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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의 은혜] 시신이 아름답게 핀다 (최성례 관장)

시신이 너무 곱게 피어나 관 뚜껑을 덮지 않고 옆에서 잠을 자다
발행일 발행호수 2326

1.광주교회 모습 2.당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성례 관장

천부교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핀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신앙체험기를 통해서 접할 수 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나님 말씀 중에 등장하는 “시신이 잘 핀 광주의 박 권사”가 있다. 당시 광주교회 관장으로 장례를 주관했던 최성례 관장(소사교회)에게 “광주의 박 권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광주의 박 권사, 남편이 부인을 따로 얻은 고로 고심하며 지낸 것 알아요. 그러는 중에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따랐어요.”
“그분의 남편이 고등학교 이사장이었어요. 당시 광주사회의 유지였죠. 그런데 30대부터 둘째 마누라를 얻어 권사님은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거예요. 거기다가 심장병이 있어 평생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사셨어요.”
“그 박 권사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시체 색깔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내가 천리 밖에서 불어 줘가지고 피어갔어요.”

“병원에서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집으로 모시라고 한 후 며칠 안 지나 그 남편분이 큰 딸을 앞세우고 교회로 찾아오셨어요. ‘부인이 아무래도 갈 것 같다’며 마지막을 부탁하러 온 거예요. 기사를 딸려 차를 내줘 급히 신앙촌으로 달려가 하나님께 보고를 드렸는데 그 즉시 하나님께서 전화로 연결을 하라고 하셨어요. 옆에 지키던 막내 딸에게 나중에 들으니 하나님께서 전화로 ‘쉭쉭’ 축복을 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대로 엄마 얼굴의 주름이 착착 펴지더라는 거예요. 막내 딸은 다 죽어가던 엄마가 다시 살아난다며 좋아서 주위의 가족들을 불렀고, 가족들이 들어와 엄마 얼굴을 차례로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반색을 하며 얼굴을 쓰다듬고 나간지 얼마 안돼 운명하셨다는 거예요. 막내딸은 엄마 얼굴이 까매지며 갔다면서 살아나던 엄마를 자기가 죽게 했다고 많이 울었어요.
며칠 전에 가서 뵌 권사님 얼굴은 거의 흙빛이었어요. 더구나 마치 바를 정(正)자가 얼굴 전체에 가득하다고 할 정도로 가로세로로 주름이 많았거든요. 제가 광주에 도착해 그 집으로 갔더니 벌써 골목 어귀에 조등이 걸렸더라구요.

연분홍빛 명주 수의보다
더 곱게 핀 시신의 얼굴빛
사람들은 화장시킨 줄 알아

생명물로 잘 씻겨 수의를 입혔더니 연분홍색 명주 수의보다도 더 고운 빛이 났어요. 볼터치 화장을 한듯 발그레 한데 제가 교역생활하며 본 시신 가운데 가장 예쁘게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신이 아름답게 핀 것을 보며 며느리 가운데 한 명이 ‘화장했구만’ 내뱉듯이 말을 하자 막내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여 말하기도 했어요. 마지막까지 엄마 곁을 지키던 막내딸은 엄마가 너무 예쁘다며 관 뚜껑을 덮지 못하게 했는데 5일장을 하며 발인을 하는 날까지 엄마 옆에서 잔다고 막내딸이 관 옆에서 자며 지켰어요.”

“하나님을 향한 대로, 하나님을 사모한 대로, 하나님을 깊이 경외한 정도에 따라서 갚아주게 돼있어요.”
“남편이 바람피겠다. 재력도 있겠다. 권사님도 다른 방향으로 가려면 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권사님은 그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깊이 사모하셨어요. 옆에서 뵈도 그게 보이고 느껴졌으니까요.
발인을 하기 전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전화로 축복을 해주셨어요. 시신을 씻겨 피운 후 관 뚜껑을 연 채로 며칠 지나며 아무래도 어두워진 시신의 얼굴 빛이 다시 환하게 핀 후 관 뚜껑을 덮었어요.”

장례는 시종 은혜 가운데 엄수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권능을 모르지 않았던 상주는 천부교회식에 순전히 따랐다. 박 권사는 승사 축복을 받았다. 승사라고 적어놓는데 일 사(事)자를 써놓았길래 권사 집사와 달리 스승 사(師)를 쓴다고 하니까 학교 교사 한 명이 그거나 그거나 하며 따르지 않자, 이사장은 “이분들은 내가 하늘님처럼 받드는 분인데 하라는 대로 하라”고 엄하게 말하기도 하고 며느리가 문상객들 상에 돼지고기를 차려내자 “네 에미가 평생 쳐다보지도 않던 건데 다시 쇠고기로 준비하라”며 챙기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차의 호위 가운데 박 권사가 평소에 다녔던 광주 시내 천부교회를 돌아 학교에서 마지막 영결식을 하고 모든 장례 절차를 다 끝내자 상주는 이사장실로 관장들을 불러서 감사하다는 인사에 이어 “부인이 평생 열심히 다닌 전도관인데 부인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천부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최 관장이 교회에 딱 들어서는 순간 하나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장례는 잘 끝났나?” “몇 명이나 모였나?” 대충 헤아려보고 한 200명쯤 모였을까 생각을 하는데 “한 200명 모였나?” 지체없이 “네”대답을 드렸다.

최 관장은 생전의 박 권사를 떠올리며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가운데 있는 순수함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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