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시 쓰는 세계사<17>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골고다에서 코로나까지, 미신(迷信)의 역사

다시 쓰는 세계사<17>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골고다에서 코로나까지, 미신(迷信)의 역사

최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장애 아동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었다. 가톨릭 언론에서는 이를 교황의 축복이라고 보도했으나, 이 ‘축복’은 어린이와 교황 둘 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밀접 접촉하는 것이었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행동이었다. <자료1> 일반 언론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교황이 이라크 순방을 강행한 것 자체가 위험한 여행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이 같은 위험 징후는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 지난 3월 14일, 프란치스코가 필리핀의 가톨릭 신도들에게 13곳의 필리핀 성지를 순례하면 면죄부를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교황이 제안한 성지 순례는 가톨릭의 필리핀 진출 5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은총이라고 했지만, 세계 각국이 감염 방지를 위해 여행 자제와 봉쇄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그 ‘은총’은 대규모 감염 폭탄이 될 수 있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도 해외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안동과 예천의 가톨릭 신도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국내에 전파시킨 사례가 있었다. <자료2>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도인 필리핀은 현재 성지 순례의 인원을 제한하는 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교황의 뜻을 받들어 성지 순례에 나서는 인파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 통제 불가능한 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코로나 시대에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행위가 때때로 축복과 은총으로 칭송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과학을 초월하는 신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하면서 위험을 물리치고 치유와 보호를 선사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이성으로 보기에도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미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까. 현재의 코로나 시대에 비견되는 중세의 흑사병 시대를 추적하면서 그 답을 찾아본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편태(鞭笞) 고행단 또는 채찍질 고행단이라 불리던 순례자들은 검은 망토를 걸치고 붉은 십자가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유럽 각지를 떠돌았다. 그들이 한 마을에 도착하면 가톨릭 신도들은 종을 치면서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자료3> 고행단은 성당에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채찍으로 온몸을 때리며 기도했는데, 그들은 피가 튀기도록 가혹한 채찍질을 통해 자신의 피와 예수의 피가 뒤섞이게 된다고 가르쳤다.(They taught that flagellation was the true communion, in that their own blood became mingled with the Saviour’s. – Egon Friedell, 『A Cultural History of the Modern Age: Introduction. book 1. Renaissance and reformation; from the black death to the thirty years’ war』, A. A. Knopf, 1930., p.83.) 따라서 온몸을 피범벅으로 만드는 채찍질이 바로 예수가 “내 피를 마시라.(mea sanguis meus vere est potus)”고 했던 말을 진정으로 실현하는 행위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예수의 피를 마시는 행위는 곧 미사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성체성사’로서 가톨릭 사제의 권한으로 이뤄졌는데, 채찍질 고행단은 사제들의 권위를 단번에 짓밟아버리고 그들을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라고 비웃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흑사병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14세기 유럽 인구 7500만~2억 명 가운데 흑사병으로 30~50%, 지역에 따라서는 70% 이상이 몰살당했는데, 전염병에 대해 무지몽매한 가톨릭 사제들이 성당에 모여 고해성사를 하면 병이 낫는다고 가르쳐 좁은 공간에 모였던 신도들에게 전염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 흑사병은 강력한 전염력을 가졌기 때문에 흑사병으로 죽은 친구를 매장해 주던 친구 두 명과 장례미사를 집전하러 온 사제까지 한꺼번에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예수의 대리자로 자처했던 사제들이 흑사병 앞에서 쓰러지자 그들을 믿었던 신도들은 정신적인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료4> 이때 가톨릭 신도들 앞에 나타난 것이 채찍질 고행단이었다. 예수의 피와 자신의 피가 함께 섞인다며 온몸에 가차 없이 채찍질을 가하는 그들의 모습은 가톨릭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공포와 기대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행단의 무리는 점차 광인과 거지, 죄수들을 흡수하며 세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그들은 음산하고 단조로운 곡조로 이런 노래를 불렀다. “이제 그대들의 손을 높이 들지니, 신이 이 많은 시체를 치우도록! 예수여! 당신의 붉은 피로 불의의 죽음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Let us by thy blood so red From the Death be rescued! – Egon Friedell, 『A Cultural History of the Modern Age: Introduction. book 1. Renaissance and reformation; from the black death to the thirty years’ war』, A. A. Knopf, 1930., p.84.)” 그들이 가톨릭 신도들을 흑사병에서 보호해 줄 것을 간청하는 동안에도 흑사병은 보란 듯이 가톨릭 신도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이 생지옥 같은 현실에서 철저하게 무능한 신은 신도들의 기도에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신도들은 신이 함께하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잠들기 원했기 때문에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은 성당 묘지로 모여들게 되었다. 