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특집
진리의 말씀 생명의 은혜를 전하는 전도

진리의 말씀 생명의 은혜를 전하는 전도

올해는 “전교인 전도의 해”를 맞아 천부교인들이 다 함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해입니다. 이번 신앙신보에는 전도 받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바른 방향을 찾고 은혜를 받아 감동과 기쁨으로 충만했던 체험담을 특집으로 실었습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전도를 받은 임대호 관장(54세)은 하나님 말씀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0대부터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비롯하여 동·서양의 수많은 종교서적을 읽었습니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저의 풀 수 없는 영원한 숙제였기에 늘 삶의 지침서가 되는 철학서나 종교서적을 탐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명한 교양서나 사상집도 저의 진리를 갈구하던 갈증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 가족이 가져다 준 신앙신보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읽은 인간은 마귀의 구성체라는 것과 죄에 대한 상세한 설교 말씀은 무종교인이었던 저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마귀의 구성체라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거기에 실린 체험담과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 천부교회에 나오게 되면서 천부교 홈페이지와 신앙신보 홈페이지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명확하고 논리적이어서 읽을수록 신났습니다. 망망대해에서 갈 길을 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저를 참 길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명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전도이고, 오래 믿은 사람에게 다시금 이 길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도 전도라 할 수 있습니다. 30대 시절 신앙에서 조금 멀어져 있었던 남은성 관장(42세)은 하나님 말씀에서 다시 찾은 감동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2004년 11월, 오랜만에 찾아오신 아버지가 신앙신보를 두고 가셨습니다. 거기서 천부교 홈페이지 주소를 보고 들어가 봤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했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끌렸습니다. 교리부터 말씀까지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흥미가 새롭게 생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지만 마치 새로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읽는 동안 끊임없이 궁금증이 생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한참 만에 ‘이것은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홈페이지를 보고 새벽에 동이 틀 무렵, 저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감격스러워 한참 동안 눈물이 나고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천부교 교역자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전도된 이야기는 천부교 초창기부터 계속되고 있는 체험담입니다. 1958년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정규용 승사는 1학년 학생이 전해 준 하나님 설교집을 보고 전도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학생에게 전도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영등포 공업 고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아 지도할 때였습니다. 우리 반 학생이 저를 찾아와 책 한 권을 주면서 “읽어 보시고 선생님께서도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보시지요.” 했습니다. 당시 저는 대방동 감리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맡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교회를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교회 목사와 장로간의 분쟁으로 교인이 두 파로 갈라져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이 준 책은 김성여 목사가 엮은 “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경험”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첫 장을 들춰보니 미소짓고 계시는 박태선 장로님의 존영과 집회 때 나타난 기사 이적의 현장 사진이 있었고, 내용을 소개하는 목차가 있기에 자세히 읽고 하나님 사진을 다시 보는 순간 갑자기 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화끈 달아오르지?”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그 뜨거움이 지속되면서 마음의 안정과 아울러 기쁨이 솟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을 완독하고 다음 날 책을 준 학생에게 “어제 준 책의 주인공이 어디 계시며 만나 뵐 수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집회 장소와 시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서울 이만제단에 나가기 시작했고 감리교회를 떠나 천부교에 입교하게 됐습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전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참길을 알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전도된 체험담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용한 승사(93세)는 어머니의 눈물 어린 편지로 전도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1955년 밀양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대구에서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신 어머니는 “너도 나와 같이 전도관에 나가서 은혜를 받아야 구원얻을 수 있다.”고 하시며 간곡히 전도관에 나가기를 종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종용을 받기 싫었습니다. 그 후 학교로 저에게 편지가 왔기에 뜯어봤더니 어머니가 보내신 편지였습니다. “자식 위해 눈물로 애원하는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하므로 밤낮 너를 위해 눈물로써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이 어미의 심정을 생각하고 오는 일요일 밀양 전도관에 오시는 박 장로님의 집회에 꼭 참석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편지지에 얼룩이 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이 얼룩은 편지를 쓰실 때 떨어뜨린 어머니의 눈물자국이 아닌가!’ 