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식민 지배의 신호탄과 전염병 생물학 폭탄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식민 지배의 신호탄과 전염병 생물학 폭탄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류와 문화를 케이크에 비유해 설명한 적이 있다. “인류와 문화는 케이크처럼 조각조각 자를 수 없다. 케이크를 잘라 반은 네가 갖고, 반은 내가 갖는 식의 협상으로 갈등이 종결되지 않는다. 함께 대화하고 건설해야 한다.” 세계 역사에서 케이크를 나누는 식의 협상은 여러 번 있었다. 각 나라의 인류와 문화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경계를 나눠 버린 최초의 사례는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atado de Tordesillas)이었다. 지구를 반으로 잘라 반은 스페인이 갖고 반은 포르투갈이 갖게 하는 조약이었는데, 이 조약을 승인한 당사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였다. <자료1,2> 이 조약에 따라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 지배하기 위해 나섰고 이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은 스페인에서 들어온 각종 전염병으로 대량 학살을 당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식민 지배의 신호탄이 되었던 통고문과 원주민에게 생물학 폭탄이 되었던 전염병에 대해 알아본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승인할 당시 교황은 물론이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세계의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평양이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도 일부만 파악했는데 미지의 땅이면 무조건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핵심이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이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이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교황이 인정해 준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교황의 승인으로 두 나라는 ‘발견’하는 땅을 전부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것의 맹점은 원래부터 땅을 소유했던 원주민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레케리미엔토(Requeri miento)’라고 불리는 통고문에도 그대로 반영됐는데, 레케리미엔토는 스페인 탐험가들이 미지의 땅에 도착해서 읽어 주는 선전포고문이었다.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교시한 내용으로, 간단히 말하면 “가톨릭의 하느님이 교황에게 세상을 넘기고, 교황은 너희 땅을 스페인에 넘겼으니 그런 줄 알라.”고 일방적으로 원주민에게 통보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시누족은 이 통고문을 듣고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글쎄, 가톨릭에서 믿는 하느님이 자기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인심을 팍팍 썼구려.”(로널드 라이트 지음,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2012., p.124./ Galeano 1985:60) 이것은 통고문을 원주민의 언어로 통역했을 때의 반응이었고, 통역 없이 스페인어로 읽고 끝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심지어 텅 빈 거리나 광장에서 읊기도 하고 아직 배가 육지에 닿기도 전에 뱃전에서 읊어 대기도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면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통고문 낭독에 집착했던 것은 이 통고문이 가지는 효력 때문이었다. “그대들은 가톨릭교회를 이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스페인 국왕이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에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비호 아래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어디서든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강제로라도 그대들이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악(todos los males)을 동원해 그대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 Spanish_Requirement_of_1513) 이 통고문을 듣고 원주민이 복종하지 않으면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었으며, 원주민 학살도 그들의 신이 허락해 준 정당한 행위가 되었다. 물론 원주민이 통고문대로 순순히 복종한다 해도 땅을 빼앗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자신의 문화와 땅을 가진 원주민이 하루아침에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낭독이 끝나면 곧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잉카를 정복할 때도 레케리미엔토를 읽어 주었다. 1532년 11월 원정대에 소속된 가톨릭 수사 비센테 데 발베르데는 카하마르카 광장에서 잉카 황제를 앞에 두고 레케리미엔토를 낭독했다. 그러자 잉카 황제는 “네가 말하는 교황이란 자가 참으로 미쳤구나. 남의 나라를 떡 주무르듯이 나눠 주다니.” 하고 대꾸했다. <자료3> 그래도 비센테 수사는 한 손에 십자가를, 한 손에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 가톨릭 성직자들이 매일 반복하는 기도문과 찬송가를 적은 책)를 들고 황제 앞에 다가가 “오직 십자가를 경배하고 오직 하느님만 숭배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잉카 황제가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묻자 수도사는 성무일과서를 내밀었고, 황제는 그 책을 훑어보더니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 즉시 비센테 수사가 “가톨릭을 모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외치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스페인 원정대는 일제히 대포를 쏘며 전투를 시작했다. 무장한 기마병들이 비무장 군중을 휘저으며 “개미 잡듯이” 죽이는 학살극이 끝났을 때는 만 명에 이르는 시신이 광장 여기저기에 피와 살이 범벅되어 나뒹굴었다. <자료4> 황제를 호위하던 병사들도 떼죽음을 당하고 잉카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던 황제마저 스페인 원정대에게 사로잡혔다. 이로써 잉카 제국은 멸망해 버렸다.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는 식민지가 되었으니 황제에게 읽어 준 레케리미엔토가 현실이 된 셈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정복 의지를 밝힌 레케리미엔토가 전쟁의 신호탄이었다면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에 가져간 전염병은 생물학 폭탄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는 스페인 사람들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마치 생물학 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각종 전염병이 극성을 부렸다. 100년 동안 스무 차례 전염병이 휩쓸고 간 결과 원주민 숫자는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9,000만 명의 사람이 몰살당했다. 스페인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지배했던 히스파니올라 섬의 원주민 타이노족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고 말았다. 아메리카 사람들이 그토록 전염병에 취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력한 원인 중 하나는 환경과 면역력의 차이였다. 