체코 세들레츠 성당은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에서 가져온 흙 한 줌이 뿌려졌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신도들은 이 골고다의 흙 때문에 세들레츠에 묻히기를 원했다. <자료5> ‘해골의 장소’라는 뜻을 지닌 골고다 언덕은 알몸의 죄수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형을 당하는 곳으로, 어떤 시체는 거꾸로 매달려 있고 어떤 시체는 성기가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곳이었다. <자료6>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은 푸줏간에 진열된 고깃덩어리처럼 소란스러운 새들이 날아와 맨살을 쪼아 먹어도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고, 숨이 끊어진 후에는 썩은 살에서 풍기는 악취가 너무나 역겨워 그 광경을 보는 사람까지 오염되는 느낌을 주었다. 따라서 십자가형을 목격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신의 아들이 그토록 혐오스럽고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사형당했다는 주장이 발광 중의 발광이자, 사람을 미혹하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가톨릭 신도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 골고다 언덕은 신성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따라서 골고다의 흙이 뿌려진 세들레츠 성당의 묘지는 영혼의 안식처로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세들레츠 성당 묘지로 시체가 모여들었는데 그 수는 3만 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15세기 말에 이 유골들이 묘지에서 납골당으로 옮겨졌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그곳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19세기 무렵 한 귀족이 황폐화된 성당과 납골당을 재건하면서 7만구에 이르는 유골을 전부 분해해서 해골부터 척추, 팔다리, 손가락,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납골당의 장식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개골과 뼈를 엮어 만든 거대한 샹들리에와 아기 천사를 떠받히는 해골 장식품으로 가득한 납골당은 ‘해골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오싹한 공포 체험의 관광지가 되어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들었다. 해골 성당 안내서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죽음을 상기시키는 관광 상품으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해골 성당을 장식한 망자들이 갈구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이었다. 예수가 영원한 구원을 준다고 믿었던 그들은 혐오스럽고 기괴한 해골 성당의 눈요기가 되었고, 이는 맹목적인 믿음이 가져다주는 결과를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료7,8,9> 해골 성당이 일반 신도들의 유골을 내세웠다면 전 세계 가톨릭 성당에서는 이른바 가톨릭 성인(聖人)의 유골 또는 시체를 ‘성유물’이라는 이름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 같은 유골 숭배는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으로, 가톨릭은 ‘순교자들의 거룩한 몸을 숭배하여야 한다. 그 몸을 통해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쳐 왔다. 가톨릭 성당의 제대(祭臺)에는 대대로 성인의 유골을 두었기 때문에 제대가 곧 성인의 무덤이기도 했다. 이를 보면 사형 당한 시체를 신으로 숭배하는 믿음이 죽음을 당한 사람의 유골을 통해서 복을 받는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유골에 대한 열망은 곧 성인의 무덤을 파헤치는 결과로 나타났는데, 독일의 역사가 그레고로비우스는 “로마는 죽은 시체를 탐욕스럽게 파내려고 하이에나 떼가 울부짖고 싸우는 부패한 공동묘지(Rome was like a mouldering cemetery in which hyenas howled and fought as they dug greedily after corpses. – Cotterill, H. B., 『Medieval Italy』, George G. Harrap, 1915., p.391.)”라고 묘사했다. 이는 교황도 예외가 아니어서 609년 교황 보니파시오 4세는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이 묻힌 지하묘지에서 마차 28대 분량의 유골을 파내 오기도 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전 세계 가톨릭 성당에 보관된 유골이 한 사람의 온전한 형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846년에 참수된 김대건 신부는 목이 잘릴 때 으스러진 경추뼈를 제외하고는 모든 뼈가 온전했다고 한다. 이후 김대건 신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골이 분배되기 시작했는데 굵은 뼈는 대신학교 성당으로, 아래턱뼈는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성지로, 치아는 서울의 절두산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분배된 수가 400개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료10> 이탈리아의 성녀 캐서린 수녀의 경우는 시에나에 머리가 있고, 발은 베니스에 있으며 나머지 몸은 로마에 있다고 한다. 특히 시에나의 도미니크 대성당에 가면 그녀의 잘린 머리가 화려한 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료11> 가톨릭에서는 캐서린의 머리처럼 조각난 유골도 온전한 유골과 같은 효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제한된 성인의 수에 비해 유골을 원하는 성당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생전에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숨을 거둔 후 그의 유골을 탐낸 제자들에 의해 목이 잘렸을 뿐 아니라 통째로 솥에 넣어져 삶아졌다고 한다. 그것은 동물을 도살한 후에 오랫동안 삶으면 뼈와 고기가 분리되어 발골(拔骨) 작업이 용이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자료12> 유골 숭배는 역사 속의 괴담이 아니라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전통으로 이탈리아 스폴레토 성당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을 보관하기도 했다. 성당 측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 몇 방울을 유리병에 담아 제대에 두었는데, 작년에 도난 당한 것을 보면 유골에 대한 미신적 열망은 변함없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자료13> 1936년 발표된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는 예수 귀신에게 아들을 잃은 무당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무당은 이렇게 외친다. <자료14> “예수 귀신아,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불귀신아, 탄다, 훨훨 불이 탄다. 불귀신이 훨훨 탄다.” 아들을 미혹해 잡아먹은 예수를 두고 ‘서역 십만 리에서 굶주리던 불귀신’으로 묘사했던 무당의 예지는 어쩌면 2,000년 역사를 꿰뚫는 혜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당은 신령님이 예수를 물리쳐 주기를 애원했지만 예수 귀신에 씌운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는데, 그로부터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인간의 과학과 이성으로 불귀신을 물리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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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세계사<16>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증오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하여

