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세계 종교 탐구 <51> 마약과 AI를 찾는 사람들, 드러나는 종교의 민낯 ②

▣ 예수와 성경 속 인물들도 마약을 사용했다 고대 종교 의례를 연구하는 보스턴 대학교의 칼 럭 교수는 “성경 속 인물들이 마약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놀랍게도 근거가 있다”며 〈예수에게서 대마초 냄새가 났는가?(Was there a whiff of cannabis about Jesus?)〉라는 제목의 칼럼을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즈에 기고하였다. 그는 글의 상당 부분에서 크리스 베넷의 저서『섹스, 마약, 폭력,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인용했는데, 크리스 베넷은 예수의 사역이 ‘정신을 변화시키는 물질’에 의해 촉진되었고, 눈과 피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대마 오일을 사용했으며, 예수를 지칭하는 말인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는 예수가 대마 오일로 기름부음을 받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칼 럭은 인류 역사 대부분의 종교들이 환각제를 사용했음을 지적하며, 기독교만 예외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했다. 고대에는 중동 전역에서 대마초가 널리 재배되었고, 대마 외에도 고대인들은 약초의 효능과 제조법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마약 식물들의 환각 효과를 알고 있었고. 당시 많은 종교에서 포도주나 맥주에 환각제를 첨가해 섭취하는 의식을 행했다. 칼 럭은 초기 기독교가 세력을 키울 당시, 신도들을 얻기 위해 로마의 다른 종교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했고, 자신들의 종교 의식과 유사한 기존 종교의 의식을 모방하고 흡수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훗날 로마 가톨릭교회로 발전하게 될 다양한 종파에서 세례, 서품식, 성찬식에 사용 가능한 모든 종류의 엔테오젠(종교적 환각 유발 물질)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칼 럭은 또한 이집트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문서는 신약성서보다 더 정확한 기록으로 여겨지는데, 거기에는 예수를 ‘마법 식물을 이용한 의식을 통해 깨달음을 전파한 황홀경에 빠진 반항적인 현자’로 묘사했다고 덧붙였다.(Early Christian documents found in Eygpt, thought to be a more accurate record than the New Testament, portray Jesus as an ecstatic rebel sage who preached enlightenment through rituals involving magical plants.) 그리고 지금은 ‘성체’라고 부르는 빵이 과거에는 환각 버섯이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환각 버섯과 그 버섯이 불러일으킨 영적 환상과 황홀경을 성찬식 식사로 나누었는데,(What we now call the host might have been more than just bread. There are indications that early Christians shared magic mushrooms —and the spiritual visions and ecstasies they occasioned — as their eucharistic meal.) 그 증거로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의 한 성당에서 발견된 4세기 모자이크에 그려진 버섯 바구니를 제시했다.<자료4> 칼 럭은 “빵을 먹고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 의식이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수와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에서 정확히 무엇을 먹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마셨다고 믿는 것이 사실 환각은 아니었는가 하는 암시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했다.(as they believed they were drinking the blood of Christ, we must accept it was — if not actually hallucinatory —at least fortified by God.) 초기 기독교가 성찬식에 환각 버섯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영국의 고고학자 존 알레그로의 저서 『신성한 버섯과 십자가』에도 소개된다. 