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특집
놀라움과 감격으로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놀라움과 감격으로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6.25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 그리고 감동을 주신 하나님. 이번 테마로 보는 신앙체험기에서는 하나님을 처음 뵌 순간들을 발췌하여 엮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6·25 전쟁 중 1·4 후퇴 때 저와 저희 아이들 넷은 노량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야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차 안에 짐과 리어카를 싣고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키가 크고 귀하게 생기신 신사 분이 다가오시더니 “애기 어머니! 애기 어머니!” 하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제 말을 들으세요. 기차에 있지 말고 내려오세요.” 하셨습니다. “누구신데 그러세요? 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이것도 겨우 뚫고 들어온 거예요.” 라고 했지만 그분은 “제 말을 좀 들으세요. 이 차 타면 안 됩니다. 안 돼요.” 하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기차 위로 올라오셔서 저희 아이들과 리어카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분과 헤어지고 걷다가 바로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그새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이 금방 어두워져서 철로 옆의 빈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지친 몸을 쉬는데 갑자기 폭격 소리가 들리더니 마을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희가 타려고 했던 기차가 폭격을 맞아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몰살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밖에 나와 보니 멀리서 불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기차에서 내리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던 신사 분이 떠올라 ‘그분이 우리 식구를 살려 주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 1955년 3월 남산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 분이 단상으로 걸어 나오셔서 그분을 쳐다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 통에 저희 가족 모두를 살려 주신 신사 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집회를 인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분을 다시 뵙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음전 승사/기장신앙촌 허무로 가득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셔 처참했던 6·25 전쟁을 겪은 저는 이런 비극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허무감에 젖어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부산 초장동의 친척 오빠 집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인생은 어차피 죽게 마련이다. 지금 당장 죽는 것과 조금 더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무런 기쁨도 소망도 없으니 차라리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허무감이 가득했던 그 순간, 제 앞의 모래밭 위로 키가 훤칠하신 분이 홀연히 나타나시더니 활짝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주변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그분이 서 계신 곳은 빛을 비춘 것처럼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에 수박색과 감자주색 줄무늬의 산뜻한 넥타이, 광채가 나는 얼굴과 형언할 수 없이 환한 미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습니다. 어둡고 허무했던 심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계속 함박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계시던 곳을 바라보았는데, 언제 가셨는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1955년 10월, 지인으로부터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이 초량에서 부흥집회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은 불과 같은 성신을 내려 준다 하여 ‘불의 사자’라고 불리며, 집회를 하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고 불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 전국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한번 참석해 보고 싶어서 집회가 열리는 날 초량동의 집회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찬송을 인도하던 목사가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신다고 하여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순간, 저는 “아!” 하고 터져 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와 수박색과 감자주색이 어울린 넥타이, 환한 그 미소. 수년 전 바닷가에서 뵈었던 바로 그분인 것이었습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입으셨던 옷과 넥타이까지 똑같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대체 저분이 누구시기에…….’ 저는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박 장로님을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순식 승사/기장신앙촌 눈부신 광채가 온 몸에서 뿜어 나와 육군 정훈장교(政訓將校)에 지원하여 소위로 임관된 저는 서울 용산의 육군 본부에서 대외 보도 업무를 맡아 일하게 되었습니다. 1955년 어느 날, 사람들 사이에서 남산 집회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남산에서 집회를 하셨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며, 향기가 진동하고 불이 떨어지는 등 놀라운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체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즈음 흑석동 교회 예배 시간에 이운집 목사가 박태선 장로님은 은혜를 부어 주시는 분이니 이번에 열리는 집회에 참석해 보라고 권유하여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백사장에 마련된 집회장에 들어섰을 때, 마침 박 장로님께서 단상으로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등단하신 박 장로님을 뵌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 위에는 눈부신 빛이 드리워졌으며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제일 앞자리로 들어간 저는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광채가 사라지자 박 장로님의 말끔한 정장 차림이 보였는데, 그 순간 어디서 나는지 과일 향기처럼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콧속으로 쑥 들어와 배 속까지 내려가며 아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 이것이 은혜구나. 사람들이 말하던 향취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숙 전직관장/기장신앙촌 “이제 일어나세요. 내가 불러냈지요.” 1947년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에서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너무나 밝고 환한 곳에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으신 젊은 분이 편안히 앉아계신 것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엄지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시며 “내가 성신이야. 내가 주님이야.”라고 하셨습니다. 꿈이 하도 생생해서 잠에서 깬 후에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경기도 평택으로 내려와 살던 1956년 2월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전에 꿈속에서 뵈었던 그 젊은 분이 다시 꿈에 나타나셔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시며 “내가 의인이야.” 하시고는 “네가 나를 찾아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인자한 음성과 동작 하나까지 10여 년 전 꿈에서 뵈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셔서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찾아오라고 하셨으니 꼭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에 내리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서 그날 밤은 주변 교회에서 지내고 다음 날 그 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큰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할머니에게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는지 물었더니 근처에 있는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 보라고 했습니다. 전도관에 도착해 안내하는 여자 분에게 제 사정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새벽에 떠나겠다고 하니, 여자 분은 그러라면서 내일 새벽예배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인도하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예배실을 가득 메우고 철야 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 ‘꼭 그분을 찾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 때 단상 옆의 문이 열리며 어떤 남자 분이 들어오시기에 저는 ‘저분이 박 장로님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는 순간, 저는 “아이고 하나님!” 하며 그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미소를 머금고 인자하게 바라보시는 박태선 장로님은 제가 꿈속에서 두 번이나 뵈었던 바로 그분이셨던 것입니다. 저는 바로 앉을 생각도 못하고 엎드린 채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때 찬송을 인도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잠깐 멈추시고는 “엎드린 사람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하시더니 “내가 불러냈지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눈물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려 제 치마와 앉아 있던 마룻바닥까지 적셨습니다. 저는 놀라움과 감격으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오직 뜨거운 눈물만이 쉴 새 없이 흘렀습니다. 이지수 집사/기장신앙촌

