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가톨릭은 2,000년간 존재해 온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단이라 불린다. 또한 인류가 갈망하는 ‘구원’에 일정한 금액을 붙여 판매한 최초의 기업이며, 지배 계층을 움직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처럼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가톨릭이 최근 위기에 처했다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있었다. 가톨릭 본부인 교황청의 수입이 감소하면서 4천 4백만 유로(약 571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를 돌파하고도 남을 저력이 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교황청이 보여준 신묘한 경제 감각과 수입 창출 능력을 살펴본다. 면죄부란 죄가 사면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교황 이름으로 발행한 증명서를 말한다. 교황이 책정한 금액을 지불하면 누구든지 면죄부를 구입하고 무슨 죄든지 사면받을 수 있었다. 11세기부터 판매된 면죄부는 여러 면에서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첫째로 종교적인 문제였던 ‘죄와 구원’을 경제적인 논리로 해결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상품을 구매하듯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둘째로 면죄부는 수많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상품이었다. 예수의 대리인이라는 교황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천국행을 보장해 준다고 했기 때문에 사후 세계를 두려워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셋째로 투자 없이 무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었다. 면죄부가 진짜 천국에 보내 줄 수 있는지는 증명할 수 없었고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가톨릭의 신이 천국에 보내 준다는 믿음을 이용하면 면죄부는 아무런 투자 없이 계속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면죄부는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예수 구원론의 파생 상품이었다. 12세기 들어 교황은 죄의 종류에 따라 면죄부를 세분화해서 판매했다. 이것은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두 윈윈하는 방식이었다. 소비자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그에 맞는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간편하게 결백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것은 다음번 범죄를 촉진시키고 면죄부 구입을 손쉽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교황은 면죄부 정가표를 발행해 “문서 위조죄 7그로시, 살인죄 5그로시, 낙태죄 5그로시, 강간죄 6그로시” 등으로 명시했다. 또 각 죄목은 세부 항목으로 나눠져서 일일이 면죄 금액이 책정되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죄는 면죄부 정가표에 있었고, 면죄부로 해결하지 못할 죄는 없었다. 가톨릭 성직자가 자주 구입하는 면죄부는 축첩죄 면죄부였다. 성직자들은 첩이 생길 때마다 구입했기 때문에 축첩죄 면죄부의 최대 고객으로 떠올랐다. 면죄부로 교황청은 수익을 얻고 성직자는 순결을 얻게 되니 이보다 적절한 상부상조가 없었다. 무엇보다 교황은 면죄부를 통해 죄의식 없는 향락의 길을 열어 주었다. 교황은 면죄부를 직접 발행할 뿐 아니라 발행 권리를 교구에 허가해 주기도 했다. 면죄부 판매 이익의 1/3을 교황청에 지불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해 준 것이었다. 교황에게 허가권을 받은 교구는 면죄부 판매로 이익을 얻게 되면서 거대하고 사치스런 성당을 짓는 데 혈안이 되었다. 13세기 세인트폴 성당의 건축 장부를 보면, 800개의 면죄부를 판매해 성가대석을 화려하게 보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범죄가 들끓는 도시일수록 면죄부 판매는 높은 수익을 올렸고 가톨릭 성당은 더욱 크고 화려해졌다. 면죄부 수익으로 건축 자금을 이용한 성당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16세기에 재건된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베드로 대성당은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에 위치하며 그 자체로 가톨릭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쥐들이 활보하던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하는 자금은 면죄부에서 왔다. 