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원주민은 왜 좀비가 됐을까?

좀비를 만든 노예 사냥과 죽음의 노동
발행일 발행호수 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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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를 뜻하는 ‘좀비’는 원래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혼을 말살당해 자신의 의지와 생각 없이 주인의 명령만을 따르는 좀비, 죽을 만큼 혹사당하지만 이미 시체이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도 없는 좀비는 끔찍한 괴물이기 이전에 비참한 노예였다.

좀비는 아프리카 콩고의 “은잠비(Nzambi)”라는 단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혼 없는 노예’라는 이야기는 아이티섬에서 유래했다.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망망한 대서양 건너편의 아이티섬에 전해져서 영혼 없이 혹사당하는 비참한 노예 실화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역사적 배경에는 십자가 돛을 높이 세운 배들이 있었다.

1492년 항해가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찾기 위한 항해에 나섰다. 스페인의 이사벨 1세와 페르디난도 2세는 ‘가톨릭 부부 왕’이라 불릴 정도로 신앙에 철저한 군주였고, 그들이 신대륙 항해를 지원한 것도 가톨릭 전파에 대한 광적인 집착 때문이었다.

(자료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록(도미니카 공화국 왕실박물관 소장) 콜럼버스는 항해록 첫 장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을 붙이고 자신의 항해가 예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천명했다.

이사벨 1세는 “단 한 명의 원주민을 구원할 수 있다면 신대륙 항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에서 볼 수 있듯 원주민에게 예수를 전파하는 것이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원주민의 의사와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광신분자다운 생각이었다. 콜럼버스 또한 가톨릭 부부 왕이 선택할 만큼 광신분자였기 때문에 항해록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을 붙이고 자신의 항해가 예수의 뜻이라고 기록해 놓았다.(자료1) 신대륙 원주민들에게 콜럼버스의 도착은 곧 재앙의 시작이었다.

(자료2)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모습 (시어도어 드 브리의 판화, 1590년) 콜럼버스의 병사들이 땅에 십자가를 박아 세우고 있다.

콜럼버스의 십자가 배가 도착했을 당시 아이티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푸른 숲이 펼쳐진 아름다운 섬이었다. 원주민 타이노족은 처음 보는 백인들을 환대하며 음식과 물자를 아낌없이 베풀었지만 콜럼버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건장한 체격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남녀 원주민을 보고 노동과 성적 착취를 위한 노예로 부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자료2)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을 노예화하는 것은 천인공노할 범죄이지만 가톨릭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의 대리인 교황이 원주민의 노예화를 허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자료3) 1455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발표한 교서 <로마누스 폰타펙스> 이 교서를 통해 교황은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에게 비(非) 가톨릭 지역인 아프리카를 침략하는 것과 그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어 거래하는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이라고 허가해 주었다.

이 허가는 1455년 교황 니콜라오 5세가 내린 ‘로마누스 폰티펙스(Romanus Pontifex)’라는 교서를 통해서였다. 당시는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있었는데, 교황은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에게 비(非) 가톨릭 지역인 아프리카를 침략해 노예로 만든 원주민을 사고파는 거래가 정당하고 합법적이라고 허가해 주었다. 이는 스페인과 프랑스 등 가톨릭 국가들이 수백 년간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고 1,500만 명 이상을 노예 시장에서 거래하는 근거가 되었다.(자료3)

신대륙 침략과 노예 거래를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허가해 준 교황의 교서는
가톨릭 국가들이 아프리카인 1,500만 명 이상을
노예로 잡아 매매하는 근거가 돼

이 같은 교황의 노예 허가는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기 40년 전에 있었고 따라서 콜럼버스에게 원주민 노예화는 당연한 일이었다. 콜럼버스는 유순한 원주민들을 순식간에 폭력으로 제압하고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다. 특히 콜럼버스는 신대륙에서 황금을 캐낼 것이라는 망상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 노예들에게 집요하게 황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이티섬에는 콜럼버스의 야욕을 채울 만한 금광이 없었고 황금을 찾아 헤매던 원주민들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격분한 콜럼버스가 원주민의 코와 손목을 자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료4)

(자료4) 콜럼버스의 병사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코와 손목을 자르는 모습 <인디오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1567)에 실린 삽화

원주민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톨릭 세계의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들의 사고 방식에 따르면, 예수를 알지 못하는 신대륙의 원주민은 사람 이하의 존재이기 때문에 원주민의 재산과 천연 자원, 생명을 강탈해도 전혀 죄가 되지 않았다.(1550년 스페인의 가톨릭 신학자 히네스 데 세풀베다의 주장) 따라서 살아 있는 원주민을 개 먹이로 던져 주거나 검술 시합용으로 쓰는 만행은 가톨릭 항해가들의 일상이었다.

콜럼버스 이후에 들이닥친 스페인 침략자들이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아름다운 섬 아이티는 유령섬이 되어 갔다. 콜럼버스가 도착할 당시만 해도 30만 명이던 원주민이 50년간 계속된 학살과 침략자들이 전염시킨 병에 시달린 후에는 200명에 불과했다.

사람 그림자를 찾기 힘들어진 아이티에서 침략자들은 무단으로 땅을 빼앗아 수익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열대성 기후에 고온다습한 아이티섬은 열대성 식물인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었고, 당시 막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침략자들은 아이티에 사탕수수 농장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이러한 천연자원뿐 아니라 노동 인력까지 강탈했다. 인구가 줄어든 아이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침략자들은 자신들이 죽여 버린 아이티 원주민 대신에 새로운 노예를 찾아서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해 아이티까지 강제 이주 시켜서 노예로 부린 것이었다.

