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신 지혜로 사업 일궜죠 (신기산업 이헌구 대표이사/덕소교회 승사)
신기산업 이헌구 대표이사 / 덕소교회 승사불황을 모르는 업체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초, 충북 충주시의 산자락은 다소 쌀쌀하였다. 일평생을 쇠붙이와 살아온 이헌구 승사(75세,신기산업사 사장)는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보였다.
신기산업은 ISO인증을 가진 알짜배기 중소기업체이다. IMF 당시에 부도를 맞았지만 잘 견뎌내고 이제는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인 볼보사 계열에도 부품을 납품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가 만드는 제품은 약 30여 종으로 주로 중장비 부품인데 조금이라도 오차나 실수가 생기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므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제작이 어려운 부품 뿐이다. 불도저 바퀴에 들어가는 씰링, 포크레인, 장갑차 등 중장비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은 1977년 덕소 신앙촌에 살면서 시작하였는데 올해가 만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사업은 날로 확장하여 엘지전선, 국제농기구, 이태리 ITM 등 여러 곳에 납품과 수출을 하고 있다. 일본의 히구찌 회사 관계자가 공장을 돌아보고 이렇게 수작업이 이루어지는 공장에서 세계적인 제품이 어떻게 나오는지 신기하다고 하였다. 방문객마다 기계는 노후한데 제품이 우수한게 회사 이름처럼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그가 사업을 하게 된 시초는 영등포구 영일동에 살면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경영한 것이었다. 인근의 금속회사 종업원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이승사가 종업원들끼리 자기네 일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도 이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당신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한 후에 꿈에 하나님께서 오시더니 아주 즐겁고 기쁜 모습으로 “너는 체구는 작으나 감이 100점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며칠 후에 인근 가게의 사장이 그를 불러 과연 할 수 있겠느냐고 묻길래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해 보니 잘 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퇴근한 후에도 열심히 연구하고 기술을 연마하여 그 일을 마침내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류기술자가 되자 2년 정도 다니다가 독립하여 조그마한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합금법인데 그에게는 역부족이라 잘 되지 않았다. 온도와 열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미용기구나 의료기, 스텐밸브 등을 제작했는데, 실패가 거듭되니 정말 답답하기만 하였다.
어느 날 밤 비몽사몽간에 “무엇 무엇을 넣으면 된다”는 말씀이 들렸다. 재료를 말씀해주셔서 그것을 바로 기록했다. 1964년도인데 그 재료 가운데 ‘구르무’라는 재료를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아는 고철상에 물었더니 “구르무가 아니라 크롬이 아니냐” 하여 그것을 달라고 하여 그것으로 합금법을 성공했다. 제품이 완전히 달라졌다. 최고의 제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확실한 하나님
그에게 천부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를 물었다. 그는 고향인 충남 연기에서 올라와 영등포에 살고 있을 때 어느 권사님의 전도를 받아 천부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1958년이었다.
전도받을 때 전도관에 나가니 사람들이 ‘향취가 난다’ 또는 ‘죄타는 냄새가 난다.’ ‘마음에 기쁨이 솟는다’라고들 하는데 그가 오만제단 예배에 첫날 참석하니 온 몸에서 불이 나는 것 같고 마음이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괴로웠다. 남들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부터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주일날이 되니 전도한 권사님이 또 오셨다. 핑계를 대고 안 갔더니 다음 주에 권사님이 또 오셨다. 이 승사는 그 후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발가락냄새 인지, 무슨 털이 타는 냄새같은 것이 하도 고약해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씻지도 않고 예배를 보러오다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권사님이 예배 후에 “은혜 좀 받으셨나요?”라고 물으시길래 “냄새가 나서 너무 역겨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그릇이 깨끗하여 은혜를 빨리 받으신겁니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게 바로 죄타는 냄새였던 것이다. 그 후에야 전도관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권사님이 그를 영등포의 신길동 제단으로 소개를 하여 그곳으로 나가게 되었다.
본격적인 신앙생활
그가 전도관에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밤에 꿈을 꾸었다.
