 니느웨성의 백성은 전부 식음을 전폐하고 회개하였다. 왕도 보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다.1)
그 회개가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게 되어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멸하려던 뜻을 돌이키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회개를 받고 진노를 거둔 것이다. 만약 그때 니느웨성의 백성들이 요나의 외침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완전히 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느웨성의 전 백성이 진심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진노를 거두어 멸하지 않은 것이다. 니느웨성의 죄악이 컸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함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제6부 구원과 심판

제3장 구원의 특혜

성경에 『힘으로도 못 하고 능으로도 못 하고 오직 내 성신으로 하리라』1)라고 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 곧 이슬성신으로만 구원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마귀의 구성체를 성신의 구성체로 완전히 바꾸어 주는 이슬성신의 권능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줄 길이 없고 구원을 얻을 길이 없다. 성경에 구원은 특혜라는 말이 들어 있지는 않으나 그런 의미로 기록된 구절이 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도 어렵다』2)라는 구절이 그것인데, 그것은 부자뿐만 아니라 누구든 구원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구원은 이슬성신을 내리는 감람나무의 특혜가 아니면 얻을 길이 없다. 이슬성신이 아니면 인간의 죄를 씻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