다시 쓰는 세계사<16>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증오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하여

증오 범죄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이 용어는 1980년대부터 통용됐지만 실제 사례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증오 범죄는 2차 세계대전 중에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로,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참상과 만행이 연구 논문과 책자, 영화로 기록되어 일반 대중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로마교회(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을 맞아 홀로코스트가 이 시대에도 재발할 수 있다며 죽음의 길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기억하자고 권유했다. 이 발언이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건 나치가 아니라 종교입니다. 당신만 조심하면 세상 평화롭습니다.(닉네임:ㅅㅂ)” “이젠 살인 예고까지 하네.(닉네임:IVN**)” 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들은 홀로코스트로 유대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증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입장에서는 그 참상과 만행이 감쪽같이 잊혀지기를 바라겠지만 피해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된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로마 교황청을 향해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비밀 문서 공개를 요청하는 것은 끔찍한 증오 범죄의 기록을 낱낱이 남겨 두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증오 범죄가 자행된 현장을 좇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증오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조명해 본다. 14세기 치명적인 페스트가 전 유럽에 창궐했을 때 이 끔찍한 전염병의 뒤를 이어 증오 범죄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것은 페스트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공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자료1> 페스트는 99%까지 치솟는 엄청난 치사율로 유럽 인구 1/3의 목숨을 앗아갔다. 다른 전염병은 따뜻한 식사와 깨끗한 목욕으로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었지만 페스트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도 24시간 안에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 로마교회는 환자에게 ‘병자성사’라는 의식을 베풀어 병을 낫게 해 준다고 선전했는데, 로마교회 신부가 페스트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베풀어 이마와 두 손에 성유를 발라 주고 간절히 기도해도 환자는 그 자리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죽고 말았다. 심지어 로마 교황청 추기경 7명을 비롯해 수많은 로마교회 성직자들이 페스트로 죽어 나가자 병자성사를 베풀어 줄 신부마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자료2> 이러한 충격과 공포의 시대, 로마교회의 광신도들은 유대인을 상대로 증오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로마교회에 따르면 전염병은 악이 퍼뜨리는 재앙으로, 일찍이 로마교회의 교리를 세운 아우구스티누스가 “악마와 그 추종자들은 온갖 질병을 일으킨다. 이러한 악을 막으려면 그들을 고문하고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가르쳐 온 것이었다. 또한 로마교회는 ‘유대인이 예수를 살해한 종족이자 이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지목해 왔다. <자료3> 이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신도들은 악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나섰는데, 그들이 유대인에게 덮어씌운 혐의는 우물에 독을 풀어 페스트를 전염시켰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도 로마교회 신도들과 같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고, 심지어 유대인도 페스트에 걸려 수없이 죽어 나갔지만 로마교회 신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혐의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증오를 집중시킬 희생자일 뿐이었다. <자료4> 1348년 여름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량 학살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쾰른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이 화형을 당하거나 살해당했다. 1349년 2월 14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유대인들이 발가벗겨진 채 공동묘지로 끌려갔는데, 마을 전체 주민 1,800명 중 절반인 900명이 그날 하루 만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 시기에 살해당한 유대인의 숫자가 페스트로 목숨을 잃은 숫자보다 더 많았다. <자료5> 그러나 악의 근원으로 지목한 유대인을 모조리 죽인 뒤에도 페스트는 계속해서 창궐했고, 증오 범죄로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었다. 그때까지 예수가 환자들의 병을 낫게 해 주었다는 설화를 사실이라고 굳게 믿은 신도들은 왜 페스트는 낫게 해 줄 수 없는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한번 시작된 의심은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신도들이 받은 충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헌금의 감소였다. 