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②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②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성경 외에도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들은 많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가장 특기할만한 사건인 부활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거나 부정한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경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로, 그들의 경전에서 예수를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다루며,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해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꾸란 4장 157절에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였다고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못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할 따름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할 뿐이라.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진술은 초기 기독교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근처 사막 절벽 아래에서 초기 기독교 문서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자료7>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기록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위대한 셋의 두 번째 글』에는 “그들은 내게 죽음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죽음은 그들의 오류와 눈멂 속에서 그들에게 일어났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사람을 못 박아 죽였기 때문이다.”, 『베드로 묵시록』에는 “나무 십자가 위에서 기뻐하며 웃으시는 이가 살아 있는 예수이다. 그러나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이 사람은 그의 육신의 부분, 곧 부끄러움을 당한 대속물이며, 그의 형상대로 존재하는 자니라.”라고 기록돼 있다. 요약하자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대속물’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기록들은 정식 성경과 구분하여 외경, 또는 위경이라 불리지만 당시 이 문서들의 권위는 지금과 달랐다.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오늘날처럼 신약성서 목록이 27종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확고한 교리체계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1세기 말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서는 수십 종의 복음서가 회람되고 있었고, 나그함마디 문서들도 현재의 신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많은 인기를 얻었다. 월터 바우어의『정통과 이단』에 따르면 나그함마디 문서를 따르던 종파도 한때는 지금의 정통교회와 똑같은 권위를 가졌으며, 그 종파에서 사용된 문서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4세기에 교리 논쟁이 치열해지고 정경 목록이 확정되면서, 그 목록에서 제외된 많은 문서가 파괴되었고, 나그함마디 문서도 이 시기 검열을 피해 땅에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그함마디 문서를 연구하는 신약학 교수 조재형 박사는 “나그함마디 문서가 그리스도교가 모든 이단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4세기 말이나,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중세에 발견되었다면, 그 즉시 불태워졌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중세시대에 행사했던 막강한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이제 신앙의 자리 대신 이성이 더 높은 위치에서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기에 이 문서가 발견된 것”이 다행이라고 밝혔다. 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견은 사해 문서와 함께 20세기 성서 고고학적 발견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초기 기독교가 단일한 교리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상과 해석이 존재했음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활이라는 핵심 교리를 비롯해, 기독교의 교리들이 인간의 판단으로 추려지고 편집된 결과물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 야고보의 침묵과 바울의 선포 오늘날 정통 기독교라고 자임하는 기독교는 부활, 기적, 믿음을 중시하는 ‘바울 노선’의 기독교다. 이와 어긋나는 가르침은 나그함마디 문서의 경우처럼 정경에서 제외되거나 그 중요성이 축소된다. 심지어 같은 정경 중에서도 바울의 가르침과 다르다며 비난받는 경우도 있었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가 “야고보서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이나 부활 등의 중요한 복음적 내용이 전혀 없다”며,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 비난한 일화가 유명하다. 바울이 금 기초 위에 집을 지었다면, 야고보는 지푸라기 위에 지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야고보와 동시대를 살았으면서도 단 한번도 예수를 만난 적 없는 바울과 달리,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이자 예수를 직접 알고 가르침을 따랐던 인물이다. 그런 야고보가 부활을 언급하지 않았을 때, 역사는 ‘지푸라기 서신’이란 평가를 야고보서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약성경의 절반은 바울의 저술이다. 예수를 실제로 만난 적 없는 바울이 어떻게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주도하게 되었을까? 예수가 사라진 후 그를 따르던 열두 제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십자가에 매달려 수치스러운 처형을 당했던 예수가 구세주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 어부였던 예수의 제자들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신학 체계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울이었다. 바울은 설명하지도 못할 예수의 십자가형을 굳이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믿음을 강조하며 예수는 부활했고, 예수의 죽음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수에 관한 핵심 교리를 비신자들에게 선포하는 기독교의 전파 방식을 ‘케리그마(Kerygma, κῆρυγμα)’라고 한다. 케리그마는 그리스어로 ‘선포, 설교, 복음 전파’를 뜻하며, 이 전도 방식은 논리로 증명하는 ‘합리적 설득’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는 선포’다. 고린도전서 2장 4절~5절에서 “내가 가르치거나 전도할 때 ‘지혜의 설득력 있는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는 바울의 말은 기독교의 케리그마적인 전도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부활을 비롯하여, 바울이 주장한 주요 교리들은 논리와 증거를 배제한 믿음의 선언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증거 없이 의미만 부여해 믿음을 요구하는 것은, 사기 수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자료8> ▣ 사실과 믿음에 대하여 작년 6월, 교황 레오 14세는 로마에서 열린 ‘AI·윤리·기업지배구조’ 콘퍼런스 참가자들에게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지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지혜는 데이터의 가용성보다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것과 더 관련이 있다”고 밝히며, AI에서 지혜를 읽어내는 것을 경계하라고 경고했다. AI 시대에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교황의 발언 몇 달 뒤인 작년 11월, 성서 비평 저술가 줄리안 도일은 AI를 이용해 ‘예수가 십자가형으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에 100가지 성경의 모순점을 입력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평가해달라고 요청한 결과였다.<자료9> 이는 기존 기독교계의 합의와 완전히 모순되는 결론이지만 줄리안 도일은 “AI는 인간의 편견과 특정 신념에 얽매이지 않고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신앙과 교리를 제거하면 남는 것은 증거뿐이며, 그 증거가 교회가 항상 가르쳐 온 것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저는 믿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사실이 동일하다고 여기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은 개인의 자유지만, 역사는 사실이어야 합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믿음으로만 존재해왔던 것들의 진실이 인공지능과 과학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대, 앞으로는 더 많은 사실들이 확인될 것이다. 셜록 홈즈는 진실을 탐구할 때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고 나면,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 보이더라도 남은 것이 진실이다.”라는 격언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 격언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설명보다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설명이 합리적이며, 실제로 다수의 문헌에서 확인한 증거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가리키고 있다. 초월적 신이 역사 속에 실제로 개입했다면, 기독교의 믿음은 단지 주장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확인 가능한 존재와 흔적을 남겼어야 한다. 그러한 증거가 없다면, 부활 서사는 결국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 채, 그 부재가 문제되지 않도록 설계된 이야기일 뿐이며, 신비로운 사건이 아니라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의심을 덮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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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①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①

