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원집회를 현장 보도한 1955년 당시의 신앙신보 기사를 보면
광주시내 모든 기관장도 참석 전무 후무한 권능에 놀라● 호남의 소돔같은 도시 회개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며
참석했던 기성교인들
은혜받고 마음 문 열어
자리 뺏길까봐 철야
1955년 12월 19일자 신앙신보에는 광주공원 집회에 관한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다. 당시 집회 현장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 “박태선 장로 호남에 소돔 같은 도시가 회개하다”라는 제목으로 “광주는 남한 보수진영 교회가 왕성한 곳이며 호남지방의 외국선교본부가 되는 곳”이므로 하나님의 집회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적고 있다.
1955년 11월 25일부터 시작된 집회에는 각계각층의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25일 저녁 7시 수만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대천막안에 광주시민은 만여명이 참석했다. 첫날 집회에는 화제의 인물인 박장로를 반신반의하면서 모여든 교역자도 많았다.”
또 “광주 교역자들 철야/ 전무(前無)한 영력(靈力)에 다만 묵묵” 제하의 기사를 보면 “이번 집회에서 새로운 것 하나는 전남 노회장인 김재석 목사가 박장로에게 안찰을 받아 새 은혜를 받고 적극 그 집회를 도우며 기도하였다. 이렇게 이번 광주집회는 교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불신사회까지 커다란 화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번 광주집회로 광주의 평신도 교역자 각계중요기관장, 교회지도자 모두 새 은혜를 입었으니 이러한 깊고도 광범한 놀라운 역사는 광주의 역사 이래 처음인 것이다”라고 하여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이렇게 광주공원집회에는 수많은 목사들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가 은혜를 받고서는 마음 문을 열었고 지방법원장, 경찰국장 등 기관장들도 대거 참석했다. 광주숭일고교는 수업을 폐하고 전교생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 뜨거운 불의 감동, 지방 장관부터 서민들까지
또 “뜨거운 불의 감동/ 지방 장관부터 서민까지”라는 기사를 보면 “은혜의 분위기에서 시작된 이 집회는 점점 참석자 수가 증가하였고 철야 기도자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 2만을 헤아리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으니 이러한 일은 세계의 부흥역사에도 없는 것이다. 군중은 천막 밖에서 들어오지 못할 만큼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차 있었고 또한 이 광주집회에서의 놀라운 역사는 광주의 각 기관장의 심령을 사로잡은 것이다”라고 했다.
기성교회 목사들도
집회 참석을 독려하고
기관장들도 모두 참석해
은혜 받아
광주공원 집회에 참석한 고 한보금권사의 신앙체험기를 보면 “집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수를 다 해 주신 다음 단상으로 다시 올라가셔서, “병 나은 사람들은 다 일어서라”하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서며 병이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단상에까지 나와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남자 청년은, “걸음을 전혀 못 걸었는데 은혜 받고 이렇게 걷게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또 말문이 트였다는 벙어리 청년에게 ‘하나님’을 불러 보라고 하니 “하-나-님-”하고 떠듬떠듬 발음을 하는 것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외롭고 우울했던 제 마음은,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밝아지고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2005년 신앙신보 50년 특별기획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에서 의 기록을 보면 “집회가 열렸던 장소인 광주공원은 현재 시민회관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