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구원과 심판

내가 말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하고 차원이 깊은 것은 ‘인간의 육신은 마귀의 구성체’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아니면 육신을 입고 온 나 자신도 내 육신이 마귀의 구성체인 것을 모르게 되어 있다. 1차 천국에서 범죄하여 죽은 인간의 영들을 하나님이 마귀의 구성체인 육신의 인간으로 창조하였다. 1차 천국에서 범죄한 그들이 1차 지옥인 지구에서 죄의 대가를 받게 한 것이다. 1차 천국의 인간은 성신의 구성체로 창조되었으나 이 땅에서 사는 인간은 썩어질 양식을 먹고 그것을 배설해야 하는 똥의 구성체로 창조된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마귀의 구성체라는 증거는 썩고 물크러지는 것을 먹고 배출하는 오장육부의 구조를 가졌다는 것이다. 인간은 똥의 구성체로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이 지구에서 고통의 세계를 살다가 죽게 된다. 그것은 온갖 고통의 근원이 되는 마귀가 인간에게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마귀는 인간에게 갖은 질병의 고통을 주는데 질병을 주는 병균(病菌)은 신형 변종이 계속 생겨난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질병을 극복한 것처럼 보여도 또 신형 병균과 질병이 나온다. 병균은 곧 마귀가 인간을 괴롭히는 무기인 것이다.
인간이 구원을 얻으려면 마귀로 구성된 육신의 구조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성신의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땅속을 기어 다니던 굼벵이가 완전히 변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매미로 변화되는 우화(羽化)의 과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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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구원과 심판

제1장 인간의 본향(本鄕)

인간이 일찍이 살았던 본향은 어디인가? 그곳은 하늘나라이며 1차 천국이다. 1차 천국에서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조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모든 것이 성신으로 구성된 존재로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천국은 괴로움과 고통은 티끌만큼도 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세계였다.
그 1차 천국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지켜야 하는 예민한 신의 법을 주었다. 그러나 1차 천국에서 인간은 절대자유를 가지고 신의 법을 지키지 못하고 법을 어김으로써 범죄에 떨어졌던 것이다. 인간의 범죄가 시작되자 성신의 구성체인 인간에게서 성신은 빠져나가고 마귀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성신이 빠져나가고 하나님이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지 않으니 인간은 굶어 죽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1차 천국은 파괴되었다. 마귀는 이미 하나님과 같이 상대적으로 영원 이전부터 존재하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마귀를 만든 것인가? 마귀의 기원에 관한 것은 신학의 근본 문제로서 신학자들이 해결하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최대의 난제(難題)였다. 처음에는 1차 천국에 마귀가 없었으나 인간의 범죄가 시작되면서 마귀가 생산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성신의 구성체가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 하나님을 대항하는 신인 마귀가 생산되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통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제5부 창조주 하나님

제3장 천체와 우주의 운행· 제4장 마귀의 우주, 타계(他界)

태양을 처음 창조했을 때의 열도와 현재 태양의 열도가 변함없이 일정하도록 가열하는 존재가 하나님이다. 만일 창조했을 때보다 태양열이 높아져 지구의 기온이 30도만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인간은 살 수가 없다. 만약 한여름 최고기온이 40도인데 그보다 30도가 뜨거운 70도가 된다면 생물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태양의 온도를 일정하게 계속 맞추는 것이다. 맞추지 않으면 지구가 유지될 수 없다. 하나님은 매우 높은 온도로 태양을 계속 가열하여 지구까지 열이 도달하게 한다.
지구 북극의 공중에는 영하 100도 정도의 냉기류가 흐르고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영하 140도가 넘는 층이 많다. 그런데 하나님은 태양의 열이 그 먼 곳에서부터 수많은 냉기류층을 뚫고 지구에 도달하도록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열도로 태양을 가열하는 것이다. 또한 그 높은 열도에도 태양의 원형(圓形)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다. 태양이 아무리 가열되어도 그 열만으로는 지구를 비추는 정도의 광채가 나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열을 내는 발열체(發熱體) 외에 빛을 내는 발광체(發光體)를 하나님이 별도로 공급하고 있다. 태양의 발광체가 조금 진(盡)해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발광체를 다시 공급할 때 폭발이 일어나면서 발광체가 분산되는데 그 폭발하는 부분에 흑점이 생기게 된다. 성경에 『해가 총담같이 어두워진다』1)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태양을 가열하는 것을 중지하면 태양이 총담같이 새카맣게 된다는 뜻이다.