아메리카 사람들은 매일 목욕하며 몸을 깨끗이 했을 뿐 아니라 날마다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며 청결함을 유지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병원균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었고 대량 살상 능력을 가진 전염병도 거의 없었다. 이것은 전염병에 맞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는 뜻이었다. 이에 반해 스페인은 홍역, 천연두, 페스트, 황열,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창궐했고, 이 환경에서 살아남은 스페인 사람들은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끼리 살 때는 아무 위험이 없었지만 강력한 병원체를 가진 스페인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치명적인 위험에 빠져 버렸다. 원주민이 스페인 사람과 접촉하고 나면 너무나 쉽게 죽어 버렸기 때문에 마치 스페인 사람의 냄새만 맡아도 죽는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전염병에 쓰러지는 원주민을 불에 타 죽는 빈대에 비유하기도 했다. (로널드 라이트 지음,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pp.93~94.) 특히 급속도로 퍼졌던 천연두는 스페인의 한 병사가 원주민과의 전투 중에 전염시켜서 원주민들은 반격할 힘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천연두는 얼굴을 흉측한 곰보로 만들고 눈까지 멀게 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원주민들조차 다시 절망에 빠졌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지가 세상을 떠나고 마을을 이끌던 어른도 없어졌으며 풍요로웠던 경작지는 돌보는 사람 없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눈앞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고 제멋대로 곡식을 심어도 저항할 원주민이 너무나 적고 힘이 없었다. <자료5>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만 골라 죽이는 전염병을 두고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이교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원주민의 눈에도 전염병에 끄떡없는 스페인 사람들은 신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였고, 겁에 질린 원주민들은 떼를 지어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곧 스페인 수도사들은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원주민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개종하고 세례까지 받은 후에도 여전히 전염병으로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1524년 중앙아메리카에서 선교하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원주민이 떼죽음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죽음이 곧 축복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곧 예수가 재림하고 세상이 끝날 것인데 종말을 앞두고 전쟁이 벌어져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신께서 세례를 받은 원주민 신도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심은 임박한 종말의 때에 고통을 면해 주시려는 특별한 축복”이라고 했다. 죽음이 곧 축복이라는 개념은 원주민에게 생소했지만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거라는 말은 원주민도 실감할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십자가 배를 타고 찾아온 뒤로는 악취 나는 그 배에서 바퀴벌레와 쥐가 튀어나와 해안에 흩어져서 바이러스성 질환을 퍼뜨리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온 돼지, 소, 양, 염소 같은 낯선 동물들이 운하와 들판을 엉망으로 만들자 예전에 없었던 인수 공통 질병(人獸共通感染病, zoonosis)이 창궐했다. 어디를 봐도 종말과 같은 고통과 혼란뿐이었다. 가톨릭 수도사들은 개종하지 않은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죽는 것도 신의 뜻으로 설명했는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제로니모 데 멘디에타는 이렇게 적었다. “원주민이 겪는 전염병을 보며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걸 느낍니다. ‘너희는 이 종족을 어서 절멸시켜라. 나는 좀 더 빨리 그들을 절멸시키도록 너희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Stannard, 『American Holocaust』, 219쪽.) 개종을 거부하는 원주민을 말살시키는 것은 예수의 뜻이었고, 예수가 전염병을 통해 종족 학살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신이 전염병으로 신도들을 돕는다는 생각은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에도 있었다.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1738~1820)는 “축복의 천연두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했다. 영국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해 침입했을 때 원주민 마을은 대부분 비어 있고 경작지는 죽은 원주민의 뼈로 뒤덮여 있었다. 천연두가 수차례 퍼지면서 뉴잉글랜드 지역 원주민의 94퍼센트를 학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연두로 원주민 종족이 말살을 당하고 영국인이 아무 저항 없이 원주민의 땅을 차지한 것을 두고 조지 3세가 ‘축복의 천연두’라고 칭송한 것이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와 조지 3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들이 믿는 신은 축복의 천연두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죽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죽이는 셈이었다. 죽음을 선사하는 신의 손길을 경험한 신도들은 신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1763년 영국의 제프리 암허스트 장군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천연두에 오염된 담요를 선물로 주었다. 암허스트 장군은 그들이 믿는 신이 허락한 대로 “지긋지긋한 종족을 절멸시키기 위해서” 천연두를 전염시켰다고 했다. 선물 받은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던 원주민들은 얼마 안 가 무시무시한 종기와 함께 죽음의 대열에 휩쓸려 버렸고 암허스트 장군은 그가 믿는 신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자료6>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탄젤로 성에는 전염병을 퇴치해 준 미카엘 천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톨릭의 전설에 따르면 페스트가 창궐하던 590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산탄젤로 성 위에 천사 미카엘이 칼을 들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이 꿈을 꾼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기 때문에 교황은 미카엘이 천사의 칼로 페스트를 물리쳐 준 것이라고 믿었다. <자료7> 그러나 미카엘 동상이 우뚝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스트는 계속해서 유럽에 창궐했다. 1331년부터 20년간 계속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고 1500년대에도 여러 번 유럽에서 재발했다. <자료8> 특정한 경우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이르는 치명적인 페스트에 대해 교황도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예수를 믿지 않는 신도들만 골라서 학살하던 신이 왜 유럽에서는 충성스러운 신도까지 죽였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의심일 뿐 그 신은 2,000년간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시체를 종교의 상징물로 내세운 이래로 시종일관 죽음을 축복으로 내려 준 신이 아니었던가.

