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①

발행일 발행호수 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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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다.(The history of astronomy is a history of receding horizons.)” 이는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남긴 말이다. 천문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한계, 우주의 끝이라고 생각한 지점은 늘 더 먼 우주로 확장되어 왔다. 눈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던 인류는 망원경을 개발해 직접 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우주를 관찰할수록 기존의 이론은 파기되고 새로운 지식을 반영한 이론이 다시 정설로 자리잡아 왔다. 이것이 천문학의 역사다.
천문학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천문학이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우주의 진실에 점차 다가가고 있다면, 종교에는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제시해왔던 우주관이 있다. 인간이 이룩한 과학의 수준은 현재 어디까지 도달해 있으며, 과학의 발달 앞에서 종교의 역사는 어떤 행보를 보여왔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천문학과 종교의 역사를 짚어보며, 과학과 종교가 주장하는 우주의 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 과학이 밝혀온 우주의 역사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지구가 둥글다’든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식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들이 인류의 보편적 상식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 엄격한 과학의 검증을 거쳐왔다. 현대 과학에서 현재 정설로 여기는 우주의 나이 138억 년도 마찬가지다. 이는 단일한 발견이 아니라 오랜 세월 여러 과학자들의 일련의 발견과 검증을 거쳐 산출된 결과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우주는 정지되어 있는 영원불변한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물리학자들은 ‘우주는 정지해 있지 않고 팽창하거나 수축해야 함’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냈다. 1927년 벨기에의 물리학자 조르주 르메트르는 실제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으며, 1931년에는 그 시작이 매우 밀도가 높은 ‘원시 원자’ 상태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것이 우주가 고밀도·고온의 한 점에서 시작해 팽창해 왔다는 빅뱅 이론의 시초가 된다. 우주가 팽창함을 관측으로 증명한 것은 에드윈 허블이다. 1929년 허블은 거리와 적색편이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음을 제시하며,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60여 년 후인 1990년, 그의 이름을 딴 허블우주망원경은 우주에서 직접 은하들의 거리를 측정함으로써 대기의 왜곡 없이 더 정확한 우주 팽창 속도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팽창 속도만으로 현재와 같은 구체적인 우주의 나이를 계산할 수 없었다.

우주 나이 계산의 결정적 전환점은 1965년 ‘빅뱅의 잔광’이라 할 수 있는 ‘우주 배경 복사(CMB,Cosmic Microwave Background)’의 발견이었다. CMB는 우주 전역에서 균일하게 관측되는 마이크로파로, 뜨거운 초기 우주의 빛이 우주의 팽창으로 냉각되며 저에너지의 마이크로파가 되어 퍼져나간 것이다. 이는 빅뱅 이후 38만 년 시점의 빛을 보여주는 화석과 같은 역할을 했다. 21세기에 들어 NASA와 유럽우주국의 위성들은 전례 없는 정밀도로 CMB를 측정했고, 2013년 비로소 과학계는 우주의 나이를 138억 2천만 년으로 확정하였다.<자료1> 이것이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가장 정확한 우주의 나이다.

<자료1> 빅뱅 이론에 따른 우주 팽창의 역사 (출처: 위키피디아)
현재까지 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으로, 빅뱅 이론에 기초한다.

▣ 종교의 우주관과 과학의 충돌

과학이 광활한 우주를 지금의 수준으로 설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에 비해 종교는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자신들의 우주관을 제시해왔다. 그런데 과학이 진실을 확립해 갈수록, 종교에서 제시한 우주관과 실제 관측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앞서 살펴본 ‘우주의 나이’를 들 수 있다. 과학계는 21세기에 우주의 나이를 138억 년이라고 발표했지만, 기독교는 성경에 근거해 6,000년이라고 믿는다. 성경에서는 신이 엿새동안 빛과 어둠, 땅과 하늘, 우주의 천체, 동식물과 인간 등을 창조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때 창조된 인간인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상세히 적어 놓았는데, 17세기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는 족보와 주요 사건 연대를 종합해 ‘세상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창조되었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셔의 계산을 우주 나이의 표준으로 삼는다.<자료2>