제5부 창조주 하나님

제2장 지구의 가열과 운행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한 지 3조 년이 되었다. 현재의 과학으로도 수십억 년 전의 화석까지 발견되는데, 앞으로 과학이 더 발달하면 3조 년 된 물질까지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천체를 전부 운행하고 있는데 그중에 지극히 작은 지구를 운행하는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고 지구의 기온이 적절히 조절되어 인간이 먹고 살 수 있는 곡물이 재배되는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천지를 운행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적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이 인체에 들어가서 가열이 되어야 하고 여러 가지 요소가 세밀히 조절되어야 한다. 인체의 체온 하나를 조절하는 데도 그러한데 하물며 지구 전체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조절해야 할 대상은 끝도 한도 없다. 그러므로 ‘낮에는 태양이 내리쬐어서 땅이 뜨뜻해지고 또 밤에는 차가워지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워서 자연히 곡식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구를 가열하는 것을 모르고 하는 무지한 말이다. 한겨울에 땅을 팔 때 곡괭이가 들어가지 않을 만큼 땅이 얼어 있어도 조금 깊이 파 내려가면 김이 무럭무럭 날 정도로 열이 올라온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구를 가열하여 지열을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균일하게 조절하기 때문이다.

제5부 창조주 하나님

제1장 인간의 창조

창조라는 것은 없는 중에서 만물을 있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세상의 학자들은 어떤 물질을 연구한다고 하면 그 물질의 조직과 구성을 연구하여 이론적으로 발표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물질을 발견하고 그 특성을 연구할 뿐이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창조력을 소유하고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여 운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천지 만물이 자연히 존재하고 자연히 운행된다고 하지만 천지 만물 가운데 창조되지 않고 자연히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 하나를 창조하기 위해서도 갖가지 방도로 구상하고 연구했다. 인간의 인체 안에 어떤 한 부분이라도 끝없이 연구한 것이 많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1차 천국의 성신의 구성체인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어려웠던 것은 1차 지옥의 저주에 떨어진 인간의 육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나는 창조학을 영원무궁토록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실제로 천국과 인간과 지옥을 창조한 하나님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성경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졌다고 하여 ‘세상 죄를 진 어린양’1)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어떻게 세상 죄를 지는 것이 될 수 있는가? 예수의 피로는 세상 죄를 씻을 수 없으므로 예수는 어린양이 될 수 없다. 『병의 고통을 친히 걸머지셨다』2)라는 것은 예수의 입을 통하여 말했지만 오늘날 내가 필요해서 삽입한 구절이다. 내가 만 명의 병을 고치면 만 명의 병고(病苦)로 인한 고통의 양이 합쳐져서 내 고통이 된다. 한 명의 병고라도 쓰러질 지경인데 만 명의 병고를 모두 합한 고통이 내 몸속에 들어와 내가 그 고통을 당하고서야 만 명의 병이 낫는다. 내가 그 병고를 주는 마귀를 이겨서 부숴 버려야만 만 명의 병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도 인간과 똑같은 몸을 입고 왔기 때문에 칼로 한 치를 째면 여느 사람이 한 치를 짼 것과 똑같이 피가 나고 아프다. 그러나 병을 낫게 할 때의 고통보다 인간의 죄를 안아맡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내가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고통을 당하면서 죄를 씻어 주는 것이다. 내가 성신을 부어 주면 인간은 죄가 씻어져 의로움을 입게 되지만 그 대신 나는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고통을 당하게 된다. 죄를 씻어 주니 인간에게는 끝없는 의(義)가 되고 나에게는 그토록 큰 희생이 되는 것이다. 희생의 고통을 당하면서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씻어 주는 존재가 어린양이다. 그러므로 이슬 같은 성신을 부어 주는 감람나무가 다름 아닌 어린양인 것이다.

