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②

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②

▣ 숨겨왔던 위조 사기, 과학의 발달로 발각되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교회는 수의의 진위 검증에 대해 과학계와 언론의 거센 압박을 받게 된다. 연대 측정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며 아주 작은 표본만으로도 정확한 연대 측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확실한 과학적 검증 방법인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왜 허가하지 않느냐”, “가짜인 것이 들킬까봐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1980년대 내내 계속되었고, 교회는 거부 자체가 더 큰 의심을 키우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1987년 10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의의 과학적 연대 측정을 허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88년 4월, 토리노 성당의 대주교는 미국 애리조나, 영국 옥스퍼드, 스위스 취리히의 실험실에 수의의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실험의 정확도와 재현성을 확인하기 위해 토리노 수의 표본과 함께 연대를 알고 있는 다른 세 가지 표본을 함께 보냈고, 세 곳 중 두 곳의 실험실은 어느 것이 수의 표본인지 알지 못한 채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세 실험실의 결과는 거의 일치했고, 1988년 10월,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가운데 토리노 수의의 제작 연대를 공개하는 역사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발표 현장, 연구진은 긴 설명 대신 칠판에 크게 적힌 단 한 줄의 숫자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1260-1390!’<자료3> 즉, ‘1260년에서 1390년 사이’. 토리노 수의는 예수가 수의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시기인 서기 30년보다 무려 1300년 이상 지난 뒤에야 만들어진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토리노 수의가 갑자기 등장한 시기인 1354년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토리노 수의가 14세기 만들어진 중세 위조품이라는 사실이 전 세계에 공식 선고된 순간이었다. 동시에 역사적 근거 없는 교리로 인류를 속여왔다는 망측한 사실도 전 세계에 공표되는 순간이었다. 위 실험 과정과 결과는 1989년 2월, 과학 저널 네이처지에『토리노 수의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Radiocarbon Dating of the Shroud of Turin)』이라는 제목으로 공식 게재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토리노 수의의 중세 위조 사실을 뒷받침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받고 있다. 이 외에도 토리노 수의는 다양한 방법으로 조작 사실이 검증된 바 있다. 재료·역사학적으로 토리노 수의의 헤링본 직조 방식은 1세기 예루살렘에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이었고,<자료4> 혈흔에서는 혈액 대신 중세 화가들이 널리 사용하던 물감 성분인 붉은색 황토와 진사라는 두 가지 안료 성분이 확인되었으며,<자료5> 법의학적으로도 수의의 혈흔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시신을 감쌀 경우 형성될 수 있는 얼룩의 위치와 도저히 연관 지을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자료6> 최근에는 3D 소프트웨어로 토리노 수의에 얼룩이 새겨지는 과정을 재현하여, 토리노 수의가 위조품임을 입증했다. 실제 인체에 천을 씌우면 얼굴과 몸의 곡면 때문에 형상이 늘어나고 왜곡되어야 하는데, 토리노 수의는 평면 그림의 비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자료7> 이처럼 20세기 후반에서 현재까지, 과학은 토리노 수의의 위조 사기를 다방면으로 증명해냈다.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처형돼 그 기록과 증거가 남아있었다면 굳이 수의를 위조할 필요가 없었기에, 수의의 위조 사실은 예수의 십자가형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토리노 수의는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성스러운 유물이다. 위조가 명백히 밝혀진 유물이 어떻게 여전히 숭배되고 있는 것일까? ▣ 조작으로 판정된 수의를 계속 숭배시키다 1988년 토리노 수의의 연대 측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당시 바티칸의 유물 관리 책임자 반 리에르데 몬시뇰은 미리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유물이 가짜로 판명되더라도 이를 비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부당하다며, 그런 경우에도 교회는 믿음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물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공경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믿음의 시험」, 시카고 트리뷴, 1988년 5월 24일) 그의 예고는 곧 현실이 되었다. 연대 측정 결과 실제로 수의가 중세에 만들어진 가짜로 판명된 것이다. 이에 바티칸은 “누구나 그 천이 예수의 몸을 감았던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며 진위 여부보단 믿음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이러한 태도는 25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도 부활절을 맞아 토리노 수의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진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믿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학적 증거가 위조를 입증한 후에도 일관되게 이어지는 이들의 태도는, 사실 가톨릭의 전통적 입장과 정확히 부합한다. 1900년 초반 집필된『가톨릭 백과사전』의 유물 항목에도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유물이 가짜로 밝혀지더라도 수 세기 동안 순수한 선의로 전해져 온 오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하느님께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계속된 믿음을 요구하는 이 일관적 태도는, 진실을 덮고 믿음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988년 토리노 수의의 제작 연대가 밝혀져 화제가 된 사건은, 오히려 토리노 수의가 더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어, 현재 토리노 성당은 순례객이 매일 찾아오는 순례 명소가 되었다. 