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②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②

▣ 소금으로 부패를 막으며 성스러움을 연출해오다 우선 현행하는 성수 예식에서 성수를 어떤 식으로 축복하는지 살펴본다. 가톨릭교회의 미사 공식 전례서인 『로마 미사 경본』의 ‘성수 예식’에 따르면, 사제는 성수를 만들 때 축성할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을 앞에 놓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낭송한다. 이때 다음과 같이 죄 사함과 병 치유를 구하는 구절이 낭송된다. “믿음으로 이 성수를 사용하는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온갖 질병과 원수의 함정에서 보호하소서.” 또 소금을 넣기 전에도 소금을 축복한다며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낭송한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예언자 엘리사(구약의 선지자)를 시키시어 물에 소금을 넣어 썩지 않게 하셨으니, (중략) 주님, 소금이 든 이 성수를 뿌리는 곳이면 어디서나 성령께서 함께 계시어, 원수의 온갖 공격을 물리치고 언제나 저희를 보호하게 하소서.” 그 후 사제는 말없이 소금을 물에 넣는다. 그리고 나서 성수채를 들고 자신과 봉사자, 성직자,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린다. 또 성당 안을 두루 다니면서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확인한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소금을 탄 성수에 병을 치유하고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로마 미사 경본이 1962년에 현재와 같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보다 노골적으로 질병 치유와 구마의 힘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면 “이 물이 악령을 쫓아내고 질병을 없애게 하소서.”, “어떤 감염의 기운이나 질병을 옮기는 공기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소금이 닿은 모든 것에서 모든 부정함을 없애시고 악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소서”와 같은 구절들이다. 물에 소금을 넣을 때도 그냥 넣어서는 안 되고 십자가 모양으로 넣어야 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행위들이 축소 및 간소화된 것은 현대인의 지성이 더 이상 노골적인 주술적 연출을 그대로 용인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와 달리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물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더러움을 씻어내는 특성을 지닌 물에는 치유와 정화의 힘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고대의 종교들은 일반적으로 강과 시냇물의 물을 성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숭배 의례에서도 입문자는 목욕을 한 뒤, 사제가 깨끗한 물을 뿌려 정화하는 절차를 거쳤고, 로마의 미트라교 신전은 샘이나 하천 가까이에 지어졌으며, 입문할 때 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구약성경 민수기 19장에 의하면,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에서도 부정함을 정화하기 위해 재를 탄 샘물을 우슬초 가지에 적셔 사람과 사물에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기독교보다 먼저 성행했던 여러 종교들에서 이미 물을 정화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성수를 뿌리는 행위는 이교적’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세기의 기독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저서 『세례에 대하여』에서 성수 의례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영적 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들이 물에 똑같은 효능을 불어넣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렇게 믿지만) 실은 효능이 사라진 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씻는 행위는 그들이 악명 높은 이시스나 미트라스의 신성한 의식에 입문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을 들고 다니며 뿌림으로써, 시골 저택, 집, 신전, 그리고 도시 전체를 곳곳에서 정화한다. 그들은 아폴로니아 축제와 엘레우시스 축제에서는 물에 몸을 담그며, 이를 자신들의 죄로 인한 벌을 사면받는다 믿는다.” 그런데 4세기경, 세라피온 주교의 《교황 예식서》에서 다음과 같은 축성 기도문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물과 기름을 축성합니다. 이 피조물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허락하소서. 이 물을 마시거나 이 기름으로 바르는 이들에게서 모든 열병과 모든 악령과 모든 질병이 물러가게 하시고,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제가 되게 하소서.” 이런 주문을 외움으로써 이교의 물과 차별화하고, 자신들의 물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와 구마의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명분을 만든 것이다. 이후 신자들 사이에서 성수가 치유와 구마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수가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는데,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구내염과 눈병 치료를 위해 성수를 바르고, 광견병 치료를 위해 성수를 마시는 행위가 민간요법처럼 퍼졌다. 성수의 사용이 공식 전례로 제도화된 것은 9세기다. 교황 레오 4세는 “매주 주일 미사 전에 성수를 준비하여, 신자들과 성소에 뿌릴 수 있도록 하라.”며 모든 사제가 매주 일요일 자신의 성당에서 물을 축복하고 신자들에게 뿌리도록 명령했고, 랭스의 힝크마르 대주교도 신자들이 성수를 가져가 집, 밭, 포도원, 가축, 가축의 사료, 심지어 음식에까지 뿌리도록 권장했다. 이로써 성수 예식은 가톨릭에서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또 일상적인 의식으로 완전히 자리잡았고, 신자들이 성수의 영험한 힘을 기대하게 만드는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오랜 세월 성수를 단순한 상징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성수에 현실적 효과가 있는 듯한 예식을 제도화하고 신자들에게 권장해 왔다. 