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지난 호에 이어서) 그 후 소사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3년 남짓 짧은 시간인데도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제과 공장에서 새하얀 유니폼 입고 달콤한 냄새 풍기는 캐러멜을 손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포장하다 보면 한쪽에서 신나게 찬송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 질세라 목청껏 찬송을 부르며 연신 웃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한 번씩 외국 사람들이 공장에 견학 오면 빠른 손놀림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포장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과공장에서 만든 카스텔라는 얼마나 맛있는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맛이 안 잊혀지고 한 번만 먹어 봤으면 하고 그리울 정도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처음 맛본 카스텔라여서 특별하게 기억되기도 할 것이고, 기쁘게 일하던 시절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하고 같이 떠올라서 더 그립습니다. 소사신앙촌 제과 공장에서 캐러멜을 포장하는데 곳곳에서 사원들이 찬송을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 웃으며 일했던 그 시절이 기억에 남아 소사신앙촌에서 마냥 기쁘고 즐겁게 살 줄 알았지만 부모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같지 않아서 열일곱 살만 되도 시집가서 쪽찐머리 하고 다니는 일이 흔했는데, 스무 살 넘어 과년한 딸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충청북도 충주 주덕읍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은 농사일밖에 모르는 시골이었습니다. 저는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시어머니와 남편하고 같이 둘러앉아 성경을 읽어 드리고 찬송가도 불러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디서 이런 걸 배웠냐 하시기에 전도관에 다니고 신앙촌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재미있게 들으니 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성경과 찬송을 알려 드렸는데, 저녁마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 소문이 나서 저 집은 재미나게 산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가 전도관에 나가 보자 하셨습니다. 집에서 10리를 걸어 주덕읍 탑돌전도관에 나갔더니 예배실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신앙촌에서 지냈던 일이 눈앞에서 필름을 돌려 보여 주는 것처럼 생생히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웠고, 아무리 그치고 싶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울다 울다 겨우 눈을 떠 보니 시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는데, 집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구박하기를 했냐, 시집살이시키기를 했냐. 딸처럼 여기고 귀애했는데 왜 그리 서럽게 우느냐?” 하셨습니다. 그렇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한참을 우는 데는 섭섭한 게 있는 모양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촌이 그리워 울었다고 말하다 말고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신앙촌은 마음으로부터 그리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신앙촌에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읍내와 가까운 논밭을 사게 되어 이사하고 보니 코앞에 주덕전도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전도관이 가까우니 매일 새벽예배 나가자 했더니 다들 순순히 따라나섰습니다. 나중에는 농사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전도관에 살다시피하며 전도사님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합해 드디어 1965년 다시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그 후 3남매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부산에 기장신앙촌이 세워지고 한 달에 한 번 축복일에는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예배드렸는데, 1985년 무렵부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축복일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때 구역장을 맡아 축복일에 가는 교인들을 챙기고 차를 대절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축복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축복일에 참석한 것은 제 신앙이 자라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축복일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 살살 불어와 맡아져서 한없는 축복을 주시는구나 깨달아 어느 축복일이었습니다. 신발 벗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얼마나 향취가 진동하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향취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온몸을 감싸며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예배 마치고 소사신앙촌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서 살살 불어와 계속 맡아지니 ‘은혜의 창파라더니 한없이 부어 주시는구나! 진짜 축복을 주시는 축복일이구나!’ 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향취 속에서 베갯잇을 적시며 울다 울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열심히 살아 보자는 각오가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생각만 해오던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축복일에 열심히 참석하는 교인들을 보면 소비조합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앙촌 제품을 팔고 알리다 보니 전도를 많이 하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언젠가 나도 소비조합을 해야지 하고 늘 생각했는데 드디어 신앙촌 옷을 들고 고객들을 만났습니다. 성격이 활달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미났지만 신앙촌 물건이라면 반색하며 이웃들까지 불러 모아 주니 물건 파는 재미도 컸습니다. 고객들 취향에 맞춰서 옷이나 내복을 골라가면 마음에 쏙 든다며 좋아했고 신앙촌 물건은 역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릴 때면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오후 4시쯤이면 준비해 간 물건이 다 팔려서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구역 연로하신 교인들을 찾아가 말벗을 해 드렸는데, 초창기부터 따라오신 그분들께 은혜 체험담을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찾아뵙다가 임종하실 때가 다가오면 정성껏 몸을 닦아 드리고 생명물을 먹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을 챙겼던 것이 계기가 돼 1994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는 장례반을 맡아 연로하신 분들을 보살펴 드리고 장례예배 때 고인의 몸을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이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자  자주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해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겨드리자 얼굴이 뽀얗게 피고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져 15년 넘게 장례반을 하며 있었던 일을 다 쓰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생명물로 씻기고 나면 한결같이 아름답고 곱게 피어나니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다 체험담인데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김옥춘 권사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 권사님을 처음 뵀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은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혈액순환이 안 돼서인지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사람 피부색이 그런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또렷하셔서 제가 가서 보살펴 드리면 무척 고마워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권사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도문을 열심히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김 권사님께도 하루에 기도문 1,440번을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실에 매듭을 묶어 기도문 할 때마다 매듭을 짚으며 숫자를 셀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권사님 끈기가 대단하셔서 그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셨고, 자줏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기도문을 하셨는데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겼을 때는 얼굴이 뽀얗게 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덕더덕 많이 있던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건으로 말끔히 닦아 드린 후에도 콧잔등에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닦아 드리고 다시 보면 또 맺혀 있었습니다.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니 유족들이 다들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입관까지 마친 후 멀리 사는 유족이 도착해서 고인을 뵐 수 있게 관 뚜껑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뚜껑을 여는 제 손에 시원한 바람이 선들선들 와 닿아 저도 모르게 “이럴 수가!” 하고 탄복을 했습니다. 8월이라 한창 더울 때였는데 뚜껑을 덮어 둔 관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도 성신의 바람으로 고인을 계속 지켜 주신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분을 생각하면 나도 마지막까지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굽이굽이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같고 눈 깜빡할 새 다 지나온 것도 같습니다. 어려운 일 닥칠 때면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올곧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은혜 받아 기쁠 때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처럼 천국을 맛보게 됐습니다. 오늘도 은혜 주시는 길을 따라가니 이보다 값진 시간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귀한 은혜 간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그날에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나의 마음과 생각, 행동을 아시는 하나님