토리노 수의의 실물은 비정기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특별 공개하는데, 공개될 때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순례객을 끌어모은다. 일례로 2010년 44일간 공개했을 때는 무려 213만 명의 관광객이 토리노 성당을 다녀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에 달해 이탈리아의 사망자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좀처럼 사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던 4월 11일, 토리노 성당은 코로나19 퇴치를 기원한다며 전 세계에 토리노 수의 온라인 특별 생중계를 진행했다. 그러나 공개 이후에도 당시 토리노 지역은 여전히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장 심각한 코로나19 피해 지역 중 하나였다.<자료8> 발견 당시부터 위조 사기가 입증된 천 조각에 의존해 전염병 종식을 기원하겠다는 모습은, 신앙이라 포장된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위조 사기가 밝혀져도 숭배를 멈추지 않는 기현상은 비단 수의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기록한 동시대 문헌이 전무하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기독교 내부 증언들이 존재함에도,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은 여전히 기독교의 상징이자 핵심 교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아라 노렌자얀은 공개적인 숭배 행위가 신심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얘기한다. 이는 일명 ‘제우스 문제’라 부르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제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최고 신으로, 당시에는 대대적 추종자를 끌어모으며 초자연적 존재로 숭배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숭배받지 않는 현대에서, 제우스는 신화 속 허구의 존재로 전락했다. 반대로 허구의 존재라도 열렬한 추종자들이 있다면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신이 될 수 있다. 종교들은 자신의 신들이 계속 숭배받을 수 있도록 열렬한 추종자들로 하여금 신을 숭배하는 퍼포먼스를 과시하게 한다. 어떤 신에게 공개 기도를 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의식을 거행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이 따르는 행위를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면, 사람들은 그 신이 정말 숭배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매년 4월 부활절 전주 금요일이 되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십자가의 길’ 행렬에 나선다.<자료9> 예수가 체포된 뒤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되짚는 이 의식에서, 신자들은 실제 나무 십자가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행렬이 이어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원자들이 자기 몸에 실제 못을 박으며 ‘예수의 고통’을 흉내 낸다. 이는 기독교가 진실 규명 대신 집단적 확신의 과시를 선택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진지하게 믿고 있는데, 이게 거짓일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집단적 확신의 크기는 진실의 증거가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는 문헌에서도, 고고학적·과학적 물증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십자가형을 신앙의 중심에 세우고, 위조된 유물과 조작된 기록을 기반으로 지난 2천 년간 실체 없는 교리를 견고하게 유지해왔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 즉 ‘상대방의 착오를 유발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사기’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위조된 수의로 전염병 퇴치를 기원했던 퍼포먼스, 증거 없는 교리를 사람들에게 계속 믿게 하는 행위에서 드러났던 ‘신앙으로 포장된 기괴함’은 결국 ‘사기’ 아닐까? 그렇다면 인류를 속여온 죄는 누가 책임지며 책임질 수는 있는 것인가. 지성과 과학의 발달은 수 세기 동안 진실을 가려온 거대한 사기를 밝혀내고 있으며, 검증과 확인의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실재하는 증거 앞에서 이 허구를 ‘진실’이라 믿게 하려는 자들은, 축적된 기만의 규모에 비례하는 그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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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①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①

