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이번 이슬성신절 음악순서에서는 시온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시온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로, 단원들의 레슨을 맡고 있는 베테랑 음악가들이 제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이슬성신절 무대에서는 비올리스트 박소영 씨도 함께했다. 박 씨는 부산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현재 지역 오케스트라 두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온오케스트라와의 인연은 현악파트의 레슨을 맡으며 오랫동안 시온오케스트라와 함께해 오고 있는 홍기정 씨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함께 음악을 공부한 동기이기도 하다. “홍기정 선생님 소개로 비올라 레슨을 하게 되었고 작년부터는 단원들과 함께 연주도 하게 됐어요.” 처음 연습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쉽지 않은 곡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연습이 이어질수록 단원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꾸준히 연습에 임하는 태도가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부분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다들 굉장히 열심히 연습하시거든요. 개인 연습도 꾸준히 하시고요.” 박 씨는 시온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강점으로 단원들의 성실함과 열정을 꼽았다. 각자 시간을 내어 연습하고, 전공자가 아님에도 수준 높은 곡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곡은 개인 연습이 정말 중요해요. 각자가 충분히 준비돼 있어야 전체 합주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거든요. 시온오케스트라는 그런 노력이 잘 보이는 팀이에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시고요. 또 연습하다 보면 굉장히 밝고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어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서로의 호흡이라고 설명했다. “혼자 잘 연주하는 것보다 함께 맞춰가는 과정이 더 중요해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 같이 숨 쉬며 호흡을 맞출 때 음악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거든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해 온 박소영 씨는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매력으로 여러 악기가 하나의 선율 안에서 어우러지는 순간을 꼽았다. 혼자 하는 연주도 좋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울림 속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연주를 하면 곡 안에서 멜로디가 여러 악기를 따라 흐르거든요. 그런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이 참 좋아요. 그 순간이 오케스트라 활동의 가장 큰 즐거움이죠. 또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곡을 썼는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생각하면서 연주하면 음악이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슬성신절 무대를 함께한 소감도 전했다. “많은 분 앞에서 연주하는 만큼 긴장감도 있지만,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 참여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신앙촌 다시 찾아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신앙촌 다시 찾아

1970년대 신앙촌 농구팀 선수로 활약했던 김옥자 씨가 이슬성신절 예배 참석을 위해 50년 만에 신앙촌을 찾았다. 의정부에 사는 동생이 신앙촌을 먼저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크게 달라진 신앙촌의 모습을 보며 김옥자 씨는 벅찬 감격에 차 있었다. “굉장히 마음이 들떠서 왔어요. 몰라보게 변한 모습에 많이 놀랐고, 아름답게 발전해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감탄하던 김 씨는 그가 어린 시절 땀 흘리며 운동했던 옛 건물, 지금의 학생강당 앞 롤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시 추억에 잠겼다. “롤러장 쪽 초소를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요. 나무들 빼고는 옛날 모습 그대로예요. 옆 마당에서는 노루, 토끼, 닭도 길렀는데, 저희는 어리다고 구경도 자주 하곤 했어요.” 김 씨의 신앙촌 생활은 유년 시절 뜻밖의 기회로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할머니를 도와 들에서 일하며 자라던 김 씨는 전도관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신앙촌에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한다고 해서 저와 친구, 동네 언니가 신앙촌에 오게 됐습니다.” 허락을 받긴 했지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김옥자 씨는 너무 어린 나이 탓에 신앙촌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김 씨가 돌아가지 않겠다며 울며 매달린 끝에 겨우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맡게 되면서 신앙촌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15명을 뽑아 농구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때 선수로 선발되었던 것이죠.”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던 농구팀 선수들은 부산 구덕체육관이나 마산, 삼천포 등에서 실업팀 경기가 열리면 오픈게임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촌 응원단을 데리고 오셔서 경기를 지켜보셨다. “당시 하나님께서 본부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시다가 선수들이 다치면 ‘쉭’ 하고 축복해 주셨는데, 그러면 선수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어요. 하나님께서 일반인 오비(OB)팀과 경기를 같이 뛰실 때도 다친 선수들에게 똑같이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외롭게 자란 김 씨와 그의 친구를 유독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엄마 없는 친구와 저를 참 잘 챙겨주셨어요. 운동화부터 옷, 운동복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께서 다 마련해 주셨고, 직접 어느 공장에 가서 옷을 맞춰 입으라고도 하셨어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아기들아 모여라’ 하시면 과잣값이라고 봉투에 3,000원씩 넣어 주셨는데 그때는 그 돈이 정말 컸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집회가 열릴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교인들이 가져온 생수통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고, 저희도 생명물과 눈 안찰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단에 서시면 주변으로 광채가 정말 대단했어요. 항상 주변에 빛이 나니까 ‘어떻게 저렇게 빛이 날까’ 늘 생각을 했지요. 하나님께서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납니다.” 19세 무렵, 더 큰 일반 실업팀에서 운동하고 싶다는 마음에 신앙촌을 떠났지만 농구를 계속하지는 않았다. 김 씨가 나가고 얼마 후 농구팀도 해체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 사회에 나가 살면서 신앙촌과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며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김 씨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왜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럴 때는 내가 신앙촌에서 직접 살았기 때문에 내가 증인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부분을 얘기해 줍니다. 본 그대로를 말해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50년 만에 다시 찾은 소회를 전했다. “살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신앙촌에 있을 때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 신앙촌을 최고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부모님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과 신앙촌 사람들에게 받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런 복을 어디서 또 받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랑은 여태껏 어디에서도 못 받아봤습니다. 그래서 신앙촌 입구에 있는 하나님 사진을 보고 옛날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좀 더 빨리 이곳을 찾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2대째 이어온 신뢰

2대째 이어온 신뢰

제지·생활용품 기업 깨끗한나라 제품을 신앙촌 한일슈퍼에 납품하고 있는 위원일 씨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약 15년간 신앙촌 납품을 맡아온 아버지에 이어 위 씨가 직접 맡은 지도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아버지는 신앙촌 사람들에 대해 “다 좋은 분들이고, 늘 잘 대해주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위 씨는 직접 거래를 이어가며 그 말을 자연스럽게 실감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안정적인 거래를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 씨는 신앙촌을 오가며 변화하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예전보다 지금은 진입 공간이 넓어져 훨씬 수월해졌어요. 올 때마다 환경이 더 정돈되고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신앙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본인이 납품을 시작하면서 이슬성신절 행사에 초청받아 처음 식품단지를 둘러봤을 때, 분수대와 꽃들, 깨끗하게 정돈된 풍경과 맑은 공기가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평소 바쁜 일상 탓에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어려웠던 위 씨는 2022년 추수감사절에 어머니와 함께 신앙촌을 찾았다.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예쁘다, 좋다’ 하시면서 계속 둘러보셨죠. 신앙촌 안에 이렇게 큰 규모의 공장과 식품단지가 아름답게 조성돼 있는 걸 신기해하셨고,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셔서 더 기뻐하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식품단지 곳곳을 걸으며 사진을 남기고, 호숫가에 앉아 점심도시락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위 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소중한 추억이 된 하루였다”고 말했다. 예배에 참석했던 경험에 대해 위 씨는 “종교에 대해 깊이 아는 편은 아니지만, 해마다 설교 말씀을 듣다 보니 익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신앙촌에 대한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신앙촌을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직접 와보지 않은 채 추측으로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제가 직접 보고 느낀 모습과는 달랐거든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위 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좋은 관계로 거래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고, 신앙촌도 앞으로 더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