신앙체험기 특집
“요이 땅! 하면 뛰는 거예요. 정말 신나게 이제 뛰는 거예요. ”

“요이 땅! 하면 뛰는 거예요. 정말 신나게 이제 뛰는 거예요. ”

◇ 밀양전도관 집회에서 알게 된 기쁨 1957년 제 나이 스무 살 때, 밀양전도관에서 7일간 부흥집회가 있었습니다. 저희 남지전도관 식구들 중 50여 명이 버스를 대절하여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는 농촌이 어려울 때여서 저는 1주일 먹을 미숫가루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 모인 식구들은 거의 며칠씩 밤을 새우며 예배를 보는데도 피곤하거나 배고픈 것을 몰랐습니다. 더구나 웬 기쁨인지 즐거움인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이 넘쳤습니다. 철야 집회가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병자들아, 일어나 뛰라!” 외치시니 걷지 못하던 환자는 물론 수많은 환자들이 일어나 기뻐서 뛰며 병이 나았다고 증거하기도 하였습니다. 저 또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너희 배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라는 말씀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해지며 몸이 공중으로 둥둥 뜨는 것같이 상쾌하였습니다. 받은 자밖에는 알 길이 없다는 말씀처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 밀양에서 열린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1957년 7월 11일부터 한 주일간 밀양전도관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을 때 집회 기간 중에 공설운동장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체육대회를 며칠 앞두고 날씨가 흐려 걱정을 했는데, 개회식 전날부터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회에 참석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우리 식구들은 우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밀양에 도착하여 운동장에 들어서시자마자 쏟아지던 비는 딱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손뼉 치며 환호했습니다. 운동장에는 모래가 많아 빗물이 곧 스며들어 체육대회와 집회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 밀양 양효리전도관에서 얻은 은혜와 확신 1957년 제가 열여섯 살 무렵에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양효리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전도사님은 서울대학교에 다니다가, 박 장로님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이 귀한 체험을 다른 이에게 전하기 위해 전도사로 나오게 되었다는 분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전도사님에게 공부를 배우며 전도관에 제법 재미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전도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동네 어른들은 전도관 금지령을 내리고 갖가지 험담을 하며 반대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견디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 이제는 그만둬야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수요일 예배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 따라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칠흑같이 캄캄해서 무서움은 더욱 심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서고 몸에는 식은땀이 배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만 가면 이렇게 다니는 것도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산길을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코에서 진한 향취가 진동하면서 등허리가 후끈해지더니 이상하게도 그렇게 무섭던 감정이 싹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평온함과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계속해서 맡아지는 향취가 혹시 길가에 핀 꽃향기가 아닌가 하여 맡아 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제단에 도착하여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후끈후끈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시에 향취가 진동하였고,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나 퇴비를 치울 때도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다음 일요일 다른 교인들에게 제가 받은 체험을 이야기하였더니 그게 바로 향취와 불성신의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며,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은혜를 직접 체험한 저는 너무나 기뻐서 이를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열심히 증거하였고 주위 사람의 핍박에도 아랑곳없이 전도관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 밀양전도관에 청년들이 많이 전도되어 밀양에서 전국전도관 체육대회도 열려 1957년 제가 17살 때였습니다. 