지난 6일, 아르헨티나 산후안 대성당은 수십 년 동안 분실되었던 한 성유물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 파편’이라 주장하며 ‘성십자가’라 부르는 유물이었다. 산후안 대성당이 보관하던 것은 두 조각의 작은 나무 파편이었는데, 1944년 지진으로 행방불명 되었다가 최근 근처 학교의 예배당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자료1> 대성당 측은 이를 성당으로 다시 가져오며, 그 이유를 “시민들과 매일 성당을 찾는 사람들의 ‘신앙심이 더욱 깊어지도록’ 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성십자가 유물은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믿게 하는 중요한 시각적 도구다. 이에 많은 성당에서 성십자가라 주장하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그 나무 조각을 다 모으면 배 한 척을 짓겠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다. 그런데 이 많은 유물 중, 실제 예수가 못박혔다던 유물이라 증명된 것은 단 한 점도 없다. 대부분은 검증조차 하지 않았으며, 검증을 시도한 몇몇 유물들은 예수가 사망했다던 1세기가 아닌 10~12세기 중세의 산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유물의 진위보다 유물에 대한 신심을 우선시하는 방침을 내세워왔고,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나무 조각들이 세계 곳곳의 성당에서 성십자가로 숭배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성십자가의 진위 여부를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는 주장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상징이자 정체성인 십자가 처형이 거짓이라는 폭로에는 어떤 합리적인 증거가 있는 것일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증거와 기록들을 추적해 본다. ▣ 십자가 처형에 의문을 제기하다 1979년 튀니지 사막. 영화「라이프 오브 브라이언」촬영 현장을 지켜보던 편집자 줄리언 도일은 갑작스런 의문에 휩싸였다. 문제의 장면은 십자가 처형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죄수들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이동하는 씬이었다.<자료2> 사람이 매달릴 만한 크기의 십자가는 너무 무거웠고, 제작진은 배우들을 위해 실제보다 작고 가벼운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건장한 배우들이 그것조차 버거워하며 휘청거렸다. 그 순간 도일은 자신이 평생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기독교 서사에 처음으로 의심을 품게 된다.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됐다던 예수가 거대한 통나무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도일은 기독교 전승과 예수의 처형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의심 없이 넘어갔던 문제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는 성서비평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십자가 처형의 여러 모순점을 수십 년간 연구해 온 끝에, 그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결론은 익숙히 알려진 이야기와 달랐다. 예수의 처형 사건은 너무나 익숙해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대중들마저 역사의 일부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실제 역사 속에 있었던 사건이라면 그 진위를 확인하는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당시 역사가들의 기록, 행정 기록, 또는 주변 문헌 어딘가에 예수 처형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려 로마를 뒤흔든 신흥 종교의 지도자가 공개 처형당한 사건이다. 게다가 추종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의 죽음 순간 대낮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으며, 사흘 뒤 부활하여 자신들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당대 역사가들이 앞다퉈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1세기 예수가 활동하던 지역의 역사 기록 속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예수의 십자가형을 기록한 동시대 문헌은 없다 예수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그가 죽은 지 백 년 이상 지난 후에 작성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기록된 시점의 간격이 벌어질수록 사료로서의 신뢰도와 가치는 떨어진다. 말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정보가 와전되고 가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기록은 예수가 살던 당시인 1세기 경 활동하던 인물들의 저술이다. 그런데 조사 결과, 이런 기록들에서는 당대 특별한 사건, 반란자에 대한 처벌 기록, 심지어 일개 범죄자의 처형 기록까지 상세히 적혀있었으나, 예수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예수(BC 4 ~ AD 30/33)와 정확히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론(BC 20 ~ AD 50)의 기록을 살펴본다.<자료3> 필론은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 지역에서 방대한 저술 활동을 펼친 인물로, 유대인이었던 그는 당시 유대 정세에 정통했다. 그의 저서『가이우스에게 보낸 사절단에 관하여(On the Embassy to Gaius)』에는 빌라도 총독의 잔혹한 통치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필론이 빌라도라는 인물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다는 점은 예수의 기록을 추적하는 데 있어 주목할 만하다. 성경의 주장대로라면 빌라도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바로 그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 지역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로마의 속주로서,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빌라도는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의 유대 담당 총독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서기 26~36년이었는데, 성경의 주장에 따르면 빌라도는 서기 30년에 예수를 처형했다. 그런데『가이우스에게 보낸 사절단에 관하여』를 비롯한 필론의 방대한 저작 어디에도 ‘예수’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필론은 당대의 정치적 사건과 유대 사회의 갈등을 주로 다뤘다. 