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천막집회와 마산전도관 개관

마산 천막집회와 마산전도관 개관
발행일 발행호수 2173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1955년 전국적인 천막집회의 열기는 1956년에도 계속된다. 1, 2월의 혹한기를 빼고 3월부터 본격적인 천막집회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마산에서의 천막집회였다. 3월 5일부터 10일까지 예정되었던 집회는 집회 참석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로 이틀을 더 연장하여 12일까지 열리게 된다. 그리고 불과 석 달 뒤 마산전도관이 개관하게 된다. 1955년 12월 서울 중앙전도관 개관 이후 인천전도관, 부산전도관에 이은 네 번째 개관이다.

마산 천막집회
마산 신포동 광장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지금 마산에 신포동이란 지명은 사람들의 기억과 말 속에만 있지 행정구역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동서동 3·15 학생의거탑의 맞은 편에 위치한 경남대학교 창업보육관이 있는 곳 일대가 그 예전 천막을 치고 천막집회를 했던 곳이라고 그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김기순 승사(78.마산교회)는 자리를 확인해주었다.

마산집회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기성교회의 방해, 그러나 오히려 예정보다 집회 기간 연장

첫째, 마산 시내 기성교회들의 방해공작이 그것이다. 집회 날을 미리 알게 된 신·구마산의 각 교회들은 합동하여 극장에서는 ‘구원의 정화’라는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유명한 목사들을 초빙하여 천막집회를 방해하는 부흥회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집회를 도와주는 격이 되었으니, 집에 가만히 있을 사람도 극장 가려다가 가는 길목인 신·구마산 중간 넓은 터에 개설된 집회 장소에 들어와 보고 듣고 깨달아서 날이 갈수록 잘 선전이 되고 성황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래서 3월 5일부터 10일까지로 예정 되었던 집회는 이틀을 더 연장하여 12일에야 끝맺게 되었다.

●소방차 출동

두 번째 일화는 집회장에 난데없는 소방차가 출동한 것이다. 집회 장소 천막 근처를 지나던 한 아주머니가 천막 위로 불성신이 내리는 것을 불기둥이 솟는 것으로 착각하고 ‘천막에 불기둥이 솟는다’고 소방서에 신고를 하였고 그 연락을 받고 소방차가 출동은 하였으나 와보니 불이 난 흔적은 없고 천막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만 보이니 그냥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신유(병고침) 더욱 크게 나타나다

1956년 3월 28일자 신앙신보에 보면 “신유 크게 나타남”이란 제하에 마산집회를 통하여 벙어리가 말을 하고 중풍 환자가 낫고, 문둥병자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등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그 사람의 병력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출생 후 9년 간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던 9세된 여아가 팔을 번쩍 들고 있는 사진이 게재되었다.

마산전도관 개관

천막집회가 있은 지 불과 3달 후인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마산전도관은 개관 기념 예배를 드리게 된다. 마산시 장군동 5번지의 공장 건물 2층을 빌려서 시작한 마산전도관.

주소는 지금 천부교 마산교회의 주소와 마찬가지로 장군동 5번지라고 신앙신보에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50년 전 당시 전도관 개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 마산교회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시온쇼핑이 있는 쪽)의 길 건너편에서 처음 마산전도관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일제 때 지은 건물이었어요. 공장 건물인데 우리가 2층을 빌려서 전도관을 시작할 때는 공장을 하지는 않았어요. 사람이 어찌나 많이 모이는지 오르내리는 계단의 나무가 쭈욱~ 내려앉았어요. 그래서 길 건너 지금의 마산교회 자리를 사서 전도관을 지었지요.” 김기순승사(마산교회)의 이야기다.

처음 빌렸던 공장 건물도 상당히 넓었던 듯하다. 당시의 신앙신보(1956.6.9.) 기록을 보면 “5월 28일부터 마산시에서는 당시(當市) 장군동 5번지에 총평수 160평 3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신설(新設) 전도관 개관 기념 예배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 기념 예배와 아울러 6월 1일에는 당지 내빈 및 운집한 신도들이 회동한 가운데 역사적인 마산전도관 개관식이 열리었던 것이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와 함께 마산전도관 모습과 마산전도관 건립에 공이 큰 인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찍은 사진이 게재되어 있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마산전도관의 모습(오른쪽 사진)도 그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보면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체육대회 우승 후 ‘호화판 시가행진’

마산에서 집회를 한지 3개월 만에 전도관을 시작한 열성적인 마산교인들은 그해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전국 전도관 대항 제1회 체육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하고 마산으로 내려와서는 축하예배를 드리고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그들은 그 우승의 기쁨과 함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한편 불신자들에게 전도와 우월감을 보여 주기 위하여 대호화판의 시가행진을 하였다. 선두에 마산상고의 악대를 세우고 선수단, 유년주교, 학생, 일반교인의 순서로 동양호텔을 출발하여 전도관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신앙신보(1956.11.3.)에서 볼 수 있다.

마산전도관 신축 낙성식

자꾸 늘어나는 교인을 수용할 수 없게 된 마산전도관은 새로 땅을 매입하여 전도관을 신축하게 된다. 1957년 11월 18일부터 일주일간 신축 낙성집회를 하게 되는데 “마산시 장군동 5번지 소재의 건평 220평의 자리에 거대한 건물을 지난 6월 8일 착공 이래 만 6개월이라는 초현실적인 시일 내에 마산 굴지의 대건물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1957년 11월 18일자 신앙신보는 전하고 있다.

또 신앙신보 1957년 12월 2일자에는 마산전도관이 신축을 마치고 낙성기념 심령대부흥회를 개최했는데 낙성기념예배에는 부산전도관의 취주악대가 동원되고 윤치영의원의 축사가 있었고 마산전도관 성가대의 합창 등의 순서가 있었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감람나무는 무엇인가’란 주제로 설교를 하셨다고 전한다.

그 때 지은 마산전도관은 지난 1993년 새롭게 재건축한 이래 2004년 리모델링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