그렇다면 성수의 권능에 대한 실증 요구에 ‘믿음에 기반한 정화와 치유의 상징’일 뿐이었다는 해명은 2천 년간 이어온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파렴치한 변명이자 명백한 기만행위다. 그들의 연출을 믿고 성수를 몸에 바르고, 마시고, 환자와 병실에 뿌려왔던 신자들의 믿음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 책임의 범위는 살아있는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가 성수에 부여해 온 정화와 보호의 이미지는 죽은 이의 마지막 자리까지 따라가, 사람의 임종 직후, 장례 의식, 고인의 무덤에도 성수가 뿌려진다. 그러나 질병과 감염 앞에서 철저히 무력했던 성수의 한계는 죽음 너머 영역에서도 똑같은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 성수로는 막지 못한 교황 시체의 부패 1958년 10월 9일, 교황 비오 12세가 이탈리아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사망 직후 당시 추기경단장이던 외젠 티세랑 추기경은 교황의 시신에 성수를 뿌렸고,<자료7> 곧 교황의 장례 준비가 시작되었다. 교황의 경우 시신이 공개 조문되기 때문에, 장례식에 앞서 인위적인 방부 처리가 필수적이다. 인간의 신체는 사망 직후부터 조직 분해가 시작된다. 세포 내부 효소(細胞 內部 酵素)에 의한 ‘자가분해(自家分解,autolysis)’와 체내 미생물 증식에 따른 ‘부패’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제어하지 않으면, 가스가 발생해 몸이 붓고 피부색이 변하며 악취(惡臭)가 난다. 때문에 역대 교황의 시신은 대부분 방부(防腐) 처리되어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돼 있다. 온몸의 혈액과 가스를 제거하고 방부액을 주입하는 현대의 화학적 시신 보존법을 ‘엠바밍(embalming)’이라고 한다. 엠바밍은 주로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된 방부액을 사용해 신체 조직 단백질을 화학적으로 고정하는 시술이다. 포름알데히드는 단백질 분자들을 서로 연결해 구조를 안정화하고, 미생물이나 자가분해 효소에 의한 분해를 막는다. 동시에 살균 효과로 부패 원인균을 제거한다. 시술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동맥으로 방부액을 주입해 기존 혈액과 체액을 밀어내는 ‘혈관 엠바밍’, 두 번째는 배나 가슴 속 빈 공간에 방부액을 직접 채워 넣는 ‘체강(體腔) 엠바밍’이다. 이후 외형 유지를 위한 표면 처리와 복원 작업을 거쳐 고인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하면 방부 처리가 마무리된다. 교황 비오 12세의 사례는 이런 방부 처리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비오 12세의 방부 처리를 맡은 사람은 당시 그의 주치의였던 리카르도 갈레아치-리시였다. 비오 12세는 생전 자신의 시신에서 장기(臟器)를 제거(除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리카르도는 고대의 방식을 따른다며 시체 표면을 오일과 레진(resin) 혼합물로 덮은 뒤 셀로판으로 감싸는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체액, 장기 제거나 혈관 약품 주입 없이 시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으며, 게다가 예수의 방부 처리 과정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곧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졌다. 셀로판이 공기 순환을 차단하면서 시신 내부에 가스가 축적되었고, 이는 화학 반응과 혐기성 분해를 촉진했다. 그 결과 시체의 부패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급하게 추가 방부 처리를 시도했지만 부패를 막지 못했다. 결국 제대로 된 방부 처리에 실패한 채 비오 12세의 시체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3일간 공개 안치되었다. 비오 12세의 시체가 공개된 지 사흘째 되는 날, 조문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교황의 시체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교황의 몸은 병든 에메랄드색으로 변하며 심한 악취를 풍겼다. 악취가 너무나 지독해서 교황의 시체를 지키던 근위병들은 구토를 하고 심지어 기절하기까지도 했다. 특히 교황의 가슴 부위가 내부 가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팽창하다가 급기야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코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면서 일반 조문은 황급히 종료되었다. 바티칸은 부패로 훼손된 교황의 시신을 급히 수습해 관에 안치한 뒤, 장례 절차를 그대로 강행했다. 가톨릭에서는 장례 미사 후 ‘망자의 죄 사함과 영원한 안식’을 청하는 사도(赦禱)예절이란 의식을 치르는데, 이 예식에서도 성수를 살포한다. 교황의 시체 위에는 또다시 성수가 뿌려졌다. 그리고 시체를 덮은 관뚜껑 위에도 또다시 성수가 뿌려졌다. 이러한 행위들은 실제로 망자(亡者)의 죄(罪) 사함과 영원한 안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교황의 시체 폭발 사건은 성수가 과연 신성한 힘을 지녔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비오 12세의 사망 직후, 그의 시체에는 분명히 성수가 뿌려졌다. 그러나 성수라 믿었던 물은 교황의 급격한 부패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끝내 아무런 효과도 보이지 못하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들 신의 능력이 담겼다는 성수는 교황 시체의 부패를 막을 수 없었던 반면, 인간이 개발한 엠바밍 기술은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망자의 안식은 화학약품으로 썩어갈 몸을 억지로 보존하는 데 있지 않다. 만약 그들의 신이 실제로 질병과 부패, 악과 더러움을 물리치는 힘을 성수에 부여할 능력이 있었다면, 교황의 시신은 화학약품의 힘을 빌려 방부 처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수의 현실적 능력을 검증하는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객관적 사실로 비추어 ‘성수라 믿는 물’에서 믿음을 걷어내자, 성수는 ‘세균에 오염되어 건강을 위협하는 물’,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넣어야 하는 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가톨릭교회 스스로도 ‘성수는 그 자체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의미를 갖는다(holy water, a remembrance of baptism, does not have an effect by itself, but only to the extent to which it is received with faith)’며 현실적 효과가 없음을 인정한 바 있다.