이슬성신과 생명물로 구원 주시는 하나님

2019 이슬성신절 말씀 방영 말씀

이슬성신이 내린 중에 최고로 많이 내린 날이 바로 5월 하순이에요. 그런고로 그날을 이슬성신절로 정했어요. 그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는』 (호세아14:5) 그게 하나님의 신인데,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와 같고』 (호세아14:6) 하는 거예요. 초창기에 그 은혜를 내리면서 감람나무의 증거를 하기 시작했어요. 감람나무는 하나님이다 그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면 그 은혜를 내릴 수 없어요. 오늘 이제 여러분들에게 말할 것은 긴 시간을 안 가지고 짧은 시간에 확실히 알게끔, 그건 명확히 오늘 이제 여러분들에게 갈라 줄래요. 초창기에 설교를 시작하는 때에, 그때는 감람나무라는 증거를 하기 위하여 옥내에서 집회를 해도 뽀얗게 이슬 같은 은혜가 쏟아져 교인의 얼굴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 정도까지도 내린 것이에요. 가령 이제 서울 한강 모래사장 집회가 되면, 옥내에선 할 수가 없어요. 왜? 그때 2,000명 이상 들어가는 데가 없고, 수만 단위가 모이는 고로 큰 광장이고 모래사장이 아니면 그대로 집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한 번 집회하는 데, 아시바(비계)를 많이 매고 그 넓은 수만 명 모이는 데 대개가 열흘 집회를 이제 하는 거예요. 그러면 바로 경상남도에서 집회를 하다가 서울로 이동을 하면 전부 교인이 가는 거예요. 거물들 기성교인 안 따라다닌 사람 없어요. 임영신 총장은 열흘이면 열흘 집회 계속 그대로 참여하고 손바닥 치며 이제 그런 상태가 됐지요. 그때는 또 병자들이 많이 왔지요. 한 번 “일어나라.” 하면 수천 명이 들것을 내던지고 뛰고 이제 하는 상태가 되는. 그건 초창기에 처음 감람나무의 증거를 하기 위하여 내린 거예요.
또 목사들이 수백 명씩 줄을 지어서, 1시간 설교를 얻기 위하여 줄을 지어 기다린 거예요. 왜? 교회를 짓다가 메마른 상태에서 교회를 채 못 짓게 되면 내가 30분이고 그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교회를 짓고 남는 연보가 나오니 은혜 면보다도 그 연보 나오는 재미에 1시간씩 얻으려고 했지요. 수백 교회를, 전국적으로 말하면 한 1,000여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해 줬지요. 또 그때에 목사 수라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한 2,000여 명이 몸 안찰을 받은 거예요.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제 병원에서 “당신 고칠 가망이 없습니다.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하면 사형 선고 받은 거지요. 죽을 날을 기다리라는 거지요. 그런 목사들이, 다 죽게 됐던 게 일어나 뛰고 한 거예요. 목사들이 은혜를 입고 죽을병이 살아나고 해서 자기네 받은 바 간증을 돌림으로 하기 때문에 열흘 주야 1초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집회가 됐어요. 그럼 어떤 데서 집회를 한다면 못해도 한 20만 명 모이는 정도로, 전국 교인이 다 따른 상태가 되는 거예요. 이슬성신 내리는 감람나무 하나님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에게 은혜 부어 구원의 길 깨닫게 하시고
