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모두를 속인 사기범은 누구인가? …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긴 미스터리

모두를 속인 사기범은 누구인가? …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긴 미스터리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 두 가지 미스터리를 던져 주었다 누가 31번 확진자를 감염시켜 엄청난 확산을 일으켰는가? 누가 진짜 사기 전도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금년 4월 11일, 이탈리아 가톨릭교회는 토리노 수의(壽衣)를 공개했다. 토리노 성당에서 보관하는 이 수의는 예수가 죽은 뒤 시신을 감쌌다고 주장하는 세마포 천으로, 가톨릭에서는 이 천이 병을 낫게 하는 등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1987년 이 수의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 미국 애리조나, 스위스 취리히 실험실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시작했는데 조사 결과 세 군데 모두 동일한 측정치가 나왔다. 토리노 수의는 예수 사후 1300년이 지난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황 프란치스코는 수의를 보여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선행”이라고 했다. <자료1> 수의가 공개되던 시점은 토리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가 코로나 때문에 죽음의 도시로 변해 가던 때였다. 30분에 1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고 영안실에 자리가 모자라 성당까지 시신이 즐비하게 놓이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토리노 수의를 보고 어떤 선행과 희망을 얻었을까. <자료2> 코로나19는 의학의 영역을 넘어 종교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것에 합리적인 의문을 갖게 되는 지금, 코로나19는 여러 가지 의문을 던져 주었다. 이번 <이슈 추적>에서는 코로나19가 남긴 미스터리 두 가지를 추적해 본다. 전체 확진자의 48%. 5,212명.(2020.5.11.0시 기준) <자료3> 이것은 5월 11일 0시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신천지와 연관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의 숫자이다. 매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 숫자를 방역 당국이 발표할 때마다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웠고, 바이러스가 31번 확진자와 함께 급속도로 퍼져 나가 대구와 경북을 뒤덮은 엄청난 감염 속도에 경악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31번 확진자를 감염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남긴 첫 번째 미스터리는 “누가 31번을 감염시켰나?” 하는 것이다. 한국은 2월 중순까지 전체 확진자가 30명에 불과할 정도로 전파 속도가 미미했지만 31번 확진자 이후 불과 열흘 만에 신천지 관련 감염자가 1,000명으로 폭증했고, 그만큼 전파 속도와 범위에 있어서 차원이 달랐다. 언론은 31번 확진자가 바이러스 전파의 주범이라고 지목했지만 실제 역학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31번 확진자는 미지의 전파자에게 옮은 것이며 따라서 신천지 내에서 감염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감염을 당한 사람이라고 했다. 또 31번이 발병하던 날 다른 신천지 신도들도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감염자 여러 명이 뒤섞여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 결론은 누가 누구에게 전염을 시켰는지 알아야 미지의 전파자를 밝혀낼 수 있다. 31번 확진자는 2월 10일부터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2.18.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 발표) 31번을 감염시켰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은 1월 중국에 다녀온 신천지 신도들이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들은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거나 31번 확진자 이후에 감염됐기 때문에 감염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감염을 당한 사람이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신천지에서 감염을 일으킨 사람은 신천지 신도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대구 신천지교회가 아닌 다른 지역, 다른 단체의 사람들이 신천지로 바이러스를 옮긴 것인가? 코로나19는 무증상인 상태에서 5차 감염까지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천지 신도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에 신천지 신도와 한집에 사는 가족이 코로나에 먼저 감염됐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 의성군 안사면에 사는 아들(27세)은 대구 신천지교회에 다니는 신도였고 그와 한집에 사는 아버지(59세)는 안동 가톨릭 교구 신도였는데, 아버지가 먼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후 2월 23일 확진되었고 아들은 이틀 뒤인 25일에 확진되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감염되었나 하는 것이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안동 가톨릭 교구 신도들은 국내에서 먼저 감염된 후 2월 8일 순례를 떠났다고 했기 때문에 2월 8일 훨씬 이전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 전염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면 대구 지역 감염의 발원지로 안동교구가 지목될 수도 있었다. 또한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것은 그보다 뒤인 2월 9일 또는 16일로 추정됐기 때문에 안동교구의 가톨릭 신도인 아버지가 먼저 감염되고 아들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의심해 볼 수 있다. <자료4> 그러나 대구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전에 경상북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전염됐을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서울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은 이미 2월 2일에 증상이 나타난 감염자(35세, 남)가 있었다.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코로나19로 확진되고 그 가족과 간병인까지 확진된 것을 보면 병원 내의 감염이 지역사회 감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자료5> 뿐만 아니라 은평성모병원 이송요원이었던 확진자가 무려 302명의 환자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은 패닉에 빠졌고, 이 환자들이 다른 병원 응급실로 ‘엑소더스’ 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당시 평택 성모병원에서 빠져나간 입원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사례가 생각난다.”고 했다. 