특히 교황청은 가톨릭의 전통인 ‘희년(禧年)’을 교묘히 이용해 더욱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희년이란 25년마다 한 번씩 교황이 대대적으로 죄를 사면해 주는 해로, 이해에 로마에서는 희년 축제가 열려 베드로 성당을 찾아온 순례객들에게 면죄부를 판매했다. 희년 축제란 곧 면죄부 판매 축제라 할 수 있었다. 뜻깊은 희년에 로마를 찾아오는 순례객들이 넘쳐나면서 면죄부 수익 또한 최고치를 달렸다. 경제 감각이 뛰어났던 교황 레오 10세(1475~1521)는 1525년에 돌아올 희년 축제를 10년이나 앞당겨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희년에 판매할 면죄부를 ‘희년 사상 가장 거룩한 면죄부’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사전 판매했던 것이었다. 또 교황 레오 10세는 면죄부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두 명의 인물을 영입했다. 한 명은 독일의 전설적인 사업가 야코프 푸거로, 교황은 면죄부의 판매권을 푸거에게 허가해 주었다. 수익률을 극대화시키는 사업가 손에서 면죄부는 전략적인 히트 상품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푸거는 면죄부의 사면 효과를 8년으로 한정시켰던 것이다. 이는 8년마다 면죄부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고 이익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도사인 요한 테첼이었다. 교황은 그에게 ‘사면관’(pardoners)이라는 직함을 주어 면죄부 판매와 수금을 총괄하게 했다. 그 자신이 간음죄를 범했던 테첼은 “면죄부로 사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면죄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합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면죄부 수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1506년 면죄부 판매로 재건축이 시작된 베드로 대성당은 1626년 완공되었고, 공사 기간이 100년이 넘기 때문에 전체 건축 비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건축비가 54억~84억 달러(6조 3천억 원~9조8천억 원)로 추정된다니 그중 면죄부로 조달한 비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교황청이 오랫동안 면죄부를 발행한 것은 경제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면죄부는 교황청만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고, 면죄부를 발행하면 무지한 대중이 몰려와 금고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정치 세력과의 협상이었다. 1933년 교황청 대표인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그는 바로 다음번 교황인 비오 12세로 선출되었다.)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제국종교협약(Reichskonkordat)’을 맺었다. 교황청이 나치 정당에 정치적인 지원을 해 주는 대가로 히틀러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교황청에 제공했다. 그것은 독일 국민들이 납부하는 ‘교회세(Kirchensteuer)’였다. 독일 국민은 태어나자마자 소속 교회가 기록되고 소득이 생기는 순간부터 소득세의 8~9%를 차지하는 교회세가 국고로 들어갔다가 독일의 가톨릭교회로 보내지는데, 히틀러와 교황청이 협약을 맺은 후로 거액의 교회세가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에만 약 1억 달러의 교회세가 교황청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개명천지한 세상에서 면죄부는 더 이상 판매할 수 없지만 교회세는 지금도 독일 국민의 월급에서 징수되고 있다. 악명 높았던 히틀러와 나치 정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교회세는 지금도 가톨릭의 금고를 살찌우고 있다. 2019년 9월과 10월에 <월스트리트저널>과 <더 타임즈>에는 뜻밖의 기사가 실렸다. 교황청의 재정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유력지들이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교황청의 재정 위기를 보도했으나 기사를 접한 네티즌은 “면죄부 팔면 되겠네.(sjmu****)” “예수님 돈 좀 만들어 주세요.(matt****)” 하며 교황청의 위기를 전혀 우려하지 않고 있다. 신묘한 경제 비법으로 위기를 돌파해 온 그들의 능력을 전 세계인들이 신뢰하는 듯하다. 승자와 패자가 수없이 뒤바뀌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도 변함없이 이익을 취하는 자가 진정한 경제의 승자라면 가톨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간 어떤 변수 속에서도 이익을 취해 온 그들이 이번에는 어떠한 묘책으로 재정 위기를 넘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집
이것은 재앙인가 범죄인가,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린 십자가