<자료8>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가톨릭교회의 행보는 그 해명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질병과 악의 공격에서 보호해달라 낭송하며 성수를 만드는 모습, 성수채를 흔들며 각종 의례에서 성수를 흩뿌리는 모습은 성수에 실제로 어떤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심지어 오염되거나 오래된 성수를 폐기할 때도 하수구에 버려서는 안 된다는 지침도 있다. 이는 오염된 성수도 여전히 성스럽기 때문에 더러운 하수구에 버리는 것은 종교적으로 무례한 행위가 된다는 논리로, 마지막 폐기의 순간까지 성스러운 연출을 유지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2024년 8월, 스페인 소리아의 마르티네스 시장은 마을에서 열린 수호성인 축제에서 가짜 포프모빌에 올라타 교황처럼 사람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흉내를 냈다.<자료9> 주목할 점은 코르시카에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수채를 들었다면, 시장이 손에 든 것은 변기 속 오물을 닦는 변기솔이었다. 이는 그동안 가톨릭에서 공들여 연출해온 성수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성수를 신적 권능이 깃든 물처럼 믿게 만들어온 종교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과학과 이성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 ‘평범한 물을 성수라 선언한다고 해서 진짜 성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단한 사고만으로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들 신의 축복이 임했다는 소금물이 실제로 성스럽다는 근거를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가톨릭교회는 정화와 보호를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을 인질로 잡은 ‘영적 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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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①

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①

지난 호에서는 예수의 처형 사건에 대한 1세기 역사 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들을 살펴보았다. 1세기 초, 성경의 주장대로 추종자들을 대거 거느렸던 영향력 있는 신흥 종교 지도자가 반역죄 판결을 받고 공개 처형되었다면, 이는 분명 특기(特記)되었어야 할 사건이다. 그러나 반란 사건을 비롯해 일개 범죄자의 재판과 처형까지 기록으로 남겼던 당시 로마 당국, 역사가, 저술가들의 기록에서, 예수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기독교의 독자적인 주장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처형에 대한 침묵을 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1세기 기독교의 내부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이 담겨있던 것일까? ▣ 밀수하려던 고대 유물에서 예수 제자의 기록이 발견되다 2000년 튀르키예 지중해 연안, 밀수 단속 작전 중이던 경찰에 의해 한 ‘고대 유물 밀수 조직’이 검거되었다. 밀수 조직은 불법 발굴, 유물 밀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그들이 어딘가에 반출하려던 유물들은 당국에 압수되었다. 그런데 압수된 유물 중에는 낡은 가죽으로 된 고서 한 권이 포함돼 있었다.<자료1> 세월의 흔적으로 검게 변색된 가죽 위에 금박 문자가 새겨진 이 문서는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인 ‘아람어’로 쓰여진 ‘고대 성경 사본’이었다. 튀르키예 경찰은 법정 심리에서 이 책이 약 1500년에서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했으며, 조사 결과 예수의 제자 바르나바가 썼다고 알려진 ‘바르나바 복음서’로 확인됐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재판 증거물로서 앙카라 법원 보관소에 보관되며 외부 접근이 제한되었고, 이 책의 존재는 조용히 묻힌 채 수년이 흐른다. 그러던 2012년, 역사의 흔적과 당시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보존된 이 고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로 인정되었고, 법원의 명령에 따라 앙카라 민속 박물관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던 현지 언론들을 통해 ‘바르나바 복음서의 원본으로 추정되는 고대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바르나바 복음서의 저자 바르나바는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초기 교회의 핵심 인물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하는 등 1세기 중반까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활발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또한 유대인이었던 그는 예루살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예수가 처형됐다던 시기 이전부터 이미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인물이었다. 