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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으며 기쁨으로 일했던 소중한 기억

신앙의 발자취 박상희 권사 <2>
발행일 발행호수 2645

(지난 시간에 이어) 이듬해 소사신앙촌 건설이 시작되면서 박상희 권사는 소사로 향했다. 박 권사는 봉사자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소사신앙촌 건설이 시작됐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저는 돌을 주워 나르는 일을 했는데,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돌을 무더기로 한데 쌓아 모아놓으면 트럭이 와서 실어 갔어요. 새참으로 고구마도 한 대접씩 주셔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좋았던 기억은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안수도 해주시고, 생명물도 축복해 주시니까 다들 신이 나서 일했지요. 저도 얼마나 기뻤는지 매일 밝게 웃으며 일하는 덕분에 해님이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같이 일하시던 분들이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으셔서 예쁨을 많이 받았습니다.

은혜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을 지을 때 빨간 벽돌을 많이 사용했어요. 빨간 벽돌이 트럭으로 실려 오는데 저는 차에서 벽돌을 내리는 담당이었습니다. 그때는 일에 대해 잘 몰라서 장갑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계속 벽돌을 잡고 내리다 보면 손이 거칠어지고 아파지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손을 축복해 주시면 손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또 소사에서 생명물이 배 속에 강같이 흐르는 경험도 했어요. 마음에 기쁨이 가득 넘치고, 입에서는 찬송이 계속 흘러나왔죠.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없었어요. 마치 배 속에 아무것도 없는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체험은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됐어요. 마음에 오로지 기쁨만이 넘친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아요.

박상희 권사/기장신앙촌

박상희 권사는 1962년도부터 덕소신앙촌 양말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수시로 오셔서 안찰을 해주셨다고 박 권사는 회고했다. 또한 덕소신앙촌에서는 피아노와 관련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피아노와 관련된 추억이 무엇인가요?

-양말공장에서 박부희 권사님(現덕소교회)과 함께 일했어요. 그분이 피아노를 무척 잘 치는 분이었는데, 양말공장 2층에서 피아노를 치시는지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소리가 자주 들려오곤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박부희 권사님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서 직원들과 공장 2층에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 거예요. 다들 깜짝 놀라니까 하나님께서 ‘괜찮아! 치라우!’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하나님께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찬송가를 쳐주셨어요. 찬송가 250장 ‘내 주의 성신은’을 연주하시는데 참 듣기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에요.

그 이후 1972년에 기장신앙촌으로 내려왔다는 박상희 권사. 3곳의 신앙촌을 거치면서 박 권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해오셨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신앙촌에서든 하나님께서는 수시로 현장에 오셔서 저희를 둘러보고 가셨어요. 그때는 철이 없어서 하나님 오셨다고 좋아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소사에서 덕소로, 덕소에서 기장으로 출퇴근하시며 모든 현장을 둘러보시고, 주말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며 예배를 인도해 주셨을 하나님을 생각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아니시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요.

신앙촌에서 하나님과 함께 합창하기도 하셨다고요.

-1980년대에는 시온 합창단의 대규모 합창이 시작되던 때였어요. 저는 1982년 신앙촌에서 여성회 합창단이 만들어졌을 때 단원으로 음악당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그때 곡명은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와 ‘주 날개 밑’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 노래해 주시니 더욱 떨리고 귀한 자리였습니다.

박상희 권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던 시간을 떠올리는 듯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박 권사는 앞으로도 은혜가 내리는 신앙촌에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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