이것은 재앙인가 범죄인가,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린 십자가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50분경(현지 시간) 노트르담 성당에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화재로 노트르담 성당은 처참한 몰골이 됐고 예수의 분신과도 같은 십자가 첨탑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화재가 원인이나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850년간 프랑스 가톨릭의 총본산이었는데 그것이 무너져 내린 사건은 수많은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본지는 노트르담 성당의 역사적 이중성과 함께 이번 화재가 남긴 의문점을 심층 취재하여 싣는다.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 센강의 한 가운데 있는 ‘시테 섬’에 세워졌다. 프랑스왕 루이 7세 때인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완공됐다. 특히 성당의 핵심인 96m의 십자가 첨탑은 19세기에 새롭게 세워졌으며 예수 제자 12명의 동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신도들은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십자가 첨탑을 가톨릭의 신과 연결되는 통로라고 여겼다. 사람들은 노트르담이 가톨릭의 신에게 경배하는 경건한 공간인 줄 알지만 실제 내부에 들어서면 섬뜩하고 불길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건축가들은 그 이유가 고딕 양식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침울한 내부가 인간에게 공포와 전율, 불안을 일으키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노트르담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장미창’이 있지만 그 화려한 창문 뒤에는 악마가 노트르담 성당의 주인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성벽에 빗물을 받기 위해 설치한 ‘가고일’이 기괴한 악마의 모습으로 당장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노트르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가가 빅토르 위고(1802~1885)였다. 그는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년작)’에서 프롤로라는 가톨릭 신부를 통해 위선과 극악을 한 몸에 지닌 악마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인 프롤로 신부는 가톨릭의 신을 향한 찬양으로 매일을 사는 신부였다. 그러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범하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연적(戀敵)을 칼로 찌르고 이렇게 외친다. “악을 행할 때는 모든 악을 행해야지! 흉악한 일을 중간에서 멈추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프롤로 신부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에스메랄다를 범하려다가 극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죄를 에스메랄다에게 뒤집어씌워 결국 죽게 만든다. 에스메랄다는 노트르담 성당이 안전한 곳인 줄 알았지만 거기서 살인마를 만난 것이었다. 가톨릭 신부가 가공할 악마로서 1인 2역을 한 것처럼 노트르담은 가톨릭의 신과 악마가 함께 사는 곳으로 묘사되었다. 2019년 4월에 일어난 노트르담 화재 사건에서도 이중성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처참하게 불타는 노트르담을 바라보며 어떤 사람들은 가톨릭의 신을 찾았고 어떤 사람들은 방화범을 지목했다. 논란은 페이스북에 올린 가톨릭 신도의 글에서 시작됐다. 레슬리 로완이라는 스코틀랜드인은 노트르담이 불탈 때 불길 속에 예수의 형상이 나타났다며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예수가 위로를 줄 것’이라고 적었다. 레슬리의 글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고 그에게 동조해 예수가 노트르담을 보호한다며 감격하는 가톨릭 신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광신분자를 조롱하듯 “예수가 방화범이네. (moll****)” “예수 안 믿으면 지옥불에 던진다더니 방화했구나. (dark****)” 하며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독설에 가톨릭 신도들이 제대로 반박을 못한 것은 화재 원인이 방화인지 아닌지 밝히지 못하고 미궁 속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노트르담 화재가 일어났을 때 화재 원인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발화 지점이 지붕 중앙이었기 때문에 마침 지붕을 보수 공사하던 업체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공사를 위해 설치한 비계에 간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의 과부하로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건물의 화재 원인은 공사로 인한 실화(失火)가 많기 때문에 노트르담의 화재 원인도 공사 업체의 실수로 결론 나는 듯했다. 그러나 비계를 설치한 업체는 화재 가능성을 일축하고 나섰다. 공사 업체인 ‘유럽 에샤포다주’의 주장은 전기 장치에 대한 안전 수칙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사 인부들이 화재 당일에는 전기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고 더욱이 불이 난 시점은 공사 인부들이 이미 퇴근한 뒤였기 때문에 공사 업체가 범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수사를 맡은 파리 검찰청이 노트르담 성당의 신부 등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에 나서고 노트르담의 정밀 조사도 약속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화재 원인이나 방화범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다. 