<자료2> 창세 시점을 계산한 제임스 어셔의 저서「구약성서 연대기」(출처: archive.org)
1650년 처음으로 출판된 제임스 어셔의 저서「구약성서 연대기」. 본문 첫 장에서 창세 시점을 4004년 10월 23일로 정한다. 성경의 족보와 고문서 등을 종합한 상세한 계산은 100페이지 이상 차지한다. 오늘날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셔의 계산을 우주 나이의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며 지질학이 수백만 년 축적된 지층을 드러내고, 생물학이 진화의 시간을 수억 년 단위로 확장하고, 방사성 연대측정법들이 화석과 지구의 나이를 수억, 수십억 년으로 밝혀내고, 천문학이 별과 은하의 연령을 수십억 년 이상으로 계산하기 시작하자, 6,000년이라는 우주관은 더 이상 자연 세계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기독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우주 창조 6000년 설을 부인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에서 6000년이라는 연대는 성경이 말하는 세계관, 즉 창조의 시작, 타락의 시점, 구원의 선언, 종말의 예정, 이 모든 것을 연속된 시간표로 묶어 놓은 종교의 정체성이 걸린 문제였고, 명백한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압도적인 과학적 증거의 축적 앞에, 수백 년 만에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지지를 철회했던 이론도 있다. 바로 천동설이다. 천동설은 지구를 중심으로 나머지 천체들이 회전한다는 이론으로, 예로부터 서양 천문학의 정설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태양을 중심에 두는 지동설을 제기하고, 1610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금성의 위상 변화와 목성의 위성들을 관측하며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자, 1400년 넘게 유지되던 천동설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교황청은 새로운 진실을 환영하기보다는 천동설에 반대하는 학문적 주장을 탄압했다. 1616년 교황청은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 목록에 올리고, 지동설을 ‘철학적으로 어리석고 신학적으로 이단’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1633년에는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유죄 판결을 하고 평생 가택연금에 처한다.<자료3> 갈릴레오의 재판에 사용된 핵심 증거는 성경의 구절들이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야훼께 외쳤다.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그러자 원수들에게 복수하기를 마칠 때까지 해가 머물렀고 달이 멈추어 섰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태양이 가만히 있다면, 여호수아는 ‘지구야 멈춰라’라고 했어야 했고, 태양이 평소에 움직였기 때문에 태양에게 멈추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또 『해는 떴다가 져서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되돌아가며』라는 전도서 1장 5절의 구절 또한 태양이 움직인다는 증거로 들었으며,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와 같은 시편의 몇몇 구절들을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증거로 들었다. 기독교에서 성경은 신의 말씀이므로 틀릴 수 없었고, 성경 구절은 지동설을 이단으로 판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이에 갈리레오는 “성경은 어떻게 하늘나라에 가는지를 가르치는 것이지,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변론을 했지만, 교회는 성서 해석 독점권까지 침범하는 발언으로 간주하였고, 갈릴레오를 평생 가택연금에 처해 그를 남은 여생 동안 침묵시켰다.

<자료3> 갈릴레오의 재판 (출처: 위키피디아)
17세기,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 갈릴레오는 ‘이단 혐의’로 종교 재판에 회부된다. 갈릴레오는 ‘참된 과학과 참된 신앙은 둘 다 같은 저자, 즉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서로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명확한 전제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 인물이었고, ‘참된 과학을 주장하는 것이 교회를 오류로부터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지동설이 틀렸다며 주장 철회를 강요했다. 이에 응하지 않자 그를 ‘이단 혐의가 강한 자’로 유죄 판결, 종신 가택 연금형에 처해 남은 평생을 침묵시키고, 그의 모든 저서를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올렸다. 그러나 지동설이 참되다는 압도적인 증거가 축적되자, 교회는 359년 만인 1992년에 오류를 인정한다.

갈릴레오 재판은 천동설이 깨지기 힘들었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과학 가설은 보통 새로운 진실이 발견되면 자연스럽게 수정되거나 대체된다. 하지만 천동설은 반대되는 이론의 등장에도 쉽사리 대체되지 못했는데, 큰 이유 중 하나는 ‘교회의 입장과 일치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교회는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반대하면 이단으로 몰아 처벌하는 제도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학자들 대부분이 교회 소속이거나 후원받는 상황으로 지식인을 통제할 권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에 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발표할 때, 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코페르니쿠스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기 전 교황 바오로 3세에게 편지를 썼는데, “제 이론이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괴이한 것으로 보여 논쟁이 커지겠지만, 책이 출판되어 그 안에 담긴 가장 명백한 증거들이 불합리의 안개를 몰아내면 그만큼 감탄과 감사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에서,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하는 모습, 교황에게 미리 허락을 받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행성 운동을 설명하는 케플러의 법칙과 뉴턴 역학이 정립되며 지동설의 이론적 바탕까지 확립되자, 교회는 점차 태도를 바꾸어 1822년 지동설 서적의 출판을 허용했고, 1992년에는 갈릴레오의 재판이 오류였음을 무려 359년 만에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기독교 측에선 “사실 성경은 그런 뜻이 아닌데 사람이 해석을 잘못했다”, “신이 고대인들의 이해 수준에 맞춰서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보기엔 미개해 보이지만 당시 상식 수준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등의 해명을 내놓는다.