예를 들면 그는 서기 3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한 반유대 폭력 사태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저서 『플라쿠스에 대하여(Against Flaccus)』에는 이집트 총독 플라쿠스가 유대인 장로 38명을 극장으로 끌고 나와, 채찍질로 공개 처벌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처형당한 사람들의 신분과 숫자, 처형 방식까지 정확히 기록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인 서기 30년경, ‘유대인의 왕’이라 불리며 추종자들을 이끌다 반역죄로 공개처형 됐다는 인물인 예수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BC 4 ~ AD 65)도 예수와 정확히 동시대를 산 인물이다. 그는 사도 바울(AD 5 ~ AD 65)과도 동시대에 로마에 거주했다. 로마 사회에서 실제로 한 신흥 종교가 급부상하고 있었다면, 인간 사회와 도덕, 종교적 현상을 깊이 탐구하던 세네카는 그 존재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저작에서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불편했던 것일까? 기독교인들은 세네카와 바울이 서신을 주고받았었다며 편지 14통을 만들어냈다.<자료4> 세네카와 바울이 죽은 지 300여 년이 지나서야 갑자기 등장한 이 위조 편지는 세네카가 쓴 것처럼 꾸민 8통과 바울이 쓴 것처럼 꾸민 6통으로, 세네카는 바울과 기독교의 사상을 극찬하고 바울은 세네카를 기독교 진리에 거의 접근한 철학자라며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일례로 14번째 편지에는 바울이 세네카에게 “당신의 지혜는 이미 그 경지에 거의 닿아 있으니, 이제 수사학의 재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지혜를 세상에 드러내는 새로운 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기독교 전파를 권유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세네카를 바울의 제자 비슷한 위치로 끌어내려, 기독교 진리에 감화된 철학자로 연출한 문장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신학자 필립 샤프는 그의 저서『기독교 교회의 역사』에서 “이 편지들은 사상과 문체가 매우 빈약하고, 연대와 역사에 오류가 많으며, 의심할 여지 없이 위조된 것이다”라고 평가했고, 영국의 신학자 JB 라이트풋도 “위조자의 손길이 명백히 드러난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편지의 내용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하고 있는 점, 두 사람의 평소 문체와 다른 점, 연대상 오류가 있는 점, 4세기 초반까지 누구도 인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학계는 이를 두 인물이 살았던 1세기가 아니라, 4세기 중엽에 제작된 위조 문서로 판정하고 있다. 예수가 자라고 활동했던 지역인 갈릴리 출신의 역사가도 있었다. 1세기 역사가 유스투스(AD 35 ~ AD 100)는 갈릴리 지역에 살면서『유대 왕들의 연대기(A Chronicle of the Kings of the Jews)』를 집필했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도 성경에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던 예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에 9세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포티우스는 자신의 저서『비블리오테카(Bibliotheca)』에 “유스투스는 모세 시대부터 아그리파 왕까지의 유대 역사를 다뤘으나, 예수의 출현이나 기적 등 그에 관한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며 비난했다.<자료5> 유스투스의 신뢰도를 폄훼하려던 포티우스의 의도와 달리, 그의 비난은 오히려 유스투스의 1세기 기록에 예수가 없었다는 확실한 증언이 되었다.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면 간접적인 단서로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가 처형당해 죽는 순간 대낮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런 초자연적 현상을 기록한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1세기의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AD 23 ~ AD 79)는 자연계의 다양한 사물과 현상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37권짜리 백과사전『박물지(博物誌, Naturalis historia)』를 집필했다.<자료6>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의 서문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태도로 방대한 자연 현상을 수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박물지 2권에서는 대낮이 어두워지는 개기 일식과 땅이 흔들리는 지진 현상을 광범위하게 다뤘다. 특히 박물지 2권 64장 <지진 발생 시 나타나는 놀라운 상황>에는 예수가 활동했던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AD 14 ~ AD 37 재위)에 일어난 지진 기록도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큰 지진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발생했는데, 이 지진으로 아시아의 12개 도시가 하룻밤 사이에 파괴되었다. 서기전 2세기 포에니 전쟁 중에는 지진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여, 로마에서 한 해 동안 57번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플리니우스가 과거의 기록은 ‘전해진다’고 표현하고,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는 ‘우리가 기억하는 지진’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지진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의 지진은 언급하면서 예수의 죽음 순간 일어났다던 예루살렘에서의 지진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의무적으로 기록을 남겨야 했던 로마의 행정 기록을 살펴본다.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행정 기록을 철저히 남겼다. 