‘마리아 숭배’는 개신교와 천주교 간 오래된 이단 논쟁 중 하나다.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정도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가톨릭의 경우, 성당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모상이다. 신자들은 성모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한다.<자료1> 마리아를 공경하는 기도와 축일, 행사들도 따로 있다. 심지어는 예수를 구세주라 믿는 종교임에도, 마리아를 ‘공동 구세주’라 호칭하는 표현이 등장했으며,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지지했다. 이를 두고 보수파 개신교에서는 ‘예수 외의 대상을 우상숭배 하는 이단’이라거나, ‘고대(古代) 이교의 여신숭배를 답습하고 미신적인 것을 믿는 사이비’라 비판하며 날을 세운다. 이런 가운데 마리아와 관련하여 개신교와 가톨릭을 가리지 않는 공통된 믿음이 있다. ‘마리아가 성관계 없이 처녀생식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성경의 서술을 믿는 것이다.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기 위한 신화적 요소 정도로 이해하기 쉽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교주의 태생 논란을 방어하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교리다. 그런데 지금은 이견없이 믿기로 결정한 교리지만, 이 또한 기독교 초기부터 진실 규명과 이단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사항이다.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이 논란의 기원을 따라 처녀생식 주장이 사실인지, 현실적인 예수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추적해볼 것이다. ▣ 남편이 아닌 자의 아이를 배고 처녀 출산을 주장하다 우선 논란이 된 ‘마리아가 성관계 없이 처녀생식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성경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본다. 마리아의 수태 장면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1장 두 곳에만 등장한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라고 짧게 요약되어 있고, 누가복음은 26절~38절에 거쳐 대화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가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라는 이름의 처녀를 찾아가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며 수태를 고지한다.<자료2> 이에 마리아는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의심에 찬 반응을 보이고, 천사는 ‘너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이며, 태어날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명한다. 정리하자면 성경은 마리아가 남편이 아닌 자의 아이를 가진 사건에 대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임신했다는 해명을 제시한 것이다. 마리아처럼 ‘암컷이 수컷과의 수정 없이 새끼를 낳는 현상’은 이른바 ‘처녀 출산(virgin birth)’이라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이라 하는데, 단성생식의 영문명 역시 그리스어 처녀(parthénos)와 발생(génesis)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처녀생식’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처녀생식이 통상적인 포유류의 번식방법이 아닌 것은 시대를 불문하는 상식이었고, 비상식적 해명은 오히려 수많은 이단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초기 기독교의 박애주의파나 양자론파(養子論派) 등 일부 교파들은 이 해명을 거부하고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던가, 예수가 세례받을 때 신에게 입양되었다는 등의 다른 해명을 제시했다. 이들은 서로를 이단으로 여겼으나,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신앙고백을 정식 교리로 채택함에 따라, 이를 믿지 않는 교파들은 이단으로 규정되며 배제되었다. 기독교는 왜 논란이 될 정도로 비상식적인 해명을 하면서까지 처녀생식이란 주장을 고수하려 했던 것일까? ▣ 혼외자 임신의 원인은 강간 또는 간음이다 어느 날 여자가 남편이 아닌 자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힌다면, 누구라도 간음을 했다거나 강간을 당했을 것이라 추측할 것이다. 이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몰래 임신해 온 마리아를 본 요셉의 심정은 어땠을까? 고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를 연구해온 미국의 성서학자 제임스 타보르는 그의 저서『예수 왕조(The Jesus Dynasty)』에서 ‘나사렛에서 생긴 골칫거리’라는 소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룬다.<자료3> 요셉은 어떤 약혼자라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심각하게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결혼식도 하기 전에 예비 신부가 ‘아이를 가졌음’이 밝혀진 것이다. 갈리리 지역 변두리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는 비밀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사렛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공동의 마당을 사용하고, 비좁은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웃을 자주 마주치는 생활을 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웃간 상호 의존도는 아주 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마태복음 13장 55절에서 예수를 보고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라며 가족 관계와 이름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은 모두 잘 알려진 집안이었다. 