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수감사절.
여기 추수한 바 모든 알곡이라고 하는 것은 곡식의 추수가 아닌 것이에요. “추수한 바 모든 알곡 천국 창에 들이니” 하는 것은 세상 곡식이 천국 창고에 들어가는 게 아닌 것이에요. 이건 추림을 받은 자요, 알곡인 것이에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인다는 것은 바로 천국 창인 것이에요.
‘천국 창고에 들인 후 주가 베푼 연회석에 우리가 다 가서 참예하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추수한 바 모든 알곡 천국 창에 들인 후 주가 베푼 연회석에 우리 들어가겠네.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도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이 추수 찬송은 인생의 추수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고로 매시간 아니라 1초 1초 하나님은 살피시는 거예요. 마음속 전체를 감찰하시는 불꽃같은 눈으로 각자 각자의 그 모든 것을 살피시고 기억하시는 거예요. 그저 뭐 갖은 짓을 다 해도 그날에 가서 뭐 통과가 되는 게 있나 하는 건 꿈에도 바라지 마세요. 세상과는 달라요.
1초 1초의 지금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전부 달아서 기록하는 거예요. 그게 그날에 가서 다 드러나고 심판대 앞에 가서 드러나는 거지요. 그런고로 일주일 동안 갖은 짓을 다 하다가 행세꾼같이 나와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게 돼 있어요.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세상에 과학적으로 정확히 한다는 것도 다 그 기록이 나와요. 전부 기계가 컴퓨터화했어요. 컴퓨터가, 전자 두뇌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럼 세상 과학적으로 기계가 움직이는 것도 전체 기록이 나오는데, 하물며 인간이 영원히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이 법도를 어기는 자는 영원히 지옥 간다는데 무슨 걸 다 어겨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여호와가 아닌 것이에요.
그런고로 여러분들에게 다시 말해요.
아주 세밀하신 하나님, 아주 정확하신 하나님, 아주 빈틈없는 하나님이에요. 그 모든 마음의 움직이는 것 전체를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언제든지 그 모든 것을 살피니, 기동하는 전체를 살피니,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여 구원을 구분 지으리라 하는 거예요. 심판의 권세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고로 그 심판은 두려운 것이 곧 거기에 있는 것이에요. 『너희는 자유율법대로 심판받을 줄 알고 행하라』 (야고보 2:12) 하는 것이 양심의 법인 것이에요. 생각으로 마음으로 눈길로도 범법하지 못하게 돼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에게 가르친 법은 곧 그 법인 것이에요.
‘아 마이크가 조그만 것, 참 이렇게 울려 나가는 탐스러운 것, 가지고 싶다.’ 하는 맘이 막 끓어서 올라왔어도 손이 가서 이것을 넣기 전에는 죄가 아니에요. 손이 나가는 데까지라도 그 만져 보기 위하여 나갔겠지 하는 걸로 법에 걸리지 않아요. 그러나 주의 법은 ‘아 요거 탐난다. 갖고 싶다.’ 하는 마음이 벌써 도적한 죄로 정해진 게 되는 거예요. 그 마음이 벌써 동할 적에 되는 거예요.
미로운 여성을 보고, 미로운 남성을 보고 음란한 생각이 조금 품어질 적에 그는 간음을 범함과 같다 하는 것이 주의 법인 것이에요.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눈길로도 손끝 하나도 범법하지 않아야 여러분들이 구원에 이르지 구원에 못 이른다.’ 하는 거예요.
그럼 『자유율법대로 심판받을 줄 알고 행하라』는 성경에 있지마는 왜 기성교회 전체가 모르고, 전체가 모르느냐 그거예요. 예수 알고 기록했으면 “그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하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지금까지 전체가 알아야지요. 알지를 못했어요.
그 목사와 선교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와 교인이 지금까지 아는 자가 없어요. 우리 교인을 통해서밖에 몰라요. 내 신문을 봤든지 또 녹음한 걸 들었든지, 설교를 와서 들었든지 하기 전에는 몰라요. 구원 얻는 방법을 몰라요. 죄를 억만 가지를 계속 지으면서 구원 얻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죄가 완전히 벗어져야 돼요.
그러나 지금 세상 되어져 가는 걸 보면 “주여” 부르면 그거 다 용서한다 하는.
『믿음으로 되는 거지 행함으로 되는 게 아니다』 (로마 3:28) 그런 것에 결부시켜서 전부 멸망의 자식 만든 거예요. 목사들이 “예배당 문 안에만 들어와도 벌써 주를 믿는 거요, 천당 가기로 정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 얻으리라』 (로마 10:13) 하는 그런 것을 결부시켜 가지고, 하나님 그거 다 용서한다 하는. 마지막 “주여” 하고 부르면 구원 얻는다는 게. 그런 식으로 가르친 게 지금 기성교회 가르침이라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희미한 걸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머리에 박혀서 힘도 안 쓰는 거지요. 그 악질의 가르침에 죄를 지어도 덮어놓고 구원 얻는다는 거예요. 인간이 죄 안 지을 수 있나, 죄를 지어도 구원 얻는다는 이거에 지금 썩어서 힘을 안 쓴다는 걸 아세요.