특집
증오의 씨앗을 뿌린 범죄 집단과 그들의 이중 어법

증오의 씨앗을 뿌린 범죄 집단과 그들의 이중 어법

지난 1월 9일 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발언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프란치스코는 대립하고 있는 국가들을 향해서 분쟁을 대화로 해결해야 된다고 종용했다. 서로 증오심을 자제하고 대화하라는 교황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권유하는 당사자가 극심한 대립과 증오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면 어떨까.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양심에 거리껴 공공연하게 대화를 권유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중 어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라도 전혀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중 어법은 행동과 완전히 분리된 언어이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서도 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이중 어법을 정신 분열적인 어법이라 평하기도 한다. 따라서 극악한 범죄자가 이중 어법을 사용하면 자신은 선과 사랑을 실천한다고 만천하에 선언할 수 있다. 또 명백하게 해악을 입힌 가해자가 이중 어법을 사용하면 무고한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다며 고스란히 떠넘길 수 있다. 이러한 이중 어법 전략을 실제로 사용하는 집단이 있고 이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랫동안 이 전략을 구사해 왔다. 두 대륙의 원주민들은 이중 어법을 쓰는 범죄 집단에게 유린당해 처참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현세의 지옥을 살고 있다. 이번 <다시 쓰는 세계사>에서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원주민을 역사상 가장 비참한 피해자로 만든 집단이 어디였는지, 그 원주민의 증오를 불러일으킨 이중 어법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악을 행하며 선이라 말하는 이중 어법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원주민은 이중 어법을 구사하는 집단에게 유린당해 1985년 3월 6일, 남미인디오평의회(CISA, Consejo indio de Sudamerica)가 선언문을 발표했다. 남미인디오평의회는 과거 스페인에게 침략당하고 지배받았던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단체로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모든 정치 지도자와 가톨릭 지도자들을 사형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가 실현된다. 그들에 비하면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범죄는 사소할 뿐이다.”(엔리케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2011, p.205.)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가해자들이 나치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스페인의 정치 지도자와 가톨릭 지도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지배 초기인 1550년 가톨릭 신학자 세풀베다가 발표한 글을 보면 지배 세력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야만적인 아메리카 원주민은 천성적으로 노예이기 때문에 그들보다 사려 깊고 완전한 사람들의 제국(스페인)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제국의 지배는 첫째로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이 될 것이며 … 모두에게 선(善)이 될 것이다. 둘째로 야만적인 이교(異敎)의 위해로부터 원주민들을 구하게 될 것이다.”(스페인의 가톨릭 신학자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전쟁이 정당한 이유』)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스페인의 침략으로 자신이 주인인 땅에서 노예가 됐으며 조상 대대로 숭배하던 원주민의 신전은 무참히 파괴당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가 원주민에게 이익을 주고 선(善)이 되었으며 야만적인 종교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고 주장했다. 악을 행하면서 선이라 말하는, 이중 어법의 극치라 할 만한 발언이었다. 이런 주장을 펼친 가톨릭 신학자 세풀베다는 스페인 왕자의 가정교사로 왕자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왕자는 펠리페 2세로 등극해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자료1> 또한 세풀베다는 광산에서 착취당하는 원주민 노예에 대해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원주민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이교(異敎)를 숭배한 그들의 죄가 예수를 진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장 클로드 카리에르, 『바야돌리드의 논쟁』) 예수를 알지도 못했던 원주민이 예수 외의 다른 신을 섬긴 것이 곧 죄가 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모순이었으나 이중 어법을 구사하는 집단은 이 논리로 원주민의 착취를 정당화했다. 