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 종교 탐구 <9>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 <9>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에 대하여

전 세계 개봉을 앞둔 헐리우드 영화 ‘이터널스’에는 ‘길가메시’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 10명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그중에서 길가메시는 맨손으로 괴수를 때려눕히는 전사이자 영웅으로 그려진다. 이는 실존 인물이었던 길가메시가 거대한 체구에 강력한 힘을 가졌던 데서 착안해 영화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길가메시 역에 우리나라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국내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예고편에서 길가메시가 바빌론의 성문 앞에 버티고 서서 괴수를 물리치는 장면이 공개되자 그가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자료1,2> 역사적으로 길가메시는 서기전 2600년대에 존재한 인물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우루크’를 다스렸던 젊고 패기 넘치는 왕이었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 길가메시는 바빌론의 성문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는데, 이 성문은 서기전 500년대에 건설된 것으로 길가메시가 죽고 2000년 이상 지난 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길가메시는 비록 바빌론 시대를 살지 못했지만 그의 모험을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는 바빌론 시대에도 계속 살아남아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 흥미진진한 영웅담을 배웠으며 필경사들은 점토판에 이 서사시를 기록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우루크나 바빌론뿐 아니라 이 도시들을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고, 그 생명력은 2000년 이상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길가메시가 바빌론을 무대로 활약하는 영화 장면이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빌론 시대로부터 다시 2500년이 지난 지금, 길가메시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각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현대에 널리 알려진 것은 성경과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전체 내용과 함께 성경과의 관계를 짚어 본다. 『광활한 땅 위에 있는 모든 지혜의 정수(精髓)를 본 자가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경험했으므로 모든 것에 능통했던 자가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中> (출처: 김산해,『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20., p.63.) 길가메시 서사시는 길가메시라는 인물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모든 왕을 압도하는 체격과 힘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견고한 성과 화려한 신전을 세운 유능한 왕이었다.<자료3> 또 ‘세상 최고의 남자’라고 자부하는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신들은 오만방자한 길가메시를 견제하기 위해 야수처럼 강인한 청년 엔키두를 창조하게 된다. 두 청년은 막상막하의 대결 끝에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으며, 파란만장한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며 산속의 괴수를 처단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황소를 죽여 명성을 떨치게 된다.<자료4,5,6> 그러나 산속의 괴수와 하늘의 황소는 모두 신의 관할 아래 있었고, 그들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결국 엔키두가 벌을 받아 극심한 고통 끝에 목숨을 잃게 되는데, 죽은 친구를 끌어안고 슬픔에 잠겨 있던 길가메시는 부패가 시작된 엔키두의 코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때까지 두려울 것이 없었던 길가메시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자료7> 길가메시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방황하게 되었고, 신에게서 영생을 얻은 인물 ‘우트나피쉬팀’이 머나먼 곳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가메시는 그를 찾아 험한 산을 넘고 위험한 바다를 건넌 끝에 결국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게 된다. 길가메시가 “당신은 나와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신들에게서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 말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우트나피쉬팀은 “내가 너에게 숨겨진 사실을 말해 주리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먼저 신이 대홍수로 온 세상을 쓸어 버렸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신이 홍수에 대비해 그에게 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집을 허물고 배를 만들어라. (…) 온갖 생물의 씨를 배에 실어라. 네가 만들 배는 그 크기를 잘 재어서 만들어라.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똑같도록 하라. (…)” 거기 있는 모든 것을 배에 실었다. (…) 모든 산 것들의 씨와 그것들을 실었다. (…) 가축, 들짐승 (…)을 태웠다. (…) 육 일 밤낮으로 바람이 일고 홍수와 폭풍이 땅을 휩쓸어 버렸다. 칠 일째 되자, (…) 바다는 잠잠해졌고 폭풍은 가라앉았으며 홍수는 그쳤다. (…) 모든 인간들은 진흙으로 돌아갔다. (…) 배는 니무쉬 산에 머물렀다. 니무쉬 산은 배를 꼭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 일곱째 날이 되자, 나는 비둘기를 꺼내어 내보냈다. (…)』 <길가메시 서사시 中> (조철수,『수메르 신화』,서해문집,2003.,p.124.~130.) 우트나피쉬팀은 날려 보낸 새가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아 먹는 것을 보고 땅이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주 밖으로 나가 정성을 다해 신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그 제사를 보고 흡족해진 신이 우트나피쉬팀을 찾아와 축복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길가메시는 자신도 영생을 얻게 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처음에 냉소적이던 우트나피쉬팀은 결국 길가메시를 측은히 여겨 불로초를 손에 넣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자료8> 길가메시는 그 방법대로 위험한 심연에 몸을 던져 천신만고 끝에 불로초를 손에 넣었지만, 허무하게도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뱀에게 빼앗기고 만다.<자료9> 빈손으로 돌아온 길가메시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서사시는 끝을 맺게 된다.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가 기록한 최초의 서사시로 불린다. 흥미진진한 모험을 기록한 이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알려졌지만, 이후 이곳의 도시들이 쇠락하고 황폐해지면서 길가메시 점토판은 모래 언덕 아래에 묻히게 되었다. 그 후 길가메시 서사시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것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거나, 매력적인 모험담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 때문이었다.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와 동일한 대홍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길가메시 서사시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자료10> 메소포타미아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800년대, 발굴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성경을 신의 계시로 신봉하는 기독교 국가들이었고 이들에게 성경의 이야기가 기록된 점토판은 무엇보다 놀라운 유물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영국의 발굴팀이 가져온 2만 5천 점의 점토판 중에 하나였는데, 산더미처럼 쌓인 점토판을 정리하던 연구원은 노아 홍수와 똑같은 홍수 이야기를 보고 흥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성서 고고학회에서 발표하자 영국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872년, 길가메시 서사시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실 이를 해독한 연구원 조지 스미스(1840~1876)는 ‘길가메시’를 길가메시라고 읽지 못했다. 