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손길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가 세균 전염을 걱정한 적이 있다. 신자들이 인사할 때 교황의 반지에 키스하려고 하자 교황이 재빨리 손을 잡아 빼며 거부했는데 그 이유가 전염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수백 명이 키스한 반지가 세균 범벅이 될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교황은 가톨릭과 전염병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하고 더 빨리 손을 뺐는지도 모른다. 전염이 치명적인 속도로 일어난 사례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있었다. 콜럼버스를 필두로 신대륙을 향한 정복자들은 가톨릭 전파를 사명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가톨릭과 함께 퍼뜨린 것이 있었다. 천연두, 홍역, 콜레라, 페스트 등의 전염병이었다. 십자가를 앞세운 선박이 도착하기 전까지 신대륙에는 대량 살상 능력을 가진 전염병이 없었고, 따라서 면역력도 없었다. 가톨릭 신도들의 도착은 생물학 폭탄을 투하한 것과 같았다. 일례로, 콜럼버스가 닻을 내렸던 1492년 당시 히스파니올라섬의 원주민은 800만 명이었으나 1535년 0명이 되었다. 가장 위력을 발휘한 것은 천연두였다. 1520년 아즈텍 제국의 원주민은 침입한 가톨릭 신도보다 100배나 많았지만 원주민 한 명이 천연두에 감염되자 더 이상 수적 우세는 의미 없게 되었다. 한 수도사는 “원주민들이 불길에 빈대가 타 죽듯이 몰살당했다.”고 기록했다. 몇 년 후 가톨릭 신도들이 남아메리카의 잉카 제국을 침략했을 때 다시 천연두가 휩쓸었고 잉카 인구의 75%가 사망했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심리적 공황에 빠졌다. 천연두로 종기가 돋아나고 눈이 멀어 장님이 되고 급기야 떼죽음을 당하는 와중에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 가톨릭 신도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론 면역력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신의 보호라며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이 천연두를 내리셨다!”(프란시스코 데 아길라르) “우리 주님이 기적같이 그들을 죽게 하셨다!”(레라시온 데 메리토스) 급기야 원주민들까지 천연두를 ‘신의 종기’라고 부르게 됐다. 겁에 질린 원주민들은 앞다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한 번에 수천 명씩 세례를 주었지만 원주민들은 거룩한 미사에서 세례 받기 무섭게 죽어 나갔고, 아메리카 전역에서 원주민의 90%가 사라졌다. 이와 달리 전염이 은밀하게 일어난 사례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있었다. 성병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매독이었다. 성행위를 통해 전염되며 성기에서 악취 나는 고름이 흐르고 손발에 종기가 뒤덮는 병이었다. 매독은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에게 전염되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바티칸에서 열었던 광란의 파티로 유명했다. 무도회에서 남자들이 벌거벗고 춤추도록 했고 그 자리에서 50명의 매춘부들과 가장 많은 성교를 한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알렉산데르 6세는 16명의 사생아를 두고 친딸과 근친상간을 할 정도로 성생활에 거침이 없었는데, 결국 애인들과 아들 체사레 보르자 추기경도 매독에 걸렸다. 율리우스 2세는 로마의 가톨릭교회 안에 공공연하게 매음굴을 설치할 정도로 당당했지만 자신의 매독만은 숨기고 싶어 했다. 당시 신도들이 교황의 발에 키스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교황은 종기로 뒤덮인 발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에 키스하려고 기대했던 신도들은 실망한 채 돌아서야 했다. 그 시대 또 다른 특징은 교황청과 추기경의 저택에서 동성애가 성행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11세기에 다미아니 주교는 동성애로 향락을 즐기는 방법을 체계화하여 “고모라의 서”를 집필했다.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2017년에도 교황의 최측근 비서가 환각 상태로 동성애 난교 파티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것을 보면 그 집단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현대의 강력한 전염병과 연관될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흔히 에이즈(AIDS)라 불리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은 인간의 면역 체계를 파괴하는 전염병으로 주요 감염 경로는 성관계다. 그중 동성애의 감염률이 높은 것은 항문 성교가 보통의 경우보다 감염 확률이 5배 높은 것과 연관된다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2000년 1월과 11월, 에이즈 연맹(ACT UP)은 “가톨릭 사제들, 에이즈 은폐로 큰 타격을 입다(Priests hit hard by hidden AIDS epidemic)”는 제목으로 <캔자스시티 스타>의 보도를 인용했다. 미국 14개 주에서 사망 기록을 분석한 결과 가톨릭 신부의 에이즈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6배 높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미네소타의 무어 신부가 에이즈로 죽었을 때 사망 진단서에 사인(死因)이 자연사로 표기됐던 것을 들며 에이즈 신부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지금도 그들은 거룩한 사제복으로 위장하고 있을 것이다. 철학자 가브리엘레 조르고에 따르면 가톨릭 역사의 어두운 면을 보여 주는 ‘흑미사’가 있었다고 한다. 보통 미사에서 밀떡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식이 핵심이라면 흑미사에서는 성교를 통해 절정에 오르는 것이 성찬식이자 핵심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어쩌면 인류를 암흑으로 뒤덮는 그 집단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시온춘추

