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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핀 시신을 정치적 제물이 되게 할 수는 없었죠’

당시 예배 인도했던 관장들의 이야기

“조환동이는 축복일에 갈 때면 버스에서 노래를 잘 불러 교인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던 재간둥이었지요.” 조환동 군의 잘 핀 시신을 데모대에게 내 줄 수 없어 끝까지 지켜냈던 관장들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제 데모대에게 맞아 죽는구나”라고 각오했었다고 했다. 시위대는 노제를 지내며 운집한 군중을 선동 하려고 발인 예배를 마친 조환동 군의 관을 빨리 내놓으라고 불같이 독촉을 했고 예배를 인도하는 […]

미국에서 준비하던 이슬성신절

미국에서 준비하던 이슬성신절

윤영희 학생관장 / 강릉교회

이슬성신절 무대에 서기 위해 우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일주일에 3번 이상 제단에 모여서 합창 연습을 하였다. 합창하시는 분들 모두가 나름대로 직장이 있었고 제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힘들다는 불평 없이 모이는 시간에 다 모여서 연습을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뵙는다는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장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연습에 임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무대이기에 […]

아직도 강의하는 78세 현역 선생님

아직도 강의하는 78세 현역 선생님

경기도 소사신앙촌에 세워진 시온고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50주년을 맞이한다. 개교 당시부터 지금까지 시온고등학교에 몸담고 있는 석세조(石世助.78) 교장을 지난 10일 시온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만났다. 3일 전부터 설사로 고생하고 있다는 석 교장은 살짝 핼쑥했지만 너무 고운(?)피부에 꼿꼿한 허리와 걸음걸이까지 거기다 소년 같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시온고등학교 개교 50년을 축하드립니다. “1958년 초에 옹진학원을 인수했어요. 그 때 인수위원회가 다섯 사람이었는데 그 […]

폐는 하나지만 아직 건강… 요즘도 학생들에 특강

폐는 하나지만 아직 건강… 요즘도 학생들에 특강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반공 검사가 되려고 했던 석세조 교장은 대학 진학을 2달 앞둔 어느날 작은 아버지 석주명 박사가 2~30년 뒤에는 버터와 치즈 먹는 세상이 된다는 말과 함께 ‘국민의 영양 문제를 해결하는 길로 가라.”는 충고를 하는 바람에 서울대 수의과 대학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한 운동으로 대학에 진학 후 태권부를 만들고 북파공작원인 HID 교육에 조교로 나가기도 했다. 1963년 […]

시온고와 탁구

시온고와 탁구

시온고교 탁구부는 석세조 교장이 교감으로 취임하던 1965년 창단되었다. 1971년부터 시온 탁구부 시대의 막이 오르게 된다. 각종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전국을 제패하게 되는데 그해 열렸던 제17회 전국 남녀 종별 탁구 선수권대회를 비롯 제25회 백호기 쟁탈 전국 남녀 시도 대항 탁구대회와 제52회 전국체전에서 모두 남고부 단체 1위를 차지한다. 1972년 제18회 전국 남녀 종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선 남고부 단체 […]

‘국토 건설의 표본’ 신앙촌 전시회

‘국토 건설의 표본’ 신앙촌 전시회

1961년 5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강연과 신앙촌 건설 영화 상영

1957년 11월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소사 신앙촌은 외부의 도움과 원조 없이 자력으로 일군 신앙인의 마을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파이프를 가설했고 깨끗하고 산뜻하게 지어진 주택이 있는 신앙촌은 건설의 신화와 더불어 경제개발을 서두르고 있던 당시 국내 상황에서 개발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1961년 5월. 신앙촌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때이지만 당시 시공관에서 열린 ‘제 1회 국토 건설 이념 보급 […]

당신의 신앙촌은…

당신의 신앙촌은…

지난해 우리나라 GNP는 29,899달러였다. 1961년 GNP는 100달러. 지금으로 부터 거의 반 세기 전 한국의 모습은 너무도 가난하고 초라했다. 그와 대비해 당시에 건설된 신앙촌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눈을 의심할만큼 경이로웠다. 오죽했으면 국가 기관에서 ‘신앙촌 전시회’를 가졌을까?

마사전도관의 추억 – 처음 은혜를 받은 마사전도관에서

마사전도관의 추억 – 처음 은혜를 받은 마사전도관에서

이정길 권사 / 안동교회

내가 처음 은혜받은 곳인 경상북도 안동군 북후면 연곡리 마사전도관 앞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 보면 낡은 집 한 채로 보일 것이다. 비록 크지는 않고 아담한 교회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이슬성신을 보았고 향취를 처음 맡았다. 뒷줄 오른 쪽에서 두 번째 서있는 것이 나이고, 맨 오른 쪽에 한복 입고 있는 이가 나를 전도한 나의 절친한 친구이다. 친구의 전도로 천부교회에 […]

나의 특전대 시절 – 특별전도대는 인기만점 청와대 초청 받기도

나의 특전대 시절 – 특별전도대는 인기만점 청와대 초청 받기도

김춘옥 권사 / 기장신앙촌

특별전도대는 초창기에 감람나무 전도에 앞정선 전도 조직으로 유명하다. 나는 1967년도에 덕소에서 특전대에 입단하였는데 당시 특전대는 약 3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 특전대는 주로 노방전도에 앞장을 서서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특전대가 우렁차게 찬송을 연주하면서 시내를 행진하면 후미에는 늘 어린이들이 줄지어 따라다니곤 하였다. 우리는 덕소 신앙촌의 각 공장에 배속되어 낮에는 맡은 바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적어도 […]

주일마다 하루에 3천리를 달려 11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시다

주일마다 하루에 3천리를 달려 11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시다

주일마다 하루에 3천리(1,200km)를 달려 11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시다

1970년대 하나님께서는 주일날 마다 기장신앙촌을 출발하여 수도권 식구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서울로 달려오셨다. 항공편으로서는 수많은 서울의 집회 시간을 정확히 맞출 수 없었기에 육로를 이용 하실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1970년 7월 경부 고속도로가 완공되어 하나님의 서울행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먼 길이었다. 부산에서 서울 인터체인지까지 1070리, 왕복 2140리에 덕소신앙촌을 시작으로 서울의 8개 중앙과 인천, 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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