그때까지 길가메시 점토판이 기록된 악카드어의 발음과 문법 체계가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은 파악할 수 있어도 실제 발음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조지 스미스가 길가메시 서사시의 전체 점토판을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중간중간 점토판이 없어서 우트나피쉬팀이 대홍수를 설명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던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발음대로 읽지 못하고 점토판을 전부 찾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조지 스미스가 학회에 나가 발표한 것을 보면 길가메시 서사시가 가져다준 흥분을 짐작할 수 있다.<자료11> 2만 5천 개의 점토판 더미 속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찾아냈다는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이후 조지 스미스는 한 번 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비어 있는 점토판을 찾기 위해 직접 메소포타미아로 향했던 그가 어마어마한 모래 언덕을 파헤쳐 잃어버린 점토판을 결국 찾아냈던 것이다. 처음 길가메시 점토판을 해독했을 때는 우트나피쉬팀이 대홍수에 앞서 곡식과 동물을 방주에 싣는 장면이 빠져 있었는데, 조지 스미스는 이 장면이 기록된 점토판을 찾아내 영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 장면 또한 성경상의 노아 홍수와 동일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기독교 국가들은 다시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발굴부터 해독까지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었던 길가메시 서사시는 1910년대 번역본이 출간되어 그 내용을 일반인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서사시는 12개의 점토판과 2000행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분량이었다. 악카드어 문법 체계와 발음이 완전히 밝혀진 것이 1905년 무렵인 것을 생각하면 그 문법과 발음이 밝혀지자마자 이 장대한 시가 매우 신속하게 해독되고 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이후로도 메소포타미아의 발굴은 계속되었다. 점토판 서고가 발견되어 수만 개에 이르는 점토판이 기독교 국가들의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일 또한 계속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외에도 대홍수 이야기를 기록한 점토판들도 발굴되었는데, <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도 성경의 노아 홍수와 동일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들어라. 내 가르침에 주의하여라. 우리 손으로 일으킨 홍수가 (…) 휩쓸어 버릴 것이다. (…)” (약 40행이 부서져 없음.) 거세고 거센 바람, 거친 폭풍이 모두 한곳에 모였다. (…) 일곱 날 일곱 밤 동안 홍수는 이 땅을 휩쓸어 버렸고, 거센 바람으로 큰 배는 높은 물 위에 떠서 뒤흔들렸다. 태양이 떠오르자, 하늘과 땅에 빛이 비쳤다. 지우수드라는 큰 배에 구멍을 뚫었다. (…) 그는 소를 도살하고 양을 잡아 제사를 지냈다. (이후 40행이 부서져 없음)』 <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 中> (조철수,『수메르 신화』,서해문집,2003.,p.71.~72.) 『“(…) 내 말을 잘 알아들어라. 집을 허물고 배를 만들어라. 재산을 버리고 생명을 구하라. 네가 만들 배는 가로와 세로가 같게 하여라. (…) 내가 곧 비를 내릴 것이다. (…)” 깨끗한 동물 (…) 살찐 동물 (…) 그는 선택하여 배에 실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 (…) 가축 들짐승 (…) 그는 (…) 배에 실었다. (…) 그의 가족을 배에 실었다. (…) 홍수가 들이닥쳤다. 그 위력은 사람들에게 전쟁처럼 밀어닥쳤다. (…) 홍수는 황소처럼 으르렁거렸다. (…) 칠 일 밤낮으로 폭우, 폭풍, 홍수가 일어났다. (이후 58행 부서져 없음)』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中> (조철수,『수메르 신화』,서해문집,2003.,p.107.~114.) 길가메시 서사시는 노아 홍수와 똑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신속하게 출간됐지만 그 후에 발굴된 지우수드라 점토판이나 아트라하시스 점토판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노아 홍수와 동일한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된 부분은 부서져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을 뿐이었다. 독일의 신문기자였던 C.W.쎄람에 의하면 길가메시 서사시가 공개된 후로도 대홍수에 관한 방대한 양의 점토판이 발굴되었지만 그중 상당수가 출간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C.W.쎄람,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랜덤하우스, 2008., p.244.)<자료12> 그렇다면 이 점토판들은 왜 길가메시 서사시와 다른 대우를 받아야 했을까. 길가메시 서사시가 처음 발굴되었을 때는 그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정보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접한 기독교 국가들은 당연히 길가메시 점토판의 대홍수 이야기가 노아 홍수를 기록한 것이라고 믿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성경의 이야기를 증명해 주는 기록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토록 열광하고 주목했던 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 들어 메소포타미아에서 다양한 유물과 점토판이 발굴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해 점토판의 제작 연대를 정확히 밝힐 수 있게 되면서 길가메시 점토판이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길가메시 점토판은 성경보다 1700년 먼저 기록된 것이었고, 따라서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 이야기를 차용해 쓰여진 것이었다. 성경이 다른 인간의 기록보다 뒤처졌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가져다 썼다는 사실은 성경을 유일한 신의 계시로 믿고 있던 기독교 국가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성경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니라 성경이 누려왔던 헛된 위상을 깨뜨리는 증거였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모두 성경보다 먼저 기록된 것이었다. 두 이야기는 각각 서기전 2600년대와 1600년대 점토판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서기전 400년대에 쓰인 성경보다 2200년~1200년 앞선 것이다. 성경보다 앞선 기록이 성경과 똑같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이제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은폐의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인가. 길가메시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만천하에 공개했던 손길이 지금은 지우수드라나 아트라하시스, 그리고 또 다른 점토판에 어두운 암막을 드리우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뒤늦은 은닉으로는 대대적으로 공개해 버린 사실을 돌이킬 수 없으니 진실 게임의 승자는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메소포타미아 연구의 보고(寶庫) 영국 국립 박물관 영국 국립 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영국의 런던 블룸즈베리에 위치해 있는 국립 공공박물관이다. 과거 영국이 제국주의 시대부터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소장 및 전시하고 있으며 소장품이 800만여 점에 달한다. 전시관은 이집트·수단, 그리스·로마, 중동, 아시아 전시관을 비롯해 영국과 유럽의 선사시대 및 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 전시관까지 모든 대륙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중동 전시관은 33만여 점에 달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유물의 발굴 지역인 이라크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양이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님루드와 니네베의 왕궁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던 부조를 통째로 떼어 와서 전시관의 복도를 장식해 놓았다. 영국 국립 박물관에 처음 중동 전시관이 설치되었을 때는 한 개인의 수집품을 전시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영국의 고고학자인 헨리 레이어드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한 유물을 모두 이 박물관으로 가져오면서 소장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영국의 발굴팀은 점토판을 보관한 왕립 도서관(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발굴했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과 생활이 생생히 기록되어 이 지역 연구에 둘도 없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 방대한 양의 점토판을 모두 영국으로 반출하면서 영국은 메소포타미아 연구의 보고로서 명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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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8> 고고학적인 발견과 성경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 <8> 고고학적인 발견과 성경에 대하여

