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박 장로님은 하늘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구나!”

“박 장로님은 하늘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구나!”

저는 1938년 경북 월성군 외동면의 작은 마을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성실한 분들이셨지만, 6.25전쟁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이웃집에서 쌀을 얻어먹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15살 때부터 학교에 가는 대신 산에서 나무를 베어 장터에 팔아 가난한 살림에 보태곤 했습니다. 매 끼니 챙겨 먹기도 힘들었던 곤궁한 삶 속에서 저는 신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집 근처 장로교회에 다니며 꾸준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1955년의 어느 날, 제가 다니던 교회 선생님이 말하기를 얼마 전에 박태선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부산 공설운동장 집회에 다녀왔는데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제부터 박장로님께 은혜 받은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며, 함께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확신에 차 이야기하는 선생님을 보며 ‘도대체 선생님이 말하는 은혜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그다음 주일에 바로 선생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 곳은 사람들이 모여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기성 교회와 달리 예배시간에 박수를 치면서 찬송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시는 전도사님은 힘차게 박수를 치며 찬송을 인도하셨는데, 처음에는 그 광경이 조금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예배시간이 어찌나 즐겁고 기쁘던지 저도 모르게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던 중 어느 순간부터 기가 막히게 좋은 향이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알아보려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향기가 날만한 것은 예배실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백합꽃 향기처럼 진한 그 향기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 부산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젊고 잘생긴 분이었는데, 힘차게 찬송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집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참 찬송을 부르는데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제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송을 하시다가 손으로 단상을 치셨는데, 손에서 붉은 빛이 번쩍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손에서 나온 빛줄기는 예배드리는 사람들 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무척 놀랐고, 나중에 사람들을 통해 그 빛이 불성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도 모르고 ‘박 장로님은 하늘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도관에서 예배 드리던 중 어느 순간부터 아주 좋은 향기가 맡아져 하나님께서 찬송을 하시다가 손으로 단상을 치셨는데 순간 붉은 빛이 번쩍해 하나님 손에서 나온 빛줄기는 예배드리는 사람들 쪽으로 뻗어나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도 분명하니 그 후로는 기성교회에 발길을 완전히 끊고 계속해서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전도관에서 예배드릴 때면 왠지 모르게 충만한 기쁨이 넘쳐흘러서 ‘마음에 천국을 이룬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 체험은 저 혼자만의 신기한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전도관 교인들은 예배를 마치면 삼삼오오 모여 ‘오늘은 향취를 맡았네, 오늘은 기쁨의 은혜를 받았네’ 하고 저마다 받은 은혜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교인들이 은혜 안에서 화합하니 교회 분위기가 매우 좋았고, 그 분위기에 힘입어 월성 전도관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흙을 나르거나 물을 길어오며 제단을 짓는데 참여했고, 주일학교 학생들까지 작은 돌멩이를 옮기며 힘을 보태니 제단이 금세 신축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새롭게 지어진 월성 전도관에서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후 저는 1957년도에 대구전도관 개관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마치신 후 예배실 가득 앉아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훌훌 가볍게 지나다니시는 하나님 모습도 매우 신기했지만, 하나님의 손이 제 머리에 닿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옆을 지나며 손으로 머리를 탁 쳐주셨는데, 그 느낌이 꼭 솜뭉치같이 푹신했습니다. 그러더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오르고, 몸이 하늘로 붕붕 날아오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쁨은 제 평생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전도관을 다니며 계속해서 귀한 은혜를 체험하다 보니 앞으로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 일을 하며 살고 싶어졌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던 월성 제단의 교인 두 분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소사로 간다고 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소사에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인의 마을을 지으시는데 건설을 돕기 위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소사에 가면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족들에게 소사에 가자고 설득했습니다. 가족들도 전도관을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흔쾌히 동의해 주셔서 1958년 5월 16일에 온 가족이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무렵에 소사신앙촌은 한창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건설대로 자원한 저는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돌을 나르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돌을 나르는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주셨는데, 하나님의 손이 머리에 닿으면 대구 개관 집회에서 겪었던 것처럼 몸이 가볍고, 공중에 붕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안수를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얼른 돌을 다시 지고 와서 하나님께 한 번 더 안수를 받곤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건설대원들을 자주 안찰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차례로 안찰을 받았는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 손이 살짝 닿기만 했는데도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사람의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이라고 들었기에, 저는 혹여나 제가 지은 죄로 인해 많이 아플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어 하나님께서 제 눈과 배에 손을 살짝 갖다 대셨는데 다행히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뱃속이 무척 시원해지면서 어디서 나는지 모를 기쁨이 샘솟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세상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기쁨을 체험하고 나니 그 은혜를 놓칠세라 생각으로라도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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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소멸 시키시는 권능의 하나님

