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지난달 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한 미술 전시회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작품들이 기독교를 조롱한다며 가톨릭 보수 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논란이 된 작품 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개구리 조각’, ‘라텍스 돌기로 표현한 십자가의 예수’ 등이 있었다.<자료1> ‘개구리 조각’의 경우 2008년 이탈리아에서도 전시되었는데, 당시 교황이 직접 철거를 요청했으나 거부했으며, 이번에 재전시 되었다. 시위대 측은 “십자가에 못 박힌 초록 개구리가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다.”, “고통과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가 성적 페티시즘의 대상으로 묘사된다.”며 이 전시회가 “혐오스러운 묘사로 가톨릭 신앙의 핵심을 공격했다”고 분노했다. 이에 전시회 측은 “종교적 신념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예술 작품이 도발적인지 여부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Ob ein Kunstwerk eine Provokation darstellt, liegt oft im Auge des jeweiligen Betrachters, der jeweiligen Betrachterin.)”는 입장을 밝혔다.
시위대의 관점에서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은 그들 신앙의 근간이자 교리의 핵심이다. 범죄자들을 매달던 십자 형틀을 자신들의 상징물로 삼을 정도로, 예수의 십자가형은 기독교의 정체성과도 같은 사건이다. 이 사건이 있어야만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는 서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 제국을 소란케 한 신흥종교의 지도자가 공개 처형되었고 심지어 3일 만에 부활했다면, 그 파장은 적어도 기독교 공동체 밖의 기록에 단 한 줄이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예수의 행적을 기록했던 다양한 성경 외 문헌들을 찾아보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을 검토해 보았다.

<자료1> 십자가에 못 박힌 개구리와, 라텍스 돌기로 표현한 예수 (출처: 빌트)
▣ 성경이 주장하는 예수는 죽고 부활한다
우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진술부터 살펴본다. 예수의 생애를 전기 형식으로 다룬 성경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네 권의 복음서다. 이 복음서의 저자들이 주장하고 싶어 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상은 “예수가 십자가형으로 사망했고, 얼마 후 그의 무덤이 비어있음이 목격되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흐름을 가진다. 그런데 신약성서 연구의 권위자인 바트 어만은 각 복음서가 묘사하는 핵심 진술들이 상당 부분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처형 장면에서는 처형 시간, 예수 옆 강도들의 태도, 지진이나 어두워짐 같은 초자연적 현상의 유무 등이 서로 다르고,<자료2> 빈 무덤 목격 장면에서는 방문 시간, 방문한 여인의 수와 반응, 무덤 문의 개방상태, 천사의 존재 여부, 천사의 수와 위치 등이 서로 달랐다.<자료3>

<자료2> 처형장면을 묘사하는 성경의 모순
성경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해 죽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처형 시간, 예수 옆 강도들의 태도, 처형 순간 일어났다는 초자연적 현상(지진, 어두워짐, 갑자기 휘장이 찢어짐)들의 유무와 종류가 모두 다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자 유대인들은 “네가 메시아면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본인부터 구원해 보라, 그러면 믿어주겠다” 조롱한다. 이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양옆 강도들도 함께 예수를 욕했다고 나오는데, 누가복음에서는 한 강도만 “네가 메시아면 너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보라”며 모욕하고, 한 강도는 예수를 두둔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선 강도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자료3> 빈 무덤 발견 장면에서 성경의 모순
성경에서 예수의 빈 무덤이 발견되는 장면은 예수 부활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자 부활의 증거로 내세우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사건에 대해 복음서 간 설명이 크게 모순된다. 무덤을 찾아간 시간, 방문한 여인의 수와 반응, 무덤 문의 개방 상태, 천사의 존재 여부, 천사의 수와 위치 등이 모두 다르다.
왼쪽의 그림은 빈 무덤에 방문 장면을 복음서 별로 비교한 것이다. 마태복음에선 천사가 돌문을 열어 그 위에 앉았지만, 다른 복음들에선 문이 이미 열려 있었고, 천사가 내부에 있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목격한 여인의 수와 반응도 모두 다른데,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의 여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마태의 여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빈 무덤 사건을 알리러 간다.
성경은 예수가 사라진 후 수십 년이 지나 쓰였기 때문에, 앞선 저작을 모방하거나, 저자의 의도에 따라 원하는 장면을 추가·수정하면서 현재의 성경 내용이 지어지게 되었다.
어만은 성경의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신의 영감을 받아 쓰였다는 성경이 모순 덩어리인 이유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경은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목격자들의 현장 기록이 아니다. 예수가 사라진 수십 년 후, 구전으로 전승돼오던 것을 기독교를 전할 목적으로 후대에 기록화한 것이다. 구전 과정에서 변형되고, 과장되고, 지어지기도 한다. 또 기록 시기, 목표 독자, 기록자의 성향에 따라서도 내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기원 후 65~70년 작성)의 경우, 예수 처형과 부활에 대한 서술이 가장 짧고 단순하다. 그러나 이후에 작성된 마태와 누가(기원 후 80~90년 작성)의 경우, 논란이나 소문에 대응하기 위해 마가에는 없었던 요소들을 추가한 흔적이 명확하다. 일례로 마태복음은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를 빼돌렸다’는 소문이 돌자, 그것은 ‘유대인들이 일부러 낸 헛소문’이라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누가복음은 ‘예수가 부활한 게 아니라 예수의 환영을 본 것’이라거나, ‘예수의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 부활했다’는 소문이 돌자, 부활했다는 예수가 나타나 자신을 만져보라 얘기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에 어만은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훗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한 해석과 기억’이라고 정리했다.<자료4>