고해성사와 미투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고해성사에서 사제가 외우는 ‘사죄경’이다. 가톨릭에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면 죄를 사함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제가 신을 대리해 죄를 사해 준다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비밀 유지가 핵심이다. 성당에 마련된 고해소에는 고해신부와 신자 단둘이 들어가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고해성사에서 일어나는 색다른 사건이 미투 운동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다. 독일의 도리스 바그너는 고해신부에게 당한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나섰다. 2009년 수녀였던 도리스는 고해성사 도중 헤르만 가이슬러 신부가 껴안고 키스하자 고해소에서 도망쳤고 수녀직을 그만뒀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매캐릭 전 추기경이 고해성사 도중 소년과 신학생에게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캐릭의 문란한 성생활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의 자금책이자 최고위직인 그의 범죄를 오랫동안 모른 척했다는 지적도 다시 제기됐다. 교황청이 지난 16일 매캐릭의 사제직을 박탈한 것은 최근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가톨릭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해성사는 가톨릭 신자라면 남녀노소 모두의 의무이기 때문에 누구나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수녀원은 고해신부가 상주하는 전통으로 성범죄 또한 수백 년간 은밀히 이어졌다. 1550년대 베네치아 수녀원의 고해신부였던 지오반니는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수녀들을 유혹했다. 끝내 거부하는 수녀에게는 감금과 폭행 등의 고문도 서슴지 않았고, 그리 예쁘지 않은 수녀가 유혹에 넘어오면 그냥 나체로 서 있게 했다고 한다. 1620년대 피카르 신부는 엘리자베스 수녀원에서 고해성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수녀들의 손을 자신의 성기에 가져다 놓았고 거부하면 완력으로 피할 수 없게 했다. 또 20대였던 마들렌 수녀를 교회의 제대(祭臺 : 미사를 드리는 단) 앞으로 불러내 그곳에서 강간했다. 그 충격으로 마들렌 수녀는 정신착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수녀에 대한 성학대는 수백 년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지만 최근 미투 운동으로 수녀들까지 고발에 나서고 있다. 인도에서는 한 수녀의 미투로 프랑크 물라칼 주교가 2년에 걸쳐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물라칼 주교에게 성폭행을 당해 교회를 떠난 수녀만 20명이라고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1990년대 이미 5개 대륙 23개국에서 수녀들에 대한 성학대가 있었다고 하니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그 때문인가. 최근 교황이 색다른 행보를 보였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녀들이 성노예 수준으로 학대당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성범죄를 교황이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자백이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린 후에야 죄를 인정하는 것을 자백이라 할 수 있을까. 혹시 세상이 속아 주기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 범죄 사실을 알고도 끊임없이 세상을 기만하며 범죄를 방조하고 감춰 준 것은 방조죄이자 범인 은닉죄에 해당할 뿐이다. 사제 개인의 성범죄도 끔찍하지만 전 세계 성범죄를 방조하고 은닉한 죄는 더욱 흉악하다. 교황으로서는 더 이상 속이지 못했으니 참담할 것이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고해성사를 하면 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교황이 고해성사로 신과 관계를 회복하면 더욱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하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시온포럼