알레그로는 초기 기독교는 실제로 버섯 숭배 의식이었으며 예수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환각 버섯을 의인화 한 존재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도 환각 의식이었으며, 예수의 부활은 버섯의 짧은 수명과 빠른 생장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소 급진적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당시 근동 지역에서 환각제가 종교 의식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브라이언 무라레스쿠의 저서『불멸의 열쇠(The Immortality Key)』는 초기 기독교 성찬식 포도주에 환각제가 들어갔다는 가설을 탐구하는 책으로,<자료5>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환각 의례가 초기 기독교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약 12년 간 연구했다. 무라레스쿠는 먼저 환각 물질을 함유한 음료를 통해 신과 합일되는 체험은 인류 역사 전반에서 매우 보편적이었음을 설명하고, 기독교가 형성되던 시기 그리스와 로마 전역에서 행해진 신비 의식 사례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엘레우시스 신비의식에서는 마약 LSD와 유사한 환각 작용을 보이는 맥각이 들어간 술 키케온을 마셨고,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도 맥각을 첨가한 포도주를 마셨다. 이때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디오니소스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여겨졌다. 무라레스쿠는 이러한 환각 의례 전통과 기독교 성찬식 사이의 연속성을 추적하며, 초기 기독교 약 300년 동안 성찬식의 포도주에 환각 성분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결론 짓는다. 이와 같이 환각제의 사용으로 기존 종교가 형성된 선례들은 마약을 찾는 종교계의 최근 동향과 맞물려 중대한 윤리적 우려를 낳는다. 실로시빈 추종자가 된 익명의 신부는 “만약 환각제가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교회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고대의 방식과 식물성 약물, 현대 기술, 그리고 종교를 조화시키는 것이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며 마약의 사용을 옹호했다. 그러나 인류는 이미 마약이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처절한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을 ‘사회적 병폐’로 규정하는 도덕적 기준을 세운 바 있다. 환각을 ‘영적 체험’이라 부르며, 마약이 보편화 되는 길을 ‘치유’라 포장한다면 인류가 오랜 실패 끝에 세워 온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릴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환각 체험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과 올바른 도덕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환상에 마음을 뺏기면 진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신 대신 AI에게 진리를 구하다 이제는 종교가 아니라 AI에게 지혜와 진리를 묻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AI를 신으로 예배하는 종교단체가 설립되었으며, 스위스의 한 교회에서는 AI ‘예수’가 고해실에서 신도들을 맞았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는 AI 목사가 예배를 이끌었고, 일본의 불교 사원에는 로봇 승려가 신자들을 맞았다.<참고자료2: AI를 찾는 종교인들> 기존 종교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진리 탐구의 요구가 점점 커져 가는 오늘날, 종교계에서도 방대한 지식과 통합적 사고를 갖춘 AI의 도움을 구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 말, 스위스 루체른의 성 베드로 교회는 약 두 달간 고해성사실에 ‘AI 예수’를 설치해 시험 운영하였다. 이는 루체른 응용과학대학교와 협력해 진행한 ‘기계 속의 신(Deus in Machina)’ 프로젝트 일환이었다. 방문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홀로그램 ‘예수’ 아바타를 바라보며 고민을 털어놓았고 두 달 동안 1000명 이상이 방문했다. 230명의 방문객이 피드백을 남겼는데, 피드백 중 약 3분의 2는 AI와의 대화에서 ‘영적 경험’을 느꼈다는 소감을 밝혔다. 루체른 가톨릭 교구가 공개한 프로젝트 요약에 따르면, 방문객 대부분은 기독교인이지만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무슬림, 불교도, 도교도도 참여했다. 