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플러스
20년을 달려온 요구르트 ‘런’

20년을 달려온 요구르트 ‘런’

70년 전통의 신앙촌식품에서 만든 런(Run), 천혜의 자연 환경과 신앙인의 양심으로 출시 이후 20년간 칼로리 낮춘 무지방 발효유로 국민 건강 지켜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 열풍이 불었다. 당시 사회 전반에 인스턴트식품과 고지방 식단의 열풍이 불며, 안전하면서도 균형 잡힌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의 요구 또한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앙촌식품은 발효유 분야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5년 1월 14일, 신앙촌식품은 건강을 생각한 발효유 ‘런(RUN)’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지방으로 칼로리를 대폭 줄이고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해 기존 발효유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름 그대로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서 달려간다는 의미와 소비자의 건강한 내일을 함께 열어가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처음에는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소비조합을 통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점차 알려졌고, 20년이 지난 지금 런은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런의 20년은 신앙촌 제품의 경쟁력을 확인시켜 준 시간이었다. 2006년 HACCP 인증으로 위생과 안전성을 입증했고, 2014년에는 업계 최초로 ‘어린이기호식품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 어린이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균형 잡힌 발효유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올해 8월 28일에는 자동화 설비와 PLC·센서·HMI 시스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해썹(Smart HACCP)’ 인증을 획득, 제조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발효 기술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런의 차별성은 ‘살아 있는 유산균’에 있다. 런 한 병에는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와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5종의 프로바이오틱스가 1,000억 CFU이상 들어 있다. 여기에 칼로리 역시 개선해 처음 70kcal였던 것이 현재는 120ml에 54kcal로 낮아졌다. 무지방에 당은 줄이고, 영양 밸런스를 고려하여 칼슘과 비타민B₂를 풍부하게 담아 ‘부담 없이 매일 마시는 발효유’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포장 역시 변화를 거듭했다. 2005년 노란색과 파란색 그라데이션 로고로 출발해 원재료 개선과 표시 제도 변화에 맞춰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쳤다. 그러나 핵심은 언제나 ‘무지방, 칼로리·당 Down’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였다. 특히 업계 최초로 알루미늄 덮개를 없애고, 신앙촌에서 자체 생산한 친환경 투명 페트병을 사용해 100% 재활용할 수 있게 해 환경까지 고려했다. 런 공장은 매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견학 오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급식에서 보던 런을 실제 공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고, 교사와 학부모들도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라며 반가워한다. 그동안 런은 전국 가정과 학교 급식, 어린이집, 단체 행사에서 꾸준히 사랑받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안심하고 마시는 발효유”라는 신뢰를 쌓아왔다. 현재 런은 전국의 신앙촌상회와 대형마트, 온라인몰, 자사몰인 ‘SANC몰’ 등을 통해 공급되고 있으며, 20주년을 맞아 브랜드 캐릭터와 홍보 영상을 선보이며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도 넓혀가고 있다. 런이 2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앙촌의 철학이 있다. 1950년 후반, 서울의 한 양장점 주인은 “신앙촌 사람에게 옷을 맡기면 땀수를 속이지 않는다”며 정직과 양심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정신은 식품 생산에도 깃들어, 소사신앙촌 시절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던 때에도 카스텔라 한 개에 계란 한 개를 꼭 넣어 하루 10만 개를 생산해도 모자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직과 신용, 최고의 품질로 반세기를 지켜온 신앙촌 기업 정신은 오늘날 런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신앙촌 식품이 곧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신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 런은 발효유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공지능을 접목해 발효 균주의 활성을 안정화하고, 신앙촌 고유의 균주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신앙촌식품(주) 한은정 공장장은 “런은 정직과 양심으로 지켜온 철학의 산물”이라며 “앞으로도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런의 20년은 곧 신앙촌이 걸어온 정직과 신뢰의 20년이었다. 요구르트 런은 앞으로도 이름 그대로 끊임없이 달려가며 소비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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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2000년대 천부교는 안팎으로 성장과 도약의 시기였다. 