은평성모병원의 감염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만약 은평성모병원 확진자와 접촉한 302명을 전수 조사해서 전염 여부를 추적했다면 은평성모병원 관련 확진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조사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안동 가톨릭 교구에서 발생한 확진자 31명은 최소 176명과 접촉했지만 그들에 대한 전수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천지 신도들을 전수 조사했듯이 다른 집단 감염자들도 전수 조사 했다면 “누가 31번을 감염시켰나?” 하는 문제를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의구심을 낳을 수 있는 추측에 대해 진짜 범인은 몰래 숨어서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감염자의 진술에 의존해 그 동선을 따라가는 역학조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감염자의 바이러스 게놈을 조사하면 감염 경로와 전염시킨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게놈 정보 해독 건수가 적어서 이 방법을 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31번 확진자를 감염시켜 신천지에서 코로나 전파를 일으킨 범인은 사라져 버렸고, 그의 정체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바이러스 전파자에 관한 미스터리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것은 진짜 전파자보다 엉뚱한 곳에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것이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에 삼성 서울병원은 슈퍼 전파자로 지목돼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수사 결과는 무혐의로 드러났다.(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 양요안, 2015.12.24.처분) 한편 평택 성모병원은 슈퍼 전파자 3명을 감염시켜 전체 확진자의 70%를 양산했지만, 면죄부를 받은 듯(?) 비난의 무풍지대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또 삼성 서울병원은 시민단체로부터 ‘최악의 살인 기업’으로 몰렸지만, 평택 성모병원은 영광의 주인공인 양 가톨릭 평택 대리구 신부에게 감사장을 받고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는 병원”이라는 축복까지 받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은평성모병원은 수도권 대형 병원 중에 처음으로 병원 내 감염을 일으켜 많은 우려와 불안을 낳았지만, 명동성당 염수정 추기경이 친필 편지를 보내 “여러분의 수고를 기억하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격려해 주었다. 이는 성공적인 이미지 세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자료6> 2009년 신종플루가 창궐했을 때는 가톨릭 수녀가 우리나라에 전염시킨 첫 번째 전파자였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오히려 수녀들이 전염병 대비를 잘했다는 기사가 줄기차게 보도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첫 번째 전파자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바이러스를 전파시켰던 전과자들은 바이러스처럼 능수능란하게 변이를 일으키며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남긴 또 다른 미스터리는 “누가 진짜 사기범인가?” 하는 것이다. 신천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등장한 키워드는 “종교 사기” 또는 “사기 전도”였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성전’이라는 생소한 단체가 사람들을 속이며 사기 전도를 벌이는 것이 알려졌고, 이러한 종교 사기 집단에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다름 아닌 가톨릭이라는 점이었다. 교황청 산하에 ‘종교간 대화평의회’가 있을 정도로 타 종교와 대화하며 너그러운 포즈를 취했던 가톨릭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는 완전히 돌변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신천지의 진짜 문제는 사기 전도다.’ 지난 3월 한겨레 신문에는 이런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금재 신부는 이렇게 단언하는 동시에 ‘신천지의 뿌리는 전도관’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했다. <자료7> 이 두 가지 명제는 절묘하게 결합해 ‘신천지의 사기 전도는 전도관(천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천부교도 사기적인 방법으로 전도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신천지가 사기 전도로 비난 받을 때 “신천지 뿌리는 천부교”라는 발언은 천부교로 비난의 집중 포화가 떨어지게 만들 수 있는 방아쇠였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사기범이라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려면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물며 타 종교 단체를 두고 사기범이라고 할 때는 개인과는 별개로 정확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 만약 증거도 없이 사기범이라고 손가락질한다면 도리어 손가락질한 사람이 사기범이라고 비난 받을 가능성이 높다. 천부교의 전도 방식은 대상자에게 천부교라는 명칭을 분명히 밝히고 그 뜻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부교라는 명칭에서 종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앙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람나무 잎을 물고 있는 비둘기상이 천부교의 상징임을 알리면서 감람나무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는 것을 알리고, 중요한 교리인 자유율법과 천부교인들의 신앙체험을 알리는 순서로 전도를 한다. 천부교 관련 기업체의 이름 또한 천부교 고유의 의미가 담긴 “신앙촌”을 사용하며 신앙촌 기업의 제품을 판매하는 점포도 “신앙촌 상회”라는 명칭을 사용한다.(1966.12.27.선고, 대법원66후11판결 “신앙촌은 박태선 장로를 따르는 신자들만의 단체를 칭하는 통용어이며 신앙으로써 결합된 특수단체이다.”) 이러한 신앙촌 기업이나 신앙촌 상회를 통해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천부교인에게 관심을 갖고 전도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가톨릭의 주장에 따르면, 신천지의 사기 전도 핵심은 자신의 종교 이름을 숨기고 대상자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을 속이고 접근하는 방식은 천부교 교리인 자유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천부교에서는 사기 전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가톨릭 신부가 천부교를 두고 사기 전도 운운하면서도 아무런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천부교는 신천지와 뿌리부터 다른 종교다. 그렇다면 신천지는 자신의 뿌리를 어디라고 했을까. 신천지를 세운 이만희 총회장은 자신의 책 <계시록의 실상(1993)>에서 장막성전이 첫 번째 장막이고 신천지가 두 번째 장막이라고 선언했다. 