혼외자 임신 소식에 사람들이 쑥덕거렸으리라는 표현은 실제에 비하면 아주 약소할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태복음 1장 19절에 의하면 요셉은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고 파혼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수치스러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유대 율법이자 구약 성경인 신명기에 명시된 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간음은 돌로 쳐죽일 죄악이었으며, 사생아는 대를 이어 부정한 낙인을 받는 존재였다. 만약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해명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출생은 곧바로 간음이나 강간의 결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처녀생식은 자신들의 교주이자 신인 예수의 태생을 둘러싼 치명적인 논란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던 것이다. 때문에 성경의 저자들은 마리아가 성관계를 하지 않았으며, 처녀수태를 의식적으로 동의했음을 부각시키려 한다. 하지만 미국의 성서학자 제인 샤버그는 그녀의 저서 『예수의 사생아성(The Illegitimacy of Jesus)』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들이 예수가 마리아의 강간으로 인해 사생아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신학적으로 포장하려 시도했지만 본의 아니게 복음서 곳곳에 그 사실을 암시하는 단서를 남겼다’고 밝혔다.<자료4> 예를 들어, 위와 같이 아내가 수치스러울 것을 염려해 몰래 파혼하기로 결정한 요셉의 반응, 마태복음 1장 20절에서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고 얘기하는 구절 등은 마리아의 임신이 사회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사건임이 전제된 서술이다. 서술에 사용된 언어에도 강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누가복음 1장 39절에는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러 ‘서둘러, 또는 황급히’ 길을 떠났다는 내용이 나온다. <자료5> 이때 사용된 고대 그리스 원어 ‘μετὰ σπουδῆς (meta spoudēs, 메타 스푸데스)’의 어근 ‘σπουδή(spoudē, 스푸데)’는 ‘흥분이나 기대감’보다는 ‘공포, 경계, 두려움, 불안’의 뉘앙스를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복음 1장 48절에서 마리아가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라고 하는 구절에 사용된 ‘ταπείνωσις (tapeínōsis, 타페이노시스)’는 일반적으로도 ‘굴욕, 비천함’을 의미하지만, 같은 어근을 가진 동사가 70인역(히브리어 구약을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이나 신명기에서 ‘성적 굴욕’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며, 이 또한 강간을 암시하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샤버그는 또한 성경의 저자들이 신약성경의 첫 권인 마태복음 1장을 예수의 족보로 시작함으로써, 사생아인 예수의 태생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잉태했다면서 인간의 족보는 어떤 의도로 첨부했던 것일까? 제임스 타보르의 『예수 왕조』도 ‘예수의 법적 족보’라는 소제목 하에 샤버그와 같은 논지의 설명을 제시한다. 다음은 제임스 타보르의 설명이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의 족보라며 2절에서 16절까지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를 낳았다.”는 형식을 반복하며 마흔 명의 남자 이름을 열거한다. 당시의 모든 표준적 유대인 족보는 철저하게 남자만을 중요시했고 남자 혈통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예수가 태어난 문화 세계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 족보 가운데, ‘네 명의 여자’ 이름이 언급된다. 이는 아주 비정상적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3절을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라고 하면서 ‘다말’이라는 여자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이렇게 언급된 4명의 여자는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밧세바)인데, 네 여자 모두 성경에서 혼외정사를 가졌으며 성관계가 문란하다는 평판을 듣는 자들이었다. 다말은 아이를 원했던 과부로, 의도적으로 길가에 창녀처럼 차려입고 자기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임신한 여자였고, 라합은 술집 주인 또는 창녀였다. 룻은 성적으로 방탕하다는 평판이 있던 나라인 모압 출신이며, 실제로 남자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의 침대에 들어가 자기와 결혼하도록 일을 꾸민 여자다. 또 우리아의 아내는 다윗왕과 간통하여 임신한 여자였다. 그리고 성경은 다섯 번째 여자로 마리아를 이 명단에 추가시킨다. 정상적인 남성 가계라면 ‘야곱은 요셉을 낳았으며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고 해야 하지만, 다시 한번 예외적으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을 낳았으며, 그녀에게서 예수를 낳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타보르는 이를 성경의 저자들이 강간이나 간음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유대 문화에서 가장 존경받는 족보인 다윗 왕의 왕계에도 이미 성적으로 부도덕한 이야기들이 있어 왔으니, 마리아의 강간, 간음 가능성도 굳이 들춰내지 말고 조용히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족보의 또 한 가지 용도가 있었다. 