즉, 바르나바라는 인물은 예수와 동시대를 살면서 예수를 홍보했던 예수의 제자이자 초대교회의 사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르나바 복음서의 내용은 기독교인에게 다소 충격적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기독교의 근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증언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에 기독교에서는 바르나바 복음서를 ‘성경 속 유명 인물의 이름만 빌려 위조한 거짓 성경’, 즉 ‘위경(僞經)’이라 취급해왔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필사본들은 모두 16세기 이후에 기록된 것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후대에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밀수 단속으로 우연히 발견된 이번 필사본의 등장은, 이전의 모든 추정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해당 사본에 대해 전문가들과 종교 단체들 모두 ‘1세기 원본의 필사본’이라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이는 바르나바 복음서의 내용이 후대에 위조된 것이라는 후대 위조설을 일축하는 동시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1세기 내부 기록이 존재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 바르나바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지우려하다 바르나바 복음서는 또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진리를 왜곡한 것’이라 비판하는데, 이번에 발견된 책에서는 바울을 노골적으로 ‘사기꾼(The Impostor)’이라 명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전파한, 다시 말해 오늘날 기독교 교리의 핵심 구조를 확립한 인물이다. 타자의 기록인 사도행전에서는 바울과 같이 예수와 기독교를 홍보했다던 바르나바가 자신의 기록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바울은 사기꾼이다.’라고 증언한 것은 기독교 초기, 예수의 실종을 둘러싸고 기독교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기독교는 현재 27권의 신약 성경만을 ‘정통’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기독교 초기에는 수많은 복음서와 문서들이 존재했으며, 각자 권위있는 경전으로서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313년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기독교는 ‘예수를 따르는 불온하고 미신적인 집단’이란 평가를 잠재울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기독교를 하나의 질서 있는 종교 체계로 정비하기로 한다. 그 체계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신성을 규정하는 일이었다. 예수는 단순한 예언자나 스승이 아니라, 반드시 신적 존재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십자가형과 부활이라는 서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가톨릭교회는 4세기 초반, ‘정통’ 경전과 아닌 것을 선별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367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중심의 교리로 구성된, 현재와 동일한 신약 27권의 목록이 확정된다. 이때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경전들은 폐기되거나 이단이 쓴 위경이라며 교회 내에서 배제되었다. 이번 1세기 필사본의 발견으로, 지금까지 바르나바 복음서의 필사본이 왜 발견되기 힘들었는지, 위경으로 배제된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해졌다. 바르나바의 문서에 근거한다면, 바르나바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고, 십자가 처형을 주장하는 바울은 명백한 ‘사기꾼’이다. 이는 기독교가 원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중심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 정통교회의 검열을 피해 숨겨놨던 초기 경전들이 발견되곤 한다. 일례로 1945년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들이 있다. 367년, 정경 목록이 확정되면서 그 목록에서 제외된 많은 문서들이 파괴되었고, 나그함마디 근처의 수도사들은 정경을 제외한 모든 이단 문서를 불태우라는 교회의 방침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서들을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었다. 이렇게 보존된 나그함마디 문서에서도 『베드로 묵시록』, 『위대한 셋의 두 번째 글』 등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내용의 경전들이 발견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번 발견으로 바르나바 복음서도 1세기의 기록임이 확인되면서, 기독교 초기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전하는 경전이 훨씬 더 많이 존재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2012년, 튀르키예에서 발견된 이 바르나바 복음서의 존재가 알려지자 바티칸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당시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장관 에르투룰 귀나이는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해당 문서에 대한 조사 허가를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요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바티칸이 형식적 요청에 그친 것인지 튀르키예 측이 거부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바티칸이 진정으로 검증 의지가 있었다면 튀르키예에 조사단을 파견해서라도 실체를 명확히 규명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신들 교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문헌 앞에서, 바티칸은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은 채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이라는 특정 교리를 ‘정통’으로 채택하면서, 정통이 아닌 기록들은 철저히 배척하고 지워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점은, 정통으로 선포한다고 해서 그 교리가 갑자기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을 중심 교리로 확정한 이후에도, 그 교리의 진실성, 역사성에 대한 논쟁과 검증 요구는 끊임없이 쏟아졌다. 계속되는 날카로운 비판은 뼈아픈 약점을 파고들며 내내 기독교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독교는 증거와 논리로 대응하지 못했다. 대신 비판자들을 이단으로 선포하고, 책을 불태우고, 십자군을 보내고, 종교재판을 열고, 주동자를 화형시키고 고문하는 등 폭력적인 탄압으로 입을 틀어막아 왔다. 