성경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반역죄를 저지른 정치범이었기에 그 죄명과 처형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당시 로마의 속주였던 이집트 옥시린쿠스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문서군에는 세금 문서, 재판 관련 서신, 체포 명령서, 형벌 집행 지시 등 일상적 행정 기록들이 다수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3035(P. Oxy. XLII 3035)는 로마 당국이 발행한 기독교인 체포 영장으로, 서기 256년 2월 28일 옥시린쿠스 통치 평의회 의장이 시골 마을의 경찰에게 기독교인 페토라사핀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적혀있다. 파피루스 문서에서는 또한 범죄자들의 처벌 기록도 확인할 수 있는데, 로마 당국은 범죄자에 대해 이름, 죄목, 채찍형·노역형·추방형 같은 처벌 방식 등을 명시했다. 예를 들면 출판번호 SB.20.14631의 파피루스는 이집트 총독의 석방 명령문으로, 서기 139년 페테수코스라는 사람이 광산 노역형 5년형을 마친 뒤 석방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유대 사막에서 발견된 P.Cotton 파피루스는 유대와 아라비아 속주의 재판 문서로, 129~132년경 여러 개인에 대한 재판 기록이 담겨 있다. 일례로 반란 가담자로 추정되는 가달리아스와 사울로스라는 사람들이 노예 매매·해방 관련 문서를 위조하고 세금을 회피한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밖에도 로마의 행정 기록은 사소한 범죄 기록도 세세히 기록하고 있었지만, 예수를 반역죄로 체포하라는 기록, 예수가 반역죄로 기소되었다는 기록, 예수가 채찍형이나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예수의 처형을 기록한 1세기 사료는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예수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기록이 아직 남아 있다. 바로 로마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조작으로 드러나게 되었는데, 요세푸스의 기록을 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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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②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②

▣ 예수의 십자가형을 기록했다는 문헌은 조작이었다 1세기 유대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 중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인물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 ~ AD 100)다. 요세푸스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창세기부터 서기 66년까지 유대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한『유대 고대사』인데, 유대 고대사에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자료7> 예를 들어『유대 고대사』19권에는 서기 41년 칼리굴라 황제의 암살 사건을 다뤘는데, 칼리굴라가 누구에게 왜 어떻게 죽임을 당했고 그 후의 정세는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유대 고대사』20권 5장에는 서기 47년에 로마 총독 티베리우스 알렉산더가 ‘반란자’ 갈릴리 유다의 아들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처형자, 처형 방법을 비롯해 갈릴리의 유다가 재산 조사 때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것, 유다의 아들 두 명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명시되어 있다. 18권 5장에서는 성경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줬다는 세례 요한의 처형도 상세히 기록했다. 서기 36년 헤롯 대왕은 세례 요한을 마케루스 성으로 유배한 뒤 처형하였는데, 그 이유는 ‘요한이 민중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성경에서 예수에 비해 비중이 적은 인물이었지만, 요세푸스는 그의 이름, 인물에 대한 설명, 처형 장소, 처형 이유까지도 상세히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서도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4세기 초반까지 그 누구도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고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주장한 지 약 300년이 지난 시점인 324년, 느닷없이 요세푸스의 기록이라며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기름부은자=메시아)였다. 우리 가운데 앞선 이들의 고발에 의해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단죄하였을 때, 먼저 그를 사랑하였던 이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사흗날 그는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이 일들과 그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유대 고대사』18권 3장에 기록된 구절로, 예수를 ‘그리스도’, ‘부활한 자’라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기독교에서는 이 구절을 예수 처형에 대한 결정적인 외부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것을 4세기 초반에 삽입된 조작으로 판정하고 있다. 우선, 324년 이전까지 그 어느 기독교 저술가도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증거가 된다. 만약 정말 요세푸스가 “예수라는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고 썼다면,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이 이를 놓쳤을 리 없기 때문이다. 3세기 기독교 교부 오리게네스도 요세푸스의 저작을 꼼꼼히 읽고 수차례 인용했던 인물이었지만,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요세푸스의 구절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오리게네스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음을 증언했다. 