페스트 이전에 유럽 사람들은 유산의 25%를 로마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페스트 이후에는 로마교회 대신 사적으로 자선 단체를 만들어 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유럽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 경제를 지배했던 로마교회는 페스트 이후로 지배력을 상당 부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의 광풍이 전 유럽을 초토화시켰을 때도 로마교회는 자신들이 전염병을 막아내고 악의 근원을 없애는 정의(正義)라고 자부했지만 결국 그들이 남긴 것은 페스트보다 끔찍한 증오 범죄의 피비린내였다. 페스트로 인한 증오 범죄에서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가해자의 민낯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과학의 발달로 전염병의 진짜 원인이 악마가 아니라 병균과 바이러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가해자의 무지가 폭로되고 그들의 악행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또 특기할 만한 것은 한때 가해자였던 집단이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증오 범죄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550건의 증오 범죄가 발생했는데 이는 로마교회 사제에 대한 공격, 로마교회에 대한 방화, 예수상과 마리아상의 파괴 등으로 나타났다. <자료6> X-mas 트리에 불을 지르거나, 성당 문에 예수를 조롱하는 낙서를 하거나, 미사 시간에 들어와 바지를 내리고 신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속하지만, 스페인 마드리드의 가톨릭 교구 건물에 폭발이 일어나 3명이 사망하고 필리핀 말라이발라이에서 가톨릭 신부가 총에 맞아 숨지는 등 범죄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증오 범죄의 원인은 무엇일까? 세계 각지에서 터져 나오는 증오 범죄의 원인을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뿌리 깊은 악행과 위선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살해당한 필리핀 신부는 이전에 미사를 돕던 어린 소녀를 강간했기 때문에 이로 인한 복수로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수사 기관이 예측하는 것처럼 과거의 악행이 현재의 증오 범죄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료7> 그러나 과거에 아무리 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집단이라 하여도 그 가해 집단과 똑같은 범죄로 복수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의식이 투철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가해 집단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응당한 대가를 받도록 촉구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 맨해튼의 미카엘 성당에서 일하던 여성 보안요원 애슐리 곤잘레스는 성당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고 있던 신부 조지 루틀러를 발견하고 신고하기 위해 그를 촬영했다. 평소 동성애를 강하게 비판했던 루틀러 신부는 동성애 포르노를 보며 바지에 손을 넣고 자위를 하고 있었는데, 보안 요원을 보고 돌연 그녀에게 달려들어 가슴을 움켜잡고 성폭행을 했다. 보안 요원이 경찰에 신고하자 신부는 신도들에게 편지를 보내 “보안 요원의 주장은 내 명성과 맞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신부의 자위 영상이 증거로 제출된 뒤였다. <자료8> 이전 시대였다면 유명한 대중 연설가이자 3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루틀러 신부의 명성과 힘 때문에 스물두 살 보안요원의 고발은 수사도 시작되지 않은 채 묻혀 버렸겠지만 정의를 지키는 데 투철해진 의식과 발달한 영상 기술 덕분에 범죄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또 독일에서는 로마교회가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로마교회 측이 기자들에게 이 보고서를 비밀로 하겠다고 서약하고 절대적으로 침묵할 것을 강요하자, 모든 기자들이 그 제안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 오랜 세월 로마교회의 성범죄를 사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해 주었기 때문에 성범죄자들이 위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정의를 추구하고 위선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이 늘어나면서 범죄자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사례가 있는데, 가톨릭 신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지상파 방송에 나와 범죄 사실을 담담히 증언한 것이었다. 가해자인 한만삼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내세우는 유명인사였으나 이에 맞서 피해자는 용기를 내어 증언했고 방송사 또한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자료9> 한만삼 신부가 속한 수원교구는 이 보도가 나간 직후 교구장 명의의 서한을 통해 “이번 일을 거울삼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할 것”이라고 사죄의 뜻을 밝혔으나, 같은 날 신도들에게 보낸 단체 문자에서는 “3일만 지나면 잠잠해진다.”며 진짜 속내를 드러낸 바 있었다. <자료10> 가톨릭교회는 이 사건이 시간이 가면 묻히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도 언론에서 한만삼 신부가 속했던 정의구현사제단을 ‘불의구현사제단’이라고 부르며 그 사건을 상기시킨 것을 보면, 시간이 가도 악행은 묻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거짓은 시간에 비례해서 밝혀지고 드러나게 될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과학이 발달해 ‘전염병의 원인은 악마’라고 했던 주장이 비웃음을 사게 된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정의가 밝혀지는 시대에는 거짓이 시간을 이길 수 없고 불의한 집단이 정의를 독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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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세계사 <15>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홀로코스트의 진범(眞犯)은 누구인가?(下)