<자료4> 신약학자 바트 어만과 그의 저서『예수 왜곡의 역사』
신약성서 연구의 권위자인 바트 어만은 성경을 모순 덩어리라 표현했다. 그는 신의 영감을 받아 쓰였다는 성경이 실제로는 모순점이 상당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경은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목격자들의 현장 기록이 아니다. 예수가 사라진 수십 년 후, 구전으로 전승돼오던 것을 기독교를 전할 목적으로 후대에 기록화한 것이다. 구전 과정에서 변형되고, 과장되고, 지어지기도 한다.” 또 기록 시기, 목표 독자, 기록자의 성향에 따라서도 내용이 달라지는 등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경에서 기록한 예수도 마찬가지다. 어만은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훗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한 해석과 기억’이라고 정리했다. (출처: 알라딘, 바트 어만 홈페이지)
▣ 조작이 아니고서는 부활하는 인간은 없다
2세기 그리스 철학자 켈수스는 성경의 모순점을 떠나, 인간이 죽고 부활했다는 주장 자체가 비현실적임을 지적하며, 그것을 주장하는 자는 망상에 사로잡혔거나 사기를 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켈수스는 그의 저서『참된 가르침』에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일찍이 누군가 진짜로 죽었다가 바로 그 몸으로 되살아난 사실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사람들은 검증해야 한다. 당신들은 남들의 이런 이야기는 신화라 여기면서, 당신들이 적당히 그럴싸하게 꾸며 낸 연극의 결말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을 목격했다는 자는 반쯤 미친 여인이거나 어쩌면 같은 사기꾼 일당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자는 필경 그런 환상을 보는 소질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런 망상에 사로잡힌 환상을 제 마음대로 꾸며낸 것이다. 아니면 기이한 징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그러한 거짓말로 자신과 같은 사기꾼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려 했던 자일 가능성이 내가 보기엔 더 높다.” 켈수스는 또한 “그가 부활했을 때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았다. 예수가 참으로 신적 권능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그는 바로 자신의 적대자들과 자기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재판관에게, 아니 아예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났어야 했다.(if Jesus desired to show that his power was really divine, he ought to have appeared to those who had ill-treated him, and to him who had condemned him, and to all men universally.)”라며 예수가 신적 권능이 없으며, 예수의 부활은 내부자들만 믿는 폐쇄적인 신앙임을 지적했다.
이에 324년, 기독교에서는 저명한 역사가의 기록을 위조해 ‘비기독교인도 부활을 인정했다’고 내세울 수 있는 자료를 출판한다. 기독교 교부 유세비우스는 그의 저서『교회사』에 유대인 출신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이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자료5>