흔히 고고학자라고 하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흥미진진한 모험과 고대 세계의 탐험에 몸을 던지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자료1> 전설적인 유물을 찾아내고 미지의 문자를 해독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 스토리는 고고학이 가진 매력과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고고학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800년대 유럽에서는 모험심에 불타는 고고학자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값진 유물을 찾아내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이것은 학자들 간의 불꽃 튀는 경쟁을 가져왔다. 그 발굴과 경쟁의 무대는 다름 아닌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메소포타미아(Μεσοποταμία,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을 가리키던 이름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땅을 의미한다. 이곳은 기독교 국가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데, 성경의 유명한 도시들이 위치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성경에 20회 이상 등장하는 도시 니느웨(니네베)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있었다. 니느웨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로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도시였으며 선지자 요나가 전도 활동을 펼친 곳이었다. 또 성경에서 300회 가까이 언급되며 퇴폐와 타락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도시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중부에 있었다. 한마디로 메소포타미아는 성경의 도시들이 세워지고 멸망했던 역사의 무대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자료2> 그런 땅에 유럽의 기독교인 고고학자들이 발을 디딘 것은 180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당시만 해도 메소포타미아는 접근하기 힘든 지역이었다. 유럽에서 메소포타미아에 가려면 시리아 사막을 가로지르거나 티그리스 강에서 배를 타고 가야 했는데, 사막과 강은 둘 다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경로였다. 과거 메소포타미아는 비옥한 토지와 발달한 문명을 가진 곳이었지만 수천 년의 시간 동안 토지는 황폐해지고 문명의 흔적은 흙먼지와 모래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기독교인 고고학자들은 이 황무지에 성경의 보물이 묻혀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했다. 고고학이 태동하던 초기에는 상인과 의사, 군인 등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정열적으로 고고학 발굴에 뛰어들었는데, 그중 프랑스인 외교관 폴 에밀 보타(1802~1870)가 있었다.<자료3> 1840년 이라크 모술의 영사관에서 근무하게 된 보타는 일과 후 모술 근교를 혼자서 헤매고 다녔다. 토착민이 사는 동네에 가서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며 골동품과 옛날 도자기, 꽃병 등을 구입하던 그에게 기묘하게 솟아오른 둔덕이 눈길을 끌었다. 이집트에서 7년 동안 근무하며 여러 유적지와 발굴 현장을 봤던 그는 둔덕 아래 유물이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구릉을 직접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을 파헤쳐도 깨진 지붕 조각이나 파손된 조각상만 보이자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보타라 해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토착민이 찾아와 “제가 사는 코르사바드로 가십시다. 당신이 찾는 것이 널려 있습니다.” 하고 떠벌렸을 때 보타는 큰 기대 없이 인부들을 딸려 보냈다. 그런데 온갖 유물이 가득하다는 보고를 받고 보타가 급히 달려갔을 때 놀랍게도 거대한 황소 석상이 그를 맞이했다. 날개 달린 황소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조각상은 그 기괴한 형태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솜씨로 표현된 작품이었다. 에밀 보타는 천신만고 끝에 수십 톤에 달하는 황소 석상을 프랑스 파리까지 운반하게 되었다. 1847년 5월 이 황소상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됐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관람객을 내려다보는 반인반수의 모습은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고,<자료4> 이 모습을 보고 성경의 ‘그룹들(히브리어로 케루빔)’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창세기의 ‘생명나무를 지키는 그룹들’을 비롯해 성경에 그룹에 대한 구절이 70회 이상 등장하는데 유럽인들은 그룹들이 날개 달린 수호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날개 달린 괴이한 모습으로 두려움을 안겨주는 황소 석상을 보자 그것이 그룹들이라 여겼던 것이다.(볼프강 코른, 『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 고고학자』, 주니어 김영사, 2008.,p.60.) 황소 석상이 진짜 수호천사인지, 성경 상의 그룹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성경 속의 보물을 찾아냈다는 소문이 퍼지자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되었고 발굴자에게 드높은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불꽃 튀는 발굴 경쟁으로 이어졌다. 에밀 보타의 성공에 자극받은 고고학자들이 발굴에 뛰어들면서 수십 개의 황소 석상뿐 아니라 니느웨의 궁전과 엄청난 양의 점토판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들은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를 비롯한 영국의 발굴팀이었다. 그들이 발굴한 점토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와 경제, 종교와 생활을 쐐기 문자로 상세히 기록한 것이었고, 영국의 발굴팀은 2만 5천 점에 달하는 점토판을 영국 국립 박물관으로 운반했다. 