검찰이 속 시원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프랑스 언론이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제기했다. 발화점 인근에서 꽁초 7개가 발견됐다고 보도한 것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지붕은 1300그루의 참나무로 이루어졌는데, 타다 남은 담뱃불로 참나무가 불탔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참나무는 산불을 방지하는 ‘소방수’라고 불릴 만큼 대규모 산불 속에서도 잘 타지 않는다. 담배꽁초를 화재 원인으로 제시한 언론조차 “집에서 불을 피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꽁초를 참나무 장작에 갖다 댄다고 불이 쉽게 붙진 않는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기사 말미에 “전기 장치의 결함이 유력한 원인일 것이다.”라며 전기를 다시 지목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화재 발생 두 달 만인 6월 26일, 프랑스 당국은 화재 원인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방화는 아니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히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심층 조사를 하겠다면서 “담배꽁초나 전기 장치의 결함이 원인일 것”이라고 했다. 두 달 전과 똑같은 말이었다. 노트르담 첨탑이 불에 타서 허망하게 스러지는 장면은 한국인들에게 기시감(旣視感)을 안겨 주었다. 2008년 숭례문 화재로 불에 탄 누각이 스러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당시 숭례문도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라고 추측하다가 발화점인 2층 누각에 전기 시설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방화에 무게를 두었다. 화재 당일 60대 남성이 출입 통제된 숭례문을 사다리를 이용해 넘어 들어간 후 불꽃과 연기가 솟아올랐다는 제보가 있었다. 곧바로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범인 추적에 나섰다. 첫 공식 브리핑을 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유력한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 냈고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화재 발생 3일 만의 일이었다. 프랑스 당국도 가톨릭 관계자를 비롯한 100여 명의 목격자 진술을 들었다고 하는데 왜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할까. 방화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서도 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 채 애꿎은 담배꽁초와 공사 업체만 들먹일까. 조사 당국이 공개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다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발화 지점인 성당 지붕은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다는 점, 성당 지붕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공사 인부와 가톨릭 관계자라는 점, 그리고 노트르담의 발화 시각(오후 6시 40분)은 공사 인부들이 전부 퇴근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노트르담 화재 당시 파리 시민들은 화염에 휩싸인 성당을 바라보며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성모 마리아여, 우리를 보호하소서(Ave Maria! Jungfrau mild O Jungfrau, sieh der Jungfrau Sorgen.)” 십자가 첨탑이 무너질 때도 가톨릭의 신이 보호해 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재앙에서 구해 주지 못했고 또 다른 재앙을 그들에게 안겼다. 9월 14일자 뉴욕타임즈는 안전 기준치의 1300배가 넘는 납이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서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노트르담의 첨탑과 지붕은 목재와 납이 주재료였는데, 화재 당시 460톤에 달하는 납이 녹아내렸고 납은 곧 엄청난 양의 유독성 먼지가 되었다. 성당이 내뿜는 죽음의 먼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베 마리아를 부르던 시민들을 덮쳤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파리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납은 인체에 축적되면 경련과 근육 마비, 신경쇠약 등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남길 수 있다. 죽음의 먼지는 이미 무고한 어린이 6,000명 이상을 제물로 삼아 버렸다. 이 어린이들의 납 수치가 정상보다 높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거리와 공원 등의 공공 시설물은 60배 이상 납 수치가 높았다.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노트르담(Notre-Dame) 성당이 선사한 것은 납 중독과 토양 오염인 셈이었다. “저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파리에서 재무전문가로 일하는 알렉상드르 게랑은 소년 시절 가톨릭 신부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앙을 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신을 믿고 의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18세가 된 그의 아들은 가톨릭이 저지른 범죄를 알고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아버지, 아직도 신을 믿어요?” 가톨릭의 사랑을 믿다가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 아베 마리아를 부르다 유독성 납에 오염된 사람들, 거룩한 성당에서 악마의 실체를 보게 된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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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성범죄 조직에 맞서 싸운 사람들