질문의 예시로는 “죽음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교회 내 학대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이 있었고, 기록된 약 900건의 대화는 ‘우리 시대의 실존적, 종교적, 영적인 요구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평가했다. 2023년 9월 독일 바이에른주의 성 바울 교회에서는 AI가 예배를 인도하는 실험적 예배가 진행됐다. 제단 앞 대형 스크린에 수염을 기른 흑인 남성의 모습을 한 AI 목사가 등장해 신자들과 마주했다. AI 목사는 40분 동안 설교, 기도, 찬송까지 주도하며 예배 전체를 이끌었다. AI가 진행한 예배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갈렸다. 신자와의 소통 없이 감정 없는 말투로 전달하는 설교에, “마음도 없고 영혼도 없는 예배 경험이었다”며 불쾌함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말씀이 인상깊다거나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잘 작동했다며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빌라노바대의 가톨릭 신학자 일리야 델리오는 “로봇 사제의 최대 장점은 성범죄를 일으킬 수 없다는 점”이라며 AI 사제가 인간보다 나은 점을 분명히 했다. 국내 신학 논문 『인공지능 시대의 예배와 설교』에서는 인공지능도 결국 인간 지식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AI 시대에 ‘사람 설교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령과 교통(交通)하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성령과의 교통’이 사람 설교자의 우월성 근거라면, 그 소통이 입증되지 않는 순간 사람 설교자는 AI보다 나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2017년, 전 구글 엔지니어가 AI 신을 개발하고 있다는 기사가 영국 가디언지에 보도되었다. 구글 자율주행차 프로그램을 창립했던 기술자 안토니 레반도프스키는 ‘사회 개선’을 위해 인공 지능을 기반으로 한 신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히며,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이라는 비영리 종교 단체를 설립했다. 신학 논문『인공지능 시대의 예배와 설교』에서는 AI 종교단체를 만든 레반도프스키의 행보에 대해, 실리콘 벨리의 기존 교회들이 종교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가디언지의 분석을 인용한 후, 그가 세상의 지식이 아닌, 자신을 지키고 인도해 줄 초월적인 지식을 갈구했고, 성경에 나오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인공지능 시대 정보의 홍수와 압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려고 ‘하늘이 주는 영의 지식’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트랜스휴머니즘 운동가 이슈트반은 AI 기반 신이 기존의 신 개념보다 더 합리적이고 매력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이 신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를 위해 일해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가디언지도 “전통 종교가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AI, 적어도 AI가 약속하는 바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며 기사를 마쳤다. 마약으로 ‘영적 각성’을 모방하고, AI를 ‘신적 대안의 매개’로 삼으려는 최근의 경향은 단순한 일탈의 범주를 넘어, 현대 종교가 직면한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더욱 분명한 신과의 교감, 더욱 분명한 진리 제시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 앞에, 종교가 무기력해졌음을 드러내는 중대한 징후인 것이다. 신과의 만남을 약물의 환각에 기대고, 진리의 탐구를 알고리즘에 맡기는 움직임은 기존 종교가 더 이상 스스로 영적 지도를 제시할 수 없다는 방증이며, 이는 목적과 방향을 잃은 채 성공하겠다는 것과 같다. 신자들의 영적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는 종교가 신도들을 이끌 자격이 있을까? 마약과 AI에 의존하는 안내자가 이끄는 길에 천국이 있을지, 그 길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냉정하게 판단해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①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①