다시 쓰는 세계사 <15>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홀로코스트의 진범(眞犯)은 누구인가?(下)

나치가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유대인을 노동 착취로 혹사시킨 강제 수용소이자, 1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절멸 수용소’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유대인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학살하는 것을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이라고 명명했던 나치는 그 최종 해결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완결되는 장치를 고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독가스 치클론 B를 사용한 가스실이었다. 유대인들이 화물 열차에 실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면 곧바로 옷을 벗고 샤워실로 이동되었다. 유대인을 통솔하는 나치 친위대원들은 “샤워실의 온수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 “샤워 후에 먹을 스프가 식고 있다.”는 말로 샤워실로 가는 행렬을 재촉했으나 유대인들은 샤워실에 입장한 후에야 샤워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이어 불이 꺼지고 샤워실은 암흑 천지로 변했고, 바닥에서부터 치클론B의 독가스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연기가 솟아오르자마자 유대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가스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쓰러뜨리며 발버둥쳤지만 그 비명과 참상은 오래 가지 못했고 불과 15분 후에는 가스실에 더 이상 살아 남은 자가 없었다. 가스실 문을 열면 시체는 탑 모양으로 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연약한 어린아이들이 짓밟힌 채 깔려 있었다. <자료1,2,3,4> 나치의 신속한 최종 해결책은 특히 어린이에게 효율적으로 집행됐는데, 일례로 트럭에 태울 때 나치 친위대원들이 멀찍이서 아이들을 트럭 안으로 집어 던지는 행위만으로도 아이들은 쉽게 목숨을 잃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 중에 150만 명이 어린이였다.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폴란드의 유대인 랍비 바이스만델(Weissmandl)은 로마 교황청에 도움을 구하며 무고한 어린이들만이라도 구해 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의 답변은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이의 피라는 것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되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당신들은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Eliezer Berkovits, 『Faith after the Holocaust』, KTAV, 1973., p.16-17.) 어린이든 어른이든 유대민족 전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은 2,000년 전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순간부터 가톨릭에서 발원한 뿌리 깊은 증오였다. 이 증오는 학살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학살이 곧 예수의 원수를 갚는 신성한 일이라는 가톨릭적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이 일에 동참하는 세력은 가톨릭의 전폭적인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1933년 7월 20일 로마 가톨릭 교황은 히틀러와 ‘제국 종교 협약’을 체결해 전폭적인 정치적 지원과 종교적 지원을 약속했는데, 그로부터 불과 나흘 후인 7월 24일자 영국 <타임즈>에는 히틀러의 의미 있는 발언이 보도되었다. “유대인과의 전투를 통해 나는 예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자료5> 1933년 히틀러 정부가 들어선 후 어떤 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로마 교황청이 처음으로 히틀러 정부의 손을 잡아 준 이 협약은 외교적으로 히틀러와 나치에 정당성과 힘을 부여해 주었고, 히틀러는 협약에 성공하자마자 예수를 위한 일에 돌입했으니 거래의 대가를 충실히 이행한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예수를 위한 일’에 히틀러와 나치보다 더욱 열광한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였다. 크로아티아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세워진 신생 국가이자 철저한 가톨릭 사상으로 무장한 가톨릭 국가였다. 크로아티아의 권력을 휘어잡은 독재자 안테 파벨리치는 1941년 5월 18일 바티칸에서 로마 교황 비오 12세와 면담을 갖게 되었다.(제랄드 포스너, 『교황청의 돈과 권력의 역사』, 밀알서원, 2019., p.116.) 이 면담은 로마 가톨릭이 크로아티아라는 신생 국가를 전 세계 앞에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행위였고, 크로아티아는 이 거래의 대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교황과의 면담이 성사된 바로 그날 유대인을 차별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곧바로 유대인에 대한 피의 숙청에 돌입했다. 독재자 안테 파벨리치는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크로아티아를 지배하는 우스타샤라는 이름의 집권당은 그 구성원이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었다. 또 로마 가톨릭의 대주교 알로찌제 스테피낙은 우스타샤 군대를 통솔하는 ‘최고 사도 대리자’의 역할을 했는데, 우스타샤의 군대는 유대인 학살의 최전선에 있었다. <자료6> 우스타샤 군대의 장교 중에는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수도사가 있어서 지도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3명의 수도사는 강제 수용소(야세노바츠 수용소)를 담당하는 부소장으로 일했다. 이 수용소의 소장인 나로스라브 필리포비치는 유대인을 비롯해 4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학살해 ‘야세노바츠의 악마’로 불렸는데 그 또한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수도사였다. 크로아티아 거리에는 우스타샤 소속의 가톨릭 사제들이 사제복을 입은 채 장총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예사로 볼 수 있었으며, 여자들의 앞가슴과 남자들의 성기를 자르고, 희생자들의 눈을 모아 섬뜩한 트로피를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학살의 현장에 가톨릭 사제들이 가담하면서 일반 가톨릭 신자들은 그런 참사를 보면서도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다.