거대한 성범죄 조직에 맞서 싸운 사람들

2002년과 2018년은 미국의 아동성범죄 처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해였다. 2002년은 언론사가 성범죄 조직의 실체를 폭로했고 2018년은 법적인 기관인 대배심이 성범죄 조직에 관한 방대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두 사건은 미국 전 지역에서 아동성범죄 처벌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성범죄 조직이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미국을 장악한 범죄 조직과 그에 맞서 싸운 언론과 대배심, 그리고 범죄 조직의 교묘한 수법을 다룬다. <보스턴 글로브> ‘거룩하고 선한’ 성범죄 조직의 실체를 파헤치다 2001년 미국 언론사 보스턴 글로브는 존 게오건 신부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사실 게오건 사건은 기자들에게 식상한 주제였다. 30년 동안 무려 130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사건은 언론에 수차례 보도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편집장은 게오건 신부 뒤에 숨은 배후를 파헤쳐 보라고 지시했다. 추잡한 성범죄의 배후에 가톨릭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의혹을 품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고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가톨릭은 법조계와 정치계에서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게오건 신부 같은 범죄자가 “선한” 가톨릭 조직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가톨릭의 진짜 실체를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가톨릭 신부에게 강간 또는 성폭행당한 피해자들이었다. 피해자 모임(SNAP)을 이끄는 필 사비아노는 가톨릭 조직 전체가 성범죄 배후라고 단언했다. 가톨릭이 조직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성범죄 신부가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활동할 수 없다고 했다. 사비아노가 13명의 성범죄 신부를 안다고 하자 기자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심리학자 리처드 사이프는 “전체 신부의 6%”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아동 성범죄는 가톨릭의 집단적 현상이며 전체 신부의 6%가 아동을 강간하거나 성추행한다고 했다. 보스턴에만 90명의 신부가 범죄자라는 추산이었다. 기자들은 이 수치를 근거로 범죄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단서는 해마다 발간하는 가톨릭 안내 책자였다. 안내 책자에는 신부가 언제 어떤 사유로 이동됐는지 적혀 있는데, 성범죄 신부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성범죄 행각이 발각되면 다른 교구로 이동된다. 이동될 때는 ‘병가 휴직’ ‘응급 상황’ 등 사실과 다른 사유를 쓴다. 2~3년에 한번씩 자주 이동된다.” 꽤 명확한 범죄 패턴이었다. 기자들은 패턴에 들어맞는 신부를 추적했고 그 결과 70명의 범죄자를 잡을 수 있었다. 이 패턴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가톨릭 조직이 고의적으로 범죄 사실을 숨기고 수사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범죄자를 보호했다는 증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보스턴 가톨릭의 최고위직인 추기경까지 범죄자를 보호했다는 증거 문서를 입수했다. 이는 가톨릭 전체가 범죄 조직임을 밝히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성범죄를 취재하는 동안 기자들은 괴로웠다. 피해자의 고통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아동 성범죄를 ‘영혼의 살인’이라 한다. 영혼을 죽이는 것만큼 심각한 범죄라는 것이다. 피해자 중에는 약물과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생존자’라 불렸다. 기자들은 가톨릭이 영혼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거룩하게 위장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더 일찍 가톨릭의 실체를 알렸더라면 몇 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탄식했다. 1년 여의 취재 끝에 기자들은 가톨릭 조직 전체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이후 600개에 이르는 심층 취재 기사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보도 이후 형사 법정에 서게 된 신부가 249명에 달했다.(사진 1, 2번) 또 법적인 기관에서 가톨릭교회를 정식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성범죄 조직에 맞서는 상대가 언론에서 법적인 기관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펜실베이니아였다. <펜실베이니아 대배심> 가톨릭 범죄 패턴을 밝히고 법률 개정을 촉구하다 2018년 8월 14일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청사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이날 성범죄 조직에 관한 보고서가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이었다. “우리는 무작위로 선정된 보통 사람들입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생각으로 보람 있게 일했고, 2년의 시간을 들여 문란하고 추잡한 성범죄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법률이 범죄 집단을 보호하고 피해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법률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2016년에 조직된 대배심은 먼저 가톨릭 교구에 보관된 내부 서류를 검토했다. 50만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보면서 대배심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가톨릭에서 똑같은 범죄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대배심은 전문가의 도움을 얻기 위해 FBI에 서류를 보내 분석을 의뢰했고, FBI의 국립폭력범죄분석센터(National Center for the Analysis of Violent Crime)에서는 가톨릭이 반복하는 범죄 패턴을 몇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중의적인 어휘. 신부가 아동을 강간했어도 부적절한 접촉이나 경계상의 문제라고 표현해 범죄를 숨긴다. 