장막성전이란 ‘1966년 과천에 세워진 장막성전’을 말하며 신천지는 그 명칭(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성전)부터 장막성전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천지 스스로 자신의 뿌리가 장막성전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톨릭 신부는 천부교가 신천지의 뿌리라고 단언했을까. 이 신부가 내세운 증거는 단 하나, 이만희가 젊은 시절(27세) 신앙촌(경기도 부천의 소사신앙촌)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만희가 잠깐 몸담았다는 이유로 천부교가 신천지의 뿌리가 된다면 가톨릭도 신천지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신천지 2인자이자 유력한 후계자였던 김남희 씨가 원래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만희는 정말 신앙촌에 있었을까, 있었다면 무슨 이유로 들어갔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본지는 이만희 주장과 동일한 시점인 1957년경 소사신앙촌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사람들의 목격담을 수집하며 추적하기 시작했다. 목격자들은 공통적으로 1958년 여름에 문둥병을 앓았다가 완치된 이만희 씨를 소사신앙촌에서 봤다고 했다. 특히 개신교 언론에서는 이만희 씨와 형제들까지 문둥병을 앓았다고 보도했는데, 기성교회 목사가 이만희를 고소한 사건에서 ‘이만희가 문둥병 치료를 목적으로’ 신앙촌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판결문에 명시돼 있었다. (서울동부지법2013고정385) 이만희가 신앙촌에 들어와 문둥병이 나았다면 그 당시 본지에 보도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1958년 당시 본지에는 문둥병뿐 아니라 각종 난치병과 불치병 환자들이 생명물을 마시거나 안찰을 받은 후로 완치되었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 많은 치병 기사 중에 ‘이만용’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는 이만희의 형인 이만용과 거주지, 연령, 한자 이름까지 동일해 이만희의 형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본지에 감사 편지를 보내와 “밀양전도관에서 박태선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생명물을 몸에 바른 후로 수년 동안 고생했던 문둥병이 완치되었다.”고 밝혔다.(1958.10.6.자 신앙신보) 이 증언과 보도를 토대로 하면, 이만희와 그의 형 이만용이 전도관에 입교한 후 문둥병이 완치된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만희는 천부교에서 병이 낫는 혜택을 입은 사람이었고, 그것은 당시 수없이 일어났던 치유 사실 중에서 빙산의 일각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이만희와 천부교의 관계는 간단명료하다. 천부교는 이만희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고 이만희는 천부교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만희의 문둥병 치유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해 버리고 천부교가 신천지의 뿌리라는 허위 사실을 집요하게 퍼뜨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신종플루부터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바이러스 전파의 혐의가 농후한 특정 집단이 자중을 해도 부족할 시점에 오히려 바이러스를 빌미로 천부교를 폄훼하는 것은 천부교의 권능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인가, 아니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인지 장애인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7일 보도된 CNN 기사를 주목할 만하다. CNN에 따르면 1950년대 천부교인의 숫자가 200만 명이며 이만희는 그중 한 명이라고 보도했다. 이것이 바로 사실에 입각한 보도일 것이다. ‘사기 전도’란 신천지처럼 전도자가 자기 종교를 숨기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적을 행할 수 없는 종교가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기전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교황 프란치스코는 신자 없이 홀로 미사를 할 때 “예수는 나의 사랑에 마음을 열라고 말씀하신다.”며 신자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느낄 것을 설파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에 마음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의 기초는 이해이고, 이해가 없다면 사랑도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토리노 수의는 예수가 죽은 지 1300년이나 지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그 수의를 보며 어떻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고고학자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의 말대로 “토리노 수의가 진짜라고 믿는 것은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과 같은데, 어떻게 얼룩덜룩한 세마포 천을 보며 예수를 이해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일찍이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칸트는 종교 없는 과학은 공허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이라고 했다. 토리노 수의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아니라 더 정확한 증거가 나와도 여전히 맹목적인 믿음을 고수할 것이다. 2,000년 동안 이어진 사기 전도의 폐해는 그만큼 강력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한 손에 칼, 한 손에 십자가’를 들고 개종을 강요하던 때보다 세상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살인 전도보다 사기 전도가 그나마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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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수은 중독과 매독, 탐욕이 부른 질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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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빈자의 날”을 제정해 해마다 빈곤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때마다 노숙자와 실업자를 베드로 성당에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교황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작년 11월 빈자의 날에 교황은 베드로 성당 미사에서 “소수의 탐욕으로 다수가 빈곤해진다.”며 탐욕의 세력 때문에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강조했다.<자료1> 탐욕이 수많은 사람을 빈곤에 빠뜨리는 일은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다. 스페인에게 300년간 착취당한 잉카 사람들이 대표적인데, 스페인이 마치 흡혈귀처럼 잉카의 자원을 빨아들여 잉카는 돌이킬 수 없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스페인이 잉카를 지배하도록 허가해 준 사람이 교황 알렉산드르 6세였다. 스페인이 잉카에서 마음껏 탐욕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교황의 허가 덕분이었다. 