불황의 의미와 경제 회복

불황의 의미와 경제 회복

지금 전 세계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다.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엄청난 양의 돈이 풀린 탓이다. 미국은 자가(自家) 소유 비율을 높이기 위해 2000년부터 돈을 풀어 2008년에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돈을 풀었다. 미국 경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요 각국도 그랬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를 계기로 주요 각국은 또다시 엄청난 양의 돈을 풀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의 경우처럼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기업가들에게 대출되면, 그들은 사람들이 오늘의 소비를 줄이고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을 늘린 것으로 착각하고, 미래의 소비 증가에 대비해 자본재 산업에 투자를 늘린다. 그런데 늘어난 투자는 소비하고 남은 실물로 뒷받침된 저축이 아니라 풀린 돈으로 이뤄진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20층 건물을 원하여 그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만을 저축했는데, 기업가들은 풀린 돈을 저축 증가로 착각하여 50층 건물 공사에 착수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투자된 돈이 임금과 토지 임대료 등의 형태로 소비자들의 소득으로 돌아옴에 따라 소비도 증가하여 경제는 붐(boom)을 이룬다. 풀린 돈으로 불을 지핀 것이다. 이후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돈 풀기를 중단하고 금리를 올리면 50층 건물 공사는 잘못된 것임이 밝혀져 중단되고 소비자들의 소득도 감소하면서 붐 기간에 생긴 거품이 터진다(bust). 불황은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를 복구하는 기간이지 극복해야 할 악(惡) 아니야 불황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의 조정 기능에 맡겨야 한편, 코로나19 경우처럼 풀린 돈이 소비자들에게 들어가면 소비수요가 증가하므로 생산요소들이 소비재 산업으로 이동하고 자본재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층층이 분업화된 자본재 산업이 단순화되면서 소비재 생산량이 줄어든다. 자본재에는 단시간에 많은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이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곡괭이와 포클레인을 비교해 보시라.) 풀린 돈과 줄어든 생산 탓에 물가는 오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잘못된 투자가 청산되고, 돈이 풀려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써버린 자본이 복구돼야 경제가 회복된다. 그동안의 불황은 필연적이며, 소득 감소와 실업 증가 등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불황은 지금의 경제 구조에는 문제가 있으니 시장 조정을 통해 고치라는 신호이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소비재(20층 건물)를 원하는 시기에 생산하는 경제 구조로 회복하는 기간이다. 불황은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를 복구하는 기간이지 극복해야 할 악(惡)이 아니다. 저금리 정책으로 경제에 쌓인 돈 더미를 치우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 효과를 제대로 얻으려면 시장 조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자생 능력이 없는 기업에 대출을 늘리는 정책, 임금과 물가를 떠받치는 정책, 똑똑한 소비 운운하며 소비 증가와 저축 감소를 조장하는 정책, 세금을 올리고 재정 투입을 늘리는 정책, 보조금 지급 정책 등은 모두 시장 조정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불황은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의 결과이고, 불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기간에 이뤄지는 시장 조정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시온논단

탄소중립과 친환경 정책 심각하게 인식해야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친환경 정책 정부는 설득과 정책지원을 통해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 마련해야 전 세계가 전염병, 전쟁, 기후위기, 경제불황이라는 워딩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동안 인간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문명의 이기를 발명하여 이를 활용하면서 편리한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이젠 이러한 결과들이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 우리를 옥죄고 있다. 그 속도는 상상을 뒤엎는 속도로 지구촌 곳곳에 소리 없이 다가서고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재러드 다이아먼드는 그의 저서 ‘Guns, Germs, and Steel(1999)’에서 문명의 흥망은 ‘총, 균, 쇠’라고 지적하였다. 과거에도 무기, 병균, 경제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였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는 무기 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이름하에 공장을 세우고 탄소와 오염물질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출하였다. 이런 영향으로 아프리카 케냐의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은 이제 가물가물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탄소는 기후변화의 주범이 되어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의 건강을 해친다. 탄소가 더욱 문제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같이 부존자원이 없는 국가에게는 무역만이 살길인데 무역 장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들도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에는 투자를 꺼리고 이에 대한 제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소 선두는 아니지만 지난해에 탄소중립 2050시나리오와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앞으로 정부는 탄소중립과 친환경 정책이 국민의 삶과 직결됨을 인지하고 다음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첫째, 국민적 관심을 모으자. 아직 이에 대한 홍보나 교육이 부족하다. 공영방송과 각종 단체들을 통하여 꾸준히 캠페인을 펼쳐나가야 한다. 교육은 남녀노소에게 수없이 반복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탄소로 인한 직‧간접 피해를 통계를 활용하여 수시로 아니 정기적으로 그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 둘째, 실질적으로 손쉬운 탄소 중립 포인트 제도를 활성화하자. 아마 이 제도를 모르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종이 영수증 대신 전자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100원이 적립되며, 무공해차를 렌트하면 1회당 5000원 적립금이 쌓인다. 이 외에도 리필 스테이션(2000원/회), 다회 용기(1000원/회), 친환경제품 구매(1000원/회, 그린카드 사용)등이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다양한 친환경 제품으로 확대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그 효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셋째, 탄소중립 관련 법의 효율적 적용의 실효성 있는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2030년까지 무조건 2억 4천만t 가량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이를 정부가 강압적으로 시한을 정해 이행하라고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공개 망신을 당하고 그것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소비자들의 불매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것이 세계적 수준의 정책이 되도록 조율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선형 경제에서 순환 경제로의 발빠른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순환 경제 사회전환 촉진법과 바이오가스 촉진법을 하루속히 제정하여 경제활동 전반에서 자원 사용의 최소화를 지향하고 자원을 최대한 반복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단 칼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설득과 정책지원을 통해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어떻게 끝내나?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지 올해로 16년째다. 이 길고 긴 경기 침체를 끝내는 방안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경기를 단박에 살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지금의 문제는 정확한 원인을 찾아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행정부가 자가(自家) 소유율을 높이려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모기지 대출을 늘릴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누가 풀어야 하나?