둘째, 편파적인 조사. 성범죄 신부를 조사할 때도 그 신부와 가까운 동료 신부에게 조사를 맡긴다. 피해자의 반박 진술을 듣지 않고 성범죄 신부의 자기 변호에만 의존해 조사한다. 셋째, 정보의 비공개. 성범죄 신부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때 범죄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의 제도로 당연시되고 있다. 신부의 범죄 사실을 모르는 새로운 지역의 아동은 새로운 피해자가 된다. 넷째, 범죄자에 대한 지원. 범죄자에게 주거비, 교통비, 급여를 계속 제공한다. 이는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도록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 대배심은 가톨릭의 범죄 패턴을 한마디로 “진실 은폐”라고 정리했다.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끊임없이 숨긴다는 것이다. 대배심이 범죄 패턴에 주목한 이유는 공소시효 때문이었다.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범죄를 숨기는 것이 가톨릭의 확고한 패턴이었다. 펜실베이니아 법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의 나이 50세까지다. 가톨릭 신부에게 성폭행당한 피해자는 50세가 될 때까지 그 신부를 고소할 수 있다. 그러나 51세부터는 신부를 고소할 수도 없고 처벌을 할 수도 없게 된다. 대배심은 이러한 공소시효가 가톨릭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은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범죄를 숨기고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가 공소시효를 넘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대배심이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낸 성범죄 신부는 301명이었다. 범죄 혐의가 명확하게 밝혀졌으나 형사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소시효 만료였다. 대배심은 공소시효라는 면죄부가 사라지면 가톨릭의 아동 성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고서의 마지막에 정리한 권고 사항에서 공소시효를 폐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공소시효 폐지는 900페이지에 이르는 대배심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대배심 보고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다른 주에서도 가톨릭의 내부 문서를 검토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개 주에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했다. 공소시효를 면죄부로 이용했던 가톨릭의 범죄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른 주에서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 낸 펜실베이니아가 정작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 묶여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법학교수 마르시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 주교가 상원의원들에게 특별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이 법 개정의 장애물이다. 독실한 가톨릭 의원들은 가톨릭 교회를 보호한다.” 또 펜실베이니아 검찰총장인 조쉬 샤피로는 “가톨릭 교회는 매순간 법 개정을 거절해 왔고 언제나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말했다. 막대한 자금과 로비 회사가 범죄 집단을 구하다 한편 가톨릭이 공소시효 폐지를 막기 위해 막대한 로비 자금을 썼다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성학대 피해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수백만 불을 썼는가? (Church Influencing State: How the Catholic Church Spent Millions Against Survivors of Clergy Abuse)”라는 보고서였다. 이는 성폭행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로펌 네 곳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북동부 8개 주에서 가톨릭이 지출한 로비 자금은 1,060만 달러(127억 2,000만원)에 달했다. 이는 모두 공소시효 연장이나 폐지를 막기 위한 로비에 사용됐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본격화됐던 2018년에 가톨릭은 70만 달러를 로비에 쏟아부었는데, 이는 다른 5개 주들이 7년 동안 지출한 로비 금액보다 많은 것이었다. 막대한 로비 자금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가톨릭은 39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해 50명의 상원의원들에게 로비했고 결국 공소시효 폐지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성학대 피해자들의 변호사 중 한 명인 제럴드 윌리엄스는 보고서에서 막대한 자금이 가톨릭 로비 단체인 가톨릭 컨퍼런스 정책 그룹(CCPG)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로비 자금이 신자들의 헌금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가톨릭이 순수한 헌금을 불순한 로비에 이용한 것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지난 2016년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는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개자식”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프란치스코에게 “수치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지난 9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성소수자를 악마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펜실베이니아 가톨릭의 로비 자금이 드러나면서 신부들의 성범죄가 한참 논란이 되던 시점이었다. 미국 각 지역의 정보를 보고 받는 대통령이 바로 그 시점에 성소수자를 비난한 것은 성범죄 조직인 가톨릭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성소수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 이제 세상이 그들을 걱정한다.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1편> 프레나 신부 사건