이로써 영국 국립 박물관은 메소포타미아 연구의 보고(寶庫)라는 명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점토판 중에는 성경 상의 노아 홍수와 똑같은 대홍수 이야기가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도 있었다. 홍수 이야기가 쓰인 길가메시 점토판이 해독되자 유럽인들은 열광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점토판의 홍수 이야기가 당연히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라고 확신했다. 성경이 유일한 신의 계시라고 믿었기 때문에 홍수 이야기가 오직 성경에만 있으며, 길가메시 점토판은 당연히 노아 홍수를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고방식은 일대 반전(反轉)을 맞게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서기전 2100년대에 기록되어 서기전 400년대에 쓰인 성경보다 1,700년 앞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길가메시 서사시는 대홍수를 포함해 다채로운 모험을 묘사한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는 것도 밝혀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가 점토판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먼저 기록돼 있던 길가메시 서사시 중에 일부가 성경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러한 반전은 점토판이 해독될 때마다 일어났는데, 길가메시 서사시를 처음 해독했던 조지 스미스가 또다른 점토판을 찾아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스미스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해독하면서 직접 니느웨를 방문해 추가적인 발굴 작업을 이어갔는데, 뜻밖에도 성경 창세기와 유사한 점토판을 발견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점토판을 영국으로 가지고 돌아와 연구하면서 언론을 통해 “제 연구가 마무리되면 창조 이야기에 대한 전체 설명과 번역을 출간하겠습니다.”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데일리 텔레그래프 1875년 3월 4일자) <자료5> 그러나 그는 니느웨 원정에서 열병에 걸려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사후에도 점토판 해독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그것이 ‘에누마 엘리쉬’라는 창조 서사시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보다 700년 이상 앞서서 기록됐으며 바빌로니아의 최고 신이었던 ‘마르둑’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먼저 기록된 ‘에누마 엘리쉬’가 변형되어 성경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발굴이 계속되면서 에누마 엘리쉬 외에도 쐐기 문자로 기록된 다양한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창조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작품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수메르의 창세 이야기’라 불리는 점토판이 있다. 서기전 2600년대에 기록된 이 점토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이 창조를 시작할 때 먼저 빛을 창조해 하늘을 밝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성경 창세기와 동일한 서술이라 할 수 있다. 『하늘 신이 하늘을 밝게 하였으며』- 수메르의 창세 이야기 점토판 1행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거늘』- 성경 창세기 1장 3절 창조의 과정 중에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는 것은 앞서 소개한 ‘에누마 엘리쉬’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에누마 엘리쉬에서 가장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는 것도 성경과 같은 순서이다. 특히 에누마 엘리쉬는 명명(命名)하는 행위를 중요시하여 신이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행위가 곧 창조라고 한다. 신이 사물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거늘” 하는 구절처럼 신이 빛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명령을 내리면 바로 창조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자료6> 성경 창세기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후 에덴동산에 살게 했으며, 세상에 대홍수를 내리고 그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구조는 메소포타미아의 또 다른 이야기인 ‘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서기전 2600년대에 기록된 ‘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학교에서 가르쳤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노아 홍수와 동일한 대홍수 이야기가 포함된 것이 특징이라면, ‘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는 인간을 창조하는 단계부터 대홍수까지 성경의 이야기 순서와 동일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창조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 창조를 설명하는 부분에 에덴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지우수드라 이야기에서 인간이 창조된 후 뱀들이 나타나고 들짐승과 동물들이 에덴에서 서로 즐겁게 놀았다고 하는데(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 점토판 47행~51행), 이는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들짐승과 동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연결된다.(성경 창세기 2장~3장) 두 이야기에서 ‘에덴’이 태초에 인간이 살았던 곳이자 온갖 동물들이 평화롭게 지냈던 장소로 묘사된다는 공통점이 있다.<자료7> 또 눈에 띄는 것은 숨과 생명이라는 단어이다. 수메르어로 쓰여진 지우수드라 이야기에서 신이 사람에게 ‘숨을 주고 생명을 주었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다른 수메르 문학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는 표현으로 수메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숙어라고 할 수 있다.