성전이 국내외 곳곳에 세워지고, 천부교를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홈페이지가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신앙촌이 조성되어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진실을 바로 세운 ‘MBC 사건’ 승소 2000년대의 시작은 천부교단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99년 6월, MBC가 기획 시리즈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를 방영하며 교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이에 천부교단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00년 10월 27일 서울지법은 MBC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 교단이 공식적으로 진실을 바로 세운 사건이었다. 이는 천부교를 올바르게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다. 국내외에 세워진 신‧개축 천부교회 2000년대 들어 천부교는 전국 각지에서 새 제단을 세우거나 개축하며 신앙의 터전을 새롭게 다져 나갔다. 부산 광안교회, 제주 일도교회, 인천 숭의교회를 시작으로 울산, 동두천, 원주 등지에 성전이 세워졌고, 2001년 12월 23일에는 미국 뉴욕 퀸즈 지역의 뉴욕교회가 개축되었다. 1978년 뉴욕전도관으로 개관한 뉴욕교회는 개축을 통해 아름다운 성전을 마련하며, 한국을 떠나 생활하는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신축의 열기가 이어져 기장, 전농, 가야, 영주, 청평, 순창, 서마산교회 등에서도 새 제단이 완공되었다. 2008년 10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해외에서 전해졌다. 푸른 잔디 위에 자리해 마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 워싱턴교회가 오랜 기다림 끝에 신축예배를 드렸다. 국내외에서 새롭게 단장한 성전들은 각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널리 전하며, 진리의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천부교를 알리는 홈페이지 개설 2004년 4월 20일, 천부교 공식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홈페이지는 천부교와 신앙촌에 대한 소개와 정보, 천부교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관, 예배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온방송국, 어린이를 위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구성된 어린이 코너 등 다양한 채널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천부교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 코너는 학습과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2018년에는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커뮤니티와 신앙신보 코너를 추가하고 소통과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님 말씀과 천부교 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써 천부교 홈페이지는 천부교를 알리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 다큐멘터리 상영 2005년 추수감사절 전야 샘터공원에서 천부교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이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하나님께서 집회를 인도하시고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 전국으로 확산된 부흥 집회,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은혜를 받는 장면을 생생히 담아내 큰 감동을 주었다. 영상은 또한 정치·종교계와 언론의 핍박 속에서도 신앙촌 건설을 진두지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조명하며,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하나님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신앙촌은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여 죄 안 짓고 깨끗이 생활하며 신앙을 키우기 위해 세워진 신앙인의 마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다큐에는 유엔 한국 재건단 콜터 단장이 소사신앙촌을 방문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위대한 힘에 의한 창조”라고 감탄한 증언도 담겼다. 또한 1998년 9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있었던 천부교인의 장례식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본 카르멘 코토 여사의 증언도 수록되었다. 코토 여사는 “장의사로 8년 반을 일했지만, 천부교 장례식에서 고인의 손과 몸이 제 살보다 더 부드럽게 변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코닥사의 축복 사진 감정서도 영상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 역사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았던 이경태 감독은 “천부교인들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정말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라면 인생이겠지만,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3년마다 이어진 천부교 체육대회 1998년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기점으로 3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체육대회가 자리 잡았다. 2001년 10월 7일, 신앙촌 제강운동장에서 ‘건강한 시온인 달리는 시온인’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부와 남부지역이 청‧백군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5km 건강 마라톤에서는 10대에서 70대까지 참가자들이 함께 뛰며 서로를 응원해 활기를 더했고, 각 팀이 준비한 화려한 응원전은 단결과 화합을 보여주며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2004년 10월 3일에는 ‘희망찬 도전, 아름다운 화합’을 주제로 또 한 번의 체육대회가 열렸고, 2007년 10월 7일 신앙촌 대운동장에서는 ‘힘찬 도약, 함께 뛰는 시온인’을 슬로건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5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림과 글씨, 다양한 동작으로 ‘신앙촌’을 표현하는 테마 응원전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지금도 천부교 체육대회에서는 경기를 통해 인내와 협동심을 기르고, 응원을 통해 하나 된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앙촌 조성 2006년 신앙촌에 대규모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진 군락지와 식당 앞 분수대가 조성되었다. 