기독교가 상대를 납득시키는 대신, 이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자행한 원인은 교리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십자가형과 부활’을 명확히 입증하는 동시대 외부 문헌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반박과 검증 압박에 시달리던 기독교로서는 예수의 처형과 부활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가시적인 물증의 확보가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절실함에 응답이라도 하듯, 예수가 사라진지 1300년 이상 지난 시점인 1354년, 느닷없이 ‘예수의 시체를 감쌌던 수의’가 발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수의가 발견된 장소는 예수가 죽었다던 예루살렘이 아닌 프랑스 변방의 작은 시골 마을 리레(Lirey)였다. 리레의 영주 제프루아 드 샤르니가 자신이 ‘예수의 수의’를 입수했다며 전시를 연 것이다. 그런데 실제 예수의 수의가 존재했다면 예루살렘에서부터 가장 먼저 보존되고 증언되었을 것인데, 샤르니의 주장 전까지 13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어떤 기록이나 언급이 없었다. 또한 샤르니가 프랑스까지 수의를 입수해 온 경로를 전혀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수의가 위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 갑작스럽게 생겨난 예수의 수의, 사기 행각을 고발하다 리레에서 발견된 수의는 현재 ‘토리노 수의’라 불리는 것으로, 1578년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으로 옮겨진 이후, 계속 그곳에서 보관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토리노 수의는 기독교에서 ‘예수 처형과 부활의 증거’라 주장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기독교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의 무덤에 가보니 예수가 수의만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토리노 수의가 예수의 처형과 부활의 물증이라는 그들의 논리였다. 토리노 수의는 길이 약 4.4미터, 너비 1.1미터의 낡은 아마포 천이다. 육안으로 보면 세월에 바랜 누런색 천 위에 희미한 갈색 얼룩들이 번져 있을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남성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머리를 맞댄 채 천 전체에 걸쳐 그려져 있다.<자료2> 명암을 반전시킨 음화 사진으로 보면 더욱 선명하게 손을 모은 채 누워있는 장발 남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가톨릭교회는 이것이 진짜 예수의 형상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지만, 묘사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탓에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중동 사람인 예수가 유럽 종교화 속 서양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상처나 핏자국까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토리노 수의가 ‘사기 목적의 위조품’이라는 고발은 1354년 수의가 처음 등장한 시대부터 이미 제기돼왔다. 1389년 프랑스의 피에르 다르시 주교는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공식 고발장을 보냈다. 리레 성당에서 ‘예수의 수의’라며 전시하고 있는 천에 대한 고발이었다. 다르시 주교는 “이것은 순례객과 헌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사기극이다.”, “전임 주교 앙리 드 푸아티에가 이미 조사를 실시했는데, 실제 제작자인 화가를 찾아냈고, 그 화가가 직접 자신이 그렸다고 자백했다.”라는 사실을 알리며, “이 사기 행위를 즉각 중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결국 “이것을 예수의 진짜 수의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더라도, 신자들의 경건을 위한 그림 또는 표상으로서의 전시는 허용한다”는 타협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위조 사기극의 전모는 1899년, 중세 역사가 율리세 슈발리에가 파리 국립도서관 고문서 보관실에 소장돼 있던 관련 문서들을 연구 및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900년에는 추가 자료를 보강하여『리레-샹베리-토리노 수의의 기원에 대한 비판적 연구(Étude critique sur l’origine du saint suaire de Lirey-Chambéry-Turin)』라는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토리노 수의 진위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1차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다르시 주교의 고발 이전에 활동했던 당대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 니콜 오레스메(1325년~1382년)도 약 1370년경 토리노 수의를 “파렴치한 성직자들이 조작한 사기”라고 단언한 저술이 존재했다고 한다. 2025년 8월 중세사 저널에 발표된 논문『니콜 오레스메의 저서, 토리노 성의 출현에 관한 새로운 문헌: 14세기의 거짓 유물과 허위 소문에 맞서 싸우다(A New Document on the Appearance of the Shroud of Turin from Nicole Oresme: Fighting False Relics and False Rumours in the Fourteenth Century)』에 따르면, 오레스메는 “성직자들이 특정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기적을 행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믿을 필요가 없다. 많은 성직자들이 교회 헌금을 모으기 위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다. 샹파뉴 지방의 한 교회에서 예수의 수의가 있다고 주장한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그런 물건들을 위조한 무수한 사례들이 이를 명백히 보여준다.”고 적었다. 이는 수의가 등장한 초반에 이미 위조품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추가적인 역사적 증거를 제공한다. 이처럼 다르시 주교의 고발장과 오레스메의 저서는 수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이미 토리노 수의를 명백한 사기로 인식하고 강력히 고발하는 목소리가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회는 이 600년 전의 초기 고발을 인정하거나 공개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도 토리노 수의를 예수의 유물로 홍보하며 계속해서 믿음을 요구해왔다.