작년 10월 7일 새벽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그날 사건만 보면 이건 100% 하마스의 잘못이다. 그러나 ‘왜?’ 라는 물음표를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끊임없는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본래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고 있는 이 지역은 기원전 63년에 로마제국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

선거 후 대통령이 해야 할 일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192석, 국민의힘 108석으로 집권여당의 참패였다. 의석수 차이는 무려 84석이나 되지만 그에 나타난 민심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실제 지역구에서 얻은 표차는 불과 5.4%에 불과하다. 의석수 차이는 많아도 실제 표차가 이처럼 근접했다는 것은 다수의석에 의한 일방적 국회 운영은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제2의 중동 붐을 위한 제언

한국은 개발 연대 초기인 1970년대 경제개발자금 확보를 위해 이탈리아의 경험을 본받아 해외 건설 전략을 선택하였다. 제1차 중동 붐은 우리나라가 1970~80년대에 중동의 산유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설시장에 한국의 건설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경제개발자금을 조달하여 한국경제의 압축 성장을 뒷받침해 준 경험을 말한다. 석유 시대의 중심에 있던 중동의 건설시장은 오일쇼크 이후에도 이란・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 리비아의 대수로 건설 사업, […]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불감증에 빠진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 지난 16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비해 현저하게 열세인 무기 지원을 서방에 호소하면서 돈바스 전장은 유럽에서 최악의 참극 현장이라고 말했다. 관련 매체들의 전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동부전선에서 연일 1000여명의 군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보면, 5월 말까지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

차기 정부의 정책 대전환 방향과 국가혁신

어느 정부든 정권 출범 당시 국민과 국익을 위한 차원에서 정책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항상 긍정·부정 양면성이 있다. 지난 정부 출범 시 전문가들은 해당 정부가 내걸었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소득 주도성장·탈원전 정책을 우려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강행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정부의 정책은 결국 실패했다. 우리 미래세대의 부채로 남을 무차별 현금 살포로 인한 나라 빚은 […]

차기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현재 남북 대화와 교류는 단절됐고 북핵 문제 악화 등 안보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최근에는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사이에선 소위 ‘사드 3불 정책’으로 국가적 자존심이 구겨졌고, 이후 끌려다니는 형국이 됐다. 한일관계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이란 과거사 문제로 […]

2602호 신앙신보 신앙체험기 특집을 읽고

독자의 편지

이슬성신에 관한 체험기특집을 읽고 2016년 11월 신앙촌 추수감사절 연합예배를 드릴 때가 떠올랐습니다. 신앙촌 주민들이 모두 모여 추수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박하 향이 불어와 코끝에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는데 순간 드는 생각이 그 향기가 ‘예전에 하나님께 직접 축복을 받으며 맡았던 향취와 똑같구나.’ 하며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 진하게 […]

위드 코로나 시대, 2022년 경제 트렌드

돌아갈 시점이다. 다시 일상으로. 2022년 삶이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라도, 경제는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다. 2020년은 역사적으로 ‘포스트 코로나’라고 명명된다. 코로나19가 세계경제를 헤집어 놓았다. 2021년은 ‘포스트 백신’이라고 정의될 것이다. 백신이 보급되면서 코로나19가 헤집어 놓은 경제를 성큼성큼 되돌려 놓는 시점이다. 2022년은 ‘위드 코로나’로 이름 붙게 될 것이다. 점진적으로 방역체계를 완화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며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선택하는 시점이다. […]

갈색 표지판이 향하는 곳

위클리포커스

우리나라 도로에서 ‘순교 성지’라고 새긴 갈색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갈색 표지판은 관광지나 명소를 표시하는 것인데 특정 종교에서는 교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순교’로 명명하고 그 장소를 관광 명소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은 그 성립부터 순교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서기 300년대,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재위 서기 361~363)가 유대교 신전을 수리하게 하자 가톨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