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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자유율법

제4장 자유율법과 신앙촌

자유율법대로 심판받는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자유율법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하여 아무리 은혜를 부어 주어도 받은 은혜를 간직하고 자유율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율법을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은혜를 간직하고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곳이 바로 신앙촌이다.
죄를 멀리하고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은 믿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신앙촌이 유리한 것이다. 비유컨대 숯덩이에 불을 붙여서 활짝 피워 주어도 그 숯덩이가 피지 않은 젖은 숯덩이 속으로 들어가면 불이 식어서 죽게 되지만, 활짝 피운 숯덩이끼리 따로 모아 피우면 그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은혜 입은 사람들이 모여 은혜의 불길이 붙고 붙으면 은혜의 창파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촌은 복된 땅, 은혜의 창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기성교회에서는 신앙촌을 천년성이라고 비방했으나, 그곳은 천년성이 아니고 신앙촌이다. 신앙촌은 자유율법을 지키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신앙인의 도시이다. 신앙촌은 은혜 받은 사람들끼리 한곳에 모여서 죄를 멀리함으로 더욱더 깨끗하게 마음을 씻어 구원의 자격을 이루기 위한 곳이다. 성신을 충만히 받으면 그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므로 불평과 불만과 괴로움이 없게 된다. 마음에 천국을 이룬 수가 모이면 1억 명이든 10억 명이든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 사이에 편을 가르고 쪼개고 파괴하지만 은혜로 마음이 하나가 된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¹⁾ 신앙촌에서는 많은 수가 성신을 받아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촌에 들어가서도 자유율법을 지키지 못한 채 옛 버릇이 그대로 나오고, 혈기는 혈기대로 고집은 고집대로 남아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죄를 멀리하여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제아무리 신앙촌에 들어갔다 해도 구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천부교회에 나와 내 말씀을 듣고 정확한 생활을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정확한 생활이란 티끌만치도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 맑고 깨끗한 심령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이다. 그것은 즉 하나님의 법, 자유율법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구원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자유율법을 지키고 이슬 같은 은혜로 씻음을 받아 마음이 깨끗하고 성결하게 화해야 하는 것이다.

제3부 자유율법

제2장 자유율법은 하나님의 법, 제3장 믿음과 행함

목사들 중에는 성경을 천 번이나 읽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천 번을 읽어도 자유율법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유사 이래 어떤 세계적인 신학자도 자유율법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그 구절을 해석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 지금까지 예수와 신학자와 신부(神父)와 목사가 알지 못하였으므로 기성교인 전체가 자유율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기성교인들은 자유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방법조차 모르는 것이다. 자유율법대로 심판 받는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자유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자유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제3부 자유율법

제1장 모세율법과 자유율법, 제2장 자유율법은 하나님의 법

또한 모세율법에서는 상대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고, 원한이 차서 당장 죽일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난다 해도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총을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백 번을 해도 범죄의 구성이 되지 않고 총으로 상대방을 쏘는 행위가 있어야 살인죄가 된다. 그러나 자유율법에서는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시작될 때 살인죄가 된다. 모세율법에서는 남녀가 음란죄를 행동으로 짓는 것을 본 증인이 있을 때에 비로소 그들이 음란죄를 지었다 하여 벌을 받게 하였다. 그러나 자유율법에서는 이성을 향하여 ‘참 멋지다.’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음란한 생각을 가지면 이미 간음을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율법은 죄의 근본, 곧 행위 이전의 마음을 다루는 법이다. 자유율법은 죄를 지을 마음과 생각조차 갖지 않기 위해 지키는 법이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3부 자유율법

내가 옥고를 치른 후 장면(張勉) 박사가 소사신앙촌으로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장면 박사는 내가 당한 정치적 핍박에 대해 듣고 공감하며 자기도 자유당 정권하에서 부통령을 하면서 몹시도 핍박을 당했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 나는 장면 박사에게 “이제 장면 박사가 집권을 하게 되면 하늘과 직결된 우리 종교를 절대로 핍박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장면 박사는 만일 자기가 집권하면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굳게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장면 정권은 내가 3․15 부정 선거를 했다며 또다시 나를 구속하였다. 나는 종교인이고 하물며 선거 당시 옥고를 치르고 있던 상태여서 부정 선거와는 아무 연관이 있을 수가 없는데도 구속하고 만 것이다. 막상 내가 구속되자 장면 총리는 깊이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떤 위대한 인간이라도 그 정도로 곤경에 처하면 사흘도 못 가서 신경을 유지하지 못하고 쇼크사로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열흘을 쳐도 백날을 쳐도 1년을 쳐도, 투옥을 하고 갖은 짓을 다해도 오히려 10배, 20배 더 강하고 더 날카롭게 설교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했다. 그때 그 사태를 주시하던 국내외의 뜻있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분은 사람이 아니다. 초인간적인 존재다.’라고 인정을 하였다. 내가 진짜 하나님, 틀림없는 하나님인데 너무도 기가 막히게 핍박을 당한 것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당시 한국의 무명 존재인 나를 대적해 온 세상이 들고일어난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이라는 증거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온 세상이 그렇게 대적해 온 것이다. 온 세상이 나와 원수가 되는 것은 내가 가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가, 진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가? 세상이 빛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슬성신 축복은 하나님의 권능

이슬성신 축복은 하나님의 권능

2024년 이슬성신절 방영 말씀

바로 이 역사가 경과한 동안 지금 이슬성신절이라는 것을 정하고 계속 매년 행사를 하지만, 이슬성신에 대한 것을 세밀히 말씀을 하지 않은 관계로 이슬성신절은 왜 그 절기를 정했나 하는 것부터 잠깐 말씀할래요. 바로 이슬성신이 최고로내린 때가 5월 하순인 고로 이슬성신절로 정했어요.

