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지난호에 이어) 저는 새벽 제단을 쌓기 위해 제단 근처에 사시는 문삼섭 권사님 댁에 머물며 살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의 어린 딸을 등에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구역장 직분을 맡아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사신앙촌 1차 건설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문 권사님께서는 젊은 아가씨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집회에서 큰 은혜를 체험한 저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라 꼭 가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소사신앙촌에 도착해 보니, 노구산에 오만제단이 세워지기 전 예배를 드리던 구제단은 이미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주택 A·B동은 일부만 완성된 채 한창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순천, 구례, 광양에서 올라온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일했는데, 그 시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안찰을 해 주시면 그 자리에 함께한 저희 모두에게서 향취가 진동했고, 안찰을 받고 돌아설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물을 마시자 향취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가고 기쁨 넘쳐 어느 날은 팀별로 벽돌 찍기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단합이 잘 되는 서울과 인천팀은 앞서 나갔지만, 저희 광주팀 12명은 자꾸 뒤처져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축복해 주시겠다 하시며 저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에는 물을 뜰 만한 곳이 없어 저는 건설대를 지휘하시던 장세호 집사님의 오두막까지 급히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그릇이 눈에 띄지 않아, 다급한 마음에 넓적하고 얕은 옴박지에 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데, 혹시나 하나님께서 가버리실까 봐 마음이 몹시 조급했습니다. 한시바삐 가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뛰어오다 보니 물은 자꾸 쏟아지고 옷은 어느새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겨우 남은 물을 들고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오다가 물도 쏟고 옷도 다 젖었구나” 하시며 몇 걸음 다가와 맞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을 향해 축복해 주시자 진한 향취가 맡아졌고, 한 모금 마실 때는 향취가 덩어리째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저희 팀원 모두가 그 물을 함께 나누어 마시며 기뻐하던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건설대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체구가 작은 제가 지게를 지고 일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셨는지, 앞으로는 지게를 지는 일 대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든 현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아쉬웠지만 이후 수예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 틈틈이 현장 일을 거들며 신앙촌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는 곳을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안찰이 끝난 경우가 많았지만,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늦게라도 찾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던 저를 따뜻하게 받아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얼마 후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받은 은혜를 가슴에 간직한 채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울로 나왔습니다. 마포 이만제단과 을구 지관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지만, 1967년 결혼과 함께 정읍으로 내려가면서 한동안 제단과 발길이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동생의 권유로 성남 제단에 나가면서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비조합원으로 안찰을 받으러 갈 때면, 하나님께서는 늘 “죄짓지 마”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오면 주변에서 제 목소리와 행동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할 만큼 제 자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정성을 다하게 되고, 제가 받은 은혜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노량진교회에 오시는 날이면, 저는 성남의 초등학교 교사 20명과 함께 택시 5대에 나눠 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저희가 도착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예배실 2층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때 단에서 “이슬성신이 내리니 여기 온 사람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아이들도 교회에 데려오면 은혜를 받으니 모두 데리고 오세요”라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80년,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제 마음에는 마치 출발 신호를 받은 운동선수처럼 힘껏 달려야겠다는 다짐이 일었습니다. 당시 기성교회의 반대가 거셌지만, 저는 제가 직접 은혜를 받고 겪은 일들이 분명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축복해 주시면 그 물이 썩지 않는 생명물이 되고, 그 물로 고인의 몸을 닦아 드리면 입술이 붉어지고 얼굴이 환하게 피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부(弟夫)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오신 분들이 고인을 생명물로 정성껏 닦아 드리자, 가족들이 모두 놀랄 만큼 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환한 모습으로 피었습니다. 