사원들의 휴식처이자 축복일에는 교인들의 산책길로, 견학생들에게는 자연의 놀이터로 활용되는 두 공간은 신앙촌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7년 5월에는 이슬성신절을 맞아 신앙촌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단장한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며, 사원과 교인 모두의 휴식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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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지금도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1996년 추수감사절 전야, 신앙촌 밤하늘에 내린 전례 없는 규모의 이슬성신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KODAK 공식 감정을 통해 확인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걸어오신 길은 오직 하나, 인간에게 구원의 자격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바로 그 구원의 토대를 마련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친히 준비하시고 이끄신 시기였다. 이 시기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정체를 밝히시며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다. 이어 이슬성신절을 정해 주시며, 오직 이슬성신으로만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고, 실제로 그 권능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한 죄와 상관없는 자격만 갖춘다면 누구에게든 구원의 은혜를 베풀 수 있음을 알려 주시며, 더 많은 사람이 그 은혜를 받고 의의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성전을 세우시고, 신앙생활 속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신앙촌 제품 생산의 기반도 마련해 주셨다. 전국을 순회하시며 집회를 여시고, 직접 말씀을 전해 주셨으며, 합창과 운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도의 문을 열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 안에서 자라나도록 이끌어 주셨다. 이렇게 마련된 신앙의 터전과 은혜의 역사 위에서, 1990년대는 새로운 전환과 성장을 이루는 시기였다. 기쁨과 은혜를 구하는 기도문 1990년대 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고 하시며 기쁨과 즐거움, 은혜를 구하는 기도문을 주셨다.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와 미소를 주시옵소서.” 이 기도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로, 기도할수록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진심으로 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연결된다고 말씀하셨다. 성전 신축과 재정비 한편, 1990년대는 전국 각지에서 성전의 신개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1955년 12월 원효로에 첫 전도관이 세워진 이래 전국에 제단이 건립됐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며 성전의 재정비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1993년 한 해 동안만 해도 마산, 김해, 여수, 나주, 서부, 경주, 소사동 등 7곳에서 성전이 새롭게 단장되었고,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성전 건축이 이어졌다. 특히 1996년 6월 23일에는 미국 워싱턴에 교회가 신축되며, LA와 뉴욕에 이어 해외에 또 하나의 진리의 등대가 세워졌다. 하나님의 신, 이슬성신 그리고 그해 11월, 신앙촌에서는 특별한 은혜의 현장이 펼쳐졌다. 1996년 11월 16일, 추수감사절 전날 밤 9시에서 10시 사이, 신앙촌 상공에 전례 없는 규모의 이슬성신이 임한 것이다. 당시 샘터공원에서는 국내외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추수감사절 예배를 준비하며 축하 음악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그때 동쪽 하늘에 찬란한 빛기둥 수십 개가 나타나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목격된 이슬성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했을 뿐 아니라 여러 대의 카메라로 생생히 촬영되었다. 당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던 장일천 관장은 “저를 포함한 촬영팀 4명이 함께 그 놀라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현장에는 신앙촌 주민은 물론,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국내외 교인들이 그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사진을 현상해 보니,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기둥 빛줄기와 더불어 각양각색의 이슬성신이 찍혀 있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신앙신보사 심광수 사장은 당시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전했다. “그간의 이슬성신은 주로 실내에서 목격되었지만, 그날은 야외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났습니다. 