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의 뜻을 깨달아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의 뜻을 깨달아

제가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1955년 스물한 살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선교사가 되려고 인천 전동 감리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정도선 목사는 일본 신학교를 나와 성경에 능통하고 인천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1955년 가을부터 정 목사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하신 분의 집회에 가 보자며 교인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저도 목사를 따라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와 서울 제2운동장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매일 성경 과외를 받으며 장차 선교사로 일할 생각이었는데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집회에서 체험한 은혜와 놀라운 말씀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었어도 소설같이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성신을 직접 보고 체험하게 되니 호세아 14장을 풀어주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아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머리카락 타는 것처럼 지독한 냄새가 나더니 그 냄새가 싹 걷히고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그때부터 단물이 목으로 계속 넘어와서 집회에 참석한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또 찬송을 부를 때 천막 안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바깥에는 햇빛이 쨍쨍한데 천막 안에는 앞사람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안개가 끼어 있어서 ‘저게 뭘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성신이 내린다 하시며 지독하게 타는 냄새와 좋은 향기가 모두 성신을 받은 증거라 하셨습니다. 성신을 받아 죄가 소멸될 때 죄가 타는 냄새를 맡게 되고 향취 은혜를 주실 때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된다 하셨습니다. 또한 집회장에 뽀얗게 내리는 안개를 본 사람은 손을 들라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번쩍번쩍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이슬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시며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도 증거가 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신이 증거가 없겠습니까!” 하셨습니다. 예배시간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더니 그 냄새가 싹 걷히고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고 그때부터 단물이 목으로 계속 넘어와 또 찬송을 부를 때 천막 안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려 특히 호세아 14장을 풀어 주시며 하나님의 신이 이슬과 같이 내린다는 구절을 설명해 주실 때는 눈이 뜨이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었어도 소설같이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뽀얗게 내리는 성신을 직접 보고 체험하게 되니 그 구절을 풀어 주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공부한 것은 수박 겉만 핥은 것이었고, 성신을 받고 그 구절을 깨닫는 것은 수박을 쪼개서 맛을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을 불러도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맛이 꿀 송이보다 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성신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 박사요 신학박사라도 인학(人學)에 지나지 않는다 하실 때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 인학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어 선교사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고, 감리교회에서 나와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인천전도관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신이 있는 참길을 알았으니 전도를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마침 인천집회에서 알게 된 아주머니가 해운 보육원의 보모로 일할 생각이 없냐고 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 부모 잃은 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이 많이 생기던 시절이었습니다. 200명이 넘는 고아를 돌보고 가르치느라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아이들을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병이 심각했던 아이에게 저녁마다 생명물을 발라 주니 흐르던 진물이 꾸덕꾸덕 마르고 일주일도 안 돼서 새살이 돋아나 고아들은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은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여덟 살 난 여자 아이는 피부병이 심각해 매일 팔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 줘도 다음 날이면 다시 진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인천 기독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낫지 않아서 아이도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인천전도관에 예배드리러 갔더니 한 권사님이 아픈 아이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생명물을 작은 병에 담아 줬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천전도관에 오셨을 때 축복해 주신 생명물이라 했습니다. 저는 그 생명물을 저녁마다 아이에게 발라 줬습니다. 약을 발라 줄 때는 아무 효과가 없었는데 곪아 터진 자리에 생명물을 바르자 흐르던 진물이 멈추고 꾸덕꾸덕 마르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어느새 딱지가 앉더니 일주일도 되기 전에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는 것이었습니다. 피부병 때문에 늘 우울하던 아이가 깨끗하게 나아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을 보고 다른 보모들도 놀라워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보육원의 아이들 대부분이 저를 따라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보육원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손뼉 치며 찬송 부르는 것을 가르쳐 줬더니 그게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은 저만 보면 손뼉을 치며 찬송하자고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보육원장은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였는데 많은 아이들이 전도관에 다니게 되자 가지 말라고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보육원장 사모님인 김 권사님은 저의 권유로 인천전도관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자녀들도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김신자 집사님 신앙체험기)