스페인의 탐욕은 잉카를 빈곤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수은 중독이라는 불치병까지 안겨 주었다. 수많은 잉카 사람들이 광산에 끌려가 착취를 당하다 수은 중독으로 죽어 갔지만 탐욕에 눈이 먼 스페인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같은 시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유럽 사람들은 매독을 퍼뜨리는 슈퍼 전파자가 되었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끝없는 탐욕이 어떻게 질병을 불러왔는지, 그 질병의 전파 경로를 따라가 본다. 15세기 당시 잉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493년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스페인에게 아메리카를 지배하라고 허가해 줄 때(토르데시야스 조약) 교황도 스페인도 잉카라는 나라를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땅이든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은 온 세상을 마음대로 나눠 줄 수 있고, 교황에 복종하지 않으면 누구든 노예로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통고문 “레케리미엔토”) 잉카 사람들은 다 함께 농사 지으며 식량을 배분했기 때문에 강제 노동을 알지 못했고, 잉여 농산물을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주었기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스페인이 점령한 뒤부터 잉카는 노동 착취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 원주민을 노예이자 동물로 취급했다. 잉카 원주민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영혼이 없는 하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잉카 사람들은 라마(낙타과에 속하는 포유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질 수 있기 때문에 하역용 가축으로 이용당했고, 노새보다 더 오랫동안 광산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광산에서 착취당했다. 아메리카 포토시(Potosi, 현재의 볼리비아)에는 순도 높은 은이 풍부하게 매장된 은광이 있었다. 스페인 지배자들은 은광에 세로 리코(Cerro Rico, 부유한 산)라는 이름을 붙이고 원주민 노예를 끌고 와서 은을 캐내기 시작했는데, 손으로 광물을 캐낸 후 그것을 등에 지고 희미한 촛불에 의지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자료2> 노예들은 광산으로 기어 들어갔다가 일주일도 못 되어 머리나 다리가 부서져서 밖으로 끌려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다.(E.갈레아노, 『수탈된 대지』, 범우사, 2016, 104p.) 4만 톤이 넘는 은을 캐내는 동안 800만 명의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장 지글러, 『빼앗긴 대지의 꿈』, 갈라파고스, 2018, 202p) 설상가상으로 은을 분리하는 데 수은을 사용하면서 이 죽음의 행렬은 수은 광산에까지 번지게 되었다. 광산에서 캐낸 은은 다른 광물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은과 잘 뭉치는 수은을 이용해 분리하면서 수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수은을 생산했던 우앙카벨리카(현재의 페루)에도 원주민 노예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수은 광산에 가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그곳을 ‘공립 도살장’이라 불렀고, 어머니들은 자식이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불구로 만드는 일까지 있었다. 그토록 극단적인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수은 중독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 있었다. 수은 중독에 걸린 사람은 정신이 혼란해지고 몸이 점점 쇠약해지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노예들은 수은이 섞인 독한 공기를 마셨는데, 수은은 쉽게 기화하기 때문에 공기에 섞여 폐에 들어가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수은 중독에 걸리면 우울증과 기억 상실이 찾아왔고 치아가 빠지며 말의 높낮이를 바꿀 수 없게 되었다. 가장 흔한 증상은 근육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노예들은 떨리는 몸을 질질 끌면서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동료들의 무덤 옆에 영원히 잠들었다. 얼마나 많은 원주민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 받고 죽어 갔는지는 기록은 소실되어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캐낸 은의 양이 당시 전 세계 생산량의 85%를 차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숀 윌리엄 밀러, 『오래된 신세계』, 너머북스, 2013, 167p) 볼리비아의 한 작가가 “스페인이 가져간 은을 합치면 대서양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할 만큼 스페인이 유출해 간 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만큼 탐욕으로 인해 고통받은 원주민의 숫자도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강탈해 간 은은 자금난에 시달리던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으로도 흘러 들어갔다.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화려하게 재건축하기 위해 독일의 전설적인 고리대금업자 야코프 푸거에게 자금을 빌려 쓰고 있었는데, 푸거의 손에 아메리카 은이 들어갔다. 스페인은 교황이 허가해 준 덕분에 아메리카에서 부를 거머쥘 수 있었고 교황은 스페인 덕분에 빚을 갚게 되었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획득한 것에 대해 가톨릭의 하느님과 예수에게 감사하는 표시로 수많은 성당을 지었다. 은광이 위치했던 포토시에만 86개의 성당이 세워져 십자가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았지만 은을 캐내다 스러져간 수많은 노예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원주민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이교(異敎)를 숭배한 그들의 죄가 예수를 진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 스페인의 가톨릭 신학자 / 출처: 장 클로드 카리에르, 『바야돌리드의 논쟁』) “상당히 많은 원주민의 생명을 광산이 빼앗아 간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광산에서 했던 강제 노동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종한 생활 때문에 죽은 것이다.”(알론소 카리오 데 라 판데라, 스페인의 관리) 광산에서 일하다 죽어 간 원주민 노예들은 예수를 진노하게 만든 죄 때문에 죽었을까. 아니면 방종한 생활 때문에 죽었을까. 그들의 시신은 수은 중독으로 하얗게 변한 뼈가 썩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서 착취한 자들을 고발하는 법의학적 증거가 되고 있다. 끝없는 물질적 탐욕이 수은 중독을 불러 왔다면 매독은 방탕한 육체적 탐욕이 불러온 질병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에서 수은 중독을 전파시키며 원주민을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고 있을 때, 비슷한 시기 유럽 사람들은 끔찍한 매독의 슈퍼 전파자가 되었다. 