생명물로 죄를 씻어 맑게 하시는 권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썩지 않는 영원한 새생명을 알게 하시다 거기에서 그대로 호세아서에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와 같고』 (호세아 14:5~6) 하는 구절을 탁 터트려 놓으니 그대로 반발하기 시작하는. 이제 설명하면 여러분들 다 알 수 있어요. 어떻든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인간들이라도, 신학자라는, 성경을 많이 본 사람은 감람나무는 하나님이라는 낌새를 알게 돼요. 그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건 하나님, 육신으로 온 하나님이라는 게 묵시록 14장에 있어요. 대개 종교의 지도자들이라는 게 전체 직업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요. 자기네는 틀렸다는 것 알면서도, 밥줄을 위해 움직여요.
성경에도 이제 삯군 목자 그건데, 교인을 어떻게도 구원을 주려고 생명을 내걸고 그 심령을 건지려는 심정이 없어요. 종교의 사명은 그건데, 그게 없으면 그 종교는 죽은 종교죠. 구원을 못 얻으면 소용없지요. 수양적으로 하려면 차라리 대학 교수가 하는 강의나 듣던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세미나를 듣는 게 낫겠죠. 그 해서 교인들 눈가림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 (마태복음 15:14)는 그게 둘 다 지옥 간다는 거지요. 그런고로 눈을 가려 놔야 거짓으로 해서 끌고 나가는 고로, 가려 가지고 나가는 상태가 돼요. 그럼 이제 완전히 내가 판가름 지어 드리죠. 그 축복에 대한 설명을 할래요. 생수라는 것 이제 초창기부터 축복하지요. 물을 이제 플라스틱 통 위에 축복을 해요. 이 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신이 나간다는 증거는, ‘쉭쉭’ 축복을 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의 물로 화하게 되지요. 하늘의 생명물로 화한 게 되지요. ‘저 생명 시냇가에 나 길이 살겠네.’ 하는 게 바로 그 생명물이에요. 하나님의 그 세계의 물입니다. 그 세계 물로 화하는 거지요. 그럼 이제 친척이면 친척이 그대로 사망하면, 그 죽은 시체는 보기가 흉하고 뼈가 굳어지지요. 팔이 이렇게 돼서 굳어졌으면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관에 넣을 수 없어요. 그 이를 조금 어겨 가지고 맹물을 집어넣으면 한 방울도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아요. 그러나 이건 능력의 물이라는 것은 그대로 위에 공간이 있으면 100 숟가락이고 이 입에다 넣으면 목이 열려서 들어가요. 다 들어갑니다. 그건 그대로 시험해 보세요. 그 능력의 물이라는 것 알 수 있죠. 그럼 위에 들어간 다음에는 5시간 정도 지나면 뼈가 노긋노긋해지는 것만 아니고, 송장은 보기가 흉한데 그 얼굴이 전부 환해 그 빛이 나는 동시에 살색이 전부 하얘지는 상태가 되지요. 그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시험해 보세요. 그렇게 하고 마시우면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수건에다 해서 바르면 그 시로 송장 얼굴이 보기가 흉한 게 환하게, 어떤 사람은 광채가 나지요. 대개가 얼굴이 피고 살갗이 피지요. 그럼 이제 완전히 목사가 무엇이라는 걸 내가 판가름 지어 드리죠.
목사들에게 맡기는 거예요. 기성교인들이 찬송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하면 시신의 얼굴이 점점 색깔이 죽어가고 꺼메지고 그다음에 뼈가 굳어져 가지고 부러뜨리지 않으면 넣을 수 없게 돼요. 그렇게 되는 동시에 시체를 피게 하기 전보다, 광채가 나게 하기 전보다, 뼈가 처음에 굳어 있을 적보다 더 굳어지는 동시에 눈을 시체가 부릅뜨고 흉하게 돼요.