죄를 소멸 시키시는 권능의 하나님

저는 1936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1남 4녀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포목상을 크게 경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5년 8․15 해방이 되고 북쪽이 공산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저희 집은 부르주아라 하여 재산 몰수를 당하였고, 어머니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겪으며 가슴앓이를 하시다 화병에 걸리셨습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여, 1․4 후퇴 때 남포항을 통해 군함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 저희 일곱 식구도 남쪽으로 피난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탄 군함의 피난민들은 모두 부산항에 내려져 거제리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다가 어느 초등학교로 옮겨진 후 각자 흩어졌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때부터 부산 좌천동 산꼭대기에 셋방을 하나 얻어 실향민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맨몸으로 피난 나와 의지할 데가 없었던 저희 가족은 집 옆에 있는 조그만 판잣집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당시 1․4 후퇴 때 서울에 있는 학교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임시로 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는데, 저는 부산 범일동에 임시로 세운 수도여고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여고가 서울로 환도함에 따라 동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종로구 효자동에 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1955년 졸업을 하고 부산 집에 내려와 보니,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집회 하시는 곳마다 참석을 하고 계셨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시며 오랫동안 앓아오던 화병이 씻은 듯이 나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신동에 전도관이 생기면서 전도관에 다니게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확실하니 아버지와 저희들에게도 같이 전도관에 다니자고 계속 권유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가자고 하니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병 고침을 받고 저렇게 기뻐하시는데 딸로서 약 한 첩도 지어 드리지 못했으면서 말씀에 거역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산 대신동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전도관에 다니고 싶어서 나오시게 된 것은 아니었고 가정의 화평을 위해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따라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1956년 추운 겨울, 부산 대신동전도관에 다닐 때였습니다. 예배 시간 중에 하나님께서 설교를 하신 후 단에서 내려오셔서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제 머리를 ‘탁’ 하고 쳐 주시는 순간, 목 안이 후끈하며 그 뜨거운 기운이 가슴으로 번지면서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느낌은 가슴에서부터 온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 나가 몸 전체가 불덩이같이 뜨거워지더니 잠시 후 그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때 불성신을 처음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단에 다니면서 죄 타는 냄새, 향취 등 여러 가지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설교 말씀을 들으니 이 길이 참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구원에 대한 말씀을 듣고 이 길이 참길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체험하며 막연했던 구원이 구체화되면서 더욱 확신을 갖게 돼 1957년 12월 저희 가족 모두는 소사신앙촌에 1차로 입주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성격이 매우 곧고 고지식한 분으로 총무부 책임자로 일하셨고, 저는 영업부에 처음 입사하여 경리부서로 자리를 옮겨서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희 가족은 1962년 1차로 덕소신앙촌에 입주하였습니다. 덕소신앙촌에 있을 때 저는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병이 나은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위가 아팠을 때였습니다. 몸이 피곤해지면서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소화가 안 된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위를 긁어내는 것같이 아파서 먹는 것도 괴로울 정도였고, 20대의 젊은 나이인데도 얼굴에 기미가 까맣게 끼었습니다. 저는 너무 아파 참기 힘들어서 하나님 댁에 안찰을 받으러 갔습니다. 당시 하나님 댁에는 안찰을 받으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 틈에서 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제 순서가 되어 저는 위가 너무 아파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하나님께서는 손등으로 위 있는 데를 옷깃만 조금 스칠 정도로 쳐 주시면서 “됐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짝만 안찰해 주시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해 안찰을 받고 돌아오면서도 계속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갔는데,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세워 놓고 등과 위 있는 데를 “쉭쉭” 하시면서 양손으로 세게 쳐 주셨습니다. “쉭쉭” 하는 축복 소리에 놀라서 깨어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위 아픈 증세가 싹 없어졌습니다. 