(지우수드라 홍수 이야기 점토판 257행) ‘숨을 주고 생명을 주었다.’는 숙어가 성경 창세기에 똑같이 나타나는데 신이 아담을 창조할 때 숨을 주고 생명을 주었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 2장 7절) 성경보다 1200년 앞서 서기전 1600년대에 기록된 점토판으로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인간 창조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흙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신이 흙덩어리를 떼어 사람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아트라하시스 첫 번째 점토판 255행~261행) 이는 성경과 동일하기 때문이다.(성경 창세기 2장 7절) 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재료로 인간을 만들었으며 흙이라는 재료까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점토판 중에 ‘지우수드라 이야기’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공통점이 있다. 점토판의 일부가 파손되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점토판은 그 특성상 발견과 운반 과정에서 깨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조각 난 점토판을 맞추어 가며 해독 작업을 했다. 그러나 두 이야기가 기록된 점토판은 중요한 부분이 부서져서 아예 읽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지우수드라 점토판은 3분의 2 정도가 파손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지우수드라 이야기는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문학 작품 중에서 성경 창세기와 순서와 구조가 똑같은 유일한 작품인데 그 점토판이 부서지고 사라져서 세밀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점토판도 58행이 파손되어 사라졌다. 메소포타미아 문헌 연구가인 헨리에타 맥컬의 표현을 빌리면 “아마도 성경과 비교하는 것이 매력적일 부분만” 공백이 되어 없어졌다고 한다.(헨리에타 맥컬,『메소포타미아 신화』, 범우사, 1999., p.109.) 독일의 신문 기자였던 C.W.쎄람은 “1800년대 후반 방대한 점토판이 발굴됐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 상당수가 최근까지도 출간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C.W.쎄람,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랜덤하우스, 2008., p.244.) 두 이야기는 그나마 남은 점토판에서도 성경과 동일한 부분이 두드러지는데, 온전한 점토판이 있었다면 어떤 결론을 이끌어 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수천 년 흙더미에 묻혀 있던 점토판은 기독교 고고학자들에 의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됐지만, 정작 학자들이 발표하고 출간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례로, 1889년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인 니푸르에서는 23,000개에 이르는 점토판이 발굴됐지만 그중 대부분이 발표되지 않은 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니푸르 발굴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성경 전문가이자 철저한 기독교인 피터스 목사였는데, 이는 발굴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점토판을 발굴한 사람도, 점토판을 해독한 사람도 모두 성경의 내용을 증명하겠다는 열망을 가진 기독교인이었고, 점토판이 밝혀 주는 불편한 진실을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된 사람도 기독교인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흙더미에서 나온 점토판들은 이제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독일 등 기독교 국가들의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 흔히 고고학자를 일컬어 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이라고 한다. 수사관이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확보해 범행 과정을 추적하는 것처럼 고고학자는 수천 년 전에 남겨진 증거를 통해 아득한 과거의 진실을 추적하게 된다. 수사관과 고고학자에게는 증거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반대로 범인에게는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하게 된다. 지금부터 200여 년 전, 고고학자들은 성경이 신의 유일한 계시라는 믿음으로 첫발을 내딛었지만 이는 반전을 맞았다. 성경이 지난 시대의 기록을 이어받은 인간의 책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론이었다. 이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점토판이 사라지거나 파괴되거나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새로운 반전이 될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유물의 발굴 장면 # 수십 개의 황소 석상이 발견되다. 에밀 보타의 성공에 자극받은 고고학자들이 메소포타미아 발굴에 뛰어들면서 수십개의 황소 석상이 발견 되었다. 사진은 코르사바드 사르곤II 궁전에서 발견된 황소 석상의 발굴 모습이다. (출처: http://trenka-dalton.info/work/2008-city-of-commerce-2/, https://www.uchicagoartsblog.art/) # 거대한 석상을 마주치다. 1849년 영국의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 발굴팀은 님루드 궁전에서 거대한 석상을 발견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를 더 파헤치자 거대한 황소 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 레이어드는 이 장면을 자신의 저서 (『니네베와 그 유적들』, 1867., p.49.)에 삽화로 남겼다. (출처: https://biblicalarchaeology.org.uk/) # 엄청난 양의 유물을 운반하다. 코르사바드에서 유물을 옮기는 모습과 1855년 티그리스 강에서 뗏목으로 유물을 운반하는 모습으로, 1867년 Place Victor著『니네베와 아시리아』中 43, 44페이지의 삽화이다. (출처: 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