그러면 무릎 꿇고 “예수여,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이 뼈 굳어진 걸 말랑말랑하게, 노긋노긋하고 광채가 났던 게 이제 꺼메지고 굳어졌는데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관에 넣을 수 있도록 뼈가 노긋노긋하게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하여 주시옵소서.”
그대로 10시간이든 100시간이든 거기에 피도록 구해 보라 그거야. 기도할수록 더 굳어지고 더 흉악한 모습이 되고 송장이 여름에 썩은 물로, 방바닥에 송장 썩은 물이 흐르는 걸 볼 수가 있어요. 그럼 굳어지게 하고 마귀의 모습으로 시체가 더 흉악하게 화하는 거면 목사들이 대마귀 새끼 아니에요, 대마귀 새끼예요? 이거 판단하세요. 그걸로 판가름돼요.
그렇게 광채가 나고 핀 모습이 목사가 만지면 만진 손가락 자리까지 새까맣게 되는 것. 우리 교인들은 누구나 못 본 사람이 없어요. 그 신부고 주교고 추기경이고 갖다 해 보세요. 그 시체가 더 보기 싫게 되고 더 굳어져요. 얼굴빛이 더 괴상해진 걸 보라 그거예요. 그거 목사뿐만 아니라 중 갖다 놔 보세요. 그거 굳어져요. 어떤 종교고 갖다 놔 보세요. 천주교 수녀들 갖다 놓으면 까마귀같이 된다고 내가 말하는 게, 목격하면 어느 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있죠? 하나님을 거짓이라고 뒤집어씌웠던 게 이제 드러나요. 나 하나님 틀림없어요. 시체가 그렇게 시커멓고 살아 있을 적의 100배 흉악하게 보이던 그 모습이 아름다운 걸로 변한다는 것은 죄지은 그것이 맑아진다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없던 은혜의 살이 돋으면서 아름다운 걸로 바꿔진다는 그것은, 생명의 능력이 있어서 죄를 씻어 아름다움으로 화해지는 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귀중한 것이 생명물인 걸 아세요.
내 ‘쉭’ 하는 이거 분석하면 영생하는 요소, 한 방울 가지고도 우주만 한 보화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물질인 것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이슬성신, 생명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그럼 그게 포인트인데 예수가 몰랐어요. 그걸 모르면 구원을 모르는 거예요. 예수가 구원이라는 게 어떻게 얻는 것도 모르고 날 믿어라 그런 거예요.
지금까지 지내는 중에 물 같은 성령에 대한 걸, 또한 이슬 같은 성령에 대한 걸 입으로 말이라도 한 자가 있어요, 없어요? 성경을 봐도 뭔지를 모르거든. 그걸 감히 건드려 설교한 사람도 없어요. 그 많은 설교자가 있었지만 목사도 있고 신학자도 있고 선교사도 있고 하지만 이슬 같은 은혜에 대한, 또 생명물에 대한 걸 건드린 자가 없어. 알지를 못하니까. 예수 그대로 뭐 알았으면 온 세상 지금 기성교인이 알 것 아니야. 예수 가지고는 되질 않게 돼 있어. 그럼 이제 이슬 같은 은혜, 마지막에 맑아지는, 아름다움으로 화하는 이슬 같은 성령이 최고의 성령이에요. 하나님이 내리는 것이에요.
그럼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리라』(요한복음7:38) 한 것이 오늘날 이 말뿐만이 아니고 생명물이 흘러나가는 것이에요. 지금 은혜가 나가고 있는 것이에요. 마지막 최후의 은혜요, 최후의 생명물의 역사요, 최후의 이슬 같은 은혜요, 수많은 수를 백합꽃같이 아름답게 피게 할 수 있는 은혜인 것이에요. 그것이 마지막 최고의 은혜인 것이에요.