매독의 전파로 유명한 사건은 149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있었다.<자료3> 당시 프랑스 황제 샤를 8세는 5만 명의 용병으로 나폴리를 포위했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에서 모여든 대군에는 800명의 매춘부가 딸려 있었다. 나폴리가 함락되고 나자 이들은 방탕한 생활에 몰두했고 전투가 끝난 후 용병과 매춘부는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불과 몇 개월 후 매독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에서 급속히 번져 나갔고 5년 후에는 덴마크, 스웨덴, 영국, 그리스, 폴란드, 러시아까지 전파되었다. 성 매개 질병이라 불리는 매독은 전신에 고름 덩어리를 만들었으며 심한 경우 궤양이 뼈를 파고 들어가 코와 입술 등이 녹아 내렸다. 성행위를 매개로 전염된다는 사실과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증상 때문에 사람들은 매독을 죄악의 징표라 생각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병”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병”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터키에서는 “가톨릭병”이라 부르며 서로 상대방에게서 옮았다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사 이언스북스, 2001,190p) 그렇다면 매독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매독의 기원을 둘러싸고 유럽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옮아 왔다고 생각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을 성 노예로 삼았고 이후에도 탐험가들이 원주민 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 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492년 이전에 매독에 감염된 유골이 영국에서 발견되면서 매독이 유럽에도 존재했으며 다른 감염병과 혼돈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자료4> 여러 주장에서 공통적인 것은 15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매독이 ‘악성 매독’이라 불릴 만큼 독성이 강했으며 빠른 시간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와 아프리카에도 매독과 비슷한 전염병이 존재했지만 유럽만큼 강력하지 않았고 급속도로 전파되지도 않았다. 유럽이 매독의 1번 확진자는 아니라도 슈퍼 전파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매독으로 코가 녹아내린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매독 환자들은 코의 피부가 점점 괴사하면서 코 밑의 연골이나 뼈 조직까지 약해져 코가 내려앉게 되었고 심하면 코뼈가 얼굴에 파고들어 살이 썩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외과 교수였던 가스파레 탈리아코치는 코 재건술을 시도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그의 재건술을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인간의 외모를 고치는 것은 창조자 즉 가톨릭의 하느님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가톨릭 성직자들은 매독에 걸려도 코 재건 수술을 받지 않았다. 당시 성직자들은 첩을 거느리고 살았기 때문에 매독이 창궐하는 환경을 피해갈 수 없었다. 성직자들은 교황에게 축첩세만 내면 아무 불편 없이 첩을 데리고 살 수 있었고, 신도들 앞에서는 독신 생활을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연기할 수 있었지만 매독에 걸려 코가 녹아 버리자 더 이상 거룩한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매독으로 코가 찌그러진 추기경을 조롱하는 풍자시가 유행해서 민중들은 “그 코는 현자(賢者)의 코. 다음에는 그 코가 교황에게 내려지겠지.”(Eduard Fuchs, 「Illustrierte Sittengeschichte vom Mittelalter bis zur Gegenwart」)하고 노래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교황 율리우스 2세와 알렉산드르 6세도 모두 매독에 걸린 것으로 유명했다. 율리우스 2세를 보좌했던 의전관 그라시스의 보고에 따르면, 예수의 수난일이 되었을 때 교황은 매독에 걸려 발이 엉망인 상태였다. 예수의 수난일에는 관례로 신도들이 교황의 발에 입을 맞췄는데 그때 교황은 누구에게도 발 키스를 허락하지 않았다.<자료5> 교황 알렉산드르 6세는 자신의 친딸인 루크레치아를 첩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알렉산드르 6세가 매독에 걸리자 불과 2개월 만에 가족과 첩들까지 17명에게 매독이 전염되었다. 16세기 매독이 퍼지던 무렵 독일의 민중들은 “교황 성하”를 “음란 성하”라 부르고, “추기경”을 “수캐”라 불렀는데 이 비유는 가톨릭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 시대를 연구한 독일의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 이렇게 적었다.<자료6> “당시 유럽에서 교황과 가톨릭 교회는 모든 가톨릭 신도 위에 군림한 최고 권력자였고,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타락은 파괴적인 독기를 내뿜었다. 성직자들의 퇴폐적 음란 풍조는 유럽 시민들의 풍기 문란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전염병은 적절한 숙주를 만났을 때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숙주는 생물학적인 조건이지만 그 조건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신적인 요소도 맞아야 한다. 육체적 탐욕을 좇았던 가톨릭의 풍토와 정신은 악성 매독균이 급속도로 퍼질 수 있는 이상적인 숙주였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팬데믹 공포에 빠져 있는 지금, 어떤 정신적 요소가 숙주를 만들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특집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식민 지배의 신호탄과 전염병 생물학 폭탄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식민 지배의 신호탄과 전염병 생물학 폭탄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류와 문화를 케이크에 비유해 설명한 적이 있다. “인류와 문화는 케이크처럼 조각조각 자를 수 없다. 케이크를 잘라 반은 네가 갖고, 반은 내가 갖는 식의 협상으로 갈등이 종결되지 않는다. 함께 대화하고 건설해야 한다.” 세계 역사에서 케이크를 나누는 식의 협상은 여러 번 있었다. 각 나라의 인류와 문화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경계를 나눠 버린 최초의 사례는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atado de Tordesillas)이었다. 