나의 마음과 생각, 행동을 아시는 하나님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고 몇 년 후의 일입니다.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참석해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 산골에 아낙네 한 분이 가정에 파탄을 만나 가지고 너무너무 살기가 힘드니까 하나님 나 살려 달라고 잔디밭을 쥐어뜯고 산에서 우는데, 손톱이 다 뒤집어 까지도록 울부짖는 그 소리에 내 귀가 너무 따가웠어. 내 귀가 너무 아팠어. 지금 여기 와서 앉았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좀 일어나 봐. 저기 와 앉았어. 내가 불러냈어.” 하셨지만 한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그대로 앉아 울기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과 생각, 행동을 다 보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으며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제가 산속에서 몸부림치며 울었던 것은 남편 때문이었습니다. 산골에서만 살던 순박한 남편이 6·25 전쟁 때 군대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광경을 보고는 정신이상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집안 살림을 내던지고 부수는 일은 다반사였고 가족에게 손찌검을 하고 농사를 망치며 난동을 부리고 다녔습니다. 전주 시내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이고,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다 굿도 해 보고, 화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없는 살림에 남편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논까지 팔고 나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절망스러웠습니다. 하루는 괴로운 마음을 가누지 못해 집 근처 산으로 올라가 잔디밭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저를 좀 살려 주세요.’ 하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손톱이 다 뒤집어 까지도록 잔디밭을 쥐어뜯고 울다가 보니 날이 저물고 컴컴해져서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때 일을 하나님께서 다 보신 듯 말씀하시니 저는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던 사실도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저는 남편을 고쳐 보려고 집과 가까운 죽림 장로교회에 다니던 중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교인 한 분이 “나는 박태선 장로님께 은혜 받고 중풍으로 오그라진 손이 나았어. 은혜가 많으신 분이야.”라고 했습니다. 제가 관심을 보이자, 할머니는 전주전도관이라는 곳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낫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1962년 12월 전주전도관에 데려갔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을 뵙고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좋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맛있는 사탕 냄새도 아니고 사과 향기도 아닌 것이 제 일생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였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아도 모두들 예배를 드리고 있지 누군가 무엇을 먹는 사람은 없었고 향기가 날 이유가 없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예배 마치고 전도사님께 “예배 시간에 좋은 냄새가 나던데 그게 무슨 향기지요?” 하고 여쭈어 보니, “큰 은혜 받으셨네요. 향취 은혜 받으셨어요.”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에 덕소신앙촌이라는 곳에 가면 안찰을 받을 수 있다 하여 남편도 데려갔습니다. 덕소신앙촌은 ‘이런 곳에 와서 살아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남편은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갔던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이 꼭 안찰을 받아 보라며 남편을 계속 설득했습니다. 덕분에 남편은 그날 저녁에 안찰을 받게 되었고 저는 다음 날 안찰을 받았습니다. 줄을 서서 안찰받을 때 앞의 분들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저는 속으로 ‘조금 참지 어찌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나는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제 눈에 닿자마자 어찌나 아픈지 눈이 빠지는 것 같았고, 배에 손을 가볍게 얹으셨는데도 숨이 콱콱 막히고 너무나 아파 소리를 지르지 않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다시는 죄 안 짓겠습니다 그래야지요.” 하시는데도 그 말은 미처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안찰하실 때 제 속의 죄를 소멸해 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안찰을 받은 후로 남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언제 정신이 이상했냐는 듯 난동도 부리지 않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때려 부수는 남편 때문에 시끄럽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항상 불안에 떨었던 저희 집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감사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그 목소리를 들어주신 하나님. 제 마음과 생각을 모두 아시고 살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 내려 구원의 길 열어 주신 감람나무 하나님을 만나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는 1955년부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또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이며 그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깨달은 분들의 체험담을 엮었습니다. ◆ “내가 바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다!” 저는 이화여대 재학 중이던 1956년 원효로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하루는 예배 […]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성신의 역사를 돌아보다