제4부 성경과 예수

인간을 구원하려면 먼저 인간 창조의 근본을 알아야 한다. 인간 창조의 근본이란 이 땅의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고 왜 죽을 수밖에 없으며 영원히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그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을 아는 것이다.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은 죄 때문이다. 즉 인간은 죄로 구성된 마귀의 구성체이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마귀의 구성체인 것을 모르고서는 죄에서 벗어날 길을 알 수 없고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마귀의 구성체라는 본질을 알고 죄가 인간 속의 어디에 거하는가 하는 죄의 소재(所在)를 알아야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이 마귀의 구성체인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자기가 구원의 길이라고 하면서 자기만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마치 병명도 모르면서 병을 고쳐 준다고 하는 돌팔이 의사와 같다. 비유하자면 예수는 “당신은 중병이 있어 꼭 죽을 것이지만 내가 병명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명한 의사이니 나를 믿고 내 이름만 ‘주여’ 하고 부르면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사를 환자가 믿기만 하면 병을 고치고 죽음을 모면할 수 있는가? 진짜 의사라면 정확한 진단으로 병명을 밝혀낸 후에 그 병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초창기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안찰하면서 각 사람의 죄의 소재와 그 형태를 지적하고 그 죄를 이슬성신으로 씻어 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혈기, 고집, 욕심, 음란을 그대로 지적한 것이다. 고집은 옹고집을 가졌는지, 보통 고집을 가졌는지, 또 약한 고집을 가졌는지를 세밀하게 지적했다. 또 혈기는 건드리기가 바쁘게 팩팩하는 혈기를 가졌는지, 건드려도 너털웃음만 웃다가 마지막에 고래같이 쏟아내는 혈기를 가졌는지를 상세히 지적했다. 도적죄를 예로 들면 그 사람이 어렸을 때 계란 하나 훔친 것까지도 구분 지어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죄의 형태와 소재를 모르고 인간의 본질이 마귀의 구성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허풍인 것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7장 예수의 허풍