그때가 가을철이었는데, 옥수수가 딱딱하게 굳은 것을 어머니가 쪄 주시면 그 딱딱한 것을 다 먹어도 끄떡없고, 어떤 음식이든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릅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로 기억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숨을 쉴 때 오른쪽 갈비뼈 밑부분 횡격막 있는 데가 뜨끔하며 깜짝깜짝 놀랄 만큼 아팠습니다. 숨을 마시고 뱉는 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아프니까 한 번 숨 쉴 때마다 조심조심 의식을 하며 가만히 숨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아파하니까, 당시 경리부 책임자로 계셨던 안예석 상무님이 저를 안찰을 받게 하려고 하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추운 겨울이라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공장 지대에서 하나님 집무실까지 차가운 한강 바람을 맞으며 눈도 채 녹지 않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도착을 하여 안 상무님이 하나님께 저를 가리키며 아파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집무를 보시다가 그 말을 들으시자마자 제 두꺼운 옷 위를 가볍게 툭 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미처 방한복을 벗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냥 빠르게 안찰하시고는 “됐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셨는데도 아쉬워하며 돌아오는데, 여전히 숨을 쉴 때마다 딱딱 맺히며 따끔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두꺼운 옷을 입고 안찰받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쯤 지나 오후가 되었는데,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숨 쉬는 것이 너무나 편안한 것이었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는데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안찰을 받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 나은 것이었습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든 얇은 옷을 입고 있든, 세게 안찰해 주시든 약하게 안찰해 주시든,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시면 그 권능이 다 통했다는 말씀이신데, 제 생각만으로 서운해 하며 의심했던 것을 보면 참으로 신앙이 어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그 후 1970년 기장에 제3신앙촌이 건설되어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 하나님 가까이에서 일하면서, 느끼고 체험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그 뼈와 살이 모두 죄로 구성된 마귀의 구성체이기 때문에, 이 죄를 소멸시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뼈를 녹이고, 죄를 녹이는 권능의 하나님이야.” 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그 말씀을 단지 추상적으로, 아니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으로 죄를 소멸시켜 주신다는 것으로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 여름, 세종문화회관 합창 공연을 앞두고 합창단원들이 한창 연습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성회 축복일 집회가 현재의 기장신앙촌 음악당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뼈를 녹이시는 권능을 보여 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저와 그 당시 기장신앙촌 소비조합장이었던 박연향 씨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뼈의 굵기 변화를 측정할 사람을 아무나 나오라 하시니, 이름은 기억 나지 않지만 서울의 한 여청이 자청하여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여청에게 저의 손가락 뼈를 만져 재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제 팔뚝을 잡고 ‘쉭쉭’ 하며 손을 축복하신 후, 여청에게 다시 손가락의 뼈를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청은 제 손가락을 만져 보더니 “어머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손가락의 뼈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후 손으로 만져서 느껴질 정도로 많이 가늘어졌던 것입니다. 같이 나갔던 박연향 씨도 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후 손가락 뼈가 가늘어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곧이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계속 나와서 축복을 받고 손가락 뼈가 순식간에 가늘어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직접 자신들의 손가락 뼈가 가늘어지는 것을 확인했던 사람들과, 그것을 직접 만져 보며 느꼈던 사람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신기한 기적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축복하시고 뼈가 가늘어지는 것을 보여 주심으로써 죄를 소멸시키시는 권능을 직접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신으로 저의 육신이 변화되는 것을 직접 체험하며, 구원에 대한 막연하던 생각이 보다 구체화되면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The God of power who extinguishes sin

Gijang Faith Village by Jeon Kyung-ock (1)

I was born in Nampo, Pyeongannam-do in 1936 as the eldest daughter in a family of one son and four daughters. At that time, as my father had a big fabric store, I was able to spend my childhood in a rich environment. After the liberation on August 15 th in 1945, the North Korea […]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자는 감람나무 가지가 된다”