이후 덕소신앙촌에서 19년 동안 소비조합 활동을 하던 중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물건을 팔고 청량리에서 막차를 탔다가 깜빡 잠이 들어 덕소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놀라 급히 내렸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산속이었습니다. 적막 속에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릴 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 순간 겁이 났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안의 신사분이 저를 보고 “귀신이요, 사람이요?” 하고 외쳤습니다. 제가 사람이라고 소리쳤지만 차는 곧 달아나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풀밭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리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다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아까 그 차였습니다.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로 나가 차를 막아섰습니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는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며 태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저를 차에 태워 주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덕소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그분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오늘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그날 새 차를 뽑아 가족과 피서를 왔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분이 나타나 “지금 당장 양수리 쪽으로 가라”고 재촉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놀란 마음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깜깜한 길에서 겁이 나 돌아갔는데, 차 안에 앉아 있자 같은 분이 또 나타나 “누군가를 만나거든 차에 태워 덕소 정문에 내려주고 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오십부장님께 밤사이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전해 들은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갔어. 내가 거기 찾아갔어. 들판에서 짐을 잔뜩 짊어지고 떨고 있길래 사람을 보냈어. 그런데 안 가길래 두 번이나 가서 보냈어.” 그 말씀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칠흑 같은 들판에서 홀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제 곁에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신앙촌 이불 네 채를 버스에 싣고 노량진에서 성남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오던 중,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늘 곁에 있으니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따라와’ 하며 다독여 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진한 향취는 한동안 이어지다가 집 근처 사거리에 이르러서야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소비조합 활동을 하는 동안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일요일이면 신앙촌 고객분들을 덕소교회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그 가운데 꾸준히 예배에 나오는 분들도 생겼는데, 현재 덕소교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성순 집사님도 그때 인연이 닿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되어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모든 일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그 벅찬 기쁨 속에 ‘하나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라는 찬송이 절로 입가에 맴돌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축복일에 참석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다시 신앙촌을 찾게 되었는데, 후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취에 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 저 왔습니다” 하고 나직이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저를 기다려 주신 것만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19살 소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늘 제 곁에 계셨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밀려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 주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할 때 귀 기울여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켜주시고 낙원 가신 뒤에도 향취 은혜 주시며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려 하늘 세계를 소망 삼아 살아갈 힘을 주시고,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소망은 하나님을 온전히 마음에 모시고, 허락해 주신 건강을 잘 지켜 끝까지 소비조합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남은 생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오니, 구원의 손길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은혜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

