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발행일 발행호수 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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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2,000년간 존재해 온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단이라 불린다. 또한 인류가 갈망하는 구원에 일정한 금액을 붙여 판매한 최초의 기업이며, 지배 계층을 움직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처럼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가톨릭이 최근 위기에 처했다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있었다. 가톨릭 본부인 교황청의 수입이 감소하면서 44백만 유로(571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를 돌파하고도 남을 저력이 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교황청이 보여준 신묘한 경제 감각과 수입 창출 능력을 살펴본다.
면죄부

교황 바오로 6세의 모습이 그려진 면죄부(plenary indulgence) / 1967년 제작 (출처:texancultures.com)

면죄부란 죄가 사면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교황 이름으로 발행한 증명서를 말한다. 교황이 책정한 금액을 지불하면 누구든지 면죄부를 구입하고 무슨 죄든지 사면받을 수 있었다.

11세기부터 판매된 면죄부는 여러 면에서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첫째로 종교적인 문제였던 ‘죄와 구원’을 경제적인 논리로 해결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상품을 구매하듯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둘째로 면죄부는 수많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상품이었다. 예수의 대리인이라는 교황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천국행을 보장해 준다고 했기 때문에 사후 세계를 두려워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셋째로 투자 없이 무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었다. 면죄부가 진짜 천국에 보내 줄 수 있는지는 증명할 수 없었고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가톨릭의 신이 천국에 보내 준다는 믿음을 이용하면 면죄부는 아무런 투자 없이 계속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면죄부는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예수 구원론의 파생 상품이었다.

12세기 들어 교황은 죄의 종류에 따라 면죄부를 세분화해서 판매했다. 이것은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두 윈윈하는 방식이었다. 소비자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그에 맞는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간편하게 결백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것은 다음번 범죄를 촉진시키고 면죄부 구입을 손쉽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교황은 면죄부 정가표를 발행해 “문서 위조죄 7그로시, 살인죄 5그로시, 낙태죄 5그로시, 강간죄 6그로시” 등으로 명시했다. 또 각 죄목은 세부 항목으로 나눠져서 일일이 면죄 금액이 책정되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죄는 면죄부 정가표에 있었고, 면죄부로 해결하지 못할 죄는 없었다.

가톨릭 성직자가 자주 구입하는 면죄부는 축첩죄 면죄부였다. 성직자들은 첩이 생길 때마다 구입했기 때문에 축첩죄 면죄부의 최대 고객으로 떠올랐다. 면죄부로 교황청은 수익을 얻고 성직자는 순결을 얻게 되니 이보다 적절한 상부상조가 없었다. 무엇보다 교황은 면죄부를 통해 죄의식 없는 향락의 길을 열어 주었다.

면죄부 판매 모습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 요한 테첼이 가톨릭 성당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모습(출처 : lutheranreformation.org)

교황은 면죄부를 직접 발행할 뿐 아니라 발행 권리를 교구에 허가해 주기도 했다. 면죄부 판매 이익의 1/3을 교황청에 지불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해 준 것이었다. 교황에게 허가권을 받은 교구는 면죄부 판매로 이익을 얻게 되면서 거대하고 사치스런 성당을 짓는 데 혈안이 되었다. 13세기 세인트폴 성당의 건축 장부를 보면, 800개의 면죄부를 판매해 성가대석을 화려하게 보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범죄가 들끓는 도시일수록 면죄부 판매는 높은 수익을 올렸고 가톨릭 성당은 더욱 크고 화려해졌다.

면죄부 수익으로 건축 자금을 이용한 성당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16세기에 재건된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베드로 대성당은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에 위치하며 그 자체로 가톨릭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쥐들이 활보하던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하는 자금은 면죄부에서 왔다. 특히 교황청은 가톨릭의 전통인 ‘희년(禧年)’을 교묘히 이용해 더욱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희년이란 25년마다 한 번씩 교황이 대대적으로 죄를 사면해 주는 해로, 이해에 로마에서는 희년 축제가 열려 베드로 성당을 찾아온 순례객들에게 면죄부를 판매했다. 희년 축제란 곧 면죄부 판매 축제라 할 수 있었다. 뜻깊은 희년에 로마를 찾아오는 순례객들이 넘쳐나면서 면죄부 수익 또한 최고치를 달렸다.

