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담요의 추억, 전주 최재운 고객
38년 전 아들 덮던 이불 위에서 손녀딸이 까르르설 대목을 앞두고 한창 분주했던 신앙촌 수예 공장에 반가운 소식이 찾아들었다. 바로 38년 전 신앙촌 담요를 구입했던 고객이 감사의 편지와 담요를 본사에 보내온 것이다. 오랜 시간 신앙촌 담요와 함께했다는 사연의 주인공 최재운 고객(65세)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전주에 사는 최재운 고객의 직업은 택시 기사이다. 여자 기사가 흔치 않던 시절 시작한 일이 10년이 훨씬 넘어 이제는 전주에서 유명한 베테랑 기사가 되었다. 전주 한옥 마을 앞에서 만난 그녀는 직접 개인택시를 몰아 시내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자택으로 가면서 이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세대 때는 신앙촌 제품이 최고였어요. 주부들은 입소문이란 게 있잖아요. 입소문을 타고 신앙촌 제품이 좋다고 소문이 났지요. 그래서 저도 갓난아기였던 아들을 덮어 주려고 신앙촌 담요를 하나 샀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담요에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그 색과 품질이 일품이었어요.”
입소문에 솔깃해서 산 신앙촌 담요는 과연 소문대로 최고였다. 기계로 대충 박은 이불들은 꼭 한 번씩 터져서 수선을 맡겨야 하는데, 40년 가까이 된 신앙촌 담요는 지금까지 바느질 한 번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예쁜 색과 부드러운 결을 처음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매우 놀랍다고 했다.
“얼마 전 우리 손녀가 와서 담요를 꺼내 줬는데 아이가 그 위에서 뒹굴면서 그렇게 좋아했어요. 참 신기하죠? 우리 아들이 아기 때 덮던 이불인데 시간이 흘러 우리 손녀가 또 덮는 거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요즘 세상에 이런 제품은 찾기 힘들다, 이렇게 좋은 제품을 나만 보기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아저씨한테 인터넷으로 신앙촌 본사를 검색해 달라고 해서 감사의 표시로 그동안 사용한 신앙촌 담요를 보내게 된 거예요.”
그녀는 최근엔 값싼 중국산도 많이 들어오고, 품질이야 어떻든 간에 소비자에게 팔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기업주도 많은데 신앙촌같이 정직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있어 고맙다고 했다. 옆에서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은 세상도 시끄러운데 종교마저도 잡음이 있으니 그 어떤 종교도 믿음이 안 갔습니다. 그런데 신앙촌은 신앙인의 양심을 가지고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변함없는 기업 정신으로 더욱 발전하는 기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재운 고객은 앞으로는 요구르트 ‘런’, 생명물간장, 생명물두부와 같은 신앙촌식품도 구입해서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앙촌에 꼭 한번 와 보시라는 기자의 말에 초대해 준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 볼 의향이 있다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에 모두가 웃었다. “생각해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저처럼 이불 하나로 38년 동안 쓰는 사람이 많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건 제 탓이 아니고 물건을 너~무 잘 만든 신앙촌 탓이죠! 호호호”
신앙촌 담요, 삼십팔 년을 우리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겨울에는 엄마가 안아주듯 덮어주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환절기에는 카펫으로 변신, 그 위에서 아이들은 뒹굴며 키를 키웠습니다. 신앙촌 담요, 아이들의 꿈과 키 자라는 소리 다 기억합니다.
신앙촌 담요가 키운 아이가 아빠가 되어 딸과 봄나들이 왔을 때 신앙촌 담요, 할머니는 거실에 다시 폈습니다. 꽃은 한 번 더 활짝 피었습니다.
아이는 담요에 볼을 대고 아빠를 보고 킥킥 웃습니다. 아빠가 담요 위에 오줌을 싸 할머니한테 꾸중 들은 이야기를 담요가 들려주는 모양입니다.
아빠는 삼십팔 년 같이한 담요를 손으로 살며시 쓸어 꽃잎 사이사이 추억을 열어 봅니다.
2016. 1. 26. 최재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