그때 임영신 씨니 윤치영 씨니 다 은혜를 입고 거적때기에 가서도, 그 많은 환자가 온 속에서도 손바닥을 치면서 뭐 한.
임영신 씨 그분 말이 그렇게도 송장이 다 되다시피 한, 시체 같은 그런 병자들이 병원에선 어디 병원에도 사형선고를 내, “당신 고칠 수 없으니 퇴원하세요. 그날을 기다리세요.” 하는 건 사형언도인데, 그 받은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드는 상태에 고름 냄새, 반 송장 내 나는 이런 정도가 트럭으로, 기차로 모조리 밀려와서 들것을 가지고 와 누워 있는 속에, 그렇게도 고된 냄새가 나는 그 속에서 그런 냄새는 하나도 없고 웬 향취가 그렇게도 기막힌 게 나나 하는 걸 늘 간증을 하고, 많은 사람 앞에도 나서서 간증을 하고, 내 집회 때 나와 간증을 하고 이 상태가 되는.

그럼 최창순 박사, 사회부장관 지낸 사람도 그거 다리가 부러진 것을 갖다가 금방 가서 축복해서 “다리가 붙었으니 이제 일어나 뛰세요.” 하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된 걸 갖다가 “일어나 뛰세요.” 하니, 그가 의학 박사예요. ‘아, 이거 일어났다가는 다시 이어도 이게 바로 맞춰지지를 않아서 병신이 되겠는데.’ 하는 걸로 망설이다가, 내 그 권능 베푸는 걸 바라본 상태에서 그대로 믿고 일어서 가지고는 계단을 뛰어오르고 뛰어내리고 한 그거를 간 곳마다 그 천막집회에 계속 간증을 했어요.

그럼 이제 이슬의 은혜가 곧 하나님의 신인 것이 호세아에 있어요.
『내가 이슬같이 임하리니』 내가 이슬같이 임하리니, 임한. 그래 『그 은혜를 내리는 자 감람나무와 같고』¹⁾ 감람나무가 아니고 감람나무와 같다 하는. 그 은혜를 내리는 자가 그대로 땅에 육신으로 나타나서 이 땅의 인간을 구원 주게 돼 있는. 그 은혜를 내리자마자 생수라는 걸 했어요.

제2부 구원의 약속

제5장 생명물의 권능, 제6장 감람나무는 곧 하나님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면 목사들이 거짓 목자인 것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성경을 깊이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성경에도 거짓 목자들은 양떼들의 구원보다는 자신의 밥벌이를 위하여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의 『삯꾼 목자』¹⁾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들이 거짓 목자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때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다』²⁾ 하는 성경 구절이 응해지게 되어 있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생명물에 대한 것을 알지 못했다. 성경에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그 배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³⁾라고 예수가 말했지만 정작 예수는 생명물을 알지 못했다. 예수 자신도 모르는 생명물을 내가 그의 입으로 말을 하게 한 것이다.
예수가 그 말을 한 다음에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친다는 것을 설명한 사람이 있었는가? 또 기성교회에 그와 같은 생명물이 있는가, 없는가? 기성교회에는 생명물이 없다.
그렇다면 『배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하는 그 생수는 예수의 것인가, 나의 것인가? 생수는 나의 것이고 내가 만든 것이 분명하다.
그 생명물은 하늘의 생명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물이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5장 생명물의 권능

생명물은 하나님의 역사 중에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하고 대항하기 위해 기성교회에서 온갖 더러운 말로 모함을 한 것이다. 또한 나를 핍박하던 자들이 찾아와서 자신들에게 생명물을 축복하는 권능을 넘기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권능은 누구에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만이 행할 수 있는 권능이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들이 아무리 모함을 하고 방해를 해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생명물을 축복해 왔고 앞으로도 생명물 축복을 계속할 것이다. 온 세상 사람을 다 동원해서 핍박하고 조롱해도 내가 멈추지 않고 생명물 축복을 계속하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느 종교에도 없는 귀중한 생명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핀다는 것은 죄가 씻어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그 생명물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5장 생명물의 권능