경제 감각이 뛰어났던 교황 레오 10세(1475~1521)는 1525년에 돌아올 희년 축제를 10년이나 앞당겨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희년에 판매할 면죄부를 ‘희년 사상 가장 거룩한 면죄부’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사전 판매했던 것이었다.

또 교황 레오 10세는 면죄부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두 명의 인물을 영입했다. 한 명은 독일의 전설적인 사업가 야코프 푸거로, 교황은 면죄부의 판매권을 푸거에게 허가해 주었다. 수익률을 극대화시키는 사업가 손에서 면죄부는 전략적인 히트 상품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푸거는 면죄부의 사면 효과를 8년으로 한정시켰던 것이다. 이는 8년마다 면죄부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고 이익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도사인 요한 테첼이었다. 교황은 그에게 ‘사면관’(pardoners)이라는 직함을 주어 면죄부 판매와 수금을 총괄하게 했다. 그 자신이 간음죄를 범했던 테첼은 “면죄부로 사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면죄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합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면죄부 수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1506년 면죄부 판매로 재건축이 시작된 베드로 대성당은 1626년 완공되었고, 공사 기간이 100년이 넘기 때문에 전체 건축 비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건축비가 54억~84억 달러(6조 3천억 원~9조8천억 원)로 추정된다니 그중 면죄부로 조달한 비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33년 독일 나치 정권과 교황청에 제국종교협약 체결하는 모습

1933년 독일 나치 정권과 교황청이 ‘제국종교협약(Reichskonkordat)’을 체결하는 모습. 탁자 중앙에 앉아 있는 안경 쓴 인물이 교황청 대표인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이다. 그는 바로 다음번 교황 비오 12세로 선출되었다. (출처:commons.m.wikimedia.org)

교황청이 오랫동안 면죄부를 발행한 것은 경제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면죄부는 교황청만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고, 면죄부를 발행하면 무지한 대중이 몰려와 금고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정치 세력과의 협상이었다.

1933년 교황청 대표인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그는 바로 다음번 교황인 비오 12세로 선출되었다.)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제국종교협약(Reichskonkordat)’을 맺었다. 교황청이 나치 정당에 정치적인 지원을 해 주는 대가로 히틀러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교황청에 제공했다. 그것은 독일 국민들이 납부하는 ‘교회세(Kirchensteuer)’였다.

https://theweekly.co.kr/wp-content/uploads/2019/11/교황비오-11세와-히틀러

제국종교협약을 맺을 1933년 당시의 교황 비오 11세(왼쪽)와 나치의 수괴 히틀러.

독일 국민은 태어나자마자 소속 교회가 기록되고 소득이 생기는 순간부터 소득세의 8~9%를 차지하는 교회세가 국고로 들어갔다가 독일의 가톨릭교회로 보내지는데, 히틀러와 교황청이 협약을 맺은 후로 거액의 교회세가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에만 약 1억 달러의 교회세가 교황청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개명천지한 세상에서 면죄부는 더 이상 판매할 수 없지만 교회세는 지금도 독일 국민의 월급에서 징수되고 있다. 악명 높았던 히틀러와 나치 정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교회세는 지금도 가톨릭의 금고를 살찌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더-타임즈

(왼쪽)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저널> 2019.9.3.자는 교황청의 재정 위기를 다각도로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오른쪽) 영국의 유력지인 <더 타임즈> 2019.10.21.자에 바티칸의 재정 위기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2019년 9월과 10월에 <월스트리트저널>과 <더 타임즈>에는 뜻밖의 기사가 실렸다. 교황청의 재정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유력지들이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교황청의 재정 위기를 보도했으나 기사를 접한 네티즌은 “면죄부 팔면 되겠네.(sjmu****)” “예수님 돈 좀 만들어 주세요.(matt****)” 하며 교황청의 위기를 전혀 우려하지 않고 있다. 신묘한 경제 비법으로 위기를 돌파해 온 그들의 능력을 전 세계인들이 신뢰하는 듯하다.

승자와 패자가 수없이 뒤바뀌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도 변함없이 이익을 취하는 자가 진정한 경제의 승자라면 가톨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간 어떤 변수 속에서도 이익을 취해 온 그들이 이번에는 어떠한 묘책으로 재정 위기를 넘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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