가해자는 무고한 원주민에게 온갖 해악을 입히면서도 원주민이 치러야 할 당연한 죗값이라는 이중 언어를 구사한 것이었다. 포토시(Potosi, 현재 볼리비아의 도시)는 원래 말발굽까지 은으로 만들 정도로 풍부한 은 매장량을 자랑하는 부유한 도시였다. 스페인은 포토시를 점령한 1545년부터 300년 동안 이곳에서 4만 톤 넘는 은을 채굴해 갔으며 원주민 노예가 은광에서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을 시켰다. 천연 자원과 인적 자원 모두 강탈한 것이었다. <자료2> 스페인 왕실이 파견한 제후들은 포토시 사방 100킬로미터까지 노예를 사냥하러 나갔다. 비옥한 땅에서 농사지으며 풍족하게 살던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은 밤이면 밤마다 공격을 받았고, 결국 원주민들은 전부 미로 같은 은광의 지하 터널로 짐승처럼 끌려갔다. 원주민의 부와 생명을 강탈한 범죄집단 풍요로운 자원과 무고한 생명을 강탈하고 원주민에게 노예와 빈곤의 굴레 씌워 갱 속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면 즉각 살해될 뿐 아니라 할당량만큼 은을 캐내지 못하면 지상으로 나올 수 없었다. 벌레처럼 갱도를 기어 다니던 원주민들이 무너지는 광산에 생매장되는 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가혹한 노동과 위험한 사고로 이 광산에서만 800만 명이 넘는 원주민이 학살당했다. <자료3> 포토시의 은광이 위치했던 산은 원래 “부유한 산(Cerro Rico)”이라고 불렸으나 지금 원주민들은 이 산을 “사람 잡아먹는 산(El cerro que come hombres)”이라 부르며 풍부한 은을 선사했던 천혜의 자연을 원망하고 있다. 그 은 때문에 가톨릭 제국이 몰려왔고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의 입에 원주민의 부와 생명이 쓸려 갔기 때문이다. 현재 포토시가 속한 볼리비아는 인구의 60%가 빈곤에 허덕이는 세계 최빈국으로 수백 년간 착취 당한 원주민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료4> 가해자의 이중 언어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막대한 이익과 선을 주었다고 했지만 원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토록 많은 거짓말과 그토록 가증스러운 언동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장 지글러, 『빼앗긴 대지의 꿈』 38p) 가해자의 이중 어법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게 된 또 다른 대륙이 바로 아프리카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자신의 땅에서 노예가 되었다면 아프리카 원주민은 바다 건너 이역만리 남의 땅에 끌려가 노예가 되었다. 15세기부터 노예로 붙잡힌 아프리카인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배 위에서 죽었고, 비참한 노예 농장에서 착취에 시달리다 죽었다. 그렇게 1,500만 명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고 400년간 노예 사냥에 시달리면서 아프리카의 공동체는 산산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1600년 조선(현재의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과 동일함)의 인구가 94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가톨릭 제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강제 노동과 아프리카 원주민의 노예 사냥으로 조선 인구의 2배가 넘는 무고한 생명을 살육한 것이었다. 아프리카인 노예를 처음 실어 나르기 시작한 것은 십자가 돛을 높이 세운 포르투갈 선박이었으며 아프리카인의 노예화를 허가해 준 것은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이었다. 1450년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아프리카 침략을 진두지휘하는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5세에게 성스러운 교서(로마누스 폰티펙스, Romanus Pontifex)를 내려 주었다.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거기서 납치한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성스러운 전쟁’이라 명명하고 이 성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대사(全大赦)를 주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보통 면죄부가 특정 죄만을 사면해 주는 데 비해 전대사는 모든 죄를 사면해 주었기 때문에 참전을 독려하는 데 이보다 좋은 명분이 없었다. 교황의 전대사는 그 자체로 이중 언어였다. 