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②

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②

▣ 숨겨왔던 위조 사기, 과학의 발달로 발각되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교회는 수의의 진위 검증에 대해 과학계와 언론의 거센 압박을 받게 된다. 연대 측정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며 아주 작은 표본만으로도 정확한 연대 측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확실한 과학적 검증 방법인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왜 허가하지 않느냐”, “가짜인 것이 들킬까봐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1980년대 내내 계속되었고, 교회는 거부 자체가 더 큰 의심을 키우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1987년 10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의의 과학적 연대 측정을 허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88년 4월, 토리노 성당의 대주교는 미국 애리조나, 영국 옥스퍼드, 스위스 취리히의 실험실에 수의의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실험의 정확도와 재현성을 확인하기 위해 토리노 수의 표본과 함께 연대를 알고 있는 다른 세 가지 표본을 함께 보냈고, 세 곳 중 두 곳의 실험실은 어느 것이 수의 표본인지 알지 못한 채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세 실험실의 결과는 거의 일치했고, 1988년 10월,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가운데 토리노 수의의 제작 연대를 공개하는 역사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발표 현장, 연구진은 긴 설명 대신 칠판에 크게 적힌 단 한 줄의 숫자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1260-1390!’<자료3> 즉, ‘1260년에서 1390년 사이’. 토리노 수의는 예수가 수의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시기인 서기 30년보다 무려 1300년 이상 지난 뒤에야 만들어진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토리노 수의가 갑자기 등장한 시기인 1354년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토리노 수의가 14세기 만들어진 중세 위조품이라는 사실이 전 세계에 공식 선고된 순간이었다. 동시에 역사적 근거 없는 교리로 인류를 속여왔다는 망측한 사실도 전 세계에 공표되는 순간이었다. 위 실험 과정과 결과는 1989년 2월, 과학 저널 네이처지에『토리노 수의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Radiocarbon Dating of the Shroud of Turin)』이라는 제목으로 공식 게재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토리노 수의의 중세 위조 사실을 뒷받침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받고 있다. 이 외에도 토리노 수의는 다양한 방법으로 조작 사실이 검증된 바 있다. 재료·역사학적으로 토리노 수의의 헤링본 직조 방식은 1세기 예루살렘에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이었고,<자료4> 혈흔에서는 혈액 대신 중세 화가들이 널리 사용하던 물감 성분인 붉은색 황토와 진사라는 두 가지 안료 성분이 확인되었으며,<자료5> 법의학적으로도 수의의 혈흔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시신을 감쌀 경우 형성될 수 있는 얼룩의 위치와 도저히 연관 지을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자료6> 최근에는 3D 소프트웨어로 토리노 수의에 얼룩이 새겨지는 과정을 재현하여, 토리노 수의가 위조품임을 입증했다. 실제 인체에 천을 씌우면 얼굴과 몸의 곡면 때문에 형상이 늘어나고 왜곡되어야 하는데, 토리노 수의는 평면 그림의 비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자료7> 이처럼 20세기 후반에서 현재까지, 과학은 토리노 수의의 위조 사기를 다방면으로 증명해냈다.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처형돼 그 기록과 증거가 남아있었다면 굳이 수의를 위조할 필요가 없었기에, 수의의 위조 사실은 예수의 십자가형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토리노 수의는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성스러운 유물이다. 위조가 명백히 밝혀진 유물이 어떻게 여전히 숭배되고 있는 것일까? ▣ 조작으로 판정된 수의를 계속 숭배시키다 1988년 토리노 수의의 연대 측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당시 바티칸의 유물 관리 책임자 반 리에르데 몬시뇰은 미리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유물이 가짜로 판명되더라도 이를 비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부당하다며, 그런 경우에도 교회는 믿음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물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공경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믿음의 시험」, 시카고 트리뷴, 1988년 5월 24일) 그의 예고는 곧 현실이 되었다. 연대 측정 결과 실제로 수의가 중세에 만들어진 가짜로 판명된 것이다. 이에 바티칸은 “누구나 그 천이 예수의 몸을 감았던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며 진위 여부보단 믿음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이러한 태도는 25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도 부활절을 맞아 토리노 수의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진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믿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학적 증거가 위조를 입증한 후에도 일관되게 이어지는 이들의 태도는, 사실 가톨릭의 전통적 입장과 정확히 부합한다. 1900년 초반 집필된『가톨릭 백과사전』의 유물 항목에도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유물이 가짜로 밝혀지더라도 수 세기 동안 순수한 선의로 전해져 온 오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하느님께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계속된 믿음을 요구하는 이 일관적 태도는, 진실을 덮고 믿음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988년 토리노 수의의 제작 연대가 밝혀져 화제가 된 사건은, 오히려 토리노 수의가 더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어, 현재 토리노 성당은 순례객이 매일 찾아오는 순례 명소가 되었다. 