예수를 다윗 왕계의 후손으로 주장함으로써, 생물학적으로는 사생아인 예수에게 법적으로라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 것이다. 이것은 출생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그 의혹이 더 이상 법적·신학적 걸림돌로 번지지 않도록 은폐하는 장치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법망만 피한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요셉이 마리아의 간음을 눈감아 준다면, 범법인 의미의 범죄는 피할 수 있지만 간음이라는 죄악은 사라지지 않듯이, 어떤 족보와 신학적 해석으로 포장한들 예수가 사생아라는 사실의 흔적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네 복음서 모두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근거가 있는 예수의 현실적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 로마 군인 판테라의 아들 예수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판테라’라는 이름의 로마 군인이다. 판테라 이야기의 가장 초기 판본은 그리스의 철학자 켈수스가 저술한 『참된 가르침(Λόγος Ἀληθής, True Doctrine)』이다.<자료6> 참된 가르침에는 “마리아가 임신했을 때 약혼자였던 목수에게 간음죄로 쫓겨났고, 판테라라는 군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나와 있다. 예수가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시기에 로마 군인들이 이 지역을 휩쓸었다는 사실은 판테라 이야기의 역사적 가능성을 높인다. 이 책의 저술 시기는 2세기지만 켈수스는 유대인 집단에서 이미 떠돌고 있던 증언을 듣고 그것을 옮긴 것이라 밝혔다. 그 이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예수의 아버지가 판테라라는 증언이 이미 퍼져있던 것이다. 이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도 나타나는데, 2세기 교부 테르툴리안도 예수의 어머니가 창녀였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언급했고, 4세기에 쓰여진 외경 『빌라도 행전』에서도 유대인 원로들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사생아라고 증언한 내용이 기록돼있다.<자료7> 유대교 문헌 중에서는 ‘예수의 생애’로 번역되는 『톨레도트 예슈(Toledot Yeshu)』와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예수의 사생아적 출생을 가장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헌으로 꼽힌다. 톨레도트 예슈는 예수에 관한 유대 전승을 후대에 정리한 책으로 여러 판본이 존재하나, 마리아가 남편이 아닌 자에 의해 임신하여 예수를 낳았다는 서사는 동일하다. 톨레도트 예슈에 의하면 미리암(마리아의 히브리식 이름)은 안식일 전날 밤, 월경 중이던 시기에 이웃 남자에게 강간당한다. (다른 판본들에는 군인 남자에게, 또는 이웃 남자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나온다.) 이 사건으로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게 되고,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돌자 그녀의 약혼자는 “나는 그녀를 임신시키지 않았다. 내가 여기 남아 매일 사람들에게 내 수치를 들어야 하겠느냐?”며 바빌로니아로 떠난다. 이런 비화로 인해 예수가 태어났을 때,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는 “맘제르(mamzer, 사생아)”이자 “벤 니다(ben niddah, 월경 중인 여인의 아들)”로 불렸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67a과 샤밧 104b에서도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을 마리아의 간통으로 태어난 판테라의 아들이라 표현한다. 예를 들면 “판테라의 아들이었는데 왜 스타다(요셉 역할 인물)의 아들이라고 불리는가?”, “아마도 그의 어머니의 남편은 스타다였을 것이고, 애인은 판테라였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머리를 땋던 미리암이었다.” 등의 내용이다. 기독교 측에서는 위와 같은 자료들을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폄훼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독일의 역사가 아돌프 다이스만은 『판테라라는 이름(Der Name Panthera)』이라는 짤막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다이스만은 서기 1세기 무렵 판테라라는 이름을 사용한 수많은 고대 비문(碑文)을 자세하게 분석했다. 그는 판테라라는 이름이 그 시기에 사용되고 있었고, 특히 로마 병사들이 선호했던 이름이었음을 확실하게 밝혀냈다. 그는 또한 판테라의 풀네임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압데스 판테라가 또렷이 새겨진 한 묘비 사진을 첨부하며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자료8> 묘비의 주인은 1세기 중반에 사망한 것으로 분석되기에, 그의 이름과 활동하던 연대, 장소가 유대인들의 증언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성경의 저자들이야말로 이미 유대 지역에 퍼져있던 불명예스러운 소문을 인지하고, 사생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처녀생식 신화를 고안해냈다는 연구들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예수가 판테라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가정보다 “확실히 더 믿을 만하고, 더 자연스럽고, 세상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과 더 일치한다”고 했다. 볼테르의 견해처럼 실제로 처녀생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추호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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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②