무고한 원주민을 납치해 노예로 만드는 악한 행위를 천국 가는 티켓이라고 선언한 것은 악을 행하면서도 선이라 말하는 전형적인 이중 언어였다. <자료5> 노예 사냥은 아프리카 경제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약화시켰다. 노동 인구가 노예로 잡혀가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납치가 계속되니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가 없었다. 특히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던 서아프리카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십자가 선박이 찾아오기 전까지 서아프리카는 풍부한 금과 소금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일찍부터 이슬람교가 전파된 지역이었다. 특히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9대 왕이었던 만사 무사(Mansa Musa) 때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유명했다. 현재의 경제 역사가들은 만사 무사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자였을 것으로 추정할 정도이다. 이슬람 신자였던 만사 무사는 1324년 메카로 순례를 떠났는데 순례 행렬에 1만 2천 명의 수행원과 11톤의 황금을 가져가서 아낌없이 금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만사 무사에 대한 이야기는 수십 년 동안 인구에 회자되었고 이것은 가톨릭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375년 제작된 카탈루냐(현재 스페인 동북부 지방) 지도에서 만사 무사는 당당하게 황금 공을 들고 황금관을 쓴 주인공으로 그려졌으며 다른 백인의 시선이 이 흑인 왕에게 쏠린 것으로 묘사되었다. <자료6> 말리 제국의 수도인 팀북투는 아프리카의 엘도라도(El Dorado, 황금의 도시)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엘도라도가 있다는 환상을 품고 약탈과 침략에 나섰던 것처럼 엘도라도 환상은 아프리카에 대한 약탈과 침략을 부추겼다. 설사 엘도라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주인은 아프리카 원주민이었지만 가톨릭 탐험가에게 원래의 소유주는 문제 되지 않았다. 침략을 탐험으로 둔갑시키는 그들의 이중 어법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침략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로 정당화되었다. 수백 년간 계속된 약탈과 노예 사냥은 지난날 그토록 부유했던 말리 제국을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현재 말리 제국을 포함하는 사헬 지역(아프리카 서부에서 동쪽까지 띠처럼 뻗어 있는 지역) 국가들은 세계 최빈국으로 고통받고 있다. <자료7> 이 와중에도 아프리카를 향한 가해 집단의 이중 언어는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빈곤이 오로지 아프리카의 무능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명백한 해악을 끼쳤음에도 피해자의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것이다. 이 같은 이중 언어는 아프리카의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박제된 증오가 아니라 현재도 활화산처럼 끓어 오르는 증오다. 이중 어법은 증오의 씨앗 뿌려 원주민의 노예화를 정당화하는 이중 어법 지금도 극심한 대립과 증오를 불러일으켜 이 증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테러 집단이 결속을 다질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원래 시리아에 본거지를 두었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 국가)가 섬멸적인 공격을 받고 와해 직전까지 몰렸다가 2014년 아프리카 사헬 지역을 새로운 본거지로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제 IS는 세계 곳곳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일례로 2019년 1월 27일 필리핀의 가톨릭 성당에서 미사 도중 연쇄적으로 폭탄이 터져 133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는 테러가 일어났다. 그러자 아프리카에 근거지를 둔 IS는 이 테러가 자신들의 공격이라고 선언했다.<자료8, 9> 앞으로도 아프리카가 IS와 손잡고 가해 집단을 공격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세계의 화약고가 될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첨예한 대립은 결국 가해 집단의 살인과 해악이 만들어 낸 후유증이다. 가해자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지금 당장 예수의 대리자라는 옥좌에서 내려와 무릎 꿇고 사죄해도 이 증오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가해 집단은 지금도 대화 운운하며 자신들의 범죄 행위와는 완전히 분리된 채 평온한 이중 언어를 구사해 피해자들의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 범죄 집단의 일관된 범죄 행위와 이중 언어가 섬뜩하고 목전에 다가온 전 세계의 위험이 아찔하다.