지구를 반으로 잘라 반은 스페인이 갖고 반은 포르투갈이 갖게 하는 조약이었는데, 이 조약을 승인한 당사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였다. <자료1,2> 이 조약에 따라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 지배하기 위해 나섰고 이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은 스페인에서 들어온 각종 전염병으로 대량 학살을 당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식민 지배의 신호탄이 되었던 통고문과 원주민에게 생물학 폭탄이 되었던 전염병에 대해 알아본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승인할 당시 교황은 물론이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세계의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평양이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도 일부만 파악했는데 미지의 땅이면 무조건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핵심이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이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이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교황이 인정해 준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교황의 승인으로 두 나라는 ‘발견’하는 땅을 전부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것의 맹점은 원래부터 땅을 소유했던 원주민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레케리미엔토(Requeri miento)’라고 불리는 통고문에도 그대로 반영됐는데, 레케리미엔토는 스페인 탐험가들이 미지의 땅에 도착해서 읽어 주는 선전포고문이었다.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교시한 내용으로, 간단히 말하면 “가톨릭의 하느님이 교황에게 세상을 넘기고, 교황은 너희 땅을 스페인에 넘겼으니 그런 줄 알라.”고 일방적으로 원주민에게 통보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시누족은 이 통고문을 듣고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글쎄, 가톨릭에서 믿는 하느님이 자기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인심을 팍팍 썼구려.”(로널드 라이트 지음,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2012., p.124./ Galeano 1985:60) 이것은 통고문을 원주민의 언어로 통역했을 때의 반응이었고, 통역 없이 스페인어로 읽고 끝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심지어 텅 빈 거리나 광장에서 읊기도 하고 아직 배가 육지에 닿기도 전에 뱃전에서 읊어 대기도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면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통고문 낭독에 집착했던 것은 이 통고문이 가지는 효력 때문이었다. “그대들은 가톨릭교회를 이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스페인 국왕이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에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비호 아래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어디서든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강제로라도 그대들이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악(todos los males)을 동원해 그대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 Spanish_Requirement_of_1513) 이 통고문을 듣고 원주민이 복종하지 않으면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었으며, 원주민 학살도 그들의 신이 허락해 준 정당한 행위가 되었다. 물론 원주민이 통고문대로 순순히 복종한다 해도 땅을 빼앗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자신의 문화와 땅을 가진 원주민이 하루아침에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낭독이 끝나면 곧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잉카를 정복할 때도 레케리미엔토를 읽어 주었다. 1532년 11월 원정대에 소속된 가톨릭 수사 비센테 데 발베르데는 카하마르카 광장에서 잉카 황제를 앞에 두고 레케리미엔토를 낭독했다. 그러자 잉카 황제는 “네가 말하는 교황이란 자가 참으로 미쳤구나. 남의 나라를 떡 주무르듯이 나눠 주다니.” 하고 대꾸했다. <자료3> 그래도 비센테 수사는 한 손에 십자가를, 한 손에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 가톨릭 성직자들이 매일 반복하는 기도문과 찬송가를 적은 책)를 들고 황제 앞에 다가가 “오직 십자가를 경배하고 오직 하느님만 숭배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잉카 황제가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묻자 수도사는 성무일과서를 내밀었고, 황제는 그 책을 훑어보더니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 즉시 비센테 수사가 “가톨릭을 모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외치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스페인 원정대는 일제히 대포를 쏘며 전투를 시작했다. 무장한 기마병들이 비무장 군중을 휘저으며 “개미 잡듯이” 죽이는 학살극이 끝났을 때는 만 명에 이르는 시신이 광장 여기저기에 피와 살이 범벅되어 나뒹굴었다. <자료4> 황제를 호위하던 병사들도 떼죽음을 당하고 잉카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던 황제마저 스페인 원정대에게 사로잡혔다. 이로써 잉카 제국은 멸망해 버렸다.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는 식민지가 되었으니 황제에게 읽어 준 레케리미엔토가 현실이 된 셈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정복 의지를 밝힌 레케리미엔토가 전쟁의 신호탄이었다면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에 가져간 전염병은 생물학 폭탄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는 스페인 사람들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마치 생물학 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각종 전염병이 극성을 부렸다. 100년 동안 스무 차례 전염병이 휩쓸고 간 결과 원주민 숫자는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9,000만 명의 사람이 몰살당했다. 스페인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지배했던 히스파니올라 섬의 원주민 타이노족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고 말았다. 아메리카 사람들이 그토록 전염병에 취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력한 원인 중 하나는 환경과 면역력의 차이였다. 아메리카 사람들은 매일 목욕하며 몸을 깨끗이 했을 뿐 아니라 날마다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며 청결함을 유지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병원균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었고 대량 살상 능력을 가진 전염병도 거의 없었다. 이것은 전염병에 맞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는 뜻이었다. 이에 반해 스페인은 홍역, 천연두, 페스트, 황열,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창궐했고, 이 환경에서 살아남은 스페인 사람들은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끼리 살 때는 아무 위험이 없었지만 강력한 병원체를 가진 스페인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치명적인 위험에 빠져 버렸다. 