오리게네스의 저서『켈수스 반박』1권 47장과『마태복음 주석』10권 17장에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자료8> 요세푸스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요세푸스는 철저한 정통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정통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부활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런 요세푸스가 예수를 두고 그리스도라 칭하고, 부활을 사실처럼 증언하고, 기독교에 우호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은 노골적인 조작의 증거가 된다. 학계는 조작이 이루어진 시기를 324년 전후로 지목한다. 4세기 초반은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을 받으며 정치적·신학적으로 정당성 강화에 주력했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은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기독교 교부 유세비우스였다. 그는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황제의 신학적·정치적 자문 역할을 했으며, 궁정 신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정책을 뒷받침할 ‘역사적 증거’가 필요했던 시기인 324년, 유세비우스는 돌연 기독교에 유리하게 서술한 기록을 ‘요세푸스의 증언’이라 소개하며 세상에 알렸다. 그의 저서『교회사』1권 11장에 소개된 이 요세푸스의 증언은 기독교 공인 정책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근거로 적극 활용되었다.<자료9> 하지만 조작이 밝혀진 오늘날, 이 조작 사건이 증명하는 것은 ‘당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다른 증언이 전무했다’는 사실과 ‘기독교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필요로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아직도 예수의 처형을 기록한 다른 역사가의 기록이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AD 56 ~ AD 120)의 기록이다. 타키투스는『연대기』15권 44장에 기독교를 ‘해로운 미신(exitiabilis superstitio)’, ‘인류에 대한 증오심을 품은 집단(multitudo ingens … odio humani generis convicti sunt)’이라 표현하며 그 존재를 기록했는데, 예수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가 빌라도에 의해 극형을 받았다’라고 짧게 언급하였다.<자료10> 그러나 타키투스 기록의 신뢰도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타키투스가『연대기』를 집필한 시점은 1세기 이후, 예수가 자취를 감춘 뒤 80년가량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의 서술은 직접 목격하거나 동시대 인물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과거 자료나 소문으로 접한 후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당대 로마 기록에서 예수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고, 그는 소문이나 기독교 측의 주장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타키투스의 기록은 예수 처형에 대한 공신력있는 증언으로 보기 어렵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역시 “타키투스의 예수에 대한 기록은 당시 기독교인들을 통해 얻은 정보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예수에 대한 독립적인 역사적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제 타키투스 이후의 기록은 같은 이유로 객관성이 떨어지는 사료로 평가될 것이다. 지금까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역사 기록이 없다는 증거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2017년, 이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증언하는 고대 문서가 공개되었다. 이 문서가 가리키는 진실은 무엇일까?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②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②

▣ ‘빅뱅 이론 파괴자’들이 관측되다 2021년, 인류의 새로운 눈이 우주를 향해 열렸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성공적으로 발사된 것이다. 적외선 관측에 특화된 제임스 웹 망원경은 가시광선 중심의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여주지 못했던 영역을 포착하며, 먼지에 가려져 있던 별의 탄생 현장, 우주 초창기의 희미한 빛까지 담아냈다. 그런데 2023년 2월 2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현재의 표준 […]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①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①

“천문학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다.(The history of astronomy is a history of receding horizons.)” 이는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남긴 말이다. 천문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한계, 우주의 끝이라고 생각한 지점은 늘 더 먼 우주로 확장되어 왔다. 