특집
다른 문화와 종교를 ‘이단’으로 말살한 범죄

다른 문화와 종교를 ‘이단’으로 말살한 범죄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사건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전무후무한 재앙이었다. 콜럼버스는 유럽에 있는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공할 수 있도록 바닷길을 열어 주었고 그 길을 따라 일확천금의 탐욕을 품은 침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콜럼버스의 후예들은 탐험이라는 미명 하에 아메리카 곳곳을 누비며 약탈과 노략질을 계속했다. 이 탐험대가 원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탐욕과 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십자가를 높이 세운 탐험대는 원주민의 종교가 곧 악마 숭배이기 때문에 이를 파괴하고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종교 집단은 원주민을 강제로 개종시키고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감시하며 예수 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낌새가 발각되면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어 무참히 살해하는 파국을 가져왔다. 지금부터 500년 전인 1519년, 가톨릭 탐험대가 아메리카 원주민 통치자를 만나는 사건이 있었다. 탐험대의 우두머리는 스페인 출신의 코르테스였고, 원주민 통치자는 아스텍을 다스리는 목테수마 2세였다. 아스텍은 호수 위에 도시를 건설할 만큼 수준 높은 문명 국가였으며 도시의 중심부에는 전통 신을 섬기는 거대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자료1> 아스텍 원주민들은 종교와 삶을 하나로 이해했기 때문에 종교는 그 자체로 뿌리 깊은 생활 규범이었다. 아스텍의 왕 목테수마는 코르테스 일행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높이 50미터에 달하는 피라미드 신전에 데리고 올라가 신전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코르테스는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 가톨릭 이외의 종교는 무엇이든 악마 숭배였고 아스텍 신전은 끔찍한 악마의 소굴일 뿐이었다. 코르테스는 이 신전에 십자가와 마리아 상을 세우고 악마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테수마는 자신의 종교를 모독하는 발언에 “우리가 섬기는 신도 좋은 신이고 당신이 섬기는 신도 좋은 신입니다.”라며 점잖게 응수했다. 그는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을 베풀었으나 코르테스는 자신의 종교를 폭력으로 관철시켜 나갔다. <자료2> 코르테스는 스페인에서 병력을 지원받아 목테수마를 무참히 살해했으며 아스텍 제국을 강탈하자마자 제일 먼저 원주민의 신전을 파괴했다. 그리고 군사적 정복에 이어 원주민의 영혼과 정신을 정복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가톨릭 수도사들을 불러들였다. 1524년 열두 명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의도적인 숫자였다.<자료3> 그들은 원주민의 면전에 대고 “우리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는 진리요, 당신들이 섬기는 신들은 악마의 사신이오.”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파괴된 아스텍 신전을 지키던 원주민 제사장들은 정중한 어조로 “우리가 오래 전부터 신을 섬겨온 방식은 존중 받아 마땅합니다.”라고 항변했지만 가톨릭 수도사에게 먹혀들 리가 만무했다. 그들은 원주민 땅에서 악마를 쓸어 버리고 가톨릭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도사들은 아스텍 원주민의 종교를 철저히 말살하는 작업에 나섰다. 원주민의 정신적 뿌리이자 생활 규범인 종교를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가톨릭 수도사들은 잔인한 효율성으로 성공시켜 나갔다. 그 핵심은 강제 개종과 이단 심문이라는 양면 작전이었다. 수도사들은 한 번에 수천 명씩 세례를 주며 원주민을 집단적으로 개종시킨 후 원주민이 우이칠로포치틀리(아스텍의 수호신)나 틀랄록(물과 비의 신)에게 제물을 올리는 낌새가 발각되면 곧장 이단 심문소로 끌고 와 잔인한 고문을 가했다. 예수 외의 다른 신을 섬겼다는 이유로 이단이라는 죄목을 덮어씌운 것이었다. 이단 심문소는 공개 화형도 불사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불에 태우는 것은 아스텍 원주민들이 일찍이 보지 못한 잔혹한 살해 행위였고, 이에 경악한 아스텍의 예언자 마르틴 오셀로틀은 가톨릭 수도사들이야말로 말세에 찾아온 악마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전통 신을 숭배하는 것은 원주민의 생활 곳곳에 스며 있는 문화였기 때문에 이런 ‘이단 행위’를 색출해 내기 위해 가톨릭은 원주민을 철저히 감시했다. 또 원주민 자녀들을 교육시켜 물샐 틈 없는 감시망을 구축해 나갔다. 수도사들은 원주민 자녀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교육시킨다는 명분 아래 철저한 가톨릭 교리를 주입시켰다. 너희 조상이 악마를 숭배한 죗값으로 활활 타는 지옥 불에서 고통 당한다고 세뇌하면서 만약 부모가 이단 행위를 저지르면 즉각 고발하도록 부추겼다. 실제로 크리스토발이라는 아스텍 원주민 아이가 전통 신을 숭배하던 아버지를 이단으로 고발하고 아버지는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끝내 숨을 거두었다. 