남녀노소, 교인과 비교인을 막론하고 모두의 눈앞에서 이슬성신의 최대 향연이 펼쳐진 것입니다. 야경 사진 촬영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붉은 기둥이 빛을 내며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우측의 죽성리에서 좌측의 학리 쪽으로도 이슬성신의 기둥들이 내리고 있었고, 제가 직접 세어본 것만 해도 70여 개에 달했습니다. 그날 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신앙촌을 축복하고 계십니다’라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하늘에 임한 이슬성신을 직접 보고, 사진으로 담은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실감하며 가슴 벅찬 감동을 나누었다. KODAK의 공식 감정 이렇게 기록된 사진은 보다 명확한 검증을 위해, 당시 워싱턴교회 김동훈 관장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사진 전문 기업 코닥사에 감정을 의뢰했다. 사진과 관련 자료를 접한 코닥사의 Art/Design Director인 Michael Stack은 깊은 관심을 보이며, 필름의 종류, 카메라 종류 및 렌즈 규격, 노출 시간, 촬영 방식, 촬영 환경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요청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1월 중순, 코닥사 최고 책임자인 조지 피셔(George M.C. Fisher) 회장의 서명이 담긴 감정서가 도착했다. 피셔 회장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귀 교회가 제시한 사진은 매우 특이합니다. 정밀히 검토한 결과, 이 사진은 진실한 것으로 판단되며, 세심하게 기록된 제반 상황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카메라의 조작이 없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특히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사진은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어 “사진에 나타난 빛의 원인이나 근원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실히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평선 너머의 빛이 대기 중에 반사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현상이 사실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의 손길이 이곳에 임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편지 끝에는 다음과 같은 인사가 덧붙여졌다. “이 빛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저희가 판단할 수 없으며, 이는 그것을 직접 목격한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하셔야 할 일입니다. 귀 교회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는 이슬성신이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해 과학적으로 검토되었고, 그 진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슬성신의 은혜 이슬성신은 곧 하나님의 신을 말하며, 초창기부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집회마다 뽀얀 안개처럼, 이슬비처럼, 때로는 불덩이처럼 임해 많은 사람들이 직접 그 은혜를 체험해 왔다.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으로 함께하실 때, 은혜를 받은 사람은 기쁨과 평안을 느끼며 하늘세계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고, 죄악된 삶에서 벗어나 의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밤하늘에 불기둥이 신앙촌에 내리는 것을 누구든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불기둥은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것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만백성 앞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1996년 추수감사절 전야를 기점으로 신앙촌 곳곳에서 이슬성신이 자주 목격되고 촬영되었으며, 지금도 그 은혜는 계속되고 있다. 문화와 전도의 도약 1996년은 천부교 문화와 전도 활동 모두에서 전환점이 된 해였다. 그해 처음으로 전국 어린이 전도의 날이 개최되어, 초대장을 직접 만들어 나누어 주고 공연과 행사를 준비하며 전도의 기쁨을 체험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매년 ‘전도의 날’을 정해 지속적인 전도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같은 해 11월에는 시온오케스트라가 창단되어, 오늘날까지 천부교의 다양한 음악 행사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생명물두부가 식품 허가를 받으면서 1980년대 생명물간장 출시 이후 신앙촌식품의 기반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러한 변화들은 1998년에도 계속되었다. 1956년 10월 16일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로 시작된 체육 활동은 1980년대까지 사원, 교역자, 부서별 대결과 농구선수 초청 경기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1998년 신앙촌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계기로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체육대회는 3년마다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신앙인들이 단합하여 기쁨과 건강을 나누는 천부교 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초창기부터 이어져 온 성신의 역사는 1990년대에도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으로 함께하시며 이어졌고, 그 은혜 속에서 전도와 문화가 꽃피어 오늘날 신앙의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신앙의 기준과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신앙신보 구독자가 말하는 ‘경전과 신앙신보’