2019년 2월 20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신의 은총으로(Grâce à Dieu)”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생트 포이 레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보이스카웃을 담당한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0년대~80년대 70여 명의 보이스카웃 단원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영화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인 은곰상을 수상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프랑수와 오종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아동 성학대에 대한 은폐를 멈추려는 시도”라고 […]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천부교 체육대회는 1998년 이후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천부교인들의 건강 축제다. 본지는 그동안 체육대회를 통해 건강을 되찾거나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왔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체육대회로 건강 찾아 2004년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머리로 올라가는 혈관이 막힐 수 있으니 빨리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004 […]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 영토 강탈로 시작해 완전 범죄로 이어지다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 영토 강탈로 시작해 완전 범죄로 이어지다

심층취재 <3, 끝> 완전 범죄의 도시, 그 시작과 현재

바티칸 암매장 사건은 36년 전 실종된 소녀(엠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당시 15세)가 바티칸 교황청 내부에 암매장됐다는 의혹을 말한다. 본지는 피해자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미궁을 헤매는 사건을 연재하면서 사건의 경과를 2편에 걸쳐 실었다. 완결편인 이번 호에서는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와 완전 범죄를 꾀하는 세력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까지 왔는지 짚어 본다. 2013년 3월 19일,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의 […]

고통에 찬 실종자 가족, 그들 눈으로 보는 혐의자

고통에 찬 실종자 가족, 그들 눈으로 보는 혐의자

심층취재 <2> 검은 도시에서 파멸된 영혼

지난 7월 11일 이탈리아 바티칸에서 한 중년 남성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36년 전 사라진 엠마누엘라 오를란디(실종 당시 15세)의 오빠 피에트로 오를란디였다. 그날은 여동생이 묻혀 있을 거라고 추정됐던 바티칸 무덤을 발굴하는 날이었고 피에트로는 그 현장을 직접 참관했다. 동생의 유골이라도 찾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무덤은 완전히 비어 있었고, 피에트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

실종소녀는 바티칸에 묻혀 있다?

실종소녀는 바티칸에 묻혀 있다?

심층취재 <1> 성스러운 바티칸의 지하 묘지

이탈리아 최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암매장 묘지를 발굴하는 작업이 지난 7월 11일 로마에서 있었다. 이 작업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암매장 의혹을 받는 묘지가 바티칸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다스리는 가톨릭의 성지 바티칸은 암매장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특급 미스터리는 1983년 15세 소녀가 로마 한복판에서 사라진 실종 사건에서 시작됐다. 40년 가까이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미궁을 […]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신앙신보 1966년 2월 14일

‘소년한국합창단’ 지휘자 음악 박사 장수철 씨 신앙신보는 1966년 2월 14일자 제422호에는 내가 본 신앙촌, ‘소년한국합창단’ 지휘자 음악박사 장수철 씨 인터뷰가 실렸다. “전도관에 대한 왜곡(歪曲)된 관념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와전(訛傳)과 아울러 교계의 몇몇 이해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의 그릇된 가르침에서 조성되어진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교회 음악의 권위자요 공로자인 음악박사 장수철(張秀徹) 씨의 신앙촌 관람 소감담이다. 장 박사는 […]

초창기 천막집회와 생명물의 권능

초창기 천막집회와 생명물의 권능

2019 이슬성신절 말씀 해설

이슬성신절에 방영된 하나님 말씀은 초창기 천부교 역사와 함께 천부교 교리의 핵심인 이슬성신과 생명물을 통해 구원의 길을 밝히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하나님 말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해 초창기 집회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직접 생명물의 은혜를 체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 편집자 주 1955년 천부교 역사와 함께 시작하신 전국 순회 부흥집회 1년 동안 연 500만 명 […]

건강과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 소비조합

건강과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 소비조합

요구르트 런, 신앙촌간장, 생명물두부는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신앙촌식품이다. 2005년 요구르트 런이 출시되면서 신앙촌식품의 본격적인 홍보와 판매에 활력을 더한 이들이 바로 ‘신앙촌 소비조합’이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신앙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천부교 교인으로, 1957년 건설된 소사신앙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60여 년 오랜 세월 동안 양심 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소비자에게 정직과 신용을 전해왔다. ○ “신앙촌이라면 믿을 수 있다” […]

서울 이만제단 낙성집회 때 내리는 이슬성신

서울 이만제단 낙성집회 때 내리는 이슬성신

제39회 이슬성신절 전시실에는 서울 이만제단 낙성집회 때 내린 이슬성신 사진이 전시되었다. 이만제단 낙성집회 기간 중, 1957년 4월 30일에 제1회 장로 임명식이 열렸는데 그날 촬영된 이슬성신이 폭포수같이 내리는 모습의 사진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만제단 낙성집회 기간 중에 1957년 4월 30일은 제1회 장로 임명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만제단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 예배실에 들어섰을 때, 한 […]

신앙촌 운동의 원동력 놀라워

신앙촌 운동의 원동력 놀라워

신앙신보 1963년 8월 19일

덕소신앙촌 건설 기념 인터뷰 한양대학 변시민 교수 신앙신보는 1963년 8월 19일자 제317호에 덕소신앙촌 건설 제1주년 기념 순회 인터뷰로 한양대학 변시민 교수 기사를 실었다. 한국 사회학계의 제1인자인 변시민 교수가 전도관 신앙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유당 때 문교부 문화국장 직에 있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온 세상이 들고 일어나 전도관 운동을 이단시하고 백안시할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