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얘기해도 죄라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판결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의 한 판결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는 판결이었는데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무엇이길래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것이며,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란?
‘적시(摘示)’는 ‘지적하여 보인다.’는 뜻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쉽게 말하면 사실을 지적해 보여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죄를 말합니다.(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 그대로를 말해도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말했을 때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LH 부동산 투기 사건의 제보자처럼 공익을 위해 사실을 알린 사람은 명예훼손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나도 명예훼손범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왜 중요할까요?
인터넷과 SNS로 자유롭게 정보를 공개하는 요즘, 누구나 ‘사실 적시’로 명예훼손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번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 모 씨도 반려견을 키우는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병원에서 반려견을 잘못 치료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 사실을 SNS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이 법률이 정말 헌법에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됐다고 합니다.
◆ 헌법에 맞을까, 안 맞을까?
그렇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법률이 헌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판단할까요?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법률이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가? 아니면 지나치게 많이 제한하는가?를 기준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된다는 것이 국민을 지나치게 옭아매는 법인가,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를 과잉금지원칙이라고 하는데요, 이 원칙에 따르면 입법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방법이 적절해야 하며 제한을 최소화하고 법익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모든 원칙이 지켜진 법률이라면 헌법에 맞는 법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5:4로 합헌 판결!
이번 사건은 헌법 재판관 9명 중에서 합헌 5명, 위헌 4명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법률이 헌법에 맞게 제정됐으며 국민을 지나치게 옭아매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그 이유를 문답식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문)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된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까요?
답) 그렇지 않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발언은 처벌되지 않으니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으니까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왜 죄가 되지요?
답) 사실을 말해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죄가 됩니다. 이번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된 이 모 씨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동물병원에 대해서 법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공개해서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없다면 이처럼 사실 공개를 복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겠지요.
문)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답) 명예를 보호할 방법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인터넷이나 SNS처럼 사실을 공개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표현의 전파속도는 빨라지고 효과도 점점 커지는데,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예는 한번 훼손되면 완전히 회복되기 어려운데 훼손할 방법은 많고 구제할 방법은 거의 없으니까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법률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명예훼손을 막는 안전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많은 국민들의 명예를 보호하고, 사실 적시라는 가면을 쓰고 부당하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이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헌법재판소란?
국민들은 법에 따라 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법이 잘못됐다면 어떡할까요?
법도 헌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데요. 그 재판을 하는 곳을 ‘헌법재판소’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