신앙체험기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지난 호에 이어서) 그 후 소사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3년 남짓 짧은 시간인데도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제과 공장에서 새하얀 유니폼 입고 달콤한 냄새 풍기는 캐러멜을 손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포장하다 보면 한쪽에서 신나게 찬송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 질세라 목청껏 찬송을 부르며 연신 웃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한 번씩 외국 사람들이 공장에 견학 오면 빠른 손놀림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포장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과공장에서 만든 카스텔라는 얼마나 맛있는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맛이 안 잊혀지고 한 번만 먹어 봤으면 하고 그리울 정도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처음 맛본 카스텔라여서 특별하게 기억되기도 할 것이고, 기쁘게 일하던 시절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하고 같이 떠올라서 더 그립습니다. 소사신앙촌 제과 공장에서 캐러멜을 포장하는데 곳곳에서 사원들이 찬송을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 웃으며 일했던 그 시절이 기억에 남아 소사신앙촌에서 마냥 기쁘고 즐겁게 살 줄 알았지만 부모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같지 않아서 열일곱 살만 되도 시집가서 쪽찐머리 하고 다니는 일이 흔했는데, 스무 살 넘어 과년한 딸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충청북도 충주 주덕읍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은 농사일밖에 모르는 시골이었습니다. 저는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시어머니와 남편하고 같이 둘러앉아 성경을 읽어 드리고 찬송가도 불러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디서 이런 걸 배웠냐 하시기에 전도관에 다니고 신앙촌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재미있게 들으니 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성경과 찬송을 알려 드렸는데, 저녁마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 소문이 나서 저 집은 재미나게 산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가 전도관에 나가 보자 하셨습니다. 집에서 10리를 걸어 주덕읍 탑돌전도관에 나갔더니 예배실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신앙촌에서 지냈던 일이 눈앞에서 필름을 돌려 보여 주는 것처럼 생생히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웠고, 아무리 그치고 싶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울다 울다 겨우 눈을 떠 보니 시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는데, 집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구박하기를 했냐, 시집살이시키기를 했냐. 딸처럼 여기고 귀애했는데 왜 그리 서럽게 우느냐?” 하셨습니다. 그렇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한참을 우는 데는 섭섭한 게 있는 모양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촌이 그리워 울었다고 말하다 말고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신앙촌은 마음으로부터 그리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신앙촌에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읍내와 가까운 논밭을 사게 되어 이사하고 보니 코앞에 주덕전도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전도관이 가까우니 매일 새벽예배 나가자 했더니 다들 순순히 따라나섰습니다. 나중에는 농사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전도관에 살다시피하며 전도사님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합해 드디어 1965년 다시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그 후 3남매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부산에 기장신앙촌이 세워지고 한 달에 한 번 축복일에는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예배드렸는데, 1985년 무렵부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축복일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때 구역장을 맡아 축복일에 가는 교인들을 챙기고 차를 대절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축복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축복일에 참석한 것은 제 신앙이 자라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축복일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 살살 불어와 맡아져서 한없는 축복을 주시는구나 깨달아 어느 축복일이었습니다. 신발 벗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얼마나 향취가 진동하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향취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온몸을 감싸며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예배 마치고 소사신앙촌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서 살살 불어와 계속 맡아지니 ‘은혜의 창파라더니 한없이 부어 주시는구나! 진짜 축복을 주시는 축복일이구나!’ 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향취 속에서 베갯잇을 적시며 울다 울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열심히 살아 보자는 각오가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생각만 해오던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축복일에 열심히 참석하는 교인들을 보면 소비조합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앙촌 제품을 팔고 알리다 보니 전도를 많이 하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언젠가 나도 소비조합을 해야지 하고 늘 생각했는데 드디어 신앙촌 옷을 들고 고객들을 만났습니다. 성격이 활달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미났지만 신앙촌 물건이라면 반색하며 이웃들까지 불러 모아 주니 물건 파는 재미도 컸습니다. 고객들 취향에 맞춰서 옷이나 내복을 골라가면 마음에 쏙 든다며 좋아했고 신앙촌 물건은 역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릴 때면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오후 4시쯤이면 준비해 간 물건이 다 팔려서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구역 연로하신 교인들을 찾아가 말벗을 해 드렸는데, 초창기부터 따라오신 그분들께 은혜 체험담을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찾아뵙다가 임종하실 때가 다가오면 정성껏 몸을 닦아 드리고 생명물을 먹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을 챙겼던 것이 계기가 돼 1994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는 장례반을 맡아 연로하신 분들을 보살펴 드리고 장례예배 때 고인의 몸을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이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자  자주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해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겨드리자 얼굴이 뽀얗게 피고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져 15년 넘게 장례반을 하며 있었던 일을 다 쓰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생명물로 씻기고 나면 한결같이 아름답고 곱게 피어나니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다 체험담인데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김옥춘 권사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 권사님을 처음 뵀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은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혈액순환이 안 돼서인지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사람 피부색이 그런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또렷하셔서 제가 가서 보살펴 드리면 무척 고마워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권사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도문을 열심히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김 권사님께도 하루에 기도문 1,440번을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실에 매듭을 묶어 기도문 할 때마다 매듭을 짚으며 숫자를 셀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권사님 끈기가 대단하셔서 그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셨고, 자줏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기도문을 하셨는데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겼을 때는 얼굴이 뽀얗게 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덕더덕 많이 있던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건으로 말끔히 닦아 드린 후에도 콧잔등에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닦아 드리고 다시 보면 또 맺혀 있었습니다.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니 유족들이 다들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입관까지 마친 후 멀리 사는 유족이 도착해서 고인을 뵐 수 있게 관 뚜껑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뚜껑을 여는 제 손에 시원한 바람이 선들선들 와 닿아 저도 모르게 “이럴 수가!” 하고 탄복을 했습니다. 8월이라 한창 더울 때였는데 뚜껑을 덮어 둔 관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도 성신의 바람으로 고인을 계속 지켜 주신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분을 생각하면 나도 마지막까지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굽이굽이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같고 눈 깜빡할 새 다 지나온 것도 같습니다. 어려운 일 닥칠 때면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올곧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은혜 받아 기쁠 때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처럼 천국을 맛보게 됐습니다. 오늘도 은혜 주시는 길을 따라가니 이보다 값진 시간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귀한 은혜 간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그날에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슬같은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신이다”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③