토리노 수의의 실물은 비정기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특별 공개하는데, 공개될 때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순례객을 끌어모은다. 일례로 2010년 44일간 공개했을 때는 무려 213만 명의 관광객이 토리노 성당을 다녀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에 달해 이탈리아의 사망자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좀처럼 사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던 4월 11일, 토리노 성당은 코로나19 퇴치를 기원한다며 전 세계에 토리노 수의 온라인 특별 생중계를 진행했다. 그러나 공개 이후에도 당시 토리노 지역은 여전히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장 심각한 코로나19 피해 지역 중 하나였다.<자료8> 발견 당시부터 위조 사기가 입증된 천 조각에 의존해 전염병 종식을 기원하겠다는 모습은, 신앙이라 포장된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위조 사기가 밝혀져도 숭배를 멈추지 않는 기현상은 비단 수의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기록한 동시대 문헌이 전무하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기독교 내부 증언들이 존재함에도,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은 여전히 기독교의 상징이자 핵심 교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아라 노렌자얀은 공개적인 숭배 행위가 신심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얘기한다. 이는 일명 ‘제우스 문제’라 부르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제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최고 신으로, 당시에는 대대적 추종자를 끌어모으며 초자연적 존재로 숭배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숭배받지 않는 현대에서, 제우스는 신화 속 허구의 존재로 전락했다. 반대로 허구의 존재라도 열렬한 추종자들이 있다면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신이 될 수 있다. 종교들은 자신의 신들이 계속 숭배받을 수 있도록 열렬한 추종자들로 하여금 신을 숭배하는 퍼포먼스를 과시하게 한다. 어떤 신에게 공개 기도를 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의식을 거행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이 따르는 행위를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면, 사람들은 그 신이 정말 숭배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매년 4월 부활절 전주 금요일이 되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십자가의 길’ 행렬에 나선다.<자료9> 예수가 체포된 뒤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되짚는 이 의식에서, 신자들은 실제 나무 십자가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행렬이 이어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원자들이 자기 몸에 실제 못을 박으며 ‘예수의 고통’을 흉내 낸다. 이는 기독교가 진실 규명 대신 집단적 확신의 과시를 선택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진지하게 믿고 있는데, 이게 거짓일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집단적 확신의 크기는 진실의 증거가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는 문헌에서도, 고고학적·과학적 물증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십자가형을 신앙의 중심에 세우고, 위조된 유물과 조작된 기록을 기반으로 지난 2천 년간 실체 없는 교리를 견고하게 유지해왔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 즉 ‘상대방의 착오를 유발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사기’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위조된 수의로 전염병 퇴치를 기원했던 퍼포먼스, 증거 없는 교리를 사람들에게 계속 믿게 하는 행위에서 드러났던 ‘신앙으로 포장된 기괴함’은 결국 ‘사기’ 아닐까? 그렇다면 인류를 속여온 죄는 누가 책임지며 책임질 수는 있는 것인가. 지성과 과학의 발달은 수 세기 동안 진실을 가려온 거대한 사기를 밝혀내고 있으며, 검증과 확인의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실재하는 증거 앞에서 이 허구를 ‘진실’이라 믿게 하려는 자들은, 축적된 기만의 규모에 비례하는 그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②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②

▣ 예수의 십자가형을 기록했다는 문헌은 조작이었다 1세기 유대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 중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인물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 ~ AD 100)다. 요세푸스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창세기부터 서기 66년까지 유대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한『유대 고대사』인데, 유대 고대사에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자료7> 예를 들어『유대 고대사』19권에는 서기 41년 칼리굴라 황제의 암살 사건을 다뤘는데, 칼리굴라가 누구에게 […]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①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①

지난 6일, 아르헨티나 산후안 대성당은 수십 년 동안 분실되었던 한 성유물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 파편’이라 주장하며 ‘성십자가’라 부르는 유물이었다. 산후안 대성당이 보관하던 것은 두 조각의 작은 나무 파편이었는데, 1944년 지진으로 행방불명 되었다가 최근 근처 학교의 예배당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자료1> 대성당 측은 이를 성당으로 다시 가져오며, 그 이유를 “시민들과 매일 성당을 찾는 […]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②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②