당시 박태선 장로님께서 2주에 한 번 화요일마다 밀양으로 오셔서 집회를 열어주셨는데 집회가 열릴 때면 밀양 시내에서 북을 치며 집회 소식을 알렸습니다. 점점 밀양 식구들이 늘어나서 양효리, 춘화리, 청도, 풍각 등 지관도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 아주머니와 교장 선생님 사모님도 박 장로님을 모실 예배실을 삼문동에 마련하였습니다. 길게 나무로 지은 집이었는데 바로 옆에는 공설운동장이 있었고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도 열렸습니다. 체육대회 당시 밀양전도관에는 청년들이 굉장히 많아 달리기, 공차기 등에 참여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주방에서 흰 반죽에 팥을 넣어 빵을 만들어 체육대회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습니다. 저도 주방에서 빵을 만들다가 잠깐씩 내다보며 경기 구경을 했습니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박 장로님을 모시고 선수들과 전도관 식구들이 함께 사진 촬영도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체육대회를 통해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셔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에서 어떤 선수가 높이뛰기를 했는데 기록이 평소만큼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시 한번 뛰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속상했던 그 선수는 끝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활짝 웃으시면서 그 선수에게 “그렇게 뭐든 이기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것이다”라고 하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원래 지기 싫어하던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모든 일에 더 적극적이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주택을 지을 때도 새벽예배를 마치고 벽돌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안수를 해 주셨는데, 친구들끼리 “너는 오늘 안수 몇 번 받았니?”하고 서로 경쟁을 하기도 했고, 공장에서 일을 할 때도 공장끼리 경쟁에서 꼭 이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은 어떤 일이든 잘 하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이 참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 체육대회를 통해 최선을 다해 끝까지 따라가는 게 중요함을 알려주셔 제3회 전국 전도관 체육 대회 때 하나님께서 릴레이 주자로 뛰셔서 1등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 온 선수의 손을 들어주시면서 1등이라며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된다며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밀양전도관 개관식 대성황, 우승기 진해군 획득, 밀양 체육제전서 1957년 7월 11일부터 17일까지 열린 바있는 밀양 집회는 박태선 장로 인도하에 가물어 메마른 뭇 심령들을 불러 일으켜 개관식을 성대히 거행했으며 한편 밀양전도관에서는 지난 16일 전국전도관 대항체육대회가 열리어 1등 진해군, 2등 수원군이 각자 우수한 성적을 획득함으로써 전도관 체육제전의 위용을 다시 한번 남부지방에서 과시하였다. 일부 기성교회 목사들의 핍박 가운데 획기적 부흥을 가져온 밀양전도관에서는 대부흥집회를 열어 성도들의 신앙을 북돋우는 한편 수많은 새로운 신자들의 혁신적 부흥의 불길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그리고 16일에 개최된 전국전도관 대항체육대회는 내빈 및 각 전도관 선수들이 모인 가운데 개막되었다. 이날따라 이곳 날씨는 3주간을 돌파하여 계속되던 장마를 깨트리고 청명 그대로 ‘플레이’에 양호한 ‘컨디션’의 은사를 베풀었다. 농구게임을 비롯해서 수종의 육상경기등 각종 시합에서 선수들은 신앙체험을 통한 정신력과 기풍을 여실히 발휘하였다. 농구게임 전적은 1등 마산군, 2등이 청주군, 3등이 서울군, 4등이 밀양군의 순위로 되어있다. (1957년 7월 22일 자 신앙신보에 실린 기사 전문)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1955년 개관된 원효로 구제단, 천부교의 시작을 체험기를 통해 따라가 본다