특집
세계 종교 탐구 <7> 바빌론과 성경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 <7> 바빌론과 성경에 대하여

지금부터 90여 년 전인 1930년, 독일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아치형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문이 전시되었다. 성문 벽을 쌓아 올린 푸른색 벽돌은 화려하게 반짝였으며, 벽면에는 포효하는 사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돋을새김 되어 있었다.<자료1,2,3> 그러나 관람객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성문이 발굴된 장소였다. 이 성문은 바빌론의 성곽에 설치되었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관람객들은 성경에 기록된 도시 바빌론의 유물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빌론은 성경에 여러 가지 사건이 기록된 도시였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유명했고, 유대인 선지자 다니엘이 활동했던 도시도 바빌론이었다. 또 바빌론 군대가 유대인의 도시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수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끌고 간 사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바빌론은 2600년 전에 있었던 신(新)바빌로니아의 수도였으며,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위치에 있다. 화려한 건축물을 자랑하던 바빌론이었지만 멸망 후에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점차 황폐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막의 모래바람에 묻히게 되었다. 황량하고 메마른 모래 언덕이었던 바빌론을, 독일의 고고학 팀이 수십 미터의 모래더미를 걷어내는 작업 끝에 마침내 발굴해 냈던 것이다. 바빌론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바빌론의 기록도 해독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뜻밖에도 성경에 대한 진실과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바빌론의 발굴과 연구 과정을 따라가며 성경과 맞닿는 순간을 짚어 본다. 바빌론은 1898년 독일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1859~1941)가 있었다.<자료4> 그는 발굴을 위해 ‘독일 오리엔트 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발굴에 필요한 자금을 황제의 개인 금고에서 지출할 정도로 바빌론에 대해 남다른 애착과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황제가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를린 한가운데 세워진 박물관에 진귀한 유물을 채우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황제가 생각하기에 무엇보다 진귀한 유물은 성경의 무대에서 발굴된 것이었고 그것은 독일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 기독교 국가의 공통적인 경향이었다. 독일의 고고학자 프리드리히 델리취(1850~1922)는 이렇게 말했다. “비싼 돈 들여가며 수천 년 동안 버려졌던 잡석을 휘젓는 이유는 무엇이며, 금이나 은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도 없는데 지하 깊숙이 파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빌론 발굴에 대해 계속 높아만 가고 있는 관심의 토대는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하나의 해답이 있다. 바로 성경이다.”(프리드리히 델리취, 강연집 『바벨과 성경』,라이프치히 출판사,1902.,p.3)<자료5> 델리취 교수가 지적한 대로, 독일 황제가 바빌론 발굴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성경의 도시를 발굴한다는 종교적 열망이 큰 이유였다. 유적지를 발굴하고 거대한 유물을 운반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재원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독일에 앞서서 프랑스와 영국도 성경의 무대를 발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자료6,7> 프랑스는 니느웨(현재 이라크에 위치)를 발굴해 날개 달린 거대한 황소 석상을 루브르 박물관으로 운반해 왔는데, 니느웨는 성경에서 요나 선지자가 활동했던 도시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또 영국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님루드(현재 이라크에 위치)를 발굴해 전쟁 장면이 정교하게 돋을새김 된 석판을 영국 국립 박물관으로 가져왔다. 아시리아는 성경에 포악한 제국으로 묘사돼 있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석판에 새겨진 전쟁 장면을 보고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국립 박물관이 큰 인기를 끌며 화제가 되는 속에서 독일은 바빌론 발굴을 시작했다. 조사를 통해 20m 두께의 모래와 진흙층 아래 건물과 벽이 묻혀 있는 곳이 밝혀지자 그곳을 수직으로 파 내려가 단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정한 위치에서 자기로 구워진 푸른색 벽돌이 계속해서 발견되면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발굴했는데, 9개월 후 푸른 벽돌로 쌓은 성문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보존 상태가 좋았던 성문의 벽돌은 수백 개 궤짝에 담겨 독일로 운반되었고 새롭게 세워진 박물관 안에 14m 높이로 설치되었다. 그것이 1930년 페르가몬 박물관에 설치된 바빌론의 성문이었다. 독일 황제가 원했던 대로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진귀한 유물이 전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발굴은 뜻하지 않은 증거물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도시를 발굴할수록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바빌론의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실제 발굴된 바빌론의 모습을 보고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성경을 보면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잔혹하고 폭력적인 면만 부각되어 있는데, 사실 그는 최첨단의 건축 기술을 발휘해 도시를 세운 왕이었다. 유프라테스의 강물을 끌어와 물이 풍족히 공급되게 했고 황량한 사막에서 푸른 초목이 우거진 공중 정원을 만들었던 것이다.<자료8>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왜 성경은 바빌론 왕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여 기록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고고학자이자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인 마크 반 드 미에룹은 이렇게 설명했다. “바빌론의 왕은 예루살렘을 침략해 유대인의 성전을 파괴한 왕이었다. 