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1편> 프레나 신부 사건
발행일 발행호수 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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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6. 프랑수와 오종 감독이 “신의 은총으로”라는 영화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 : http://www.zimbio.com)

2019년 2월 20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신의 은총으로(Grâce à Dieu)”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생트 포이 레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보이스카웃을 담당한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0년대~80년대 70여 명의 보이스카웃 단원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영화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인 은곰상을 수상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프랑수와 오종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아동 성학대에 대한 은폐를 멈추려는 시도”라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실명이 등장하고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이 재현된 이 영화는 ‘범죄에 대한 침묵’을 고발하고 있다.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는 1970년대부터 리옹 교구에서 보이스카웃 부속 사제로 활동하며 캠프를 조직했다. 해마다 200명이 넘는 보이스카웃 단원들이 가입했고 해마다 새로운 성폭행 피해자가 생겨났다. 대부분 10세 미만이었던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성범죄를 인지하지 못했고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1991년 한 소년(프랑수와 드보르)이 성폭행당한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다. 피해자 부모가 프레나 신부에게 항의하자 프레나는 아이들에게 성욕을 느낀다며 자신의 범죄를 자백했다. 부모는 프레나 신부를 아동 성폭행으로 고발하려 했으나 아이가 시달리게 될 트라우마와 2차 피해 때문에 고발하지 못했다.

당시 리옹 교구의 드쿠르테이 추기경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 부모를 안심시켰다. 프레나 신부를 루아르로 이동시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가톨릭교회는 프레나 신부에게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았고 그의 성폭행 전력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프랑스 사회에서 아동 성범죄자는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지만 가톨릭에서는 비공개로 보호받았던 것이다. 범죄 사실이 은폐되자 프레나는 새로운 부임지에서 새로운 먹잇감을 찾을 수 있었다. 프레나의 범죄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덮어두는 행태는 2015년까지 계속됐다.

프랑스 리옹 교구의 보이스카우트 사제를 맡았던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 프레이나는 1970-80년대에 70명이 넘는 보이스카우트 단원 소년들을 성폭력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출처 : www.lyonmag.com)

이것을 깨뜨린 사람은 보이스카웃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알렉상드르 게랑이었다. 재무 전문가로 성공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그는 프레나 신부가 리옹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녀와 접촉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알렉상드르는 리옹 교구에 프레나 신부의 해임을 요구했지만 교구는 교묘한 말로 시간을 끌었고 급기야 프레나 신부에게 아동 대상 교리 교육까지 맡겼다. 격분한 알렉상드르가 경찰에 고소할 것이라고 하자 리옹 교구는 이렇게 답했다.

“상처를 긁지 않는다면 신의 가호로 아물게 된다.(avec la Grâce, se ferme si nous ne la grattons pas trop.) 왜 자꾸 과거 일을 들추는가?” 그리고 이 말로 쐐기를 박았다. “고소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고, 시효가 지나지 않은 피해자는 한 명도 안 나왔다.” 하면서 자신만만했다.

당시 프랑스 형법상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 연령이 38세가 될 때까지였다. 공소시효 만료 전에 고소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면 법적인 책임을 묻지 못하는데, 피해자인 알렉상드르는 40세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다. 리옹 교구는 알렉상드르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의 공소시효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상드르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법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프레나 신부를 사법당국에 고소했다. 범죄 사실을 알리고 공론화시켜서 자신의 자녀와 같은 어린 세대는 끔찍한 고통에서 헤매지 않도록 보호하려 했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발로 경찰은 조사에 착수하면서 관련된 여러 증거와 정황을 확인했고 다른 피해자들도 찾아내 증언을 들었다. 피해자들은 경찰에서 조사 받은 것을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되어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피해자들은 가톨릭교회에 ‘침묵의 계율(omerta, 오메르타)’이 존재한다고 했다. 침묵의 계율은 마피아가 조직의 범죄에 대해 침묵하는 규칙인데 이를 가톨릭에 빗댄 것이었다. 침묵은 가톨릭의 용의주도한 보호장치였다. 침묵으로 범죄를 덮고 시간을 지연시키고 나면 공소시효 만료라는 면죄부를 얻게 됐다.

이 사건에서 공소시효에 가로막힌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을 못해 괴로웠지만, 가해자의 대표격인 리옹 교구의 필립 바르바랭 추기경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다.(Grâce à Dieu, tous ces faits sont prescrits.)” 그러자 한 기자는 “다행스럽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말인가? 피해자 입장에서 폭력적인 발언” 이라며 격분했다.

이 발언이 전 세계로 보도되자 네티즌은 조롱과 야유를 보냈다. “그 신은 성폭력의 신인가? 그런 은총을 주다니!”(측천**) “강간을 처벌 못하게 은총을 베푸는 신은 참 가톨릭스럽다.”(해야**) “그 집단 태생이 살인 섹스 강간이야.”(고종보다 **)

프랑수와 오종 감독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면서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추기경의 발언을 영화 제목에 사용했다. 가톨릭의 검은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발언이었다.

2019.1.7. 리옹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필립 바르바랭 추기경(출처 : AFP)

가톨릭이라는 거대 조직에 맞서는 피해자들은 힘을 모으는 것이 절실했다. 2015년 12월 “자유 발언(La Parole libérée)”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홈페이지를 열어서 증언 수집에 나섰다. 단기간에 70명의 피해자가 동참하면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피해자를 찾게 됐다.

공소시효의 벽을 돌파한 그들은 가톨릭과 전면전에 나섰고, 결국 성범죄 사실을 은폐했던 바르바랭 추기경은 ‘범죄 은폐’와 ‘타인을 위험에 빠뜨린 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프랑스 최고위직인 추기경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유 발언”에 소속된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은 아동성범죄의 공소시효를 연장해야 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해자가 성년(18세)이 된 후 20년까지가 공소시효였다. 즉 피해자 연령이 38세가 되기 전까지였다.

피해자들과 그의 변호사들은 아동기에 몸과 마음을 유린당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가톨릭이라는 거대 집단을 상대로 법적인 싸움에 나서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고 주장했다. “자유발언” 단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프랑스 사회에서 공소시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결국 2018년 8월 아동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규정이 개정됐다.(LOI n° 2018-703 du 3 août 2018 renforçant la lutte contre les violences sexuelles et sexistes; 성폭력과 성추행을 근절하기 위해 강화된 2018년 8월 3일의 2018-703 법) 20년이었던 공소시효가 30년으로, 즉 피해자 연령이 38세에서 48세로 연장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가톨릭의 성학대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은 반격에 나설 시간을 얻게 되었다.

한때 가톨릭은 그들이 믿는 신이 은총을 내려 공소시효를 지나게 했다고 득의만만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은총은 효력을 다한 듯했다. 2,000년간 이어진 범죄집단의 침묵과 은폐를 깨뜨린 자유 발언의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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