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가톨릭 사제인 디오니시 유리체브는 신문에 사설을 게재하며 “유대인을 죽이는 것은 더 이상 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고(Michael Phayer, 『The Catholic Church and the Holocaust, 1930-1965』, Indiana University Press, 2001., p.34.), 고리카 수도원의 스레치코 피리크 신부는 “당신들이 일(대량 학살)을 마친 후 교회에 오면 내가 고해성사를 주어 죄를 씻어 주겠습니다.”라고 설교했다.(Yugoslavia Poslanstvo. United StatesYugoslavia. Poslanstvo (U.S.), 『The Case of Archbishop Stepinac』, Information Officer, Embassy of the Federal Peoples Republic of Yugoslavia, 1947., p.54.) 이 설교 직후인 1941년 8월 10일 인근의 리브노 지역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나 5천 6백 명이 목숨을 잃는 참화가 벌어졌다. <자료7, 8> 당시 브랑코 보쿤이라는 전직 외무성 직원은 크로아티아의 상황을 관찰한 후 이렇게 적었다. “가톨릭 신자들이 유대인을 죽이고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 학살이 가톨릭 교황청을 기쁘게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출처: Branko Bokun, 『Spy in the Vatican, 1941-45』, Praeger Publishers, 1973., p.11.)<자료9> 학살이 가톨릭 교황청을 기쁘게 한다는 확신은 가톨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또 찾을 수 있는데, 200년 동안 계속되었던 가톨릭 십자군 전쟁 또한 그 확신 위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이었다. 십자군은 광신도의 무리였고 이들에게 가톨릭에서 믿는 신이 어떤 일을 기뻐하는지 가르쳐 준 사람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였다. <자료10> 그는 ‘칼을 휘둘러 예수를 기쁘게 할 수 있다. 예수를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의 전사(milites Christi)가 되면 구원 받을 수 있다.’며 십자군에 참전한 모든 사람들에 죄의 사면과 영원한 구원을 약속했고, 이에 열광적으로 응답한 가톨릭 신도들이 유대인 공동체와 이슬람 지역을 파괴하며 “예수를 위하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학살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났던 유대인 학살에서도 로마 가톨릭은 ‘예수의 일’을 한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보호하고 은닉해 주었다. 크로아티아에서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한 독재자 안테 파벨리치는 전쟁이 끝난 후 최우선 지명 수배자로 여러 나라의 추적을 받았지만 로마에서 가톨릭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님으로써 2년 이상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거처는 베네딕토 신학원인 성 안셀모의 집과 산타 사비나 성당, 그리고 산 지로라모 신학교였다. <자료11> 2년 후 로마 가톨릭은 더욱 강력하게 안테 파벨리치를 보호하기 위해 교황이 지배하는 바티칸 내부로 그의 거처를 옮겼으며 1947년에 아르헨티나로 안전하게 도피시켰다. 안테 파벨리치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에 도착하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가톨릭 사제들이 항구에 마중을 나와 그의 도착을 환영했다.(제랄드 포스너, 『교황청의 돈과 권력의 역사』, 밀알서원, 2019., p.183.) <자료12> 로마 가톨릭은 학살자를 도피시킨 것뿐 아니라 전쟁 후에 치러진 전범 재판에서 학살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가톨릭 사제 6명이 학살 행위로 인해 유죄를 선고받자 교황 비오 12세는 그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또한 학살을 주도했던 우스타샤 군대의 통솔자 스테피낙 대주교가 유죄를 선고받자 교황은 감옥에 갇힌 스테피낙을 추기경으로 승격해 주었다. 그 후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스테피낙을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해 그 첫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한 바 있다. 그들의 정신 세계에서 학살은 악을 멸하는 성스러운 행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학살자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는 박물관에 갇힌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 참상이 밝혀지고 있는 거대한 범죄이다. 최근 아일랜드에서 밝혀진 9,000명의 어린이들이 학살된 사건에서 한 생존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우리의 홀로코스트이다. 여기 미혼모 시설에도 홀로코스트가 있었다.” <자료13> 그가 말한 홀로코스트는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미혼모 시설에서 9,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방치와 학대, 전염병 등으로 학살된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홀로코스트는 아일랜드 투암 지역의 가톨릭 시설에서 오수 탱크에 버려진 800개의 아기 유골이 확인되면서 정부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3,000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보고서로 확인된 사실이다. 현재 아일랜드에서는 학살 당한 어린이들을 위한 장례 행렬이 이어지며 가톨릭에 대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홀로코스트의 진범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 한때의 바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고 선언했던 로마 교황의 분명한 목소리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한 홀로코스트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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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소개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이 모여사는 신앙인의 마을입니다.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신앙인의 마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 같은 성신이 임하시는 은혜의 땅이자 천부교인의 성지입니다. 천부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 이슬성신이 내리는 체험의 종교이자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입니다. 천부교를 믿는 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신앙인의 마을을 이룬 곳, 맑고 푸른 자연 속에서 바른 양심으로 자유율법을 지키며 살고자 […]

