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43>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①
오늘날 마약은 범죄와 퇴폐, 부도덕의 상징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은 불법이며, 종교 역시 대부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마약은 천연 치료제 및 진통제, 종교제의의 도구로써 다양하게 활용되며 전 세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마약은 ‘신의 선물’이라 불리며 천혜의 식물로 여겨졌다. 신의 선물이었던 마약이 언제부터 금지된 ‘악마의 식물’이
된 것일까? 많은 연구에서는 마약과 종교의 역사가 맞물려 있음을 지적한다. 종교의 역사에서 마약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마약의 사용, 전파, 억압의 역사를 통해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 마약으로 종교적 능력을 얻다
자연에는 꽃, 풀, 버섯과 곰팡이 같은 천연 마약이 존재한다. 현대인들은 마약이 무엇인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대의 사람들에게 마약이 일으키는 마취나 환각 증상은 분명 신비로운 것이었다. 마약은 곧 영험만 물질이자 신성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원시시대, 마약을 사용하여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초월적 존재로 부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술사, 마법사, 혹은 주의(呪醫) 등으로 불렸던 샤먼이다. 샤먼은 미래에 대한 예언, 자연재해에 대한 해명, 질병에 대한 치료 등을 주도하면서 신과 인간의 중개자 역할을 자처했다. 신과의 소통을 유도하는 정신적 도구는 주로 마약식물이었다. 향정신성 마약식물만큼 샤먼의 망아(忘我)상태를 극적인 효과로 유도한 방법은 없었다. 이를 통해 샤먼은 자신이 주관하는 원시종교와 공동체의 생존을 유지했다.
그들이 믿었던 마약의 영험한 힘은 실은 향정신성 작용이 일으킨 환각이었고, 고통을 줄여주는 마취 효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영험한 식물을 통해 신과 소통하는 초자연적 힘을 지니게 되었다고 믿은 덕분에 인류의 가장 초기 형태의 종교인 샤머니즘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이후 마약은 계속해서 종교 제의의 중심이 되었고, 고대 종교에서 마약을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 고대 종교에서 마약 사용은 보편적이었다
마약을 사용하는 신성한 의식은 고대의 많은 문화권과 종교 집단에서 나타난다.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밀교는 열흘 동안 진행되는 ‘엘레우시스 제전’의 마지막 날, ‘키케온’이라는 술을 마셨다. 키케온은 보리와 박하를 넣은 술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맥각균에 오염된 보리를 사용해 환각제 LSD의 원료인 맥각을 넣는다. 키케온을 먹은 신도들은 ‘밤의 성스러운 환상’을 본 뒤, 춤을 추며 신을 만나거나 사후세계를 보는 등 거룩한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말린 대마 잎을 갈아 만든 음료인 방(Bhang)을 마신다. 시바 신과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성한 물질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방을 섭취하면 죄에서 자유로워진다고도 믿는다. 힌두교에서는 현재까지도 방을 만들어 마시는데,<자료1> 인도 대마의약협회의 캠벨은 ‘방을 마시는 자는 시바신을 마시는 것이다’라며 방의 음용을 권장했다.
이밖에도 중국 도교의 도사들은 종교 제의에 대마초를 사용해 미래를 점쳤고, 고대 멕시코 원주민들도 환각버섯을 ‘신의 고기’(God meat)라 부르며, 신이나 죽은 자를 만난다는 목적으로 먹었다. 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마약 선인장 페이오트(peyote)를 신의 연결고리라 믿으며, 말려서 종교의식과 민간요법에 사용했다.
당대의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 제의에 사용된 공예품들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제단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레위기 16장, 히브리서 9장, 역대기하 2장 등 유대교 경전에 나와 있는데, 2020년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종교 의식 중 대마초를 태웠다는 사실이 고고학 연구에서 밝혀졌다. 네게브 사막에서 발견된 이스라엘 성전의 제단에서 향을 태우고 난 잔여물이 발견되었는데, 한 제단에서는 유향이 발견되었고, 두 번째 제단에서는 대마초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올(THC), 칸나비디올(CBD) 및 칸나비놀(CBN)이 발견되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近東)과 주변 지역에서 제의 목적으로 환각 물질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유다 왕국에서 물리적 증거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고의적으로 정신자극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 대마초를 태운 것’으로 결론 내렸고, 이는 초기 유대교 예배에서 향정신성 약물이 사용되었다는 증거라고 20년 5월 30일 이스라엘 타임즈는 보도했다.<자료2>
마약의 사용이 일반적이며 마약의 대량소비에 대해 관용적이었던 것은 로마와 초기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01년 로마의 아편 가격은 대마 가격의 두 배로 판매되었으며, 312년 로마시에만 약 800개의 아편 상점이 있었고, 로마당국 총세입의 15%를 차지했다. 초기 기독교는 당시 사회문화적 풍습에 따라 대마와 아편을 포도주에 섞어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2장 11절에서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선물한 몰약(머르, myrrh)도 아편이었다. 이것은 당시 아편이 매우 귀중한 물건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7장 34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그에게 쓸개(gall)를 혼합한 포도주를 제공했다고 나와있는데, gall도 아편이었다. 아편을 섞은 포도주는 당시 소아시아에서 만연한 진통제였다. (myrrh는 아랍어로 ‘맛이 쓰다’는 뜻이며, gall도 실제 쓸개가 아니라 ‘쓴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강한 쓴맛이 나는 ‘아편’을 가리킨다.) 또한 당시 국가에 복종하지 않는 미신적 종교였던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탄압을 받았었는데, 탄압을 피하기 위한 지하생활은 많은 고통을 수반했으며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편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대 사회에서 마약의 사용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알아볼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배경이다.