생각하고 늘 집에 같이 있을 때 눈물로 권고하시던 모습이 떠 올라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편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집회에 어머니와 같이 참석했으나 별다른 체험은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잠이 들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꿈속에 장로님께서 제 가까이 오시더니 손에 든 물 한 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사람이 받아서 저에게 주기에 무심코 받아 마셨습니다. 그 물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속이 뜨거워졌습니다. 너무 뜨거워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1시 반이었고, 그날은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난 후에도 그 뜨거움이 계속되어 입었던 잠옷을 벗고 속옷 바람으로 밖에 나와 열을 식히면서 꿈의 의미를 되새겨 봤습니다. ‘그 한 컵의 물은 분명 성신의 은혜가 틀림없는데 장로님께서 주시는 물을 왜 내 옆 사람이 대신 받아 주었을까? 그렇다면 그 옆사람은 곧 나를 위해 매일같이 애타게 기도하셨던 어머니를 뜻함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먼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고 이런 죄인에게도 꿈을 통하여 확실한 성신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참회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고부터 저는 전도관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체험할 때 놀라움과 함께 신의 존재를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고인이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황지우 관장(55세)은 무신론자였던 자신이 참길을 깨닫게 된 계기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신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종교는 거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친척언니를 따라 천부교회에 갔을 때도 내키지 않아 멀뚱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시던 관장님께서 생명물의 권능은 시신도 아름답게 피게 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관장님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이제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인이 돌아가셨으니 입관예배에 오라고 하여 친구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관장님께서 고인을 앉히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뻣뻣해져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의 피부였습니다. 돌아가신 아저씨는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과 피부색이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환하고 뽀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또 얼굴에는 불그스름하게 혈색이 돌아 그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보는 순간 ‘저분이 천사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저는 제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곤 깊이 고민했습니다. ‘정말 신이 존재하는 것일까?’ 2주 정도 고민을 하던 저는 결국 천부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 교역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신앙체험기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항상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에 지친 몸으로 시부모님 저녁상까지 치우고 나면 저는 사랑채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충북 보은으로 시집가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지냈습니다. 내 손으로 물 한 그릇 떠 본 일 없이 컸는데 시집에서 밀어닥치는 농사일과 집안일이 버거웠고 호랑이 시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가 새벽밥을 지으러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후 시댁에서 분가하고 농사일에서 벗어나면서 살기가 수월해졌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74년, 제 나이 서른여덟 살 무렵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했을 때였습니다. “거기는 찬송이 들리는 집이에요.” 소사리 큰길 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사리전도관이라는 곳이 바로 위에 있어서 새벽마다 부르는 찬송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과연 새벽부터 찬송이 들리는데 왠지 듣기 좋았습니다. 그 전도관에 가게 된 것은 매일 집에 들르시던 전도관 권사님 때문이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은 신앙촌 메리야스와 속치마를 판매하셨는데 시중에 파는 물건보다 훨씬 좋아서 애용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간장도 맛있어서 제가 이웃들한테 다니며 대신 팔아 드리니 자연히 권사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권사님이 전도관에 같이 가 보자 하셔도 “저는 신앙촌 물건만 팔아 드릴게요. 전도는 하지 마세요.” 하며 가지 않았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찾아오셨을 때 거절을 못 하고 따라나선 것이 전도관에 나간 계기였습니다. 가 보니 동네 사람들이 예배실 가득히 모여 있었고, 다들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좋아서 새벽예배와 수요일예배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섯 살짜리 작은아들을 데리고 수요일예배에 갔을 때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아…” 하는 찬송을 부르는데 처음 듣는 찬송가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 울고 나니 입고 있던 치마 한 폭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고 다 큰 아들이 “그때 엄마 치맛자락이 흥건하도록 우셨어요.” 하고 기억하는 걸 보면 많이 울기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그동안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이 눈물에 씻겨 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때까지 교인들 권유로 예배실에 앉아 있다 오는 정도였지만 그 후로 누가 뭐라지 않아도 예배에 안 빠지게 됐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저를 보고 은혜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정말 은혜일까 궁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확실하게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촌 센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고 계속 맡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서울 동대문에 있는 신앙촌 센타에 갖가지 신앙촌 제품이 진열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을 도와 신앙촌 제품을 조금씩 판매하던 저는 센타에 처음 