예수가 설계한 천국이 묵시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땅의 물질로 너절하게 꾸민 것이다. 『성터는 금강석이요 녹보석이요 홍마노요…. 열두 진주 문이니』1)라고 하면서 세상의 온갖 보석으로 귀신 단지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세계적인 건축 설계자가 이렇게 만든 예수의 천국을 평가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가 무슨 설계를 저렇게 너절하게 했는가?’라고 할 정도다. 예수의 천국은 전부 땅에서 나는 보석으로 치장한 것이다. 또한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니』2)라고 하여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것같이 기록해 놓았지만 하늘의 물질은 하나도 없고, 그 성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용물은 하나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천국의 물질로 된 보석은 이 땅의 보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인데 그토록 아름다운 보석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1초에도 144번 재창조되어 더욱 아름답게 변화하게 된다. 예수는 하늘의 물질과 하늘의 세계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창조할 능력도 없기 때문에 이 땅의 보석만으로 알록달록하게 천국을 꾸몄다. 그러므로 예수의 천국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빨강, 노랑, 파랑 등 각양각색의 천과 실을 나무에 매달아 놓은 서낭당과 같다. 귀신에게 비는 사람들이 물을 떠 놓고 절을 하는 서낭당과 같은 것이다. 예수의 천국은 네모반듯하여 12,000리로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다고 했다.3) 도적과 악인이 없는 천국에 그렇게도 높은 성과 담장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런 곳이 천국인가, 지옥인가? 또한 예수는 천국에서 사는 인간이 어떤 구조인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성경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가 영원히 산다고 하였으나, 땅에서 나는 썩어질 것을 먹는 아담과 해와는 이 땅의 인간과 똑같은 육신의 구조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만약 예수가 천국에 대해 알았다면 창세기에 기록된 천국이 허풍이라는 것을 지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천국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가 영원히 사는 줄 알았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구조에 대하여서도 몰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말한 천국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고 영원토록 할렐루야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한다4)고 하였다. 아무리 신이라도 영원무궁토록 찬송만 부른다면 그 이상의 벌(罰)이 없다. 그런 곳이 무슨 천국이겠는가?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천국이 아니고 지옥 중의 지옥이라 하는 것을 내가 말하는 것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7장 예수의 허풍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하는 것은 허풍이다. 예수의 부활이 허풍이라는 것까지 드러나면 예수의 정체를 아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죽은 자를 심판할 때 하는 ‘죽은 자의 부활’을 보고 인용한 것이다. 내가 성경 에스겔서에 『무덤을 열고 죽은 자를 일으켜 나오게 한다』1)라고 삽입한 것을 인용하여, 예수가 죽어서 부활했다고 한 것이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음녀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인인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들과 함께 프랑스로 도망을 갔는데 지금도 그 자손이 퍼져서 내려오고 있다. 이것은 물적 증거가 있는 사실인 것이다. 앞으로 예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게 돼 있다.2) 또한 창세기에서 『에녹이 승천했다』라고 하는 것은 전부 허풍인데 그 허풍을 본떠서 예수가 승천했다고 하는 것이다.3) 예수의 승천에 대해서 사도행전에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제자들이 보았다4)고 하였고, 묵시록에는 올 적에도 구름을 타고 온다5)고 하였다. 그러나 구름의 속도는 바람의 속도보다 더 빠를 수 없다.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을 사람들이 다 볼 정도라면 그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인가, 아주 느린 것인가? 신의 속도는 1초에 우주를 몇 바퀴 도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런데 부활해서 신이 되었다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허수아비같이 천천히 올라갔다가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고 했으니 그 얼마나 허풍인가. 또 예수는 구름 위의 상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고 했는데 만일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구름 위 상공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인류 전체가 구름 위의 상태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비행기만 타면 누구든지 구름 위의 상태를 볼 수 있다. 구름을 뚫고 위로 올라가면 솜뭉치 같은 구름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좁쌀알만 한 구름장도 보이지 않는다. 즉 그 위에는 구름이 없는 것이다. 구름을 타고서는 구름층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고 한 것은 바로 예수가 허풍을 떨었다는 증거가 된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6장 예수의 행적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은 예수에 관한 기록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추린 것이다. 그런데 가경(假經)에는 예수에 대한 수상한 기록이 많이 있고 외국에는 예수의 애정 행각과 그의 부인에 관한 책도 많다. 성경을 편찬할 때 예수 편도 아니고, 반대편도 아닌 중간 입장에서 했다면 객관적인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같은 편에 놓여 있는 사람은 예수에게 유리한 것을 썼을 것이고, 반대편의 사람은 비난했을 것이며, 중간 입장에 놓인 사람은 사실대로 기록했을 것이다. 지금의 성경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편에서만 기록한 것이다. 유대 땅에서는 그들의 조상인 예수의 행적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동족인 예수가 훌륭했다면 책에 기록하고 존경했을 터인데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진짜 모습을 다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의 제자들이 미화해서 쓴 성경 중에서도 예수의 수상한 행적이 드러난 것을 지적하려 한다. 성경에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마귀가 들어간 여자라고 했는데 그 마귀는 바로 음란 마귀이다.(마가복음 16:9, 누가복음 8:2) 그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녀(淫女)였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없었다. 아무리 도덕적이고 자제심이 강한 남자라 해도 막달라 마리아가 유혹하면 바로 무너졌다.
예수도 막달라 마리아의 집을 지날 때마다 꼭 그 집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서른 살 총각인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간 것이 그 음녀의 죄를 사해 주러 들어갔겠는가, 죄를 짓기 위해서 들어갔겠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만날 때 그녀의 언니 마르다의 존재는 항상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마르다에게 시중을 들라고 하며 부엌으로 내보내곤 했다.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마르다가 마리아를 시기했다는 것이 성경에 나온다.(누가복음 10:38~42) 예수가 지나갈 때마다 막달라 마리아의 집에 들러서 언니를 내쫓고 둘만 있었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또 예수가 우물에 가서 『물을 좀 달라』(요한복음 4:7~19)라고 한 사마리아의 여자도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음녀였다. 예수와 제자들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났는데, 그때는 사람이 드물어 집이 먼 곳에 하나씩 있었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행인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는 먹을 것을 사 오라며 제자들을 모두 성(城)에 보냈다. 십여 명이 먹을 것을 사 오려면 한두 명만 보내고 나머지는 예수의 교훈을 받게 할 수 있었는데, 예수는 모두 보내고 여자와 단 둘이 남은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여자와 우물가에서 소곤대는 것을 하나님은 다 보았다. 그다음에 할 말이 더 있지만 차마 하지 못하겠다.
그런 예수가 구원의 길이 되겠는가? 그런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 얻을 길이 없다』(요한복음 14:6)라고 하였으니 그 성경이 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