Welcome to Shinang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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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angchon introduction

■ Shinangchon is a religious community Shinangchon is a religious community where believers of the Chunbukyo faith live and work together. It was built so that believers can live together and lead a cleaner life in the grace of God. Blessed by God, Shinangchon is truly the Holy City of Chunbukyo where boundless joy and […]

다시 쓰는 세계사 <14>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홀로코스트의 진범(眞犯)은 누구인가? (上)

다시 쓰는 세계사 <14>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홀로코스트의 진범(眞犯)은 누구인가? (上)

다시 쓰는 세계사<14>

홀로코스트란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용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강제 수용소에서 착취당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대인의 모습이나,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의 텅 빈 눈동자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영상과 사진, 각종 문헌을 통해 생생히 알려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료1,2,3,4,5> 그러나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직 베일에 싸인 듯 […]

다시 쓰는 세계사 <13>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대량학살의 정당화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다시 쓰는 세계사 <13>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대량학살의 정당화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다시 쓰는 세계사<13>

역사적으로 ‘대량학살’의 범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포함해 인종청소를 실시했던 히틀러가 원흉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다. 또한 히틀러와 같이 대량학살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이 가장 경배받고 추앙받는 시설을 꼽으라고 한다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가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7년 독일 해군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70년, 독일 […]