64년 전 오늘, 인천에서 성료된 하나님의 첫 번째 천막집회

1955년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인천 동산중학교 운동장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렸다. 인천에서 개최된 첫 번째 천막집회였다. 당시 동산중학교 운동장은 인천에서 가장 넓은 공터(10,760평)로 현재 잠실 야구장의 1.3배에 이를 정도였다. 이곳에 인파가 입추의 여지 없이 운집해 예배를 드렸다. 집회 중에 때 아닌 폭우가 내렸으나 아랑곳없이 더 많은 참석자가 몰려왔고 5일 예정이었던 집회는 일주일로 연장됐다. ◆ 인천 동산중학교 […]

허위 비방에 굴하지 않고 참길로 향한 체험담

◆ 목사님이야말로 이단 아닙니까?  저는 참 하나님께서 계신 길로 가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에서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부흥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1956년 전주에서 열린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서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힘껏 내려치시자 놀랍게도 장로님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기지 않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주 지독하게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

하나님 허락하신 축복의 날, 축복일

◆ 가장 가치 있는 길을 찾게 해 준, 나의 첫 축복일 ‘누가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줄 수 있을까?’ 1974년 서른아홉 살에 문득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청주에서 남편과 같이 사업을 했습니다. 학교에 교구(校具)를 납품하는 사업이 잘되고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아등바등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남한테 인정받고 열심히 살아도 돌아서면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허무감이 마음을 […]

한 장의 사진으로 보는 성신의 역사

테마가 있는 신앙체험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신의 역사를 펼치시며 수많은 사람이 은혜를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사진으로 기록되어 하나님 은혜를 받으러 달려온 사람들과 은혜가 실제로 내리는 장면들이 흑백 필름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 <테마가 있는 신앙체험기>에서는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성신의 역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955년 4월 남산집회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함께 사진을 찍어 주신 사람들은 […]

진리의 말씀 생명의 은혜를 전하는 전도

올해는 “전교인 전도의 해”를 맞아 천부교인들이 다 함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해입니다. 이번 신앙신보에는 전도 받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바른 방향을 찾고 은혜를 받아 감동과 기쁨으로 충만했던 체험담을 특집으로 실었습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전도를 받은 임대호 관장(54세)은 하나님 말씀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0대부터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비롯하여 동·서양의 수많은 종교서적을 읽었습니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

61년 전 오늘, 노구산 정상에서 열린 사상 초유의 집회

1958년 6월 30일. 61년 전 오늘, 소사신앙촌 노구산 정상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6일간 연인원 70만 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참가 인원, 집회 기간 중에 열린 전국 교인들의 체육대회, 그리고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이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집회 열기까지 천부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집회였다. 우선 노구산(露求山)이라는 산의 명칭부터 천부교와 관련된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집회가 열린 […]

예수의 정체를 밝히신 하나님

1981년 제1회 이슬성신절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후, 성경에 기록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은 예수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씻어 주시는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1957년 하나님께서는 “성신을 받아 새 마음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를 물이 없는 목욕탕에 비유하시며 “성신이 없는 기성교회에서 어떻게 죄를 씻을 […]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축복해 주셔”

윤경희 권사(2) / 전농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요즘 신앙신보에서 이만제단 특전대 기사가 나오면 반갑고 기뻐서 열심히 보게 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특전대로 활동하던 때가 떠올라 그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 일이 뭉뚱그려져서 떠오르는데 어떤 분이 목사하고 성경 토론할 때 주고받은 말까지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맞아! 그랬지!” 하며 무릎을 치게 됩니다. 수요일이면 특전대원끼리 조를 짜서 기성교회를 찾아다니며 목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

“은혜를 받으니 나쁜 생각을 갖지 않으려 조심하게 돼”

윤경희 권사(1)/ 전농교회

저희 집에는 콘코네 연습 교본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30년도 더 된 낡은 책인데 그걸 보며 발성 연습하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교인들 네 명이 음악 관장님께 레슨 받으며 소녀처럼 깔깔대고 웃었던 일이며, 하나님께서 연습 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뛸 듯이 기뻤던 일이 영화 필름 보는 것처럼 떠오릅니다. 1986년 시온합창단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앞두고 한창 노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