2015년 9월, 한 시리아 난민 아동의 주검 사진이 전 세계 소셜미디어와 신문 1면을 뒤덮었다. 해변에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죽어 있는 두 살배기 아이 알란 쿠르디의 사진이다. <자료1> 시리아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중 보트가 전복되며 익사한 시신이 튀르키예 해변까지 떠내려온 것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진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세계의 난민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많은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알란 쿠르디의 사진은 난민 존엄성의 위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았는데, 지난 9일 레오 14세 교황이 즉위 후 처음으로 발표한 권고문에서도 이 시리아 아동의 사진이 언급되었다. 레오 14세 교황은 “가난한 자, 이민자 등 소외층 돌보라”는 내용의 권고문「나는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의 1장 11항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자료2> “몇 년 전, 지중해 해변에 쓰러진 채 숨을 거둔 한 아이의 사진이 세상을 뒤흔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시적인 분노에 그쳤을 뿐, 그와 비슷한 사건들은 점점 무관심 속에 묻히며 주변부 뉴스로 전락하고 있다.(A few years ago, the photo of a lifeless child lying on a Mediterranean beach caused an uproar; unfortunately, apart from some momentary outcry, similar events are becoming increasingly irrelevant and seen as marginal news items.)” 그리고 4장 95항에서는 “우리가 도덕적·영적 존엄성을 되찾지 못하면 오물 속에 빠질 것(Either we regain our moral and spiritual dignity or we fall into a cesspool.)”이라 경고했다. 존엄성이란 모든 인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를 타고난다는 인간의 특성이다.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은 인간은 서로 감히 존엄성을 범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아가 영적 존엄성은 인간의 기본권을 넘어 영적·정신적 가치까지 존중하는 한층 차원 높은 개념이다. 전 세계를 향해 도덕적·영적 존엄성을 촉구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했던 역사적 사실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교황이 시리아 아동을 언급하며 도덕적·영적 존엄성을 논할 권리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검토해 본다. ▣ 시리아에서의 식인 사건, 인간 존엄 말살의 결정판 1098년 시리아의 소도시 마라트 알 누만(Ma’arrat al-Numan, 이하 마라)에서는 전체 아랍인들을 전율하게 만든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레바논 출신 역사가 아민 말루프는 그 사건을 단 여섯 글자로 요약했다. 그의 저서『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1부 3장의 소제목을 ‘마라의 식인종’이라 지은 것이다.<자료3> 그는 그것이 불가피한 식인이었든 광신적인 의식이었든 어느 쪽도 비현실적이며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식인 행위는 어떤 종교적, 민족적, 역사적 조건을 막론하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말살하는 비도덕적 행위의 최종판이기 때문이다. 당시 시리아에서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1095년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 아래 출정한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부터 경유하는 도시들의 모든 이교도들을 하느님의 적으로 규정하고 살육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대상에는 어린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1088.3.12.~1099.7.29. 재위)는<자료4> 십자군에 참여하는 모든 병사들에게 죄를 사해줄 것과 상당한 전리품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시리아의 도시 마라에서도 몇 차례 공방전이 이어지다 1098년 12월 12일, 결국 십자군에 함락된다. 곧이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살육과 약탈이 시작되었다. 사실 살육과 약탈은 당시 십자군으로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마라의 학살이 당대에 큰 충격을 준 이유는 대규모 식인 행위를 했다는 다수의 믿을 만한 기록과 증언들 때문이었다.<자료5> 1차 십자군 이전에도 은자 피에르가 이끈 민중 십자군이 니케아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그들은 아기들을 토막 내었고, 나무 꼬챙이에 꿰어 불 위에 구웠다.”는 등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가 기록된 적이 있다. 비잔틴 제국의 공주이자 역사가 안나 콤니니의 역사서《알렉시아드》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런데 마라에서의 학살은 보다 여러 연대기 작가가 공통적으로 대규모 식인 행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미국의 역사학자 제이 루빈스타인의 논문『식인종과 십자군(Cannibals and Crusaders)』에는 당시 여러 연대기 작가들의 진술과 그 충격적인 진술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정리되어 있다. 1099년 7월 예루살렘 함락 후 20년 내에 기록된 12개의 기독교 연대기에서 모두 식인 행위를 인정하고 있으며, 당시 인육을 먹는 것은 수치스럽고 은밀한 사건이 아니라 공개적 행위였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십자군 연대기 저자 라울 드 카엥이 동방에서 만난 십자군 정착민들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마라에서 우리들은 이교도 성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고, 아이들은 꼬챙이에 꿰어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를 마치 농담하듯 즐겁게 떠들었다고 기록했다. 