<자료5> 유세비우스와 저서『교회사』, 요세푸스와 저서『유대 고대사』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거나, 그의 부활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통 유대인인 로마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서『유대 고대사』제18권 3장 3절에는 “예수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메시아)이며, 3일 만에 부활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부활에 대한 비기독교인의 객관적 진술’이라며 환영한다. 유대인인 요세푸스의 저서에 어떻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독교 편향적인 기록이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4세기 말 기독교인에 의해 노골적으로 조작·삽입되었다는 것이 주류 학계의 판단이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필사를 통해 책이 출판되었고, 4세기 기독교가 공인되고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당시에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부활을 증거하는 데 힘써왔던 기독교 교부 유세비우스가 그의 저서『교회사』에 ‘기독교 편향적인 진술’을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있는 내용이라고 인용하면서부터였다. 부활을 증거하려 했던 이 조작 사건은 오히려 ‘당시 예수가 부활했다는 다른 증언이 없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방증이 되었다. (출처: 알라딘, 위키피디아)
“이 사람이 그리스도(기름부은자=메시아)였다. 우리 가운데 앞선 이들의 고발에 의해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단죄하였을 때, 먼저 그를 사랑하였던 이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사흗날 그는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이 일들과 그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부활을 증거하는 등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우호적인 표현과 진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보수적인 정통 유대인이었고,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거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요세푸스가 예수를 메시아나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280년경 기독교 교부 오리게네스의 저서『켈수스 반박』과『마태복음 주석』에 있다.<자료6> 그런데 324년, 유세비우스가 돌연 친기독교적인 내용을 ‘요세푸스의 증언’이라 소개하면서부터, 이것이 예수의 부활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외부 문헌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주류 학계는 280년경에서 324년 사이, 기독교인에 의해 이 문장이 노골적으로 조작·삽입되었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학계의 지배적인 입장이다.

<자료6>『켈수스 반박』, 켈수스, 오리게네스
2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켈수스는 그의 저서『참된 가르침』에서 ‘예수 부활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일찍이 누군가 진짜로 죽었다가 바로 그 몸으로 되살아난 사실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사람들은 검증해야 한다.”, “그것을 목격했다는 자는 반쯤 미친 여인이거나 어쩌면 같은 사기꾼 일당 중 한 명일 것이다.”, “예수가 참으로 신적 권능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그는 바로 자신의 적대자들과 자기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재판관에게, 아니 아예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났어야 했다.”
그런데 켈수스의『참된 가르침』은 원본이 소실되어 기독교 교부 오리게네스의『켈수스 반박』에 인용된 내용으로 전해진다. 오리게네스가 켈수스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그의 말을 상당수 인용한 덕분에 무려 3/4이나 되는『참된 가르침』의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켈수스 반박』의 저술시기는 280년경으로, 오리게네스는 또한 ‘요세푸스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김으로써, 4세기에 요세푸스의 기록이 조작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출처: 교보문고, 위키피디아)
유세비우스는 그의 저서『복음의 준비』12권 31장에 “진실은 고귀하고 영원한 것이지만, 사람들을 진실로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며, “필요하다면 유익을 위한 거짓말이 효과적”이라는 견해를 밝힌 인물로, 생전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데 힘써왔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달리, 이 조작 사건은 오히려 ‘당시 예수가 부활했다는 다른 증언이 없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방증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신앙의 이름으로 기록을 위조하고, 역사 해석을 오염시킨 중대한 조작 범죄로 남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유대인들의 실제 평가는 어땠을지 유대 문헌을 통해 확인해본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43a에는 예수의 처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유월절 전날 밤,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돌로 쳐 죽인 후 그의 시체를 매달았다. 선고자는 40일 동안 그 앞에 나가 공개적으로 이렇게 외쳤었다. “나사렛 예수는 마술을 행하고 사람들을 우상 숭배로 선동하고 유대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기에 돌로 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를 무죄로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그를 변호하라.” 그러나 법정은 그를 무죄로 할 이유를 찾지 못하여 그를 돌로 쳐 죽이고 유월절 전야에 그의 시체를 매단 것이다.” 그리고는 처형 이후 부활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없다.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유대교 문헌 ‘톨레도트 예슈’도 모든 판본에서 그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고 기록하면서 부활은 언급하지 않는다. 특히 바겐자일 판본에서는 ‘시체를 다른 곳에 옮겨 묻었을 뿐인데, 빈 무덤을 부활의 증거라 믿는 예수의 제자들’을 등장시켜 부활을 믿는 것을 조롱하기도 한다. 이처럼 유대의 문헌에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기록한 문헌은 단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