세계 종교 탐구 <52>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만 이단, 사이비인가? ②

▣ 인간의 처녀생식은 비상식적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처녀생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추호도 없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로저 하이필드 박사는 그의 저서『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원제: The Science of Christmas)』에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보고된 생식 사례와 단성생식 실험, 유전학적 한계 등을 검토하며 처녀생식 가능성을 하나씩 따져보고, 최종적으로 자연적인 인간의 처녀생식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자료9> 난자는 정자와 결합해야만 비로소 세포 분열을 시작하고, 배아로 발달할 수 있다. 배아 발생을 시작하게 하는 생물학적 신호가 정자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정자가 없으면 난자는 수정되지 않으며, 수정이 없으면 임신도 시작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이 혼자 아이를 낳는 ‘처녀생식’은 자연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처녀생식을 믿고 싶은 이들은 ‘마리아가 여성형 유전자와 남성형 유전자를 동시에 지닌 키메라(chimera)일 가능성’ 등 여러 변수를 제시하지만, 케임브리지 바브러햄 연구소의 월프 레이크는 “처녀 잉태는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안 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제안하는 몇몇 가설들에 대해 불신을 표명했다. 런던 국립 의학 연구소의 로빈 로벨-배지도 “처녀 잉태에 관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할 수 없다. 그런 설명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과 상충할 뿐”이라며 회의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설령 처녀생식이 성공하더라도 설명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예수의 성별 문제다. 인간의 성별은 수정 순간에 결정된다. 여성은 XX 염색체, 남성은 XY 염색체를 가진다. 수정할 때 난자는 X 염색체만 제공할 수 있지만, 정자는 Y 염색체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남아가 태어나려면 반드시 Y 염색체를 지닌 정자의 개입이 필요하다.<자료10> 그러나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새끼는 모든 유전자를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으므로 Y 염색체가 없다. 즉 X 염색체만을 지닌 ‘암컷’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 예수는 ‘암컷’이 아니었다.<자료11> 단성생식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털사 대학의 워런 부스 박사는 “처녀 탄생에 대해 여러 번 질문을 받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성관계를 갖지 않은 여성이 어떻게 성별에 무관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며 한계를 명확히 했다. 과학적 검증에 내몰린 종교는 최후의 보루로써 “신은 전지전능하니 불가능한 것이 없다.” 또는 “당시에 실제 일어났다는데, 이미 지난 일을 과학이 어떻게 검증하느냐?”는 등의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이는 ‘무지에 호소하는 논증(argument from ignorance)’, 즉 자신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가 없으므로 참이라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글 속의 사건이라 검증도, 반증도, 재현도 불가능한 것인데,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은 학문적으로 ‘사실’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를 사실로 주장한다면, 전 세계 모든 종교와 신화의 기적, 심지어는 판타지 소설의 내용도 사실이라 주장할 수 있다. 정확한 사실은 현재까지 인간의 처녀생식 사례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으며, 현재에 일어나지 않는 일은 과거에도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2025년, 마리아의 지위를 격하하다 지난달 4일, 교황청이 가톨릭 신자에게 성모 마리아를 ‘공동 구세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며, 수백 년간의 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예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끊임없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숭배를 유지해 온 오랜 역사에 비하면, 이번 조치는 돌연 마리아의 지위를 격하시킨 것이었다. 2023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성모 발현이 진짜는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작년 5월에는 성모 발현 등 초자연적 현상을 신중히 확인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바티칸 전문가 존 타비스는 이 조치에 대해 “만약 어떤 것이 거짓이거나 초자연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마리아에 대한 믿음이 조심스러워진 가운데, 가톨릭은 ‘공동 구세주’라는 호칭은 금지했지만, 대신 ‘하느님의 어머니’로 대체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처녀생식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예수가 처녀생식이 아닌 로마 군인 판테라와의 간음으로 태어났다고 밝힌 켈수스의『참된 가르침』은 처녀생식만 부정한 책이 아니다. 