“꿈 중에 내가 기도를 하는데 제가 당시에 처음 믿어서 기도를 해 본적이 없는데 청산유수로 좔좔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꿈 중에 향취가 나고 은혜가 소낙비 오듯이 내렸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또 좍좍 내리는데 제가 잠을 깨었지요. 그런데 꿈을 깨어서도 향취가 막 나는 겁니다.” 이런 체험을 한 이승사는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승사는 좀 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곧장 1964년 4월에 소사신앙촌에 입주를 했다. 그는 소사신앙촌 입주 후에 1구에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서 사업을 했지만 자금력이 있는 큰 기업들에 당하지 못했다.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사업이 확장이 되어 조카를 데리고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백부장을 통해 조카를 덕소 제강공장에 들여보내라고 전갈이 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기술을 가르쳐 놓았는데 데리고 가면 공장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인간의 생각으로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덕소 제강공장에 네 조카를 들여보냈으면 내가 더 많이 축복을 해 주었지. 그래서 조금만 축복해줬어”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서울에 나가니 거래처에서 주문을 받았는데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당시에 사업을 하느라고 빚이 좀 있었는데 빚을 다 갚고도 돈을 그야말로 갈고리로 긁어모으는 상황이 되었다. 사업이 잘 되어 며칠 만에 빚을 다 갚아버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한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과 체험
하나님께서 그에게 빨리 정리하고 덕소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승사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달도 채 안되어 정리를 하고 덕소 제강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시온에서 작업을 할 때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가 근무하는 공장에 좀 태만한 아이가 있어 훈계를 했더니 대들기에 빰을 두 대 때렸다. 그 순간 연결되던 은혜가 딱 끊기는 것이었다. 혈기 한번 내니까 모든 은혜가 끊겨 집에 가서 밤새도록 기도하고 생수를 먹고 눈을 닦았다. 이러기를 3일간, 그가 겪은 심적인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몸까지 아팠다. 이승사는 “너를 원망하는 형제가 있으면 화해하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이 나서, 그 맞은 친구에게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사과를 하고 그 다음날 새벽예배에 나가니까 은혜가 다시 연결되는 것을 체험했다. 죄를 지으면 처음에는 은혜를 되찾기가 3일만이었지만 점점 그것을 찾는 기간이 길어짐을 체험했으며 하나님께서 “생수를 타고 올라간다”란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나온 사람들이 일찍 나와 잠깐 기도하고 나서 낯모르는 새 사람들이 들어오면 ‘참 복된 자리에 오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자기만 은혜받겠다고 앞자리 꿇어 엎드려가지고 기도한들 합당치 않다”라고 책망을 하시고 “관장님들도 협회에 와서 제단에 빚도 많고 누가 싫고 미우니 옮겨달라고 하는데 이건 교역자로서 실패자이다. 구해 보아라. 주실 것이요. 찾아 보아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려 보아라 열어줄 것이요. 기도로 이겨야 한다.”라고 하셨다고 소사시절을 회상하였다.
나의 꿈 나의 소망
이승사에게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 너무나 분명하여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젊을 때 교회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공로를 쌓아서 죄를 벗어야 합니다. 온전히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분명히 그 이상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정확히 살아야 합니다. 거짓은 죄입니다. 중간에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정말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승사는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억만금을 드려도 부족하다. 열심히 노력하여 덕소교회를 새로 짓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에게 살짝 준비상황을 물었더니 비밀인데 차근차근 준비중이라고 하였다.
이승사는 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늘 부족함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촉촉이 봄비로 적셔진 회사주위를 돌아다보니 온누리가 마치 은혜이슬을 머금은 듯 하였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
이승사는 모든 교회 일에 솔선수범이다. 이승사는 지금 덕소교회 총무일을 맡고 있다. 10여년간 그를 지켜본 진영섭 관장(현 소사교회 책임관장)은 이승사에 대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최용숙 권사도 그를 가리켜 소리없이 교회일을 알아서 하는 모범교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출장차 지방에 갔다가 그곳 교회의 어려운 사정을보면 그 즉시 거금의 헌금을 선뜻 바친다. 그는 하나님께 기울이는 정성을 늘 제일 순위로 두고 있다. 절기헌금도 먼저 일착으로 바치며, 매월 첫째 주에는 관장님과 교인들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교인들간에도 화합을 늘 주문한다. 그러기에 그는 늘 부족함이 없는 교회가 되도록 필요한 부분을 관장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예비한다. 절대로 화내는 법이 없는 이승사는 교회의 재정도 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는 겸손한 분이다. 그러기에 덕소교회 교인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승사님은 우리 교회의 큰 기둥”이라고 한다.
김종민논설위원kjm@theweek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