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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와 함께한 일요일

발행일 발행호수 2614

‘나의 어린 시절, 여름이면 친구들과 잘 익은 오디를 따먹느라 손이며 입술이 까매지는 것 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한참을 오디 따기에 열중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의 얼굴을 보고 까맣게 물든 이를 드러내며 깔깔 웃었다’

사실 도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런 어린 시절이 없다. 오디에 관해서라면 소설이나 잡지 등에서 글로 읽어본 것이 전부인데, 하나같이 오디 따기를 아름답고도 빛나는 추억으로 묘사해서 ‘도대체 오디가 무엇이길래’ 하는 궁금증을 가져봤을 뿐이다. 그랬던 내게도 오디를 따러 갈 기회가 생겼다. 신앙촌 오디밭에 열린 오디를 전 주민 모두 자유롭게 수확해갈 수 있다는 소식! 윤 기자, 설레는 마음으로 오디를 따러 나섰다.

6월 여성회축복일에도 오디 따기 체험이 있었다. 오디에 눈 뜬 윤 기자는 이날도 권사님들과 함께 오디를 따러갔다.

생생한 오디 따기 체험의 현장

도착해보니 신앙촌 오디밭은 꽤 넓었고, 오디나무는 생각보다 작았다. 내 키보다 조금 높은 나무들의 가지마다 색색의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잘 익은 오디는 보랏빛이 도는 검은색이었는데, 덜 익은 오디는 정도에 따라 연두, 노랑, 분홍, 붉은빛 등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오디밭 이곳저곳에서 행복한 얼굴로 오디를 따는 중이었다. 짙은 녹색의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초여름의 햇살과 색색의 오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오디밭은 실로 생동감이 넘쳤다.

나도 오디를 따기 시작했다. 잘 익은 오디는 조금만 건드려도 톡 하고 떨어졌다. 조심스레 입에 넣어보니 달고 싱그러운 맛이 났다. 오디가 원래 이렇게 맛있었던가? 나무에서 갓 딴 오디의 맛은 엄마가 어디선가 대량으로 사왔던 밍밍한 오디와는 전혀 달랐다. 오디에 새롭게 눈 뜬 윤기자 만큼이나 SANC식품여고 학생들도 오디 따기가 신선했나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누비며 신중하게 잘 익은 열매를 골라내는 아이들을 보며 ‘신앙촌 오디밭이 진정한 체험학습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오디의 맛

곧 잼이 될 운명에 놓인 윤 기자의 오디들

사람들은 오디를 따서 저마다 가져온 컵에 한아름 담아갔다. 컵 대신 입속으로 끊임없이 오디를 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사람들 대부분이 입술주변이나 턱, 뺨까지 보라색으로 물들었음에도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고 계속 진지한 표정으로 오디를 먹고있다는 점이다. 그 중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어떤 분에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니 ‘어머! 내가 이랬어?’ 하며 화들짝 놀라 황급히 입주변을 닦으셨다. 그리곤 웃음이 빵 터지셨다. 그 주변 분들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소감을 묻는 것이 직업병인 나는 오디밭에서도 한 권사님께 말을 붙였다.

“권사님 오디 좋아하세요? 저는 오디나무를 처음보는데 권사님 어렸을 때는 오디나무가 주변에 많았나요?”

“그럼!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먹었어. 그때 우리 집이 누에를 쳤는데, 먹이로 뽕잎을 따서 줘야했거든. 그 김에 뽕나무(=오디나무)에 열린 오디도 많이 따서 먹었지. 이거 먹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 신앙촌 오디는 진짜 달고 맛있네. 기분이 너무 좋고 감사해! 오디 따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

실제로 어린시절 오디의 추억을 가진 분이 꽤 있었다. 당시에는 누에를 치는 집이 많아서 마을 여기저기에서 오디나무를 볼 수 있었고, 나무에 열린 잘 익은 오디는 그 마을 어린이들의 여름 별미였다고 한다. 권사님은 요즘은 주변에서 오디를 보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잘 익은 오디를 직접 따서 먹게 해주시니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윤기자, 오디잼 만들기에 도전하다

이날 기쁨으로 수확한 오디를 더욱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잼으로 만들었다. 오디를 깨끗이 씻어 믹서기에 갈고, 설탕을 넣어 냄비에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을 때 레몬즙을 넣어주면 완성. 음식은 손맛이라 생각하는 윤 기자는 비율과 상관없이 재료를 듬뿍 넣고, 주걱으로 저으면서 계속 끓였다. 수분이 증발하며 꾸덕꾸덕해지니 제법 잼의 모습을 갖춰가는 듯 했다. 준비해둔 유리병에 오디잼을 담아 사람들과 나눠먹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확인해보니 숟가락으로 뜨기 힘들 정도로 딱딱한 오디잼, 아니 오디엿이 되어있었다. 알고보니 너무 많이 끓이면 그렇게 된다했다.

엿이 되어버린 오디잼을 힘겹게 퍼서 토스트기로 구운 따뜻한 식빵에 발라 사무실 식구들과 나눠먹었다. 민망한 모습과는 달리 다들 꽤나 맛있다고 해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오디잼을 완성하고 나니 이제 나도 누군가 오디에 대해 묻는다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추억이 생긴 것 같았다.

‘2022년의 초여름, 신앙촌 오디밭에 갔다. 눈부신 초록과 그 사이로 익어가던 까만 오디를 맛보는 즐거움. 웃음이 가득했던 그날, 사이좋게 열매를 따던 신앙촌 사람들과 함께 입술과 손끝이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어도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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