다시 쓰는 세계사 <12> 야스쿠니 신사의 비밀… 성스러운 피와 죽음을 숭배하는 집단에 대하여

다시 쓰는 세계사 <12> 야스쿠니 신사의 비밀… 성스러운 피와 죽음을 숭배하는 집단에 대하여

다시 쓰는 세계사 <12>

일본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총리직에서 물러난 아베 신조가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참배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평소 야스쿠니 신사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찾아 소원을 비는 곳이다. <자료1,2> 두 손을 모으고 대학원 합격이나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종교 시설과 다를 바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피와 […]

다시 쓰는 세계사 <11> 순교(殉敎)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죽음을 불사하는 신앙인가? 죽음을 숭배하는 사교(邪敎)인가?

다시 쓰는 세계사 <11> 순교(殉敎)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죽음을 불사하는 신앙인가? 죽음을 숭배하는 사교(邪敎)인가?

다시 쓰는세계사 <11>

1612년 10월 8일, 일본의 통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네덜란드 국왕<자료1>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가톨릭 신부들은 일본인을 가톨릭으로 끌어들인 후 종교를 빌미로 큰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톨릭의 생각대로 되는 것입니다.”(야마모토 시치헤이,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당시 네덜란드는 일본과 무역 거래를 하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80년 전쟁을 치른 것을 비롯해 가톨릭 […]

1955년 9월 16일 인천집회

1955년 9월 16일 인천집회

이달의 역사 잠실 야구 경기장 보다 큰 규모 수만 명 모여 은혜의 창파 이뤄 1955년 9월 16일, 인천 시민 심령 대부흥회가 열렸다. 일명 ‘동산운동장 집회’라 불리는 하나님의 천막집회였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동산중학교 운동장에 운집했다. 당시 동산중학교 운동장은 인천에서 가장 넓은 공터였다. 1957년 정비된 동산중학교 운동장의 넓이는 10,760평이다. 동대문 야구경기장이 5,449평, 잠실 야구경기장이 […]

다시 쓰는 세계사 <10>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살인자로 단죄하다

다시 쓰는 세계사 <10>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살인자로 단죄하다

다시 쓰는세계사 <10>

1910년 3월 9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있었던 고해성사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사형 집행을 앞둔 한국인 사형수가 가톨릭 신부를 만나 고해하는 자리였는데, 이 자리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형수가 다름 아닌 안중근 의사(義士)였기 때문이다. <자료1> ◈ 독립운동가에게 찍어준 살인자 낙인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주권을 침탈당하고 격렬하게 항거하던 때로, 안중근 의사가 식민 지배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은 […]

다시 쓰는 세계사 <9>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악랄한 범죄자인가, 용서의 구원자인가?

다시 쓰는 세계사 <9>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악랄한 범죄자인가, 용서의 구원자인가?

다시 쓰는세계사 <9>

◈ 일본 학자 눈에 비친 고해성사 1620년, 일본 학자 후칸사이 하비안(1565년~1621년)은 로마 가톨릭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저서를 집필했다.<자료1> 제목부터 ‘가톨릭의 신을 파괴하다.’라는 뜻의 『하데우스(破提宇子)』인 이 저서는 가톨릭의 가장 큰 문제가 고해성사라고 지적했다. <자료2> ‘고해성사는 말로 고백만 하면 죄가 소멸된다는 것으로 이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살인과 같은 중범죄도 가톨릭 신부에게 말만 하면 죄가 […]

다시 쓰는 세계사 <8> 일본에게 노예 무역과 잔인한 폭력을 교사(敎唆)하다 … 반인류 범죄의 뿌리를 찾아서

다시 쓰는 세계사 <8> 일본에게 노예 무역과 잔인한 폭력을 교사(敎唆)하다 … 반인류 범죄의 뿌리를 찾아서

다시 쓰는세계사 <8>

■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톨릭 금지령을 내리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인 1612년, 일본의 쇼군(しょうぐん, 将軍)으로 명실상부한 지배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톨릭 금지령’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에 가톨릭이 광범위하게 퍼져 신도가 60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가톨릭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톨릭을 금지한 첫 번째 이유는 가톨릭이 순교자를 찬미하는 행태에 대한 강한 반발 내지 혐오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