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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건설의 신화(15)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③

'뉴스위크' 셔틀러기자 신앙촌 취재하고 "한국에서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 격찬
발행일 발행호수 2101

◇ 1958년 뉴욕타임스 기자를 대동하고 소사신앙촌을 방문한 윤치영씨, 콜터중장, 임병직대사 일행

‘뉴스위크’ 셔틀러기자 신앙촌 취재하고 “한국에서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 격찬

1964년 2월3일자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통계표를 보면 신앙촌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1월엔 비교적 적고 10월엔 하루에도 수백명이 들이닥쳐 가장 번잡을 이루었다. 기성교계 지도자, 실업인, 언론인, 군인 등 사회각계 각층의 내방인사들은 14도의 언어와 풍습이 부드럽게 조화된 이 ‘믿음의 마을’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오색 꽃이 만발한 전망식 주택가와 수많은 생산공장들을 둘러보고 이국적인 풍치속에서 1만여 주민이 가족적인 생활을 영위함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모두 한결같이 경탄의 념을 감추지 못했는데 특히 외국인들은 원더풀을 연발했다. ‘뉴스위크’기자 셔틀러씨 같은 이는 한국에 와서 보니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이라고 극구 칭찬했다. 내국인들도 많이 와서 새 인식을 가지는 중에 앞으로 우리가 살길은 이길 밖에 없지 않느냐고 뜻 깊은 관찰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은 한국 특파원의 신앙촌 탐방기를 게재하고 “신앙촌은 국가적 승인을 얻은 신앙 운동자들이 건설한 도시로서 외국인들이 놀랄 만한 파라다이스”라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1964년 9월 20일자 석간의 보도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서울 근교에 신앙촌이 건설되었는데 의식주의 어려움을 모르는 지상낙원으로서 외국인들이 놀랄 만하다. 구 정권들과 한국의 언론계는 신앙촌을 사교의 집단이라고 박해하였으나 신앙촌의 세력은 늘어 가기만 했다. 신앙촌에는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하여 1만 명이 거주하는 벽돌 주택과 50여 공장이 있어 생활고를 모르는 도원경을 이루고 있다. 근래에 제2신앙촌이 건설되었으며, 덕소의 시온철강에서는 매달 5백 톤의 철강이 생산되고 있다.”

경희대학교 정외과 학생견학단 100명도 소사신앙촌을 방문했다. 우병주 교수의 인솔로 탐방한 이들은 ‘큰 규모에 놀랐다’고 입을 모아 첫 소감을 말했다.

그들은 신앙촌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한번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①신앙촌 운동의 전체적인 배경 ②과정 ③조직의 내부적 구조 ④성립 과정과 정치, 경제, 사회적인 측면 고찰 ⑤활동성 등을 살펴보고자 내방한 것이라는데, ‘전도관의 방대한 조직과 신앙열에는 다시 한 번 놀랐다’라고 하였다.

이명중 집사(현 오리엔스금속 고문)의 안내로 각 기관을 두루 살핀 이들은 처음 보는 신앙촌에 도취되었으며, 황혜성군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느 사회 보다 뛰어난 이상촌이다’ 라고 극구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9월 10일에는 수덕사를 비롯하여 서울 근교와 제주도 등지에서 불교 승려 30여명이 제 1신앙촌을 방문했다. 그들은 이날 ‘과연 복지사회다. 자립정신에는 경탄할 뿐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오오다니 일본 천리대 교수도 일본에서 신앙촌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신앙촌은 일본에서도 크게 관심을 끌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남녀대학생 60명과 고등학생 80명이 신앙촌을 방문했고 성균관 대학생 120명은 이날 상오 10시에서 하오 6시까지 서울 동대문 갑구 전도관 대학생회장 김용식(한양대3)군의 안내를 받아 주택과 공장 및 5만제단을 돌아보았는데, ‘한국의 덴마크요, 유토피아’라고 이구동성으로 소감을 말한 이들은 ‘전엔 치외법권지대로서 무지한 사람들만이 사는 마을인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놀랍다’면서 과거 잘못 알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주일에는 이들 중 40여명 학생이 전도관 동대문 갑구 지관에 나와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DER BINLLE 신부를 비롯한 독일, 이태리, 미국, 스페인 등 각국의 천주교신부 12명이 지난 19일 소사 제1신앙촌을 방문했다. ‘매년 년례적으로 모이는 회합에 참석하여 신앙촌건설에 대한 소식을 들었으며 와서 보니 너무도 좋아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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