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건설의 신화(18) 신앙촌 소비조합
시온제품뿐 아니라 이미지를 전파‘정직과 양심’을 전달, 50년 역사의 긍지
신앙촌 소비조합의 활동은 1957년 건설된 소사신앙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 신앙촌에서 시온경제가 가동하기 시작하여 각종 제품이 생산되었고 이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이를 ‘신앙촌 소비조합’이라고 불렀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오랜 세월 동안 양심 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소비자들에게 정직과 신용을 쌓아 왔으며,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제품을 통해 ‘정직과 양심’을 전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천부교를 피부로 느낄수 있게 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수십 년에 걸쳐 소비조합 활동을 하였으며 대를 이어 소비조합을 하는 사람도 있다. 소비조합의 형태도 발전하여 초창기와 같이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대부분 시온쇼핑 매장을 열고 판매사장이 되어 활약하고 있으며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들의 대학 교육을 시키는 등 물질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은 이들이 많다.
1960년 6월 20일자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960년 5월 15일 신앙촌 사업부에서는 확장되어 가는 각 공장 생산품을 외부에 적극 소비함과 동시에 궁핍한 자에 대한 구제 및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시온특별소비조합’이라는 것을 조직하였다. 극빈한 교인에게는 직업을 주선해 줌과 아울러 조합원들의 저축을 통해 구제와 부조(扶助) 등을 활발히 하였다.”
1958년 소사신앙촌 건설 초기에 소사에 입주했던 한보금권사(82세)는 2002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할 때까지 45년을 한결같이 소비조합 활동을 해온 초대소비조합원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당시 현장 책임자이던 장세호 집사가 와가지고 하나님께서 7명을 뽑아 오라고 하셨다며 사람을 뽑는데 명랑하다고 소문이 난 제가 그 때 뽑혔어요.” 지금도 소녀같이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 한권사는 “우리들을 보내놓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기도를 하셨다는 말씀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저는 늘 웃으며 기쁘게 다녔습니다.”
1958년 6월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지금까지 소사에 살고 있는 최종성승사(81세)는 입주한 이듬해부터 소비조합활동을 시작했다. “신앙촌 카스테라가 처음 나왔을 때 카스테라를 들고 서울 남대문 시장에 나가서 팔았는데 첫날은 카스테라 50개를 모두 시식하라고 나누어 주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팔았어요. 물건이 좋으니 순식간에 다 팔렸어요.”
최승사가 다음으로 갖고 나간 것이 신앙촌 간장이었다. 지금이야 제품에 따라 용기와 디자인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지만, 최승사가 간장을 팔던 때는 각 가정에서 준비한 병에다 원하는 만큼 덜어서 팔던 시절이다. 간장종류도 지금은 생명물간장, 1급 간장, 새맛간장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때는 상, 중, 하 이렇게 등급을 나눠 통에다 들고 다니며 팔았다고 한다. “밑천이 없어도 장사할 수 있었어요. 그날의 물건값만 내고 간장을 떼다가 팔면 그만큼 이문이 남았으니까요.”
시골사람들이 소 팔고 논 팔아 자녀들 대학교육 시키던 당시에 2남 2녀를 대학교육까지 시켜 훌륭하게 키울 수가 있었던 것은 소비조합 덕분이었다고 최승사는 회고하였다.
“강원도 우리 동네에서 아들 하나 대학 공부시키려면 소 팔고, 산 팔고 집안이 아주 어렵게 되는 것을 봤어요. ‘내가 신앙촌에서 소비조합을 해 너희를 키웠기 망정이지 우리가 강원도에서 살았으면 너희들이 대학 문턱이라도 가봤겠나’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도 큰 소리를 치고 삽니다.” 최승사는 웃으며 말했지만 소비조합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청주시 북문로 2가 시온쇼핑 사장인 최호순권사(68세)는 약 40여년 전에 소비조합을 시작했다. “그 때 간장이며, 카스테라, 메리야스 등 제품이 도관(道館)에 도착하면 각 교회에서 물건을 찾아가서 사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에서도 신앙촌 간장을 맛볼 수 있게 되었지요. 하루 종일 사업을 하면서 아이들은 하나님께 맡기는 심정이었죠.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고 크게만 해달라는 기도를 늘 했습니다.”