1955년 개관된 원효로 구제단, 천부교의 시작을 체험기를 통해 따라가 본다. 1955년 전국 순회 부흥집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은혜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하나님 자택 기도실(용산구 원효로 3가 52번지)로 모여들었다. 모여드는 교인들이 나날이 늘어나자 2,500명 수용의 건물을 준공하여 서울 임시중앙전도관이라는 이름으로 1955년 12월 24일 개관하고, 다음 날인 25일부터 56년 1월 초까지 […]

인간의 죄를 소멸하시는 권능의 하나님 깨달아

이인숙 권사/동작교회

하나님을 처음 뵌 것은 1955년 3월, 스물두 살의 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아현동 집에서 언니(故이옥자 권사, 의정부교회)와 함께 일명 ‘요코’라 불리는 기계를 들여 가내수공업으로 스웨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언니가 기계로 스웨터를 짜면, 저는 밑단을 마무리하고 다려서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언니와 함께 만든 스웨터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서 바쁘지만 보람차게 일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는 언니가 하는 말이, 요즘 박태선 […]

“이슬 같은 은혜를 받고, 향기를 맡아 본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여들고, 모여들어”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➄

기성교회에서 핍박을 하기 때문에 은혜를 확실히 아는 교인들도 나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몇 명씩 모여서 구슬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정을 알고 비로소 전도관이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80명으로 시작한 전도관은 1년 9개월 만에 70만의 수가 거의 다 차게 되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받고 향기를 맡아 본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여들고, 모여들어 감람나무의 가지가 된 […]

“생명물은 하늘의 생명물이요, 하나님 은혜의 물이다.”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④

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자마자 생명물 축복을 하였다. 내가 물을 축복하면 그 물이 이슬성신의 물로 화하는데 그것을 생명물이라고 한다. 나는 감람나무 하나님이므로 내 손을 통해 하나님의 신이 끝없이 쏟아져 나가 생명물을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축복한 생명물은 변하지 않는다. 생명물에는 영원한 생명의 요소(要素)가 끝없이 담겨 있다. 『하나님 말씀』 제2부 5장 1, 7, 10, 11절 […]

“이슬같은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신이다”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③

” 앞으로 밤하늘에 불기둥이 신앙촌에 내리는 것을 누구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불기둥은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축복하는 것을 만백성 앞에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제3부 4장 27- 28절 “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생한 증거’ 1996년 11월 16일 밤 그날 저녁은 추수감사절 전야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

“메말랐던 사람들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②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한다는 것을 알게 돼 저는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에 잠겨 잠을 못 이뤘습니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을 와서 알게 된 친구였는데, 이십 대 젊은 나이에 급체로 며칠 앓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덧없고 허무한 것이 인생인가 하며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온종일 고단하게 일하고 잠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①

하나님은 기쁨의 신이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즐거움이 솟아나면 그 속에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은혜를 받아 나의 기쁨 되신 주께서 충만히 거하면 흘러넘치는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 제7부 1장 35절, 38절 ◇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요” 당시 저는 곤궁한 형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음 속에 ‘생명의 은혜’가 담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씻어 그 마음에 성신이 충만히 담겼더라도, 자유율법(양심의 법)을 어겨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죄를 짓는 순간 성신은 떠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유율법을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성신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에 다니셨던 유정옥권사님은 신앙신보를 보고 자유율법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신보를 읽으면 읽을수록 자유율법은 차원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고 “은혜를 받으면 […]

성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신앙생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성결한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 하셨습니다. 마음의 성결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하고, 자유율법은 십계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준 높은 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에 다니셨던 김백덕 승사님은 예배당에만 가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각자 양심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을 뵙고 자유율법을 깨닫는 순간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그 순간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곡조 있는 기도’ 찬송으로 은혜를 간구하는 신앙생활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 주시며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성신의 은혜를 받아 간직하는 구체적인 행함이라 하셨습니다. 은혜 받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와 찬송은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는 찬송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때의 기쁨은 참으로 크고 감사하다는 것을 많은 신앙체험기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