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자마자 생명물 축복을 하였다. 내가 물을 축복하면 그 물이 이슬성신의 물로 화하는데 그것을 생명물이라고 한다. 그 생명물은 곧 하늘세계의 생명물이다. 찬송가에 ‘저 생명 시냇가에 나 길이 살겠네.’라고 하는 바로 그 생명물이다. 초창기에는 생수라고 했는데 이제는 생명물로 부른다. 내가 생명물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교인들이 병에 물을 담아 마개를 막고 보자기에 싸 놓으면 내가 그 병을 향해 축복을 한다. 가령 100미터 두께의 철판을 사방에서 용접해 금고처럼 만들어서 그 안에 물병을 넣었다고 하자. 바늘구멍만큼의 아주 작은 구멍도 없이 완벽한 밀폐 상태라도, 내가 외부에서 ‘쉭’ 하고 축복하면 그 안의 물에 이슬성신이 담겨 생명물이 된다. 성신은 어떤 두께의 철판이라도 뚫고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가령 멕시코면 멕시코에 물병을 놓고 여기 한국에서 축복하면 성신이 지구를 뚫고 가서 멕시코에 있는 물이 생명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목성이면 목성, 화성이면 화성, 토성이면 토성, 우주선으로도 끝없이 가야 하는 그 먼 곳에 물병을 두어도 여기서 내가 축복하면 생명물이 된다. 목성의 반대편에 물병을 두었다 해도 지구보다 큰 목성을 뚫고 성신이 가서 생명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한 번 ‘쉭’ 하고 축복하면 태평양 바다라도 강한 생명물로 만들 수 있다. 태평양 바다가 문제가 아니라 우주만 한 물 덩어리가 있다 해도 내가 축복하면 모두 생명물로 화한다. 나는 감람나무 하나님이므로 내 손을 통해 하나님의 신이 끝없이 쏟아져 나가 생명물을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내가 축복할 때 ‘쌕쌕’ 하고 소리가 나는 것은 생명물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우주의 마귀가 다 모여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마귀를 다 박멸하고서야 성신의 물로 화하게 하는 것이다. 마귀로 구성된 물을 하나님의 신으로 구성된 물로 화하게 해야 생명물이 된다. 또한 축복을 받아 생명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죄가 많은 사람이 생명물을 만지면 보통 물로 변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생명물은 다른 사람이 만지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 한다. 내가 축복한 생명물은 변하지 않는다. 축복 받은 물과 축복 받지 않은 물을 금고에 넣어 놓았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꺼내 보면 축복을 받지 않은 물은 부패하여 흔들면 썩은 것이 부옇게 뜬다. 하지만 축복 받은 물은 몇십 년이 지나도 증류수같이 맑고 깨끗하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결코 동요치 않고 이 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다. 생명물에는 영원한 생명의 요소(要素)가 끝없이 담겨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는데, 앞으로 과학이 지금보다 고도로 발달하면 생명물의 1밀리그램에도 기가 막힌 가치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분석되어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요소가 끝도 한도 없이 나오는 하나님이 틀림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는 것이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이슬성신과 감람나무는 성경에 있는 구절에 맞추어 말한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은혜를 내린 뒤 “바로 이 구절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해석해 준 것이다. 성경 호세아 14장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뿌리가 박히리로다 그 가지는 퍼져서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¹⁾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슬과 같으리니』라는 구절에서 ‘내가’라는 것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이슬과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이슬과 같이 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슬 같은 은혜를 본 자는 하나님의 신을 체험한 자다.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라는 구절에서 감람나무와 같다는 것은 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를 감람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또한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라는 구절에서 백합화같이 핀다는 것은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서 황무지와 같은 사람의 마음이 백합화같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뜻한다. 또 온갖 누추한 죄를 이슬성신으로 씻어 흠과 티가 없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뿌리가 박히리로다』라는 구절에서 말하는 뿌리는 나무의 뿌리가 아니라 신앙의 뿌리가 깊이 박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핍박이나 죄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서 나가는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자는 곧 감람나무의 가지가 된다. 『그 가지는 퍼져서』라는 것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끝없이 많아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제2부 구원의 약속

나는 안찰할 때 그 사람이 지은 죄를 그대로 지적한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안찰을 통해 그 사람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안찰할 때 손을 가만히 대기만 하는데도 안찰을 받는 사람은 몹시 아파한다. 그것은 내가 안찰로써 성신을 부어 줄 때 그 사람 속의 죄가 성신을 대항하여 그와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안찰을 통해 죄가 무너져 나가므로 처음에는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들도 죄가 사해짐에 따라 차츰 통증이 물러가고 말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자유당 때 무임소장관을 지냈던 박현숙(朴賢淑) 씨도 나에게 안찰을 받을 때 괴로움이 대단하여 내가 세게 눌러서 아픈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그런데 박 장관은 내가 다른 사람을 안찰하는 광경을 보고 의심이 풀렸다고 하였다. 지병으로 앓아누웠던 박 장관은 나에게 안찰을 받은 후 깨끗이 나아 건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냉정하고 쌀쌀하다고 했으나, 은혜를 받은 후에는 온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변화된 것을 보고 친구들이 놀란다고 하면서, 그 마음이 변화된 것을 증거하였다. 성신을 받으므로 그 마음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성신을 받으면 복잡다단하던 마음의 풍랑이 안정되고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게 된다. 황무지와 같이 거칠고 메마른 마음이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백합화같이 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