가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서 물건 사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왔다 갔다 하며 향기를 맡았는데, 건물 어딜 가나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사러 온 분들이 예쁜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기에 화장품 냄새인가 했지만, 그분들 곁을 지나가 보니 그 향기는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무리 맡아도 더 맡고 싶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물건을 구매해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향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교인들이 이야기하던 ‘향취 은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되는데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농동전도관 예배 때 멀리 계신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고 눈 마주치는 느낌 들어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나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운 불이 사라지더니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가벼워져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가 서울 오류동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입원하고 치료를 받는데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저는 생명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하필 그때 소사리전도관에 생명물이 없어 몹시 안타까웠는데 대신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신앙촌 간장이 있어서 딸아이가 받아 왔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축복받은 간장을 타서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옆구리가 터지는 것처럼 아프던 통증이 차츰차츰 물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들도 저를 보고 방금 전까지 허리를 못 펴고 아파 하더니 이제 괜찮으시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간호사가 하는 말이, 처음 왔을 때는 상태가 심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낫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퇴원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전농동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는 날이었는데 늦게 도착하니 3층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제일 뒷자리에 간신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어 단상을 올려다 봤을 때 하나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예배실이 워낙 넓고 단상이 3층에 있어서 저 멀리 계신데도 그 순간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며 눈이 딱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활활 타는 불이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한참 지나자 그 불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습니다. 예배 마친 후 집에 올 때는 몸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언제 복막염을 앓아서 그렇게 아팠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40대였던 저는 몹시 약해서 몸져눕는 일이 많았습니다. 밥을 잘 못 먹고 약도 잘 넘어가지 않아서 늘 골골하며 지냈습니다. 오죽하면 살림을 맡아 하던 큰딸이 엄마가 안 아픈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복막염이 깨끗이 나은 뒤로 병원과 약을 모르고 살 정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건강해진 몸으로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어딜 가나 믿어 주고 반겨 주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즐거웠고,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소비조합을 계속했는데 보름에 한 번씩 소비조합 축복일이 있어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1985년 무렵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얹으시자 그리 아플 수 없어 손 떼시자 눈부터 가슴까지 시원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연신 웃음이 나 그날은 눈안찰을 해 주시는 날로 안찰 받기 전 예배실에서 찬송을 부를 때였습니다. 눈을 감고 찬송하다가 갑자기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쏟아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져서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찬송에 열중하는 사람들뿐이고 그렇게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너무 떨려서 계속 순서를 양보하다가 제일 끝으로 가게 됐습니다. 안찰 받으면 내가 죄지은 만큼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씻어 주시는 기회이니 꼭 안찰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제 차례가 됐을 때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살짝 얹으시자 깊이 후벼 파는 것처럼 그리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손을 떼셨는데 그 순간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부터 머리, 가슴까지 시원해졌습니다. 마음은 또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서울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가 씻어지면 이렇게 좋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직접 안찰을 받고 보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소비조합을 계속하던 저는 1998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휴게실에서 일하며 신앙촌 사람들과 축복일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 거리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휴게실에 찾아오던 아이들이 20년이 지나 어엿한 신앙촌 사원이 된 것을 볼 때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지금까지 따라온 시간을 돌아보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까 싶습니다.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맙고 감사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그 생각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아서 그 영광된 날에 기쁨으로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허락하신 축복의 날, 축복일