십자군에 직접 참전했던 연대기 저자 샤르트르 드 풀셰르는 “나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인해 미쳐서 이미 죽은 사라센인들(무슬림들)의 엉덩이에서 살을 떼어서 불에 구워서 먹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들은 채 다 익지도 않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었다”라고 기록했다. 마라 전투에 참가했던 아길레르의 레이몬드는 식인 행위가 기근 탓이라 진술하면서도, 인육을 먹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기는커녕 ‘맛있게’ 먹었다고 덧붙였다. 논문의 저자 루빈스타인은 여러 연대기의 증언을 종합하여 “그 도시(마라)는 일종의 솥(stewpot)이 되어, 적이 하느님의 전사들에게 산 채로 요리되어 먹히는 장소가 되었다.”고 정리했다.<자료6> 결정적인 자료로서 십자군의 지도부가 1099년 9월 교황 파스칼 2세(1099.8.13.~1118.1.21. 재위)에게<자료7> 보낸 서신에서 “당시 저희들은 심각한 기아에 직면해 사라센인들의 몸을 뜯어 먹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moreover, hunger so weakened us that some could scarcely refrain from eating human flesh […] and while we were delaying there, there was so great a famine in the army that the Christian people now ate the putrid bodies of the Saracens)”라고 보고한 기록이 있다. 이 서신에서 주목할 점은 그들이 배고픔을 이유로 식인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서신 어디에도 도덕적·영적 존엄성에 대해 고뇌하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을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한낱 고깃덩어리로 보는 후안무치한 변명에, 교황이 질책하거나 처벌을 내렸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기독교 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배고픔이 원인이 아닌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 이론적 정당화를 시도했다. 일례로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셸 루슈의 한 논문은 식인 풍습에 신성한 성격을 부여하며, 무슬림 시체에서 뜯어낸 살점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같은 사막을 헤매던 때 보내준 만나에 비유했다. 연대기 저자 라울 드 카엥은 성경 구절을 예로 들어 식인 행위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 해석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다. “뭇 이방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벌을 내리겠다. 너희의 온갖 역겨운 일들 때문에,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그런 일을, 내가 너희 가운데서 일으키겠다. 너희 가운데서 아버지가 자식을 잡아먹고, 자식이 아버지를 잡아먹을 것이다. (에스겔서 5장 8~10절)”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미가 3장 3절)”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내버려둘 것이며 남은 자들이 서로 살을 뜯어먹어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스가랴 11장 9절)” “너희는 너희 아들들의 살을 먹고 딸들의 살을 먹어야 하게 되리라.(레위기 26장 29절)” “궁한 나머지 제 다리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태째 몰래 먹어치울 것이다. 원수가 너희 모든 성을 포위하고 몰아치면 마침내 이런 지경에 이를 것이다.(신명기 28장 57절)” 제이 루빈스타인은 그의 논문『식인종과 십자군』에서 식인 행위가 성찬식의 메타포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와 언어적·상징적으로 겹쳐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8> 당시 평신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신다”는 비현실적인 신학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살과 피를 실제로 먹는’ 행위가 훨씬 익숙한 현실이었다. 식인 행위는 단지 기근 때문에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된 상징적 폭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식인 행위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안에도, 식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이 사건은 무슬림들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깊은 영향을 미쳤다.『아랍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저자 아민 말루프는 “지역 시인들과 구전으로 보존되고 전승된 이러한 잔혹 행위에 대한 기억은 십자군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으며, 그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투르크인들(무슬림들)은 서방인들의 식인 행위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과 그것이 중동에 끼친 문화적, 심리적 영향에 대한 민감성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2022년 12월 1일, 카타르에서 열린 FIFA 월드컵에서 일부 잉글랜드 축구 팬이 복제 십자군 의상을 입고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이 금지된 적이 있다.<자료9> 아랍권에서 십자군 복장은 모욕적이라는 이유였다. 카타르 보안 당국은 중동 지역의 역사적 감정을 고려해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이며, 이는 무슬림들이 아직 십자군의 잔학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로부터 불과 3년 후, 레오 14세 교황은 시리아 난민 아이 알란 쿠르디를 언급하며 난민 문제와 도덕적·영적 존엄성에 대해 논했다. 그가 스스로 면죄부를 내린 것이 아니라면, 역사는 아직 그에게 영혼의 존엄을 논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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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②

