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제단 신축부지 천막집회
이만제단 신축 부지 천막집회사진에서나 만나보고 옛 필름 속에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이만제단그 제단이 서기 전에 그곳에서도 대규모 천막집회가 있었다.50년 전 이맘 때 쯤이었다.
1955년부터 있었던 천막집회와는 그 자리의 의미가 사뭇 달랐다.“집회 장소부터도 종전과는 다르고 모든 준비도 한결 정돈했다니 참석하는 교우들의 심경부터도 새로울 수밖에…아 그야 서울 교인을 위한 이만제단 세울 자리이고 생명 진리 구원의 원천지이고보니 그 넓직한 터전 드 높이 자리 잡을 것에는너나할 것 없이 감격의 찬탄성 교향악이 연주될 수밖에 없었답니다.”(신앙신보 1956.7.30)
한강 변 우뚝 솟아 있던 이만제단. 그 자리를 찾아갔다.
마포 이만제단이라고들 하신다. 그러나 이만제단의 주소는 용산구 청암동 64번지이다. 어린 시절 이만제단이 놀이터였던 홍기윤관장과 이만제단 천막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과 첫 인연이었다는 김경자관장과 함께 이만제단 자리를 찾아 나섰다.
용산구 청암동 64번지. 지금도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면 SK 청암대란 고급 아파트가 우뚝 서있다. 아파트 입구에는 경비가 지키고 있다. “이곳이 청암동 64번지, 예전의 전도관 자리라서 찾아 나왔습니다.”라고 하자 그리 늙지 않은 경비원은 “이곳이 전도관이었는지는 모르고 지금 여기는 청암동 64-1번지고 저 아래 자이 아파트도 청암동 64 다시 몇 번지.”라고 했다. 지금은 아파트가 다 들어서서 집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곳에서 한강을 내려다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청암대 아파트 아래쪽인 주차장에 서니 탁 트인 한강은 볼 수 없고 앞에 선 자이 아파트 사이로 겨우 한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곳도 산을 한참 깎아 내려온 지점이었다. 더 아래로 내려갔다. 동네 분들이 모여 앉아있다. “이곳에 예전에 전도관이 있었지요? 그 자리를 찾아보러 나왔어요. 혹시 아세요?” 그 중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대뜸 “저 청암대가 바로 전도관 자리예요.”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석수(72)씨는 전도관에 대한 기억을 몇 가지 더 이야기 했다. “저기 한강에서 그 신도들이 물을 길어서 그 전도관을 지었어요. 그리고 전도관 신도들이 양쪽으로 서 있다가 박태선 장로님이 오시면 다들 따라 들어가곤 했어요. 예전엔 저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는데, 산을 전도관 자리만 남기고 다 깎아내린 거예요.”
한강의 물을 길어서 지은 이만제단. 수많은 교인들이 한강에서부터 이만제단까지 늘어서서 한강물을 길어 올리는 광경을 상상해보니 장관이었겠다.
50년 전인 1956년 7월 18일부터 마포장 뒷 광장 이만명 전도관 신축기지에서는 27일까지 열흘 예정으로 하나님의 하기 대부흥회가 열리게 된다. 마포장이라면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던 곳이다. 그 근처는 조선시대 안평대군이 담담정이란 정자를 지어놓고 책을 읽던 곳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경치가 좋고 어디서고 잘 보이는 위치에 이만제단이 위치하게 된 것이다.
“이만제단을 지으려고 닦은 부지에 천막을 치고 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 기간 중 어느 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 입에서 안개 같은 것이 나오더니 넓은 집회장 전체를 뽀얗게 뒤덮었습니다. 며칠 후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찬송 인도를 하시고 난 뒤 ‘병 나은 사람들은 일어나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 병이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눈을 떴다고 하고, 귀머거리가 들린다고 하였으며, 절뚝발이가 나았다고 하는 등 수많은 환자들이 일어나 기뻐 뛰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집회를 마친 후부터 이만제단 기초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고 당시 집회를 참석했던 조계수 퇴임관장은 말했다.
초창기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하신 분들의 체험기에서 볼 수 있었던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고 화장실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윤기옥집사 체험기에게도 볼 수 있었다. “항상 앞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던 저는 그 때도 제일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앉을 자리도 부족했고 집회는 일주일 이상 계속 되었기 때문에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누군가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제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한 것은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모르고 음식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설교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면 그렇게 즐거웠고, 낮이나 밤이나 마음에는 항상 은혜를 받는 기쁨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당시에 마포 하기 대부흥회의 소식을 전한 신앙신보 1956년 7월 23일자엔 “사흘을 굶으면 도둑질 안할 놈이 없다는 속담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말. 집회가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과반 교인이 꼬박 금식. 예배가 끝나도록 금식한다니 열흘을 굶는 셈. 이러고도 밥 생각이 없으니 사람이 꼭 밥으로만 사는 것도 아닌 모양.”이라는 재밌는 기사도 있다.
또한 마포집회가 성황리에 폐막하게 되었음을 보도한 동년 7월 30일자 신앙신보 기사에는 “한번 자리에 앉은 신도들은 통히 집회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연십여일을 꼬박 금식으로 보낸 성도들도 부지기수였으며 중간에는 해병대 군악대가 와서 찬조 연주를 하여 동 집회를 더욱 성황하게 하였다. 이처럼 대성황을 이룬 금번 집회는 연기를 원하는 많은 신도들의 간청이 있었음으로 부득이 연장 지난 29일 아침에 끝나게 되었다. 앞으로 시작될 이만 명 전도관 공사에 많은 힘을 돋우게 하였으며 또한 불원 장래에 오만 명 전도관의 건립에 박차를 가할 것이 다시금 논의 되었다.”라고 하였다.
송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