가톨릭 국가들의 노예 사냥은 새벽 기습으로 시작되었다. 전문적인 사냥꾼들은 동트기 전 새벽 안개에 둘러싸인 원주민 마을에 총을 난사했다. 땅을 뒤흔드는 폭음에 원주민들이 놀라 뛰쳐나오면 사냥꾼들은 본보기로 몇 명을 죽인 후 미처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한 집에 불을 질렀고, 순식간에 생지옥에 빠진 원주민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지도 못했다. 기세등등해진 사냥꾼들은 원주민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운 후 십자가 깃발을 높이 세운 배로 끌고 갔다.

(자료5) 노예선에 적재된 아프리카 포로들(출처 : https://ageofrevolution.org) 아프리카 포로들은 1인당 가로 40센티, 높이 50센티 공간에서 돌아누울 수도,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다. 노예 상인들은 최대 이윤을 얻기 위해 최대한 많은 노예를 배에 실었고 보통 450명 정원인 배에 600명 이상을 실었다. 절인 생선처럼 차곡차곡 쌓인 채로 대소변을 배설하니 전염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인들은 보통 600명씩 한 배에 실렸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깜깜한 배 밑창에서 6명씩 사슬에 묶여 있는 그들에게 십자가 배는 곧 지옥선이었다.(자료5)

한 사람당 너비 40센티 공간에서 절인 생선처럼 차곡차곡 쌓인 채로 대소변을 배설하니 전염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었고, 병든 원주민은 즉시 바다에 버렸기 때문에 식인 상어가 항상 노예선을 따라다녔다.(자료6)

(자료6) 노예선에서 바다로 살처분 되는 아프리카 포로들, 1888년 판화 (출처 : https://www.alamy.es/) 전염병에 걸리거나 명령에 불복종한 아프리카 포로들은 즉각 바다로 살처분됐기 때문에 식인 상어가 항상 노예선을 따라다녔다.

노예선이 향하는 곳은 아메리카의 사탕수수와 커피, 목화 농장이었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왜 잡혀 왔는지, 어디로 끌려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백인 납치범들은 최소한의 물과 식량,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목적지도 모른 채 수개월 간 망망대해를 건너며 원주민의 20% 이상이 굶주림과 전염병, 가혹 행위로 죽어 나가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원주민들은 패닉에 빠졌고, 노예선의 붉은 십자가 깃발이 원주민들의 피로 물들였을지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망상보다 더욱 비참했다.

가혹한 노동으로 착취하면서도
‘예수의 은총’을 내린다고 주장한
가톨릭은 착취 끝에 죽어 나가는
노예들을 ‘순교자’라 불러

노예 시장에서 흥정이 끝나면 노예의 벌거벗은 몸에는 그들을 구입한 회사의 낙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노예 노동의 참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포르투갈의 예수회 수도사 안토니오 비에이라의 강론을 읽어야 한다. 1663년 그는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당하는 고통은 예수께서 당한 고통과 같다. 예수께서 하루 종일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너희들의 수난도 낮이나 밤이나 계속되리라. 예수께서 벌거벗으셨으니 너희도 벌거벗었다. 너희들은 굶주리고 고문당하고 모욕을 당한다. 이로써 너희들은 예수를 따르고 있다. 너희는 순교자들이다.”(안토니오 비에이라, 『전집』, 총 4권 중 3권 30쪽)

(자료7) 17세기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 안토니오 비에이라 그는 가혹한 노동 착취를 당해 죽어 나가는 아프리카 노예를 “순교자”라 칭했다.

이 포르투갈 수도사의 강론은 확신에 차 있었으나 포르투갈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노예들에게는 공허할 뿐이었다. 예수처럼 벌거벗으라는 수도사의 가르침은 준엄했으나 자신은 수도복을 벗지 않았고, 예수처럼 고통당하라는 목소리는 널리 울렸으나 자신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았다.(자료7) 수도사의 강론 중에 자신이 실행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그의 예언만은 적중했다. 가혹한 노동을 이기지 못한 노예들이 평균 7년 안에 죽어 나가며 수도사의 예언대로 ‘순교자’가 된 것이었다.

15세기 십자가 배를 타고 아프리카를 침략했던 포르투갈은 그것을 “가톨릭 신앙의 선교”로 기념하고 있다. 아프리카 노예들을 실어 날랐던 배 이름 중에 “좋은 배 예수”가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항해가 그들의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자료8)

(자료8) 노예 무역선 “좋은 배 예수(The Good Ship Jesu)” 16세기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 사용된 700톤급 노예선이다. (출처 : https://kathrynmckinney.wordpress.com)

죽음보다 더한 노동에 시달린
아프리카인들은 “영혼 잃은 노예”
좀비 실화의 주인공이자 지금도
세계 최빈국으로 가난에 허덕이고 있어

아프리카 원시림의 풍부한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은 “좋은 배 예수”를 타고 생지옥과 같은 아메리카 농장으로 끌려갔다. 그중 아이티 농장에서 죽음보다 더한 노동 착취를 당한 사람들이 “영혼 잃은 노예”라는 좀비 실화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아이티를 비롯해 십자가 배가 닻을 내렸던 국가들 중에는 수백 년의 경제적 착취를 이기지 못하고 지금도 세계 최빈국으로 허덕이는 나라가 있다. 다음 번 기획기사에서는 신대륙이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말살당한 실상을 자세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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