세계 종교 탐구 <50> 영적 존엄을 논할 권리,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다 ②

▣ 난민 수용, 신도 수 유지 수단인가 레오 14세 교황 이전부터 교황청은 난민 수용 문제로 비판받아 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8년 미국 방문 당시 이민 문제를 언급했을 때,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던 톰 탠크레도는 교황을 “종교 기반 마케팅”이라고 비난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이민자들을 환영한다는 발언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는 교회의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2015년 이민자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NPR의 기사도 미국 가톨릭교회가 “신도 수를 채우기 위해 이민자 신도들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난민)을 환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십시오. 과거에도 그랬듯이, 저는 이 사람들이 미국과 그 교회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주교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풍요롭게 하다”라는 발언이 “헌금 접시를 채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5년 9월 시리아 난민 아동의 죽음이 세계 언론을 뒤흔들자 “낯선 자를 환영하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들며 전 세계가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바티칸은 국가가 좁다는 이유로 난민을 좀처럼 받지 않는 나라였지만 당시에는 바티칸도 4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았는데, 시리아 인구의 90%는 이슬람을 믿지만 그가 받아들인 난민은 모두 가톨릭 신자였다. 2017년 3가족 13명의 시리아 난민을 추가로 받았다는 기사를 끝으로 바티칸에 난민을 수용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작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민자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죄’라고 얘기했고, 9월에는 “이주민을 버리는 사람은 생명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워싱턴 이그재미너의 논평가 크리스토퍼 트레모글리는 교황의 흥미로운 단어 선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며, 교황의 이런 발언은 이민자들의 곤경에 공감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행동은 이 주제에 대한 그의 말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는지, 바티칸 시국은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을 수용하고 있는지 묻고 곧바로 정답을 알려주었는데, 두 질문의 답은 모두 ‘0’이었다. 트레모글리는 교황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겠다고 꾸준히 말하면서도, 그 이민자들이 자신과 가까운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살도록 했다며 “교황은 바티칸 시국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도록 승인할 수 없었다고 말하지 마라. 이는 의도적인 선택이며 매우 위선적인 선택으로 보인다”고 일침을 가했다. ▣ 난민 성학대, 존엄성이 유린당하다 하지만 바티칸이 아닌 국가에서 교회와 가톨릭 자선단체 등은 적극적으로 이민자 수용을 돕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미국 에모리대학교 캔들러신학대학원 가톨릭학 조교수 수잔 레이놀즈의 논문『“내가 반드시 너희를 추방할 것이다”: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성직자 성적 학대』에 따르면 주교들은 이민자를 위한 본당을 연쇄 성학대범 성직자들을 버리는 장소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증거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가난하고 취약하며 서류 미비 가정의 미성년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추방과 추가 폭력 위협으로 피해자들을 침묵시켰다. 2002년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보도 이후, 사춘기 이전의 소년들, 백인, 가톨릭 가정 출신의 복사 등은 성직자 성학대의 전형적인 피해자로서 언론에서 그나마 주목받게 되었지만, 이민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대중의 관심의 사각지대였다. 실제로 이민자의 취약한 위치를 이용해 성당이나 가톨릭 기관에서 이민자를 성학대한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2015년 10월, 가톨릭 자선단체 카리타스의 이사인 세르지오 리브리치 신부가 이민자 성학대 혐의로 징역 10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리브리치는 2009년 이후 최소 10건의 성폭력을 저질렀는데, 피해자는 모두 카리타스를 통해 접촉한 이민자였으며, 이들에게 거주 허가를 대가로 성매매를 강요했다고 한다. 리브리치가 체포되자 그가 속한 교구의 피에트로 프라넬리 주교는 성명서를 통해 “리브리치의 행위는 범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했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는 피해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들의 상처를 달래주시기를 기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공영 언론사 NPR은 ‘교회가 함께한 것은 가해 사제들’임을 고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민자 커뮤니티는 성학대 사제를 위한 ‘지리적 해결책’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지리적 해결책’이란 성학대 사제를 징계하지 않고 이민자 공동체 본당으로 전근시키는 것이었다. 