호세아 14장 5절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뿌리가 박히리로다 그 가지는 퍼져서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백향목 같으리니 초창기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슬성신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슬비처럼, 눈송이처럼, 불기둥처럼 내리는 이슬성신과 향취 은혜를 체험하였고, 하늘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깨달은 것은 평생의 가장 큰 복”

(지난호에 이어) 1970년 세 번째 신앙촌 건설을 위해 기장으로 내려가 건설 현장에 나가보니 땅이 갯벌 같아서 발을 내디디면 무릎까지 푹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 진흙을 다 긁어내고 건물을 세우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마침 현장에 오신 하나님께서는 건설대를 두 팀으로 나눠 누가 더 빨리 흙을 퍼내나 시합을 해보라 하셨습니다. 의욕에 넘친 사람들이 불도저에 올라 힘차게 시동을 걸었지만 […]

해일을 일으키시며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 이심을 발표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홍창홍 승사(3. 끝)

(지난호에 이어) 그 후 1968년에 저는 관장님의 권유를 받아 교역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서울 각지에 중앙전도관이 세워지고 그 산하에 십여 개의 제단이 개척되면서 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저는 서울 3중앙 산하의 보문동제단과 성수동제단에서 시무하면서 교인 분들과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그 무렵 군대에 있던 둘째 남동생이 의병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시름시름 앓다가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샘이로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땅속에서 새생명이 움트어 나오듯 마음속 깊이 말씀이 새겨질 때에는 기쁨과 환희, 꿀송이보다 더 단 은혜의 맛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느곳에서도, 누구에게도 들어 볼 수 없었던 구원의 말씀. 그동안 깨닫지 못하던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테마에는 <달고 오묘한 생명의 말씀>을 깨달은 순간, 은혜를 체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기쁨의 은혜”

울산교회 이형례 권사 신앙체험기 (1)

저는 1943년 전라북도 김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는 오빠가 둘, 아래로는 여동생이 셋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쌀장사를 하시며 저희 6남매의 생계를 꾸려 나가셨습니다. 저는 17살이 되면서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빨래도 하고, 쌀로 죽을 끓여서 동생들 식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홀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무척 엄격하셔서 날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 짓지 말라’는 말씀을 생의 좌우명으로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홍창홍 승사(2)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저는 ‘장로님께서 나를 처음 보실 텐데 어떻게 내 죄를 아시나?’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신가. 은혜를 내려서 죄를 씻어 주시는 분이 어찌 내가 지은 죄를 모르시겠나. 안찰하시며 죄를 지적하시는 것도 감람나무가 아니시면 하실 수 없겠구나.’ 그렇게 깨달아지면서 의문을 […]

“하나님의 권능이 이 곳에 함께하심을 보여주셔”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진영섭 퇴임관장(3) 끝.

비쩍 말랐던 고인의 몸이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얼굴은 광채가 날 정도로 환하게 피어나 이 모습을 지켜 본 유족들은 자기가 아는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며 무척 놀라워해 하나님의 권능이 천부교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무척 감사드려 (지난 호에 이어) 부산 기장신앙촌이 완공된 1970년대 즈음, 당시 하나님께서는 매주 일요일이면 서울로 올라가셔서 예배를 직접 인도하시고 다시 기장으로 내려오셨습니다. […]

‘동방의 해돋는 곳 한국은 복 받은 나라’라는 말씀에 감명

홍창홍 승사(1)/기장신앙촌

저는 194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8.15 해방 후에 온 가족이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았는데, 1950년 육이오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월남한 후부터 장로교회에 꾸준히 다니셨으며 저도 어머니를 따라 가끔씩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서울의 고모님 댁에서 지내며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장로교인이신 고모님(故 홍해일 권사)이 남산에서 열리는 박태선 […]

“하나님 신이 마음에 감동함을 주시어 가능하게 되는 전도”

<487회> 진영섭 퇴임관장(2)/기장신앙촌

대전 전도관에서 하나님께 처음 안찰을 받고 나왔을 때가 떠오릅니다.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안해졌던 그 순간이 지금도 눈앞에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며 평안한 마음이 다시 찾아오는 듯해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후 저는 놀라운 성신의 권능을 깨닫고 은혜받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빠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집회는 물론 연무대 전도사님과 소사, 덕소신앙촌의 역사적인 건설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신앙신보를 전해주시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