” 앞으로 밤하늘에 불기둥이 신앙촌에 내리는 것을 누구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불기둥은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축복하는 것을 만백성 앞에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제3부 4장 27- 28절 “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생한 증거’ 1996년 11월 16일 밤 그날 저녁은 추수감사절 전야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

“메말랐던 사람들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②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한다는 것을 알게 돼 저는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에 잠겨 잠을 못 이뤘습니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을 와서 알게 된 친구였는데, 이십 대 젊은 나이에 급체로 며칠 앓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덧없고 허무한 것이 인생인가 하며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온종일 고단하게 일하고 잠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①

하나님은 기쁨의 신이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즐거움이 솟아나면 그 속에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은혜를 받아 나의 기쁨 되신 주께서 충만히 거하면 흘러넘치는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 제7부 1장 35절, 38절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 ① ◇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요” 당시 저는 곤궁한 형편에 하루도 마음 편한 […]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음 속에 ‘생명의 은혜’가 담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씻어 그 마음에 성신이 충만히 담겼더라도, 자유율법(양심의 법)을 어겨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죄를 짓는 순간 성신은 떠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유율법을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성신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에 다니셨던 유정옥권사님은 신앙신보를 보고 자유율법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신보를 읽으면 읽을수록 자유율법은 차원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고 “은혜를 받으면 […]

성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신앙생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성결한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 하셨습니다. 마음의 성결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하고, 자유율법은 십계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준 높은 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에 다니셨던 김백덕 승사님은 예배당에만 가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각자 양심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을 뵙고 자유율법을 깨닫는 순간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그 순간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곡조 있는 기도’ 찬송으로 은혜를 간구하는 신앙생활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 주시며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성신의 은혜를 받아 간직하는 구체적인 행함이라 하셨습니다. 은혜 받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와 찬송은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는 찬송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때의 기쁨은 참으로 크고 감사하다는 것을 많은 신앙체험기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

은혜를 받아 자유율법을 지키는 생활, 참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다

테마로 보는 신앙체험기

하나님께서는 1955년 천부교의 시작부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며 수많은 사람이 그 은혜를 실제로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1955년 창간된 신앙신보는 60년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은혜의 체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신앙신보에서는 6, 70년대의 신앙체험기와 최근의 신앙체험기를 발췌하여 은혜받은 후 참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의심으로 굳게 닫힌 마음 문이 열리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은혜를 […]

첫 번째 천부교회, 첫 번째 대규모 합창…천부교 역사 속의 특별한 12월

테마로 보는 신앙체험기

1955년부터 시작된 천부교 역사 속에서 12월은 특별한 달입니다. 첫 번째 천부교회 건립과 첫 번째 대규모 합창을 비롯해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12월, 천부교 역사 속의 12월을 체험하신 분들과 신앙신보 기사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 1955년 12월, 첫 번째 천부교회가 시작되다 1955년 12월은 첫 번째 천부교회인 “원효로 […]

만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려

2019 추수감사절 사진전시실

2019 추수감사절 사진전시실에는 1950년대 후반 소사신앙촌 포도밭에서 포도 재배하는 모습의 사진이 전시되어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모습을 소개한 본지 탐방 기사와 소사신앙촌 농장의 추억이 담긴 신앙체험기를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신앙의 울타리, 소사신앙촌. 신앙촌은 1957년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시며 최초로 명명하신 것으로, 이후 백과사전을 비롯한 각종 문헌에서 천부교와 관련된 고유명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

나의 마음과 생각, 행동을 아시는 하나님

테마가 있는 신앙체험기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고 몇 년 후의 일입니다.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참석해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 산골에 아낙네 한 분이 가정에 파탄을 만나 가지고 너무너무 살기가 힘드니까 하나님 나 살려 달라고 잔디밭을 쥐어뜯고 산에서 우는데, 손톱이 다 뒤집어 까지도록 울부짖는 그 소리에 내 귀가 너무 따가웠어. 내 귀가 너무 아팠어. 지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