최권사의 기도는 헛되지 않아 2남2녀의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며 잘 자라 주었다. 천부교 제천교회의 부인관장인 김미숙관장은 최권사의 1녀이다.
최호순권사의 소비조합 활동도 신앙적인 체험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날은 주문 받은 상을 배달하느라고 머리에 이고 가는데 무게가 하나도 안 느껴지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원하게 은혜가 연결되고 사람이 많은 장터를 지나는데도 사람들하고 부딪히지도 않고 지나갔던 적이 있어요.”
그러나 최권사는 중간에 어려움이 있어 소비조합을 그만 두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소비조합을 그만 두겠다고 딱 마음을 먹고 축복일에 갔어요.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나오려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보고 ‘열심히 하세요’ 하시길래 ‘네’하고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나오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고객들은 ‘정년’이 없이 뛰고 있는 최권사를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저는 학교 선생님 고객이 많아요. 오래된 고객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그분들이 이 나이에도 내 가게를 가지고 일을 하는 저를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소비조합에는 정년이 없잖아요.” 부산역 건너편 초량동에서 시온쇼핑을 운영하는 박헌옥권사(52세)가 처음 소비조합을 시작한 것은 1982년이다. 그는 소비조합을 하면서도 방통대를 졸업한 ‘학구파’이며 어머니 고 황윤연권사에 이어 소비조합을 하는 2대 소비조합이기도 하다.
“장사를 하고 돌아오시면 그 날에 있었던 일을 말하시며 기쁘고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어머니 고객 중에는 장사를 안 하실 때까지 당신들 집에 찾아오라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기장 신앙촌에서 처음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한 동네를 집중해서 다니라고 하셨어요. 이집에서 헛걸음하면 이웃집 찾아가도 차비도 안 들고, 다니면 누구라도 ‘신앙촌 아줌마’라고 다 알고 불렀거든요.” 그렇게 시작한 동네가 지금 시온쇼핑을 하고 있는 바로 부산역 건너편 초량동이다.
“신앙촌으로 견학을 갔던 아이가 선물로 받아온 건빵과 생명물 간장을 먹어본 젊은 엄마가 우리 가게에 찾아와서는 신앙촌 간장이 너무 맛있다며 이제는 신앙촌 간장만 먹을 거라고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전’을 해 주기도 합니다.”
장사를 하는 중에 종교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기성교회를 다니는 엄마가 신앙촌 물건을 좋아하며 많이 쓰는 고객이 있었는데, 그 집만 찾아가면 초등학교 5학년인 그 집 딸이 기성교회에서 배운 대로 ‘이단 아줌마’라고 하는 거예요. 그 집은 고객들이 함께 모이는 그런 집이었는데 그 아이에게 그 소리 를 안 하게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떡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어느날 축복일을 마치고 그 집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이 퉁퉁 부어있고 수술 날짜까지 잡아 놓고 있다는 거예요. 마침 가방에 넣고 다니던 생명물을 그 엄마에게 건네주었어요. 그 물을 먹고 눈에 바른 아이가 거짓말같이 깨끗이 눈이 나았어요. 그 아이의 입에서 ‘이단 아줌마’라는 소리가 쑥 들어갔음은 물론, 그 엄마도 ‘신앙촌이 그냥 신앙촌이 아니라’며 누가 신앙촌에 대해 안 좋게 말하기라도 하면, 나서서 막아주며 우리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외동딸 한정선(이대 대학원)양은 엄마가 어려울 때마다 격려해 주는 엄마의 팬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