▣ 마약으로 치유 기적을 설명하다
현대와 같은 과학적 의학 지식이 없던 고대에서는 주술과 함께 고통을 줄여주는 마약 식물을 치료제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마약 중에는 마비효과로 고통을 줄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대마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대마초가 약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대마로부터 기름과 향을 추출했다. 또 치료를 위해 대마를 연고처럼 바르기도 했다. 대마의 의약적 특성은 카나비노이드(대마종 식물에서 분리되는 자연 발생적인 화합물) 전문가 에단 루쏘의 논문『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어서의 의약용 대마: 과학적 증거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조사』에 잘 알려져 있다. 루쏘 박사는 의료 목적을 위해 대마가 수많은 국소제제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서 전체에서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 “대마는 종기 연고의 원료로 쓰였으며 찜질용으로도 활용되었다. 또한 오늘날 간질로 추정되는 고대 시기의 질병 치료에 사용된 국소 연고에 관한 기록에도 대마초가 주요 성분으로 포함되어 있다. 대마를 비롯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여러 약제는 흉부 및 폐병, 위장병, 피부 병변, 기생충, 관절 염좌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활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해 고대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대마를 치료제로 사용해 왔다.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국소 대마초 제제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발가락과 손톱 그리고 질의 염증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의학서『신농본초경』에도 서기전 2800년 전부터 대마를 결석, 변비, 각기병, 류머티즘 및 월경불순 치료제로 처방하는 등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2003년, 대마초 역사가 크리스 베넷이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도 대마를 사용해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성경에는 예수가 성스러운 기름을 발라 병자를 고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관유의 재료가 대마라는 것이 어원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0장 22~25절에는 거룩한 관유를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는데, 창포(calamus)로 오역된 부분이 원래는 대마(kannabus)였다고 한다.
“너는 제일 좋은 향품을 취하되, 순수한 몰약을 오백 세겔, 향기로운 육계를 그 절반인 이백오십 세겔, 창포(또는 향기로운 향초 줄기로 번역됨)를 이백오십 세겔, 계피를 오백 세겔, 이렇게 성소 세겔로 취하고, 올리브 기름 한 힌을 취하여라. 너는 향을 제조하는 법을 따라 이 모든 것을 잘 섞어서,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라. 이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 것이다.”
– 출애굽기 30장 22~25절
유대의 관습과 전통을 연구하는 폴란드 어원학자 슐라 버넷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역성서 본문에는 종교적인 축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의 대마에 관한 언급이 있다”고 밝혔다. 어원의 비교연구를 통해 베넷은 “히브리어 성경의 아랍어 번역에서 대마는 q’neh bosm(케네보셈, keneh bosem)이라고도 하며 이것이 전통 히브리어로 kannabos 또는 kannabus로 변했다. 이 단어의 어근인 kan은 ‘갈대’ 또는 ‘대마’를 의미하고, bosm은 ‘향기로운’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케네보셈이 대마인 것은 어원학자 슐라 버넷을 비롯해 언어학자, 식물학자 및 기타 연구자들도 확인하였다.
예수를 지칭하는 말인 그리스도가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것은 이것이 다른 종교와 차별화된 점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는 관유 사용을 제사장이나 왕처럼 신이 택한 소수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엄격한 구약의 금기를 깨트리고 치유와 입교식에 자유롭게 사용했다. 관유란 주로 제사장을 임명할 때 사용되는 기름인데, 예수는 이 대마 기름으로 제자들과 함께 병자를 치료했다.
“제자들은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주었다.”
– 마가복음 6장 13절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 야고보서 5장 14절
대마는 간질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질병의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나병, 눈병, 하혈하는 여자를 고친 이야기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다.<자료3> 실제로 설익은 대마 식물의 생성물인 칸나비디올산은 살균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많은 미생물에 대해 항균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도 있고, 간질치료에 있어 대마의 칸나비디올이 발작을 조절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연구, 미국 약국에서 자궁 출혈 및 신경통, 관절염 등에 대마가 처방된 기록도 있다. 누가복음 8장 43~48절에는 자궁 출혈로 하혈하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자 순식간에 피가 멎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은 이를 예수의 능력이 나간 것으로, 또 예수가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고 얘기함으로써 믿음으로 치유된 사건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대마의 효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정신약리학자 줄리 홀랜드 박사의 저서 『올 어바웃 카나비스(all about cannabis)』에는 위 내용을 소개한 크리스 베넷의 글이 실렸다. 그는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설명한 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대마를 이용하여 치료를 했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믿기 어렵겠지만,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능력으로 기적의 치유를 행했다는 믿음보다는 대마를 의료용으로 사용했다는 설명이 더 확실하다”고 적었다.
기획기사 속 마약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