◆ 가장 가치 있는 길을 찾게 해 준, 나의 첫 축복일 ‘누가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줄 수 있을까?’ 1974년 서른아홉 살에 문득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청주에서 남편과 같이 사업을 했습니다. 학교에 교구(校具)를 납품하는 사업이 잘되고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아등바등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남한테 인정받고 열심히 살아도 돌아서면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허무감이 마음을 […]

한 장의 사진으로 보는 성신의 역사

테마가 있는 신앙체험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신의 역사를 펼치시며 수많은 사람이 은혜를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사진으로 기록되어 하나님 은혜를 받으러 달려온 사람들과 은혜가 실제로 내리는 장면들이 흑백 필름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 <테마가 있는 신앙체험기>에서는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성신의 역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955년 4월 남산집회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함께 사진을 찍어 주신 사람들은 […]

61년 전 오늘, 노구산 정상에서 열린 사상 초유의 집회

1958년 6월 30일. 61년 전 오늘, 소사신앙촌 노구산 정상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6일간 연인원 70만 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참가 인원, 집회 기간 중에 열린 전국 교인들의 체육대회, 그리고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이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집회 열기까지 천부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집회였다. 우선 노구산(露求山)이라는 산의 명칭부터 천부교와 관련된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집회가 열린 […]

예수의 정체를 밝히신 하나님

1981년 제1회 이슬성신절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후, 성경에 기록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은 예수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씻어 주시는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1957년 하나님께서는 “성신을 받아 새 마음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를 물이 없는 목욕탕에 비유하시며 “성신이 없는 기성교회에서 어떻게 죄를 씻을 […]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축복해 주셔”

윤경희 권사(2) / 전농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요즘 신앙신보에서 이만제단 특전대 기사가 나오면 반갑고 기뻐서 열심히 보게 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특전대로 활동하던 때가 떠올라 그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 일이 뭉뚱그려져서 떠오르는데 어떤 분이 목사하고 성경 토론할 때 주고받은 말까지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맞아! 그랬지!” 하며 무릎을 치게 됩니다. 수요일이면 특전대원끼리 조를 짜서 기성교회를 찾아다니며 목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

“은혜를 받으니 나쁜 생각을 갖지 않으려 조심하게 돼”

윤경희 권사(1)/ 전농교회

저희 집에는 콘코네 연습 교본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30년도 더 된 낡은 책인데 그걸 보며 발성 연습하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교인들 네 명이 음악 관장님께 레슨 받으며 소녀처럼 깔깔대고 웃었던 일이며, 하나님께서 연습 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뛸 듯이 기뻤던 일이 영화 필름 보는 것처럼 떠오릅니다. 1986년 시온합창단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앞두고 한창 노래를 […]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나옥희 집사(2) / 기장신앙촌

(지난 호에 이어서) 그 후 소사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3년 남짓 짧은 시간인데도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제과 공장에서 새하얀 유니폼 입고 달콤한 냄새 풍기는 캐러멜을 손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포장하다 보면 한쪽에서 신나게 찬송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 질세라 목청껏 찬송을 부르며 연신 웃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한 번씩 외국 사람들이 공장에 견학 오면 빠른 손놀림을 […]

“이것이 바로 감람나무가 주시는 은혜로구나!”

나옥희 집사(1)/기장신앙촌

지난 3월 학생축복일에 신앙촌에서 아이들이 참새떼처럼 종알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배 마치고 2부 행사로 딸기 축제를 열었는데, 제법 야무지게 딸기 자르고 생크림을 올려 조물조물 간식 만들고 열중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통방통했습니다. 저는 권사님들과 같이 주변을 치워 주고 의자 정리해 주면서 자꾸만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리 예쁜데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나 예쁠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

열매 맺는 가지를 기뻐하셨던 하나님

2019 전교인 전도의 해

학생들 전도에 열중하던 시기, 축복일에 하나님께서 “전도를 많이 하는구만, 강하게 축복해 줄게” 하셔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깨달아 “실천과 노력과 인내로 열매를 맺게 된다.” 20대 시절, 저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이 길이 참된 구원의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나와 같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

언제나 내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살고 싶어

최재연 퇴임관장(2) / 기장신앙촌

<지난 호에 이어서>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하고 인천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만제단에 다녔고 인천 살면서부터 인천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웅장한 인천전도관은 숭의동 산언덕에 있어 시내 어디서나 보였는데, 남편에게 전도관에 같이 가자 했더니 일요일마다 따라나서긴 하면서도 싫은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연배가 비슷한 인천전도관 전도사님과 자주 대화하며 가까워지더니 심방하시는 전도사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축현동에 새로 전도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