눈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던 인류는 망원경을 개발해 직접 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우주를 관찰할수록 기존의 […]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②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②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성경 외에도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들은 많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가장 특기할만한 사건인 부활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거나 부정한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경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로, 그들의 경전에서 예수를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다루며,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해주기까지 […]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지난달 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한 미술 전시회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작품들이 기독교를 조롱한다며 가톨릭 보수 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논란이 된 작품 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개구리 조각’, ‘라텍스 돌기로 표현한 십자가의 예수’ 등이 있었다.<자료1> ‘개구리 조각’의 경우 2008년 이탈리아에서도 전시되었는데, 당시 교황이 직접 철거를 요청했으나 거부했으며, 이번에 재전시 되었다. 시위대 측은 […]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②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②

▣ 인간의 처녀생식은 비상식적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처녀생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추호도 없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로저 하이필드 박사는 그의 저서『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원제: The Science of Christmas)』에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보고된 생식 사례와 단성생식 실험, 유전학적 한계 등을 검토하며 처녀생식 가능성을 하나씩 따져보고, 최종적으로 자연적인 인간의 처녀생식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자료9> 난자는 정자와 결합해야만 비로소 세포 분열을 시작하고, […]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①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①

‘마리아 숭배’는 개신교와 천주교 간 오래된 이단 논쟁 중 하나다.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정도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가톨릭의 경우, 성당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모상이다. 신자들은 성모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한다.<자료1> 마리아를 공경하는 기도와 축일, 행사들도 따로 있다. 심지어는 예수를 구세주라 믿는 종교임에도, 마리아를 ‘공동 […]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 예수와 성경 속 인물들도 마약을 사용했다 고대 종교 의례를 연구하는 보스턴 대학교의 칼 럭 교수는 “성경 속 인물들이 마약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놀랍게도 근거가 있다”며 〈예수에게서 대마초 냄새가 났는가?(Was there a whiff of cannabis about Jesus?)〉라는 제목의 칼럼을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즈에 기고하였다. 그는 글의 상당 부분에서 크리스 베넷의 저서『섹스, 마약, 폭력,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①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①

21세기, 과학과 이성의 주도 하에 미신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종교계에는 현재 수상한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보다 분명한 종교 체험과 진리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기도와 경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최근 각종 환각성 마약이 검증된 종교 체험의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세계 각국에서 인공지능(Artifical Intelligence, 이하 AI) 신과 AI 사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인의 […]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②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②

▣ 난민 수용, 신도 수 유지 수단인가 레오 14세 교황 이전부터 교황청은 난민 수용 문제로 비판받아 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8년 미국 방문 당시 이민 문제를 언급했을 때,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던 톰 탠크레도는 교황을 “종교 기반 마케팅”이라고 비난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이민자들을 환영한다는 발언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는 교회의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2015년 […]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①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①

2015년 9월, 한 시리아 난민 아동의 주검 사진이 전 세계 소셜미디어와 신문 1면을 뒤덮었다. 해변에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죽어 있는 두 살배기 아이 알란 쿠르디의 사진이다. <자료1> 시리아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중 보트가 전복되며 익사한 시신이 튀르키예 해변까지 떠내려온 것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진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세계의 난민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