켈수스는 처녀수태, 부활 등 전반적 기독교 교리를 철학적으로 조악하고 사회적으로 위험한 신앙임을 알리고자 했다. 참된 가르침이라는 책의 제목은, 기독교는 거짓을 가르치며 기독교의 허구를 밝히는 이성적 비판이 참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담은 것이었다. 켈수스는 그리스 철학과 비교하여 기독교가 훨씬 더 나쁘다고 판단했다. 켈수스는 그리스 철학의 대표자로 플라톤을 삼으며 “플라톤은 허풍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자들의 특징은 허풍과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켈수스는 또한 기독교인들을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자로 비판했고, 이를 기독교가 “거짓 종교”라는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질문하지 말고 그냥 믿으라”와 “너희 믿음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로 정리했다. 실제로 성경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장 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그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태복음 9장 22절)”등 믿음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의 저자 윌리엄 제임스는 그의 또 다른 대표 저서『믿으려는 의지(The Will to Believe)』에서 ‘때로는 종교적 진실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없더라도 그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찰스 샌더스 피어스는『신의 실재에 대한 간과된 논증(A Neglected Argument for the Reality of God)』이란 논문에서 믿으려는 의지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논증이란 합리적으로 명확한 신념을 생성하는 데 이르는 사고의 모든 과정을 말한다. 만약 신의 실재와 선함이 전제되고, 종교가 입증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선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진리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신의 실재에 대한 어떤 논증이 존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 논거는 진실을 찾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든 이, 지위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명백히 드러나야 할 것이다. (중략) ‘믿으려는 의지’는 사고를 통제하고, 의심하고, 이성을 저울질하는 ‘능동적 의지’를 저해한다. 믿음에 앞서 논증을 거쳐야 할 철학이 사유를 마비시키는 죽음의 씨앗에 오염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철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유전학 교수 샘 베리 역시 “근거 없는 믿음은 죄이며, 진리이신 신에 대한 불경이다”라며 증거와 이성을 배제한 신앙을 강하게 경계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사이비란 “겉으로는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내용과 신념 체계가 비과학적이거나 반사회적이며, 교주를 비정상적으로 신격화하고 신도들의 재산을 착취하며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가짜종교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자가 처녀생식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비과학적인 신념을 믿는 것은 사이비 아닐까?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 예수와 성경 속 인물들도 마약을 사용했다 고대 종교 의례를 연구하는 보스턴 대학교의 칼 럭 교수는 “성경 속 인물들이 마약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놀랍게도 근거가 있다”며 〈예수에게서 대마초 냄새가 났는가?(Was there a whiff of cannabis about Jesus?)〉라는 제목의 칼럼을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즈에 기고하였다. 그는 글의 상당 부분에서 크리스 베넷의 저서『섹스, 마약, 폭력,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①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①