원주민 가정 내에서 이단 행위를 색출하면서 부모와 자녀 세대는 분열과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상형 문자로 기록된 원주민의 종교 서적을 이단이라는 이유로 모조리 불태우면서 전통 문화는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폐허가 된 전통 신전 자리에 십자가를 높이 올린 성당이 새롭게 건립되자 가톨릭 수도사들은 감격에 벅차 예수에게 감사를 올렸다. 그들이 염원하던 이단 박멸이 완성된 것이었다.<자료4> 이단을 박멸하는 것은 가톨릭 2,000년 역사의 숙원 사업이었다. 자신과 다른 것은 모조리 ‘이단’으로 낙인 찍어 남김없이 숙청하는 것은 가톨릭 역사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가톨릭도 태생부터 이단이었다는 점이었다. 가톨릭은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유대교 경전을 구약 성경으로 사용했으나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를 구세주로 믿음으로써 유대교로부터 이단으로 낙인 찍혔다. 서기 85년경 유대교 회당은 “이단인 나사렛 사람들(가톨릭 교인들)이 신속하게 파괴되고 제거되기를 기도하나이다.”라는 문구를 걸고 이단 가톨릭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 내부에서도 서로를 이단이라고 비난하는 저속한 욕설이 난무했다. 누가 정통인지 누가 이단인지 확립되지 않은 채로 서로가 서로를 악마라고 저주를 퍼붓는 혼란이 200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 후 3세기 후반에 이른바 정통 교리가 확립되자 가톨릭은 이단과의 전면전에 나섰다. 이단을 완전히 말살해 버리는 가톨릭의 잔혹사,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이단 박멸 사례는 12세기 알비파를 짓밟은 사건이었다. 알비파(Albi-派)는 프랑스 남부의 알비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가톨릭의 한 종파를 뜻했다. <자료5> 예수가 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알비파는 가톨릭 사제들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난하며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17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알비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알비파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을 지시했고, 1209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한층 더 강화된 이단 박멸을 위해 십자군에게 알비파를 숙청하라고 명령했다. 십자군은 알비파의 주 근거지였던 남프랑스의 도시를 차례차례 점령하며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다. 알비파의 거점인 베지에를 점령할 당시 한 병사가 무고한 사람까지 죽일 것을 염려해 “어떻게 알비파를 알아봅니까?”하고 물었을 때 교황 특사인 아르노 아모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두 죽여라. 예수께서 가려내실 것이다.(Caedite eos. 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 이단이든 아니든 모두 죽이고 나면 그 판별은 저 세상에서 예수가 해 준다는 말이었고, 그 명령에 충성스러운 십자군들은 베지에의 주민 2만 명을 남김없이 도륙했다. <자료6> 십자군은 알비파의 마지막 거점인 몽세귀르의 요새를 탈환했을 때 알비파 200명을 전부 산 채로 불태워 버렸다.<자료7> 살 타는 냄새와 비명 소리가 지옥을 방불케 했고 풍요롭던 마을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다. 이처럼 100년이 넘는 혈전을 치르고 1330년 이후에는 더 이상 이단 심문소에 알비파가 잡혀 오지 않게 되었다. 이단 알비파가 프랑스에서 완전히 박멸된 것이었다. 프랑스가 알비파를 숙청한 후에는 스페인이 이단 집단인 유대인을 대대적으로 섬멸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이단 심문소는 악랄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2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 중에서 유대인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자료8> 일찍이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이라고 배척당했던 가톨릭이 다시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유대인을 죽였으니 결국 ‘이단’이란 상대방이 멸절할 때까지 무한 반복되는 아이러니였다. <자료9> 가톨릭은 이단 심문소를 통해 신속하게 반대파를 숙청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이 잔인한 기술은 유럽을 정복한 다음 아메리카까지 전파되었다. 예수를 알지도 못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정신까지 말살해 버렸으니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악이 세계로 전파된 셈이었다. 이처럼 자신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범죄 집단은 다른 문화뿐 아니라 무고한 생명도 가만두지 않았다. 다음 기획기사에서는 이 집단이 아메리카에서 벌였던 종족 학살(프런티어 제노사이드)에 대해 알아본다.

