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집회에서 수백만이 은혜 입어

발행일 발행호수 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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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과 크신 은혜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며 내려주신 그 은혜는 인간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특집 기사에서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그 속에서 펼쳐진 놀라운 역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955. 1.1. 하나님 초청집회

■ 하나님 초청집회에서 시작된 은혜
1955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 무학 장로교회에서 열린 집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된 첫 집회였다. 이후 서울 삼청동 감리교회, 마산 문창교회, 소사 중앙교회, 서울 동대문 창신교회, 청주 외덕교회, 서울 용산 도원동교회 등에서도 집회가 이어졌다. 이때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깊은 감동과 은혜를 체험하며, 병자들이 치유되는 기적과 이사를 직접 목격했다.

왕십리 장로교회에 다니던 조온순 승사(기장신앙촌)는 목사로부터 무학 장로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박태선 장로님 집회 소식을 들었다. 성신의 역사가 불일 듯하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뜬다는 이야기에 조 승사는 곧바로 집회에 참석했다.
“교회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맨 앞자리로 가서 찬송을 부를 때 어디선가 지독한 악취가 나더니 이내 백합꽃 향기가 바람처럼 지나갔습니다. 그 향기를 맡는 순간 가슴이 시원해지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조 승사는 예배를 마치고 안찰을 받을 때도 기쁨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안찰을 받는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며 기쁨이 가득 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몸 전체가 둥실 떠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1955년은 6.25 전쟁 직후로 변변한 교회 건물이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 청량리에 정착한 승운표 퇴임관장은 보린장로교회에 다니며 교회 확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들어 교회를 확장하려 했지만, 신축 비용 마련이 어려웠습니다. 부흥 강사를 초청해 집회를 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 헌금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직회에서 당시 유명하신 박태선 장로님을 초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참석해 보고 싶어 집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임옥산 집사(기장신앙촌)는 창신동 장로교회와 도원동 장로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연이어 참석하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다 ‘병자들은 일어나라!’라고 하셨을 때, 꼽추의 등이 펴지고 벙어리의 말문이 열리는 것을 봤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른 봄 추위 속에서도 몸이 뜨겁다며 불성신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 집사는 이 모든 일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박말임 승사(마산교회)는 마산 문창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중, 김석찬 목사가 서울에서 박태선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신경통이 나았다며 강단 위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후 박 승사는 문창교회에서 열린 박 장로님 초청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직접 체험했다.
“찬송을 부를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르고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에는 마산에 있는 중앙 장로교회, 신마산 장로교회에서도 박 장로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 때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의 말문이 트이는 등의 기사이적을 보고 은혜를 체험한 각 교회의 교인들은 박 장로님의 부흥집회로 몰려들었습니다.”


1955.3.26. 전국 순회집회

■ 1955년 전국으로 퍼진 순회집회
1955년 3월 2일, HLKA(서울중앙방송국, KBS 전신) 뉴스는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 놀라운 기사와 이적 소식을 전했다.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서 꼽추, 앉은뱅이, 장님, 조막손 등 불구자들이 완치되었다는 보도였다. 또한, 고름투성이 환자들로 가득한 집회장이 오히려 기막힌 향취로 가득 차고, 하늘에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집회장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더 이상 건물 안에서 집회를 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천막을 동원해 전국 순회집회를 시작하셨다. 남산집회를 시작으로 8개월 동안 전국 9개 도시에서 열린 15회의 집회에는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