21세기, 과학과 이성의 주도 하에 미신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종교계에는 현재 수상한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보다 분명한 종교 체험과 진리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기도와 경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최근 각종 환각성 마약이 검증된 종교 체험의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세계 각국에서 인공지능(Artifical Intelligence, 이하 AI) 신과 AI 사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인의 […]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②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②

▣ 난민 수용, 신도 수 유지 수단인가 레오 14세 교황 이전부터 교황청은 난민 수용 문제로 비판받아 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8년 미국 방문 당시 이민 문제를 언급했을 때,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던 톰 탠크레도는 교황을 “종교 기반 마케팅”이라고 비난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이민자들을 환영한다는 발언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는 교회의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2015년 […]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①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①

2015년 9월, 한 시리아 난민 아동의 주검 사진이 전 세계 소셜미디어와 신문 1면을 뒤덮었다. 해변에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죽어 있는 두 살배기 아이 알란 쿠르디의 사진이다. <자료1> 시리아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중 보트가 전복되며 익사한 시신이 튀르키예 해변까지 떠내려온 것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진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세계의 난민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①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①

세계 종교 탐구 <49>

“나는 그런 삶을 살려고 수도회에 들어간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섬기고 싶었어요. 거기에서 학대는 철저히 계획되고 조직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직 견습 수녀였을 때, 영성 지도 신부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수녀 서약 준비를 도와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나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네가 서약하려면 내가 도와줄게. 대신 넌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해” 내가 […]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②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②

세계 종교 탐구 <49>

■ 피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다 논문은 또한 피해 사실을 고발할 때,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문화를 지적했다. 여성 성직자나 교육 중인 여성이 신체적 폭력, 성폭력, 권력 남용 등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고발할 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신뢰받지 못한다. 오히려 사제의 이미지나 명성을 훼손하려 한다고 비난 받을 수 있다. 때때로 피해자들이 사제를 먼저 유혹했다고 취급하기도 […]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2>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2>

A Belgian Catholic priest and the theology of genocide

다음은 르완다 언론 뉴타임즈에 게재된 톰 은다히로의 칼럼이다. 1994년 7월 26일, 르완다 애국 전선(RPF)이 투치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종식시키고 민족 통일 정부를 수립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 필리프 드 도를로도(Philippe de Dorlodot)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썼다: “르완다 지옥에 대한 몇 가지 진실(Quelques vérités sur l’enfer rwandais)”. 도를로도는 사제로서의 권위를 무기 […]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1>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1>

A Belgian Catholic priest and the theology of genocide

– 이번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에서는 2025년 7월 24일 르완다 일간지 뉴타임즈에 게재된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을 실었습니다. – 칼럼을 소개하기 전, 칼럼의 배경이 되는 르완다 대학살의 역사와 배경을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르완다에서는 약 100일 동안 1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20세기 말 최악의 대학살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르완다 대학살’이라 불리는 이 집단학살의 정식 […]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②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②

세계 종교 탐구 <48>

■ 고해성사로 범죄를 은폐하다 다음은 10대 초반 시절 본당 신부와 몇 주 동안 여행하면서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한 마크 트로포드의 이야기다. “저는 다른 신부들에게 고해성사하며 학대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개입하여 이 학대를 멈추게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어렸던 저는 신부가 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며 그만두라고 말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요. 기도 […]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①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①

세계 종교 탐구 <48>

미국은 현재 한 아동학대 방지법의 시행을 앞두고 가톨릭교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법은 지난 5월 워싱턴주에서 통과된 ‘성직자의 아동 학대 신고 의무법’이다. 성직자가 아동학대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는 그동안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며 눈감아주던 고해성사의 비밀을 도마 위에 올린 것이었다. 가톨릭 측에서는 자신들의 신성한 종교 의식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