유대인은 바빌론의 왕이 자신들의 성전을 파괴하고 동족을 포로로 끌고 갔기 때문에 그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EBS 다큐 프라임 “위대한 바빌론 2부 바벨탑” 2013.1.29. 방영) 서기전 601년 바빌론의 왕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것은 유대인에게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또 수천 명의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 포로 생활을 하게 만든 것은 유대인 역사에서 잊지 못할 수난이었다. 그들의 시각에서 기록된 성경이 바빌론에 대해 결코 호의적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다시 말해 성경에 유대인의 시각이 반영되어 일부 사실은 부각하고 일부 사실은 누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 장 보테로는 “성경도 사관(史觀)의 문제”라고 간단하게 정리했다.(장 보테로,『메소포타미아』, 시공사, 2008., p.48.) 성경도 집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여느 역사책과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이었다. 성경을 ‘인간이 집필한 역사책’이라고 보는 것과 ‘신의 계시가 쓰인 기록’이라고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성경을 인간의 책이라고 보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신의 계시라고 받들던 기독교 국가들이었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던 고대 세계의 발굴과 연구가 사실에 대해 눈뜨게 만든 것이었다. 성경에서 바빌론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바벨탑을 쌓으며 ‘신에 도전하는 오만한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자료9>그러나 실제 바빌론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경배하 고 찬미하는 종교 생활을 영위했던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악카드어’를 해독하고 쐐기 문자로 기록된 점토판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바빌론에서 중요한 종교 행사는 해마다 열리는 신년 축제였다. 바빌론 사람들은 ‘마르둑’이라는 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기 때문에 신년 축제에서 마르둑을 찬미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이때 제사장은 수많은 관중 앞에 나와 “에누마 엘리쉬”라는 서사시를 낭독했다.<자료10> 이는 마르둑이 천지를 창조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었고, 먼저 하늘과 땅이 없었던 태초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시작되었다.<자료11> 마르둑이 창공을 만들어 해와 달과 별을 두고, 그것의 움직임에 따라 절기와 날을 세도록 만드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었다. ⌈해를 정하고 절기를 나누었다. 열두 달에 세 별을 세웠다. 이에 따라 일 년의 날짜를 정했다.⌋ <에누마 엘리쉬 다섯째 토판 3행~5행> 그리고 물을 모이게 한 후 육지와 바다를 만들었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바빌론의 지리적 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바빌론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지역, 현재 이라크와 일부 국가)는 두 강줄기가 실어온 퇴적토가 육지인 삼각주를 만들고 강물이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 바다가 되었던 것이다.<자료12> 그 지역에서는 물이 모여 땅이 되고 바다가 되었던 셈이다. 이러한 내용을 유대인들도 해마다 들을 수 있었다.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왔던 시기(서기전 597~ 서기전 538)에도 신년 축제가 열려 에누마 엘리쉬를 통해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성경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성경 창세기 1장 6절부터 19절의 내용을 보면 유대인들의 하느님(엘로힘)이 창공을 만들어 해와 달과 별을 두고 그에 따라 절기와 날을 세는 징표가 되게 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중에서 1장 14절은 이런 내용이다. ⌈낮과 밤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하여 하늘의 창공에 빛들이 있어라. 그래서 절기와 날수와 햇수의 징표가 되어라.⌋ <성경 창세기 1장 14절> 그다음 엘로힘이 물을 모이게 한 후 육지와 바다를 만드는 과정이 묘사돼 있는데, 이는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이 행한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유대인이 살았던 예루살렘은 두 강줄기가 모여 퇴적토를 만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러한 내용이 그들의 성경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창조의 과정뿐 아니라 바빌론에서 쓰이던 표현이 그대로 성경에 들어간 것도 있었다. 창세기 5장 3절에 “아담이 그와 닮게 그의 모습처럼 아이를 낳았다.”는 표현은 바빌론 사람들이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고 표현할 때 사용하는 숙어였다. 이 표현은 에누마 엘리쉬 첫째 토판 15절~16절에도 나오는데, “안샤르는 그의 자식 아누를 그와 닮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누는 누딤무드를 그의 모습으로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조철수, 『사람이 없었다, 신도 없었다』, 서운관, 1995., p.66~67.) 성경이 집필된 것은 서기전 400년대이며, 에누마 엘리쉬가 쓰여진 것은 서기전 1100년대~1200년대로 추정되고 있으니 에누마 엘리쉬는 성경보다 700년을 앞서 기록된 천지 창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바빌론에서 널리 퍼졌던 이 창조 서사시가 성경의 창세기가 되고, 바빌론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 성경의 관용구가 된 셈이었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 바빌론의 발굴을 주도했던 독일 황제는 성경이 신의 계시라고 신봉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성경이 신의 계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며 분노하기도 했다.(<그렌츠보텐>, 라이프치히 출판사, vol.62 1903년 1분기, p.493.) 독일 황제가 살아 있다면, 바빌론의 발굴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음 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널리 퍼졌던 또 다른 창조 이야기에 대하여 알아본다.