원주민이 스페인 사람과 접촉하고 나면 너무나 쉽게 죽어 버렸기 때문에 마치 스페인 사람의 냄새만 맡아도 죽는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전염병에 쓰러지는 원주민을 불에 타 죽는 빈대에 비유하기도 했다. (로널드 라이트 지음,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pp.93~94.) 특히 급속도로 퍼졌던 천연두는 스페인의 한 병사가 원주민과의 전투 중에 전염시켜서 원주민들은 반격할 힘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천연두는 얼굴을 흉측한 곰보로 만들고 눈까지 멀게 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원주민들조차 다시 절망에 빠졌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지가 세상을 떠나고 마을을 이끌던 어른도 없어졌으며 풍요로웠던 경작지는 돌보는 사람 없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눈앞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고 제멋대로 곡식을 심어도 저항할 원주민이 너무나 적고 힘이 없었다. <자료5>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만 골라 죽이는 전염병을 두고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이교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원주민의 눈에도 전염병에 끄떡없는 스페인 사람들은 신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였고, 겁에 질린 원주민들은 떼를 지어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곧 스페인 수도사들은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원주민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개종하고 세례까지 받은 후에도 여전히 전염병으로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1524년 중앙아메리카에서 선교하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원주민이 떼죽음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죽음이 곧 축복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곧 예수가 재림하고 세상이 끝날 것인데 종말을 앞두고 전쟁이 벌어져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신께서 세례를 받은 원주민 신도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심은 임박한 종말의 때에 고통을 면해 주시려는 특별한 축복”이라고 했다. 죽음이 곧 축복이라는 개념은 원주민에게 생소했지만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거라는 말은 원주민도 실감할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십자가 배를 타고 찾아온 뒤로는 악취 나는 그 배에서 바퀴벌레와 쥐가 튀어나와 해안에 흩어져서 바이러스성 질환을 퍼뜨리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온 돼지, 소, 양, 염소 같은 낯선 동물들이 운하와 들판을 엉망으로 만들자 예전에 없었던 인수 공통 질병(人獸共通感染病, zoonosis)이 창궐했다. 어디를 봐도 종말과 같은 고통과 혼란뿐이었다. 가톨릭 수도사들은 개종하지 않은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죽는 것도 신의 뜻으로 설명했는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제로니모 데 멘디에타는 이렇게 적었다. “원주민이 겪는 전염병을 보며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걸 느낍니다. ‘너희는 이 종족을 어서 절멸시켜라. 나는 좀 더 빨리 그들을 절멸시키도록 너희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Stannard, 『American Holocaust』, 219쪽.) 개종을 거부하는 원주민을 말살시키는 것은 예수의 뜻이었고, 예수가 전염병을 통해 종족 학살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신이 전염병으로 신도들을 돕는다는 생각은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에도 있었다.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1738~1820)는 “축복의 천연두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했다. 영국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해 침입했을 때 원주민 마을은 대부분 비어 있고 경작지는 죽은 원주민의 뼈로 뒤덮여 있었다. 천연두가 수차례 퍼지면서 뉴잉글랜드 지역 원주민의 94퍼센트를 학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연두로 원주민 종족이 말살을 당하고 영국인이 아무 저항 없이 원주민의 땅을 차지한 것을 두고 조지 3세가 ‘축복의 천연두’라고 칭송한 것이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와 조지 3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들이 믿는 신은 축복의 천연두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죽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죽이는 셈이었다. 죽음을 선사하는 신의 손길을 경험한 신도들은 신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1763년 영국의 제프리 암허스트 장군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천연두에 오염된 담요를 선물로 주었다. 암허스트 장군은 그들이 믿는 신이 허락한 대로 “지긋지긋한 종족을 절멸시키기 위해서” 천연두를 전염시켰다고 했다. 선물 받은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던 원주민들은 얼마 안 가 무시무시한 종기와 함께 죽음의 대열에 휩쓸려 버렸고 암허스트 장군은 그가 믿는 신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자료6>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탄젤로 성에는 전염병을 퇴치해 준 미카엘 천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톨릭의 전설에 따르면 페스트가 창궐하던 590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산탄젤로 성 위에 천사 미카엘이 칼을 들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이 꿈을 꾼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기 때문에 교황은 미카엘이 천사의 칼로 페스트를 물리쳐 준 것이라고 믿었다. <자료7> 그러나 미카엘 동상이 우뚝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스트는 계속해서 유럽에 창궐했다. 1331년부터 20년간 계속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고 1500년대에도 여러 번 유럽에서 재발했다. <자료8> 특정한 경우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이르는 치명적인 페스트에 대해 교황도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예수를 믿지 않는 신도들만 골라서 학살하던 신이 왜 유럽에서는 충성스러운 신도까지 죽였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의심일 뿐 그 신은 2,000년간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시체를 종교의 상징물로 내세운 이래로 시종일관 죽음을 축복으로 내려 준 신이 아니었던가.