남산집회, 첫 순회집회의 시작
어느 날 전봇대에 붙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 집회’ 포스터를 본 신성선 승사(덕소교회)는 시어머니와 함께 남산으로 향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며 찬송가 받침대를 내리치실 때마다 뽀얀 것이 풀썩풀썩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한참을 찬송하시다가 받침대를 치시니 이번에는 빨간 불덩이 같은 것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 저렇게 불을 많이 뿜어내시니까 사람들이 불의 사자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 공설운동장집회, 기성교회의 변화
1955년 5월, 김영애 권사(대신교회)는 부산 공설운동장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체험했다.
“이웃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해 형언할 수 없는 좋은 향기를 맡았고, 병이 나았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동일교회 목사가 박 장로님을 비난하며, 앞으로 박 장로님 집회에 가는 사람들을 교적부에서 제명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신광교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집회 후 저는 하나님을 중상 모략하는 동일교회에 발을 끊었고, 동일교회는 교인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용산 군인교회집회, 향취의 은혜
집회 참석자들은 병자들이 낫고 향취를 맡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되었다.
정봉학 승사(기장신앙촌)는 용산 군인교회집회에서 잊지 못할 은혜를 체험했다.
“예배 시작 전, 윤치영 장관은 암에 걸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부인이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그 자리에서 편육 한 사발을 다 먹었으며, 자신도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 향기가 확 하고 코로 들어오더니 다시 맡으려고 했지만 사라졌습니다. 박 장로님의 설교와 찬송 인도 중에도 향취가 났었는데, 집에 돌아가 기도를 드릴 때도 그 향취가 다시 진동했습니다.”

한강 모래사장집회, 병자들이 치유돼
한강 모래사장집회에 참석한 함복득 권사(기장신앙촌)는 들것에 실려 온 관절염 환자와 문둥병 환자가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박 장로님께서 힘차게 찬송을 인도하신 후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시자, 집회장은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감사와 환호로 가득 찼습니다. 특히 하얀 저고리를 입은 꼽추 아가씨는 저고리가 불룩할 정도로 등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펴진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박양진 승사(기장신앙촌)는 서울 성남중학교 재학시절,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 소식을 듣고 한강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학교에서 학생들의 주된 화젯거리는 자신들의 이웃에 살던 벙어리, 앉은뱅이, 장님, 귀머거리 등의 환자들이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 참석해 완쾌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친구와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자 여기저기서 병자들이 일어나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장면을 직접 보았습니다. 벙어리가 단상으로 올라와 찬송을 부를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서울 제2운동장집회 때 운집한 군중

인천 동산중학교집회, 믿음의 전환점
정인화 권사(인천교회)는 어릴 적 목사가 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라 믿으며 성경학교에 열심히 다녔지만, 인천 동산중학교집회에 참석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
“하루는 목사가, 전날 인천의 동산중학교 교정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갔던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며 ‘박태선 장로는 집회에서 죄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죄가 어떻게 탈 수 있다는 말이냐? 죄가 타는 물체냐? 혹 물체라 하더라도 불이 있어야 타는데, 물체도 불도 없는데 어떻게 탄단 말이냐?’라며 박 장로님을 비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오히려 박 장로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박 장로님의 말씀은 은혜롭고 신비로웠습니다. 비가 와 질퍽한 땅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는 기성교회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엄청난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광주공원집회, 이슬 같은 은혜와 향취
박정순 권사(덕소교회)는 광주공원집회에서 놀라운 체험을 했다.
“박 장로님께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을 인도하시자,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아주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라고 하시며 은혜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음 날 집회에서는 안개처럼 뽀얀 것이 집회장을 덮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광경을 보던 중, 박 장로님께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은혜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1955. 12. 24. 원효로전도관

■ 천부교 최초의 교회, 원효로전도관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며 몰려들자, 기성교회에서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연합회는 하나님의 천막집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목사들은 교인들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이로 인해 집회장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사람들은 흩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회에서 체험한 은혜와 기쁨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그 은혜를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아 나섰다.

1955년 12월,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원효로에 천부교 최초의 교회인 전도관을 세우셨다.
조남준 권사(기장신앙촌)는 원효로전도관이 세워지게 된 과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교인들이 하나님 은혜에 갈급한 나머지 수소문하여 원효로에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조그만 기도처에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짓게 된 곳이 원효로 전도관이었습니다.”

김춘산 권사(소사교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여러 집회에 참석하며 은혜를 체험했다. 박 장로님이 가시는 곳마다 은혜가 내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기성교회를 떠나 원효로 구제단을 찾게 되었다.
“원효로 구제단은 집회에서 받은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마음속 기쁨이 끝없이 샘솟아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 때는 온몸이 뜨거워졌다가 시원해지며 몸의 무게가 사라지는 듯한 체험도 했습니다. 이것이 불성신의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55년은 하나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며 천부교의 역사가 펼쳐진 시기였다. 은혜의 발자취가 된 여러 집회와 원효로전도관은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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