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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할때는 온 힘을 다하고, 쉴 때는 즐겁게 쉬고 … 그렇게 기쁘게 일했습니다”

발행일 발행호수 2633

신앙촌 환경관리부서 중 하나인 삼창고에서 일하는 장원호 권사. 그는 과거 덕소신앙촌에서 일했다고 한다. 한번은 일 때문에 삼창고에 들렀다가 장 권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스치듯이 들었던 그 시절 덕소신앙촌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장원호 권사에게 미리 찾아둔 사진 한 장을 건네며, 전에 말해주셨던 덕소신앙촌의 추억을 조금 더 상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젊은 시절 그가 동료들과 함께 덕소신앙촌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받은 장 권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1960년대 덕소신앙촌에서 일하는 장원호 권사와 동료들의 사진. 맨 왼쪽에 장난스레 웃고있는 청년이 바로 장원호 권사다.

“그때 어떤 말이 있었냐면 ‘신앙촌에는 술, 담배 빼고 다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제품이 덕소신앙촌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죠. 식품, 생필품, 섬유제품은 물론 건축자재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었어요.”

실제로 1960년대 덕소신앙촌에서는 간장, 두부, 과자, 콜라, 국수 등 식품에서부터 메리야스, 양말, 수예, 담요 등 섬유제품과 스테인리스 식기, 비누, 화장품, 형광등,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었다. 신앙인들이 정성을 다해 양심껏 만든 신앙촌 제품은 그 품질 또한 우수했고,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제품이 그렇게 인기가 많으니 신앙촌의 공장들은 활기차게 돌아갔어요. 저도 그때 동료들과 아주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나요.”

건축자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근무 시간에는 누구보다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장 권사. 퇴근 후에는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20대 초반 또래 친구들과 축구, 배구, 농구 등 운동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가끔은 동료들과 자전거를 타고 덕소 강변을 따라 달리기도 했다며 아주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다 보면 저 멀리서 신앙촌 소비조합이 보이기도 해요. 그럼 아는 척한다고 손 흔들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하여튼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았어요.”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인 20대 초반의 장 권사는 간식도 자주 사 먹었다고 했다.

“건축자재 공장 앞에는 비누공장이 있었고, 그 앞이 도매소였어요. 도매소 가까운 곳에는 지금의 맛길처럼 도넛, 튀김, 인절미 등 간식을 판매하는 곳도 있어서 친구들과 많이 사 먹었죠. 또 제과 공장 옆이 바로 아이스크림 공장이었는데, 지금처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아주 딱딱한 아이스크림이었어요. 한 개에 5원인가, 10원인가 했었는데 더울 때는 300원어치 사서 수북하게 쌓아놓고 와다닥와다닥 깨물어 먹었어요. 그러면 금방 시원해졌거든요.”

하지만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은 하나님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각 공장을 돌며 직접 둘러보시는 일이 많았어요. 직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죠. 외국인 바이어들도 신앙촌에 자주 데려오셨던 기억이 나요. 또 안찰을 받으러 하나님께 가면 ‘어디서 왔어?’ 하시며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어요. 다들 안찰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늘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추수감사절이면 더욱 풍성한 대접을 해주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추수감사절에 직접 축복해주신 인절미를 한아름 주셨는데, 얼마나 많은지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교회에서 내려오는 언덕에서 인절미를 놓쳤더니 그 인절미가 데굴데굴 굴러서 사람보다 먼저 내려가 있었다며 웃는 장 권사였다.

장원호 권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덕소신앙촌에서의 일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 19살의 나이에 덕소신앙촌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 권사는 신앙촌에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고 했다.

“배움이 길고 짧음을 떠나서 이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 이 일을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신다는 것을 느껴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골몰하다 보면 해결책이 생기고, 다음에 할 일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일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어 그는 절대 교만해서는 안 된다며
“자만하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요. 그러니 일할 때만큼은 늘 집중해서 예민하게 일해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장원호 권사. 가을로 물들어가는 군락지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이 참 아름다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요. 지금에 와서야 그 순간이 감사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아는 거죠. 일할 때는 조금 힘들어도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쉴 때는 휴식의 기쁨도 느껴보고. 지금 각 부서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도 그럴 거예요.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방법은 똑같으니까요.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쁘고 즐겁게 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죠.”

이야기를 마치고 씩 웃는 장원호 권사. 그 환한 미소가 덕소신앙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일하던 사진 속 젊은 청년의 미소와 꼭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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