일례로 카를로스 로드리게스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은 지 불과 1년 만에 LA의 한 교회에서 아동을 학대한 소아성애자였지만, 교회 관계자들은 그를 잠시 소아성애 치료 프로그램 기관에 보냈다가 1년 만에 다시 LA 대교구 가정생활국에서 이민자 가정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을 하게 했다. 멕시코 출신 이민자 마누엘 바라간은 이 ‘지리적 해결책’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바라간은 11살때부터 그의 동생과 함께 카를로스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수년간 성학대를 당했다.<자료10> “그는 신의 사람으로 보이려고 정장을 입은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소년 소녀들의 바지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가짜였어요.” 바라간은 고해성사 때 지역 주교에게 학대 사실을 알렸지만, 주교는 바라간에게 “기도하라”고 하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라간이 카를로스 신부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바라간은 곧 피해자가 본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2003년 바라간은 508명의 피해자들과 함께 LA 대교구 221명의 사제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LA 대교구는 570건의 학대 사건에 대해 6억 6천만 달러의 합의금 지급과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 사제들의 내부 기록 공개를 명령받는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3년, 12,000페이지 분량의 대규모 교회 내부 문서가 공개되었는데, 문서에는 “불법 체류자들은 어차피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학대 문제에 대해 시정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노골적인 발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카를로스 신부의 사례처럼 성학대 사제를 이민자 본당에 배치하고 그곳에서 성학대가 일어난 사례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피터 가르시아 신부는 사제직을 하며 20명이 넘는 소년들을 학대했는데, 피해자들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였으며, 추방하겠다고 협박하여 침묵을 지키게 했다. 또 페르난도 로페즈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미성년자에게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었지만, LA 대교구는 그를 받아들여 이민자 본당에 배정했고, 그는 최소 세 명의 어린이를 성추행했다. 알려지지 않은 난민 아동들의 성범죄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2월, 뉴욕 시장 에릭 애덤스의 기자회견 내용에 따르면,<자료11> 미국 내 ‘50만 명’의 이주 아동이 행방을 추적할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뉴욕 시장은 이 아이들이 아동 노동, 성범죄, 착취 등에 노출되어 있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이주민 아이들은 쉽게 위 같은 범죄의 표적이 된다. 지난 9일, 캐나다 새스커툰의 한 가톨릭 신부가 우크라이나 난민 소녀를 성당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자료12> 얀코 콜로스냐지 신부는 2023년 성당 청소를 하던 13세 난민 소녀에게 돌연 15~20초간 포옹을 하고 턱을 들어 강제로 입을 맞췄다. 신부는 법정에서 ‘평화의 키스’가 가톨릭 신앙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관례라고 증언했다. 소녀는 법정에서 “고통과 수치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은 적대적이고 위험해졌다”고 진술했고, 검사 셰리 필로는 콜로스냐지 신부가 ‘그 소녀가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에서 온 난민이었고 극도로 취약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이것은 아이의 신뢰, 존엄성,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다.(This is the destruction of a child’s trust, dignity, soul.)”라며 울분을 토했다. ‘평화의 키스’라 주장하던 가톨릭 신부는 난민 소녀의 영혼과 존엄성을 파괴했고, ‘신이 원하는 성전(聖戰)’이라 주장하던 십자군은 아이들을 꼬치에 꿰어 구워 먹으며 시리아 아이들의 영혼과 존엄성을 파괴했다. 오늘날 교황이 시리아 아동을 언급하며 영적 존엄성을 논할 때 허락되는 것은 사과뿐이다. 그 사과마저도 용서받지 못할 역사를 알면서도 그 종교의 수장이 ‘영적 존엄’을 논했다는 것은 인류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며, 몰랐다면 역사를 꿰뚫어 진실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길러야 할 것이다. 십자군의 쇠꼬챙이가 시리아 어린이의 몸을 꿰뚫던 그날로부터 천 년이 지났다. 당시 교황은 참전하는 모든 십자군에게 천국을 약속했고, 십자군은 그대로 광기의 살육과 식인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시간이 지나 그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기더라도 과거의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교황이 언급한 가엾은 시리아 아이의 사진은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증거로서, 과거의 진실들이 이미 역사의 증언대 위에 서 있음을 기억하라는 엄중한 경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①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①