세계 종교 탐구 <6> 노아 홍수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서(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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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를 뒤덮는 거대한 홍수, 망망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생명의 방주, 거기서 날려 보낸 비둘기 한 마리……. 기독교 성경에 기록된 노아 홍수 이야기는 국가와 종교,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년 전부터 화가들은 홍수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이나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회화 작품으로 남겼고, […]

세계 종교 탐구 <5> 노아 홍수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서(上)

세계 종교 탐구 <5> 노아 홍수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서(上)

세계 종교 탐구 <5>

최근 ‘길가메시 서사시’에 관한 기사가 미국 뉴욕타임즈와 AP 통신, 영국의 더 타임즈 등 유수한 언론에 보도되며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된 점토판은 원래 이라크에 있었으나 1990년대 불법 반출된 후 여러 곳을 거쳐 미국 워싱턴의 성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이라크로 반환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자료1> 미국에서 이라크로 반환되는 유물이 1만 7천 점에 달하는 데도 불구하고 […]

“청년 대집회에서 구원의 참 길을 밝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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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17일, 하나님께서는 만여 명의 청년들이 운집한 집회에서 놀라우신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해 4월 5일 처음으로 예수의 정체를 밝히신 후 청년들을 위해 친히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말씀해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행함이 없는 맹목적인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밝혀 주셨습니다. 또한 이슬성신과 생명물의 권능으로 죄를 씻어 아름답게 화해야만 구원을 얻을 […]

세계 종교 탐구 <4> 종교 속의 여신(女神)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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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여성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신이 창조한 이브’를 떠올리는 것은 성경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남녀를 창조해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에 포함되어 세 종교에서 모두 신의 말씀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을 보면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이후에 이브를 만들었다는 반면에 창세기 1장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했다고 기록되어 […]

세계 종교 탐구 <3> 종교적 의식(儀式)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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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에서 전차가 원형 그대로 발굴되어 언론의 관심을 받은 일이 있었다. 철제 부속품과 청동 장식으로 이뤄진 전차는 측면에 남녀가 성적으로 결합하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어 특정한 의식에 사용된 전차였으리라는 추정을 낳게 했다. <자료1> 폼페이는 서기 79년 화산의 대폭발로 1700년 동안 화산재에 뒤덮여 있다가 현대에서야 발굴되었기 때문에 고대 로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타임캡슐로 […]

세계 종교탐구 <2> 성서(聖書)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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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에서 새로운 아브라함을 발견하다.” (“DISCOVERIES AT UR SHOW NEW ABRAHAM”) 1929년 3월 17일 뉴욕타임즈는 우르의 발굴 소식을 전하며 이런 제목을 붙였다.<자료1>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현재 이라크의 텔 알무카야르)로 기독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아브라함은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고향인 우르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 도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아브라함이 […]

세계 종교탐구 <1> 종교가 가르친 것들…물과 불이 가진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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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기획을 시작하며… 종교의 어원을 보면, 한자어(宗敎)로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라틴어(religio 또는 religare)로는 ‘신을 경배하여 신과 연결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종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야 하며, 절대적인 신의 존재와 연결되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지에서는 각국의 종교가 설파하는 내용을 탐구하며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고찰해 보는 ‘세계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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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소개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이 모여사는 신앙인의 마을입니다.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신앙인의 마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 같은 성신이 임하시는 은혜의 땅이자 천부교인의 성지입니다. 천부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 이슬성신이 내리는 체험의 종교이자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입니다. 천부교를 믿는 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신앙인의 마을을 이룬 곳, 맑고 푸른 자연 속에서 바른 양심으로 자유율법을 지키며 살고자 […]

Welcome to Shinang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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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angchon introduction

■ Shinangchon is a religious community Shinangchon is a religious community where believers of the Chunbukyo faith live and work together. It was built so that believers can live together and lead a cleaner life in the grace of God. Blessed by God, Shinangchon is truly the Holy City of Chunbukyo where boundless joy and […]

다시 쓰는 세계사<17>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골고다에서 코로나까지, 미신(迷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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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장애 아동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었다. 가톨릭 언론에서는 이를 교황의 축복이라고 보도했으나, 이 ‘축복’은 어린이와 교황 둘 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밀접 접촉하는 것이었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행동이었다. <자료1> 일반 언론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교황이 이라크 순방을 강행한 것 자체가 위험한 여행이라고 경고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