증오의 씨앗을 뿌린 범죄 집단과 그들의 이중 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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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을 찾아서

지난 1월 9일 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발언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프란치스코는 대립하고 있는 국가들을 향해서 분쟁을 대화로 해결해야 된다고 종용했다. 서로 증오심을 자제하고 대화하라는 교황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권유하는 당사자가 극심한 대립과 증오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면 어떨까.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양심에 거리껴 공공연하게 대화를 권유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중 어법을 […]

다른 문화와 종교를 ‘이단’으로 말살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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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을 찾아서...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사건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전무후무한 재앙이었다. 콜럼버스는 유럽에 있는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공할 수 있도록 바닷길을 열어 주었고 그 길을 따라 일확천금의 탐욕을 품은 침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콜럼버스의 후예들은 탐험이라는 미명 하에 아메리카 곳곳을 누비며 약탈과 노략질을 계속했다. 이 탐험대가 원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탐욕과 무력 때문만은 […]

아프리카 원주민은 왜 좀비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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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만든 노예 사냥과 죽음의 노동

살아 있는 시체를 뜻하는 ‘좀비’는 원래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혼을 말살당해 자신의 의지와 생각 없이 주인의 명령만을 따르는 좀비, 죽을 만큼 혹사당하지만 이미 시체이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도 없는 좀비는 끔찍한 괴물이기 이전에 비참한 노예였다. 좀비는 아프리카 콩고의 “은잠비(Nzambi)”라는 단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혼 없는 노예’라는 이야기는 아이티섬에서 유래했다.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망망한 대서양 건너편의 […]

가톨릭이 세운 나라, 세계 정복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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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어떻게 세계화 되었는가?

지금부터 600년 전인 1419년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포르투갈이 항해를 위한 기반 시설을 세우고 대항해시대라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돛을 올린 그들의 항해는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폐해를 남겼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포르투갈은 12세기 가톨릭 십자군이 세운 나라였다. 초대 군주인 아폰수 1세는 십자군이었고 이슬람 세력과 수백 년 전쟁을 […]

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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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2,000년간 존재해 온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단이라 불린다. 또한 인류가 갈망하는 ‘구원’에 일정한 금액을 붙여 판매한 최초의 기업이며, 지배 계층을 움직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처럼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가톨릭이 최근 위기에 처했다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있었다. 가톨릭 본부인 교황청의 수입이 감소하면서 4천 4백만 유로(약 571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를 […]

이것은 재앙인가 범죄인가,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린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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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 화재 사건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50분경(현지 시간) 노트르담 성당에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화재로 노트르담 성당은 처참한 몰골이 됐고 예수의 분신과도 같은 십자가 첨탑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화재가 원인이나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850년간 프랑스 […]

거대한 성범죄 조직에 맞서 싸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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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2편> 미국 보스턴·펜실베이니아 사건

2002년과 2018년은 미국의 아동성범죄 처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해였다. 2002년은 언론사가 성범죄 조직의 실체를 폭로했고 2018년은 법적인 기관인 대배심이 성범죄 조직에 관한 방대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두 사건은 미국 전 지역에서 아동성범죄 처벌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성범죄 조직이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미국을 장악한 범죄 조직과 그에 맞서 싸운 언론과 […]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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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1편> 프레나 신부 사건

2019년 2월 20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신의 은총으로(Grâce à Dieu)”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생트 포이 레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보이스카웃을 담당한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0년대~80년대 70여 명의 보이스카웃 단원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영화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인 은곰상을 수상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프랑수와 오종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아동 성학대에 대한 은폐를 멈추려는 시도”라고 […]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천부교 체육대회는 1998년 이후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천부교인들의 건강 축제다. 본지는 그동안 체육대회를 통해 건강을 되찾거나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왔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체육대회로 건강 찾아 2004년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머리로 올라가는 혈관이 막힐 수 있으니 빨리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004 […]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 영토 강탈로 시작해 완전 범죄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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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3, 끝> 완전 범죄의 도시, 그 시작과 현재

바티칸 암매장 사건은 36년 전 실종된 소녀(엠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당시 15세)가 바티칸 교황청 내부에 암매장됐다는 의혹을 말한다. 본지는 피해자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미궁을 헤매는 사건을 연재하면서 사건의 경과를 2편에 걸쳐 실었다. 완결편인 이번 호에서는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와 완전 범죄를 꾀하는 세력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까지 왔는지 짚어 본다. 2013년 3월 19일,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