세계 종교 탐구 <49>

“나는 그런 삶을 살려고 수도회에 들어간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섬기고 싶었어요. 거기에서 학대는 철저히 계획되고 조직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직 견습 수녀였을 때, 영성 지도 신부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수녀 서약 준비를 도와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나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네가 서약하려면 내가 도와줄게. 대신 넌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해” 내가 […]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②

세계 종교 탐구 <49> 믿음이 욕망에 포로로 잡힐 때 ②

세계 종교 탐구 <49>

■ 피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다 논문은 또한 피해 사실을 고발할 때,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문화를 지적했다. 여성 성직자나 교육 중인 여성이 신체적 폭력, 성폭력, 권력 남용 등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고발할 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신뢰받지 못한다. 오히려 사제의 이미지나 명성을 훼손하려 한다고 비난 받을 수 있다. 때때로 피해자들이 사제를 먼저 유혹했다고 취급하기도 […]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2>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2>

A Belgian Catholic priest and the theology of genocide

다음은 르완다 언론 뉴타임즈에 게재된 톰 은다히로의 칼럼이다. 1994년 7월 26일, 르완다 애국 전선(RPF)이 투치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종식시키고 민족 통일 정부를 수립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 필리프 드 도를로도(Philippe de Dorlodot)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썼다: “르완다 지옥에 대한 몇 가지 진실(Quelques vérités sur l’enfer rwandais)”. 도를로도는 사제로서의 권위를 무기 […]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1>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1>

A Belgian Catholic priest and the theology of genocide

– 이번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에서는 2025년 7월 24일 르완다 일간지 뉴타임즈에 게재된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을 실었습니다. – 칼럼을 소개하기 전, 칼럼의 배경이 되는 르완다 대학살의 역사와 배경을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르완다에서는 약 100일 동안 1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20세기 말 최악의 대학살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르완다 대학살’이라 불리는 이 집단학살의 정식 […]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②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②

세계 종교 탐구 <48>

■ 고해성사로 범죄를 은폐하다 다음은 10대 초반 시절 본당 신부와 몇 주 동안 여행하면서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한 마크 트로포드의 이야기다. “저는 다른 신부들에게 고해성사하며 학대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개입하여 이 학대를 멈추게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어렸던 저는 신부가 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며 그만두라고 말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요. 기도 […]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①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①

세계 종교 탐구 <48>

미국은 현재 한 아동학대 방지법의 시행을 앞두고 가톨릭교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법은 지난 5월 워싱턴주에서 통과된 ‘성직자의 아동 학대 신고 의무법’이다. 성직자가 아동학대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는 그동안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며 눈감아주던 고해성사의 비밀을 도마 위에 올린 것이었다. 가톨릭 측에서는 자신들의 신성한 종교 의식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

세계 종교 탐구 <47> 예언, 신의 권능을 가장한 기만의 역사-②

세계 종교 탐구 <47> 예언, 신의 권능을 가장한 기만의 역사-②

세계 종교 탐구 <47>

▣ 신의 권능에 대한 갈망과 현실 예언뿐만 아니라 종교에서 배운 기적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고 믿고싶어 하는 다른 사례들이 많다. 지난 4월,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용 밀떡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며, 밀떡이 예수의 피로 변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은 성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며 감격했고 기적의 증명을 기대하며 생화학적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분석 결과, 인간의 손에서 흔히 발견되는 곰팡이와 […]

세계 종교 탐구 <47> 예언, 신의 권능을 가장한 기만의 역사-①

세계 종교 탐구 <47> 예언, 신의 권능을 가장한 기만의 역사-①

세계 종교 탐구 <47>

지난 4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가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레 차기 교황과 가톨릭의 미래에 옮겨갔고, 이를 내다보았다는 옛 예언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예언들은 실제로 미래를 맞췄을까?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최근 언급된 몇 가지 예언들을 알아보고,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이런 예언들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언급되는 현상이 방증하는 것은 무엇일지 탐구해 본다. […]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결하지 못한 바티칸 재정 난국<1>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결하지 못한 바티칸 재정 난국<1>

The Vatican Financial Mess Pope Francis Couldn’t Fix

이번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에서는 2025년 5월 6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결하지 못한 바티칸 재정 난국’ 기사를 중심으로, 관련 기사들을 엮어 편집하였습니다. 2013년, 프란치스코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로마 교황청의 개혁, 특히 부패를 척결하라는 임무를 안고 선출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취임 후 12년이 지난 현재, 오히려 상황은 2013년보다 더 심각해졌다. 바티칸의 […]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결하지 못한 바티칸 재정 난국<2>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결하지 못한 바티칸 재정 난국<2>

The Vatican Financial Mess Pope Francis Couldn’t Fix

# ‘모든 악의 근원’ (‘The root of all evil’) 교황에게 빚을 갚는 것이 항상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십자군 전쟁,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건설은 모두 면죄부 판매로 자금을 조달했다. 면죄부는 신도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주는 발명품이었지만, 이 관행은 너무 부패한 것으로 여겨져 종교 개혁의 불씨를 지폈다.<자료5> (Paying the bills wasn’t always s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