하지만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 존재를 믿는 종교라면, 우주에 대한 이해가 시대에 맞춰서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탐구보다 진실을 앞서 비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나서야 과학의 발견을 뒤따라 인정하는 종교의 행보는 진리의 부재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 빅뱅이라는 동아줄을 잡다

과학과의 갈등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시며 명예가 실추돼왔던 가톨릭교회는 반과학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1891년 바티칸 천문대를 설립한다. 당시 교황 레오 13세는 바티칸 천문대 설립 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진정한 빛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신부(교회)를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어둠의 자녀들은 교회를 ‘암흑주의의 벗, 무지의 조장자, 과학과 진보의 적’이라고 비방합니다. (중략) 이 사업으로 실현하려는 계획은 교회와 그 목자들이 인간의 과학이든 신적인 과학이든 참되고 건전한 과학을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고, 격려하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 발전시키고 있음을 모든 이에게 분명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자료4>

<자료4> 바티칸 천문대 설립 취지를 밝힌 교황 레오 13세의 자의교서
가톨릭교회는 반과학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1891년 바티칸 천문대를 설립한다. 이 설립 취지는 1891년 3월 14일 교황 레오 13세의 자의교서 “바티칸 천문대를 복원하고 확장함에 대하여(De Vaticana Specula Astronomica Restituenda Et Amplificanda)”에 명시되어 있다. “진정한 빛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신부(교회)를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어둠의 자녀들은 교회를 ‘암흑주의의 벗, 무지의 조장자, 과학과 진보의 적’이라고 비방합니다. (중략) 이 사업으로 실현하려는 계획은 교회와 그 목자들이 인간의 과학이든 신적인 과학이든 참되고 건전한 과학을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고, 격려하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 발전시키고 있음을 모든 이에게 분명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 같은 교황의 발언은 전도된 과학과 종교의 권위를 드러낸다. 과거 성경 구절을 근거로 과학을 재판하던 종교가, 이제는 과학의 권위를 등에 업어 자신의 권위를 올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바티칸 천문대)

이 같은 교황의 발언은 전도된 과학과 종교의 권위를 드러낸다. 과거 성경 구절을 근거로 과학을 재판하던 종교가, 이제는 과학의 권위를 등에 업어 자신의 권위를 올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This is because religion, which once put science on trial based on biblical passages, is now declaring that it will bolster its own authority by leaning on the authority of science.)

교황청은 1936년에 교황청 과학원을 추가로 설립했고, 1951년 11월 22일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청 과학원 연설에서 빅뱅 이론이 창조 신앙과 조화를 이룬다고 언급하며, 이를 창조에 대한 과학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빅뱅 초기의 강렬한 빛과 에너지 방출이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는 신의 명령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빅뱅을 처음 제안했던 물리학자 르메트르는 이에 경악하며 교황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이론을 신학적 증거로 사용하지 말아달라 요청했다. 물리학자이지만 사제의 신분이기도 했던 르메트르는 과학과 신앙을 별개로 생각했는데, 과학 이론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지만 신학은 진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빅뱅 이론을 신학적 증거로 사용했다가, 나중에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교회의 권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자료5>

<자료5> 1939년 교황청 과학원 총회 중 대화를 나누는 르메트르와 교황 비오12세
1951년 11월 22일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청 과학원 연설에서 빅뱅 이론이 창조 신앙과 조화를 이룬다고 언급하며, 이를 창조에 대한 과학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빅뱅 초기의 강렬한 빛과 에너지 방출이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는 신의 명령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빅뱅을 처음 제안했던 물리학자 르메트르는 이에 경악하며 교황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이론을 신학적 증거로 사용하지 말아달라 요청했다. 물리학자이지만 사제의 신분이기도 했던 르메트르는 과학과 신앙을 별개로 생각했고, 과학 이론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지만 신학은 진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빅뱅 이론을 신학적 증거로 사용했다가, 나중에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교회의 권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르메트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빅뱅 이론을 가톨릭 사제가 제안했음을 강조하며, 창조의 과학적 증거로 선전해왔다. 하지만 현재 빅뱅 이론에 기반한 우주 모델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천체들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르메트르의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출처: Lambert,『The Atom of the Universe』)

그러나 르메트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빅뱅 이론을 가톨릭 사제가 제안했음을 강조하며, 창조의 과학적 증거로 선전해왔다. 과거에는 성경과 일치한다며 천동설을 지지했던 가톨릭이 이제는 빅뱅이라는 동아줄을 부여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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