그럼 이제 타락된 부흥사가 있어요. 그는 열심히 믿어서 신학교 갔고, 또 목사가 돼 목회 일을 오래 보다가 부흥사로 명성을 날려 많은 교인을 이끌 정도의 부흥사예요. 그러나 타락이 돼 가지고 기생집에 가 술을 먹고 춤을 추고 “아, 이런 좋은 세상을 왜 못 보고 내가 목사 일을 지냈노.” 후회를 하면서 둥당거리면서 춤을 추다가 마지막엔 타락이 돼 기생첩까지 얻고 갔다는 것이에요.
그럼 이제 질문하는 중에 “그럼 예배당 문 안에 갓 들어온 사람도 천당 가기로 정했으면, 명성을 날리던 부흥사는 더 좋은 천당 가기로 정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니까 시인하는 거예요. “그다음 타락이 돼 여지없는 그 부흥사가 구원 얻게끔 책정하는 법이 있습니까?” 질문하니 얼굴이 붉어지고 답변을 못 하는 것이에요.
그런 모순이 어디 있냐 그거예요. 기생집에 가 술을 먹든, 춤을 추든, 뭐 갖은 걸 다 하든, 첩을 얻든, 무슨 짓을 하든 천당 가기로 정해졌다는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요? 그런 구원이 어디 있어요? 그대로 엉터리라는 것을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이에요.
목사들, 선교사들도 교회 2층에서 설교를 잠깐 하는 거예요. 기껏해야 5분, 길어야 10분 정도 하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 재즈곡을 틀어 놓고 갖은 춤들을 추며 돌아가고, 그걸로써 교인을 모은다는 정도가 벌써 옛날부터 되는 거예요. 왜? 너무도 타락이 된 고로 재즈곡같이 하면서 굉장히 요란하게 그 춤추며 돌아가는 거예요. 교회의 타락상을 반영시키는 게 되어지는 거예요. 이 정도 됐구나 하는 그게 한심한 상태가 되어지는 거예요.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세상에 음란이라는 걸 퍼뜨린 것이 예수교가 원조예요. 음탕한 거라는 게, 베드로도 성경에 쓴 게 서로 그대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베드로전 5:14) 입맞춤으로 서로 사랑을 하라. 성경에 전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 놓으니까 친구 부인뿐만 아니고 전체 그게 흠이 아닌 게 되지요. 그 어머니가 오면 아들과 그렇게 안고 돌아가도 흠이 아닌 정도가 되지요. 어머니라도 성숙한 아들이면 안 되지 않아요? 너 나 할 것 없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하는 데는 괜찮다.’ 하는 게 되어서 그토록 타락이 된 거예요. 문란한 게 끝이 없어요.
죄가 이미 있는 것도 씻고 다시는 죄를 안 지어야 되는데, 계속 더러운 죄를 지으면서 천당을 가는 줄 아는 거예요. 이게 예수에게 책임이 있어요. 죄 까닭에 죽게 되었으면 그 죄를 어떻게 씻어야 구원을 얻는가 하는 근본을 알아야 돼요. 가장 요긴한 포인트지요. 예수 자신이 죄 씻는 방법을 몰랐고, 죄가 어떻게 해야 해결되는지 방법을 모른 고로, 온 천하 인생이 지금까지 2,000년 동안 희미한 상태예요.
예수가 구원의 주인공이라고 자처해 가지고 지금까지 2,000년 행세했어요. 온 세상 인간이 거기에 미혹돼서 죄를 자꾸 불리고 구원과는 너무도 동떨어지게 멀어진다 그거예요. 반대 방향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거예요. 그 소경이 소경을 가르쳐서 지금 전체가 소경이었던 거예요.
뭐 긴말하지 않을래요. 가장 나쁜 종교는 하나님이 아닌 걸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걸 가지고, 마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대로 믿게 하는 이게 가장 하나님의 원수예요.
가령 비유컨대 세상에 제일 밝은 게 태양이니 하나님이 태양이지요. 그런데 예수가, 새까만 죄덩이가 태양이라고 온 세상에 그 모든 걸 막아버린 거예요. 그걸 벗길 사람이 없어요. 구원의 길은 여기에서 터지지 구원 얻을 길이 없어요.
그런고로 여지없이 새까만 놈이 자기가 하나님의 태양이라 하면서 전 세계가 자기를 바라게 만들어, 새까만 예수라는 마귀가 가로막은 거예요. 이걸 잡아 꺾어 치는 자가 있을 적에야 그게 뚫고 하나님의 태양의 빛이 비치게 돼 있어요.
거기에 전부 향한. 그런고로 거리끼는 자요, 가로막은 자요, 수많은 구원 얻을 자를 구원 못 얻게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같이 구렁텅이 들어간다』(마태 15:14)는 자신이 예수였었다 하는 걸 분명히 알겠죠?
예수는 지옥에 가도 수많은 수를 지옥의 구렁텅이에 쓸어 넣은 고로, 또한 마지막 때에 가장 방해를 먹힌 것이 예수에 속한 것들인 고로, 헐하게 의의 수를, 끝도 없이 수를 늘릴 수 있는 것을 가로막은 것이 예수인 고로 그의 죄의 책임은 그 책임까지 전체를 지고 기막힌 지옥에 떨어질 것이에요. 최고의 지옥에 쓸어 넣을 것을 내가 결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