▣ ‘빅뱅 이론 파괴자’들이 관측되다 2021년, 인류의 새로운 눈이 우주를 향해 열렸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성공적으로 발사된 것이다. 적외선 관측에 특화된 제임스 웹 망원경은 가시광선 중심의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여주지 못했던 영역을 포착하며, 먼지에 가려져 있던 별의 탄생 현장, 우주 초창기의 희미한 빛까지 담아냈다. 그런데 2023년 2월 2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현재의 표준 […]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①

세계 종교 탐구 <54>과학과 종교는 우주 너머의 진실에 얼마나 도달했는가①

“천문학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다.(The history of astronomy is a history of receding horizons.)” 이는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남긴 말이다. 천문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한계, 우주의 끝이라고 생각한 지점은 늘 더 먼 우주로 확장되어 왔다. 눈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던 인류는 망원경을 개발해 직접 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우주를 관찰할수록 기존의 […]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②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②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성경 외에도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들은 많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가장 특기할만한 사건인 부활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거나 부정한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경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로, 그들의 경전에서 예수를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다루며,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해주기까지 […]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지난달 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한 미술 전시회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작품들이 기독교를 조롱한다며 가톨릭 보수 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논란이 된 작품 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개구리 조각’, ‘라텍스 돌기로 표현한 십자가의 예수’ 등이 있었다.<자료1> ‘개구리 조각’의 경우 2008년 이탈리아에서도 전시되었는데, 당시 교황이 직접 철거를 요청했으나 거부했으며, 이번에 재전시 되었다. 시위대 측은 […]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②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②

▣ 인간의 처녀생식은 비상식적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처녀생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추호도 없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로저 하이필드 박사는 그의 저서『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원제: The Science of Christmas)』에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보고된 생식 사례와 단성생식 실험, 유전학적 한계 등을 검토하며 처녀생식 가능성을 하나씩 따져보고, 최종적으로 자연적인 인간의 처녀생식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자료9> 난자는 정자와 결합해야만 비로소 세포 분열을 시작하고, […]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①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①

‘마리아 숭배’는 개신교와 천주교 간 오래된 이단 논쟁 중 하나다.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정도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가톨릭의 경우, 성당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모상이다. 신자들은 성모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한다.<자료1> 마리아를 공경하는 기도와 축일, 행사들도 따로 있다. 심지어는 예수를 구세주라 믿는 종교임에도, 마리아를 ‘공동 […]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 예수와 성경 속 인물들도 마약을 사용했다 고대 종교 의례를 연구하는 보스턴 대학교의 칼 럭 교수는 “성경 속 인물들이 마약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놀랍게도 근거가 있다”며 〈예수에게서 대마초 냄새가 났는가?(Was there a whiff of cannabis about Jesus?)〉라는 제목의 칼럼을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즈에 기고하였다. 그는 글의 상당 부분에서 크리스 베넷의 저서『섹스, 마약, 폭력,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①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①

21세기, 과학과 이성의 주도 하에 미신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종교계에는 현재 수상한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보다 분명한 종교 체험과 진리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기도와 경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최근 각종 환각성 마약이 검증된 종교 체험의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세계 각국에서 인공지능(Artifical Intelligence, 이하 AI) 신과 AI 사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