아프리카 원주민은 왜 좀비가 됐을까?

아프리카 원주민은 왜 좀비가 됐을까?

좀비를 만든 노예 사냥과 죽음의 노동

살아 있는 시체를 뜻하는 ‘좀비’는 원래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혼을 말살당해 자신의 의지와 생각 없이 주인의 명령만을 따르는 좀비, 죽을 만큼 혹사당하지만 이미 시체이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도 없는 좀비는 끔찍한 괴물이기 이전에 비참한 노예였다. 좀비는 아프리카 콩고의 “은잠비(Nzambi)”라는 단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혼 없는 노예’라는 이야기는 아이티섬에서 유래했다.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망망한 대서양 건너편의 […]

가톨릭이 세운 나라, 세계 정복에 나서다

가톨릭이 세운 나라, 세계 정복에 나서다

폭력은 어떻게 세계화 되었는가?

지금부터 600년 전인 1419년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포르투갈이 항해를 위한 기반 시설을 세우고 대항해시대라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돛을 올린 그들의 항해는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폐해를 남겼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포르투갈은 12세기 가톨릭 십자군이 세운 나라였다. 초대 군주인 아폰수 1세는 십자군이었고 이슬람 세력과 수백 년 전쟁을 […]

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가톨릭은 2,000년간 존재해 온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단이라 불린다. 또한 인류가 갈망하는 ‘구원’에 일정한 금액을 붙여 판매한 최초의 기업이며, 지배 계층을 움직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처럼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가톨릭이 최근 위기에 처했다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있었다. 가톨릭 본부인 교황청의 수입이 감소하면서 4천 4백만 유로(약 571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를 […]

이것은 재앙인가 범죄인가,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린 십자가

이것은 재앙인가 범죄인가,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린 십자가

노트르담 성당 화재 사건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50분경(현지 시간) 노트르담 성당에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화재로 노트르담 성당은 처참한 몰골이 됐고 예수의 분신과도 같은 십자가 첨탑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화재가 원인이나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850년간 프랑스 […]

거대한 성범죄 조직에 맞서 싸운 사람들

거대한 성범죄 조직에 맞서 싸운 사람들

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2편> 미국 보스턴·펜실베이니아 사건

2002년과 2018년은 미국의 아동성범죄 처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해였다. 2002년은 언론사가 성범죄 조직의 실체를 폭로했고 2018년은 법적인 기관인 대배심이 성범죄 조직에 관한 방대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두 사건은 미국 전 지역에서 아동성범죄 처벌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성범죄 조직이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미국을 장악한 범죄 조직과 그에 맞서 싸운 언론과 […]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1편> 프레나 신부 사건

2019년 2월 20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신의 은총으로(Grâce à Dieu)”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생트 포이 레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보이스카웃을 담당한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0년대~80년대 70여 명의 보이스카웃 단원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영화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인 은곰상을 수상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프랑수와 오종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아동 성학대에 대한 은폐를 멈추려는 시도”라고 […]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천부교 체육대회는 1998년 이후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천부교인들의 건강 축제다. 본지는 그동안 체육대회를 통해 건강을 되찾거나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왔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체육대회로 건강 찾아 2004년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머리로 올라가는 혈관이 막힐 수 있으니 빨리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004 […]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 영토 강탈로 시작해 완전 범죄로 이어지다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 영토 강탈로 시작해 완전 범죄로 이어지다

심층취재 <3, 끝> 완전 범죄의 도시, 그 시작과 현재

바티칸 암매장 사건은 36년 전 실종된 소녀(엠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당시 15세)가 바티칸 교황청 내부에 암매장됐다는 의혹을 말한다. 본지는 피해자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미궁을 헤매는 사건을 연재하면서 사건의 경과를 2편에 걸쳐 실었다. 완결편인 이번 호에서는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와 완전 범죄를 꾀하는 세력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까지 왔는지 짚어 본다. 2013년 3월 19일,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의 […]

고통에 찬 실종자 가족, 그들 눈으로 보는 혐의자

고통에 찬 실종자 가족, 그들 눈으로 보는 혐의자

심층취재 <2> 검은 도시에서 파멸된 영혼

지난 7월 11일 이탈리아 바티칸에서 한 중년 남성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36년 전 사라진 엠마누엘라 오를란디(실종 당시 15세)의 오빠 피에트로 오를란디였다. 그날은 여동생이 묻혀 있을 거라고 추정됐던 바티칸 무덤을 발굴하는 날이었고 피에트로는 그 현장을 직접 참관했다. 동생의 유골이라도 찾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무덤은 완전히 비어 있었고, 피에트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

실종소녀는 바티칸에 묻혀 있다?

실종소녀는 바티칸에 묻혀 있다?

심층취재 <1> 성스러운 바티칸의 지하 묘지

이탈리아 최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암매장 묘지를 발굴하는 작업이 지난 7월 11일 로마에서 있었다. 이 작업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암매장 의혹을 받는 묘지가 바티칸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다스리는 가톨릭의 성지 바티칸은 암매장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특급 미스터리는 1983년 15세 소녀가 로마 한복판에서 사라진 실종 사건에서 시작됐다. 40년 가까이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미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