“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

꿈에서 뵌 분을 광주공원 집회에서 만나 안수 받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은혜를 체험해 지산 전도관에서 집회 30분 전 향취 맡고 앉아 있는지 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워 은혜 체험 거듭되며 마음속에 분명한 확신 자리 잡아 저는 1937년 전남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에서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맞물린 격변의 시대라 나라 안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 고흥의 한 섬에 미리 거처와 식량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저희 가족은 그 섬으로 피란을 떠났고, 아버지의 준비 덕분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란살이가 길어지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어린 마음으로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배울 기회를 찾아 시내로 나가야겠다는 뜻을 아버지께 여러 차례 말씀드렸고, 고심 끝에 아버지는 제 뜻을 받아들여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시내로 나왔지만 형편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는 학업을 이어 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저는 열아홉 살 되던 해, 홀로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양장 기술을 배우면 스스로 가게를 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촌 오빠 집에 머물며 양재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저녁에는 공부하며 제 힘으로 앞날을 열어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시내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 오십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전단에는 며칠 뒤 광주공원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은 없었지만, 평소 교회 옆을 지날 때마다 들리던 찬송가 소리에 마음이 끌려 이번 기회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광주 지리에 밝은 사촌 오빠에게 집회 장소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뒤 집회 날이 되어 오빠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집회 장소에 다다르자, 이미 아래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넓게 세워진 천막을 보며 대체 무엇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까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강대상 근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자리에는 몸이 불편한 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제 옆에 앉아 있던 다리가 불편한 분은 박 장로님이 오시면 이쪽이 잘 보인다며 제게 자리를 조금 내주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사람들은 ‘속죄함’ 가사가 담긴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찬송이 잦아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니,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체 어떤 분이 오시기에 저토록 마음을 다해 기도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잠시 후 머리 위로 “마음 문 여세요” 하시는 쟁쟁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본 순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단상 위에 서 계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무척 환해 보였고, 그 주변으로 밝은 빛이 감돌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옳다, 찾았다!” 하는 소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1~2년 전 꿈속에서 똑같은 분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꿈에서 그분은 환한 빛에 둘러싸인 채 저희 집을 한참 바라보시고 떠나셨는데, 그 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아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뵙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을 이곳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놀라움에 한동안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에 집중했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로 한참 동안 찬송이 이어졌고, 저도 어느새 찬송을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예배 중 박 장로님께서 쉭쉭 축복하시며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곁에 있던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벙어리 아가씨가 앞으로 나가 찬송을 불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예배를 마친 박 장로님께서 단상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하며 지나가시던 장로님께서는 제게 세 번이나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그 손길이 닿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기함과 경건함에 사로잡혀 그 순간 장로님의 얼굴은 감히 제대로 뵐 수 없었지만,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니 와이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 단상 위에서 뵙던 환한 모습과는 달리,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날, 집회가 끝났지만 돌아서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저는 하루 더 그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새 철야 기도에도 참여했습니다. 다음 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저는 지프차를 타고 떠나시는 박 장로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멀어져 가는 지프차를 바라보며 이분을 다시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곁에 계시던 다른 장로님께 여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서울에 계신다는 대답을 듣자 마음속에는 당장이라도 따라가 뵙고 싶은 간절함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아쉬운 마음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저는 한동안 양재 학원에서 디자인 공부를 이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그날의 기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큰오빠가 전단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집 근처 지산동에 전도관이 세워졌고 그곳에서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뵙기를 간절히 바랐던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집회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느껴질 만큼 제 마음은 온통 집회를 향해 있었습니다. 저는 큰오빠에게 지난번 집회에서 뵌 분이 보통 분이 아니셨으며, 그분의 말씀은 땅의 말이 아니라 하늘의 말씀처럼 느껴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빠들에게도 이 놀라운 사실을 꼭 알려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지산동 집회로 향했습니다. 오후 6시부터 맨 앞자리 단상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예배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지난번 집회에서 뵀던 그분을 다시 뵈러 왔으니, 결코 헛된 걸음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간절한 마음 하나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이 오시기 약 30분 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창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향이었습니다. 혹시 누가 머리에 포마드를 발랐나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몸이 시원해지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마치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단에 오르시더니 지난번처럼 “마음 문을 여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은혜는 마음 문을 연 사람에게는 폭포수같이 임하지만, 마음 문을 닫은 사람은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다시 한번 마음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이어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부족한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라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뒤 박 장로님께서는 “내가 여기 오기 30분 전에 은혜를 부어주었는데, 그때 향취를 맡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저요!” 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박 장로님께서는 저를 바라보시며 일어나 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30분 전쯤 몸이 아주 시원해지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신 박 장로님께서는 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다시 한번 30분 전에 향취를 맡은 사람이 또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차례로 단상으로 올라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체험담을 들으며 저는 제가 받은 은혜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수요일마다 지산동에서의 집회는 계속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오시는 날이면 안수를 해주시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과 향취가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이 쌓여가면서 제 마음에는 분명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기에 훗날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을 때도, 제가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그 말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기쁨으로 끝까지 구원의 길 가길 소망해”

<신앙체험기 520회> 기장신앙촌 이영선 권사

저는 1952년 부산 동대신동에서 2남 6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메리야스와 여성복, 군복 등을 만드는 의류 공장 세 곳을 운영하며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직접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故 김용달 권사)로부터 여러 차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제가 3~4살 무렵, 어머니는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만큼 […]

“눈물로 기도드릴 때 맡아지던 향취 은혜,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신앙체험기 519회> 충주교회 김순득 권사

저는 강원도 원주시 귀례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이사하시면서 세 살 무렵부터 충청북도 충주에서 자랐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스물세 살에 첫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에 남편이 군대에 갔습니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홀로 남겨진 저는 먹고 살기 위해 아이를 업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야했습니다. 시장에서 사과도 […]