다음은 신앙신보 구독자를 대상으로 ‘천부교 경전’과 ‘신앙신보’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1.천부교 경전과 신앙신보가 어떤 부분에 도움이 되었나요? ▸ 신앙신보를 읽는 동안 깊은 깨달음이 있어서 좋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과 생활, 식품 등 유익한 정보가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과 체험기를 통해 잊고 있던 신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 신앙체험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은혜 체험을 느낄 수 있고, […]

법의 판결로 증명된 진실

법의 판결로 증명된 진실

천부교 70년 특집

1950년대부터 시작된 기성교단의 조직적 음해와 언론 왜곡 이슬성신 사진, 코닥사 감정으로 진실 확인 1999년 MBC 왜곡 방송 법원, “허위사실, 명예훼손” 판결 2000년대 이후 온라인 허위 유포, 잇단 승소 신앙촌 방문자들의 정반대 평가 법의 심판으로 드러난 진실 왜곡은 결코 진실을 가릴 수 없어 끊이지 않은 왜곡과 핍박 1990년대는 천부교 역사에서 새로운 도약의 시기였다. 전국 곳곳에 성전이 새로 세워지고, […]

음악을 통해 은혜 주신 하나님

음악을 통해 은혜 주신 하나님

천부교 70년 특집

1980년대 시온합창단의 발자취 하나님의 은혜 속에 울려 퍼진 대합창, 신앙의 씨앗이 되다 1980년대는 하나님께서 감람나무로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밝히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신 시기였다. 특히 그 중심에는 ‘음악’이 있었다. 초창기부터 음악을 장려하시며 전도의 장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합창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의 길로 이끄시고자 하셨다. 그 뜻에 따라 1969년 5월 창단된 시온합창단은 […]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천부교 70년 특집

감람나무를 증거하시기 위해 내려주신 은혜 1955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이슬 같은 은혜와 향취를 내려 주심으로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셨다. 이 모든 은혜는 감람나무를 증거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수가 수백만에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감람나무”라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 […]

구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터전 신앙촌

구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터전 신앙촌

천부교 70년 특집

신앙촌은 천부교 교인들이 함께 신앙을 이어가는 곳으로, 국내외 교인들에게 신앙의 성지가 되어왔다. 하나님께서는 1957년 11월 신앙촌을 건설하시며,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생활함으로써 선한 양심을 기르고 신앙을 키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신앙촌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은혜를 받고 죄를 멀리하며 더욱 깨끗한 마음으로 구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터전이다. 1957년 소사신앙촌을 시작으로 1962년 덕소신앙촌,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었으며, […]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감람나무 하나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감람나무 하나님

천부교 70년 특집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천부교는 전국적인 부흥과 함께 생명물의 권능이 나타난 시기였다. 하나님께서는 생명물을 축복해 주시며 사람들에게 직접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고, 전국 각지의 집회 현장에서는 성신의 역사와 기적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기성교회의 방해는 거세졌으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더욱 굳건한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리고 1957년, 천부교 최초의 대형 교회인 이만제단이 완공되며 천부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동안의 체험기 […]

하나님 집회에서 수백만이 은혜 입어

하나님 집회에서 수백만이 은혜 입어

천부교 70년 특집

70년 전,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과 크신 은혜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며 내려주신 그 은혜는 인간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특집 기사에서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그 속에서 펼쳐진 놀라운 역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955. 1.1. 하나님 초청집회 ■ 하나님 초청집회에서 시작된 은혜 1955년 1월 1일부터 […]

성전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 돌려

성전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 돌려

서면교회 신축 예배

서면교회 신축을 담당한 강경민 여성회 관장은 “성전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신 권능과 사랑의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성전 신축은 어느 곳에서나 쉽지 않지만, 서면교회 신축은 그 어느 곳보다 어려운 과정이 많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임시 제단 이전과 새로운 부지의 입지 문제, 처음으로 건축을 담당하게 된 상황 등 하나부터 열까지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그러나 […]

전도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

전도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

서면교회 신축 예배

하나님 은혜 속에 성장한 부산2중앙, 새로운 성전에서 귀한 결실 맺기를 다함께 기도해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과 감동의 시간 전도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 1980~90년대 부산2중앙에는 학생회 전도가 활발했다. 당시 서면교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허경숙 씨(신앙촌 여청)는 친구의 전도로 부산2중앙에 오게 되었고, 중학생 시절 강경민 관장(서면교회)을 전도했다. 고등학생이던 최윤원 씨(신앙촌 여청)도 […]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 그랜드피아노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 그랜드피아노

서면교회 신축 예배

그랜드피아노 부산2중앙은 하나님께 특별한 선물을 받은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그 선물은 바로 부산2중앙 하면 떠오르는, 그랜드피아노다. “저희가 학교에 간 사이, 하나님께서 평일 낮 시간에 갑작스럽게 2중앙을 방문하셨다고 해요. 제단을 둘러보시며 축복해 주셨는데, 그때 제단에 있던 피아노가 조금 낡은 일반 피아노였어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가신 후 그랜드피아노를 2중앙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 시절 그랜드피아노는 부유한 집에서나 볼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