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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좀 살려달라는 소리에 귀가 따가우셨대요’ (김영순 권사/전주교회)

김영순 권사 / 천부교 전주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253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북받쳐요.”
올해 80세인 김영순 권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일제 치하 처녀들을 정신대로 끌고 간다는 소리에 부모님이 산골 마을의 청년에게 일찍 시집을 보냈다. 6·25전쟁이 나고 남편은 군에 입대해 5년의 군대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정상이 아니었다. 산골에서만 살던 남편은 전쟁중에 사람을 죽이고 죽는 광경을 보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인지 정신이상자가 되어있었다. 집안 살림을 내던지고 부수는 일은 다반사였고 아무에게나 손찌검을 하였으며 다 된 농사를 망치는 등 난동을 부리고 다녔다.

유명하다는 한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다 먹이기도 했고,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도 해보았으나 남편의 난폭한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정신과 치료를 한다는 전주화산병원에 입원도 해보았지만 차도가 없어 한 달만에 퇴원을 했다. 비싼 치료비 대느라 살림 기반이던 논까지 팔고 살기가 막막해졌다.

희망이라곤 없는 괴로운 생활 속에 죽을 생각을 했다. 집근처 산에 올랐다. 큰 바위 앞에 서서 떨어져 자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늙은 부모님과 어린 아이들 생각을 하니 부모에게 씻지 못할 불효가 되겠고, 고아가 될 아이들을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수도 없어 잔디밭을 쥐어 뜯으며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를 좀 살려 주세요’ 울부짖으며 애원을 했다. 손톱이 다 뒤집어 까지도록 잔디밭을 쥐어 뜯으며 울다 보니 날이 저물고 컴컴해져서 산에서 내려왔다.

다니던 기성교회 목사가 어느날부터인가 설교 시간에 박태선 장로님과 신앙촌에 대한 비방을 계속해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곧이 곧대로 들었지만 계속되는 비방에 반발이 생겼다. 내눈으로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 차에 하나님의 집회에서 은혜 받고 풍으로 오그라진 손이 펴졌다는 할머니 한 분이 전주전도관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남편의 병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간 전주전도관. 평소 같으면 단상의 목사를 끌어내리는 등 난동을 부리던 남편은 무릎을 딱 꿇고 얌전히 찬송을 하는 것이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덕소신앙촌에 가서 남편이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돌아온 후 집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남편 때문에 항상 불안해 하던 집안에 남편의 병이 나으니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때의 감사함은 무어라 표현 할 수가 없다.

기장신앙촌이 건설되고 몇년 후 축복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 말씀을 하시다가 “저 산골 아낙네 한 분이 가정에 파탄을 만나 너무너무 살기가 힘드니까 하나님 나 살려 달라고 잔디밭을 쥐어 뜯고 산에서 우는데, 손톱이 다 뒤집어 까지도록 울부짖는 소리에 내 귀가 따가웠어. 내 귀가 아팠어. 그 사람이 지금 여기 와서 앉았어.” 바로 김영순 권사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본 듯이 저렇게 야무지게 말씀을 하실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 권사는 대성통곡을 했다. “좀 일어나 봐. 저기 와 앉았어. 내가 불러냈어.” 안타깝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그때는 북받치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그대로 앉아 울기만 했었다. 김 권사의 귀에는 그때의 하나님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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