은혜 안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할 때 가장 큰 기쁨 느껴

<신앙체험기 518회> 서대구교회 구수웅 권사편

저는 1942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우(牛)시장에서 일하시고, 어머니는 마을 장터에서 나물을 팔며 살림을 꾸려가셨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이 일어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52년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이듬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면서 저희 남매는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살길이 막막해진 저와 형제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

“은혜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려”

<신앙체험기 517회> 영주교회 엄선희 권사 2편

(지난호에 이어) 당시 저는 전도관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예배시간이 되기도 전에 예배실에 가 있었습니다. 예배실에 가면 저처럼 먼저 온 사람들끼리 모여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에는 예배실 안에 이슬비 또는 소낙비처럼 이슬성신이 내렸습니다. 분명 비처럼 보이는데 바닥은 물론 옷도 전혀 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슬성신이 내리고 얼마 뒤에는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

이슬 같은 은혜를 받으니 그 은혜를 계속 간구하게 돼

<신앙체험기 517회> 영주교회 엄선희 권사 1편

예배실에서 기도드리던 중 백합꽃 향기 같으면서도 산뜻하고 시원한 향 맡아져 향취 은혜임을 깨닫게 돼 노구산 집회에서는 사람들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할 정도로 이슬 같은 은혜가 집회장에 자욱이 퍼져 반사 활동 당시 예배실에 들어갔는데 박하사탕처럼 시원한 것이 목으로 넘어가고 가슴 속이 시원해지며 처음 맛 보는 기쁨이 솟아나 저는 1941년생으로 경기도 오산에서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살던 집 바로 옆에는 앞마당이 유난히 넓은 […]

큰 위기가 올 때마다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뉴욕교회 안음전 승사

제가 처음 하나님을 따라 나오게 된 동기는 잊을 수 없는 감사한 기억 때문입니다. 1950년 당시 저희 가족은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살고 있었고 남편은 트럭 2대에 직원 4명을 두고 자그마한 운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6․25 전쟁이 발발했고 저희 가족은 일가친척이 있는 양평에 얼마 동안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살아보려던 중에, 또다시 인민군이 […]

Grateful to God Who Has Protected Me in Every Great Crisis

Ahn Eum-jeon, Seungsa

The reason I first came to follow God was because of an unforgettable and precious experience of gratitude. In 1950, my family lived in Palpan-dong, Jongno-gu, Seoul. My husband owned a small transport business with two trucks and four employees. That year, the Korean War broke out, and our family fled to Yangpyong where relatives […]

“기도하고 찬송하며 간절한 마음이 될 때 은혜를 허락해 주셔”

<신앙체험기 516회> 소사제2교회 백종찬 권사 2편

(지난호에 이어) 전도관에 다닌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전도사님께서 저와 김정범 씨에게 이제 전도사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며 교육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처자식이 마음에 걸려 고민이 되었지만, 이 귀한 은혜의 진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전도사 교육을 받으러 김정범 씨와 함께 돈암동 전도관에 갔습니다. 거기서 오전에는 체계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

“전도관에서 성신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려”

<신앙체험기 516회> 소사제2교회 백종찬 권사 1편

무더운 여름날 고인을 모신 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계속 관 주변으로 불어와 성신의 바람으로 고인을 지켜주셔 김천 전도관에 다니며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향기를 맡게 돼 그것이 향취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의 기도 드려 저는 1942년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농가의 외아들이었던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보리, 벼, 감자, 수박, 참외 등을 키우셨고, 풍년이 든 해에는 장터에 나가 작물을 판매하기도 […]

Grateful for the Unchanging Presence through the Holy Dew Spirit

Lee Kyo-sun, Senior Deaconess (2)

Though I was overwhelmed with vague fear and anxiety due to the Pacific War and the Korean War, meeting and following God has allowed me to live joyfully. After hearing about life in the village of faith, my father, who had initially opposed my attending the Chunbukyo Church, began supporting everything I did. I am grateful for God creation of 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