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9월, ‘가뭄과 폭우’

발행일 발행호수 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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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08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상수원 고갈
군산 152.2mm로 시간당 강수량 역대 1위
북극 온난화가 만든 느린 제트기류…약해진 대기 순환과 정체된 고기압이 비를 막아
신기후체제(New Climate Regime)의 도래
100년 가뭄이 반복되는 뉴노멀 시대의 시작

9월 한반도는 두 얼굴의 기후를 동시에 겪었다. 강원도 강릉이 108년 만에 가뭄으로 메말라갔고, 전북 군산은 200년 만의 극한 호우가 집중되어 큰 피해를 당했다.

▲7일 강원 강릉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상류가 극한 가뭄 속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SBS 뉴스

영동지방이 최악의 가뭄으로 상수원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강릉시의 주 취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8일 12.6%(180만 톤)로 떨어져 전국 저수율 평균(71.7%)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앞서 정부는 8월 31일 오후 7시에 강릉 일원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현장 사진에서도 저수지에 물이 거의 남지 않고, 바닥의 모래와 풀들이 선명히 드러난 모습이 확인된다. 강릉 지역 가뭄은 비가 오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산악 지형이 가파르고 하천이 짧아, 비가 오더라도 물이 곧바로 바다로 빠져나가 저장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반면, 전북 군산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지난 7일 오전 0시 57분경 군산에는 시간당 152.2mm의 비가 쏟아졌다. 1년 간 내릴 비가 1시간 만에 쏟아지면서 군산의 누적 강수량은 전날 오후 12시까지 296.4mm에 달했다. 이에 상가가 침수되고 군산, 익산과 김제 주민들은 인근 시설로 대피했다.

이러한 폭우는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충돌하며 형성된 정체전선 때문이다. 전선이 좁고 길게 형성되면서 한정된 강한 비가 내린 것이다. 또한 서해 수온이 평년보다 3도 높아 수증기 유입이 많았던 것도 영향을 줬다.

▲7일 전북 군산시 송풍동 일대 도로가 침수되자 주민들이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대피하고 있다. 출처: 전북소방본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재해는 지구 반대편 북극의 변화와 정확하게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적 증후군이다. 핵심은 ‘차단고리(Blocking Loop)’ 메커니즘이다.

북극이 지구 평균보다 3.5배 빠르게 따뜻해지면서 북극과 중위도의 온도 차가 많이 줄었다. 강의 상류와 하류 높낮이가 크게 줄면, 물 흐름이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한반도 대기 순환이 약화된 것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온도 차이가 줄면 대기를 움직이는 ‘엔진’ 역할을 하는 열적 구동력이 약해진다. 북극 온난화로 북극과 중위도 지역의 압력 경사가 완만해지자, 이 원리에 따라 제트기류의 속도도 함께 느려졌다. 느려진 제트기류는 크게 굽이치며 한반도 상공에 강력한 고기압을 가두는 ‘차단 현상’을 발생시켰다. 이렇게 갇힌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되면서 구름의 발달을 억제하고 비를 멀리해 결국 가뭄을 불러들였다.

기후학계는 가뭄과 폭염의 핵심인 ‘열적 저항(熱的抵抗,Thermal Blocking)’에 주목한다. 고기압이 장기간 머무르면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땅이 마르고 뜨거워진다. 이 뜨거워진 땅은 난로처럼 주변 공기를 데워 다시 고기압을 더욱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만든다. 강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이 악순환은 결국 ‘가뭄이 더 큰 가뭄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건조-복사 피드백(Dry-Radiation Feedback)’ 즉 자기증폭이다.

지난 20년의 데이터는 이런 흐름을 확인시켜 준다. 집중호우는 더 자주 쏟아지고, 가랑비는 줄었다. 연간 강수량은 늘었지만, 비가 한 번에 쏟아져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가 버린다. 그 결과 홍수 위험은 커지고, 지하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실제로 NASA 위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21년간 한반도의 지하수는 12% 감소했으며, 강원 동해안은 18%나 줄어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 과학자들은 “지하수 고갈이 계속되면 가뭄과 홍수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고 경고한다.

이런 ‘가뭄-폭우’ 악순환이 굳어지면 심각한 식수난은 말할 것도 없고, 농업용수 규제가 일상화되고, 벼 재배와 같은 전통 농업 구조는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나아가 상류-하류 지자체 간 물 분쟁까지 현실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물순환 체계의 재설계가 시급한 이유다.

2025년 한반도의 가뭄은 ‘복합적 위기(Compound Crisis)’로 전환하는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해는 수문학적 가뭄(댐 최저 저수율 15%대), 농업적 가뭄(밭작물 60% 피해), 사회경제적 가뭄(급수제한 지역 확대) 등 3가지 가뭄 악재가 동시에 발생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이 같은 현상을 ‘신기후체제(New Climate Regime)’의 도래로 해석한다. 가뭄이 일시적인 재해가 아닌, 새로운 기후 시스템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기후학자들은 “100년 만의 가뭄이 3년 주기로 반복되는 미래에 대비해 물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가 시급하다”며 “새로운 기후 현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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