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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돕기, 새 휴머니즘 찾는 계기로

전성곤 /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57

전성곤 /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교수

일본은 지금 인간의 역사 속에 나타날 수 있는 ‘현실 괴멸’을 직접 경험하면서 ‘재앙’의 공포를 실감하고 있다. 이성과 지적 세계관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오히려 그러한 이성과 지적 세계관이 얼마나 ‘위선’인가를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체험’적으로 상대방과 동일한 주체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내면적 구원을 믿는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생각하는 찰나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은 한국과는 악연이 길다. 식민지지배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그들이 할켜 놓은 상처는 지금도 치유되지 않았고, 그들은 아직도 그 과거에 대해 ‘우월감과 제국의식’이라는 폭력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서 선다면, 일본의 이번 재앙에 대해 ‘구원의 실천’을 강조한다면, 당연히 안티적 입장을 고수 할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케니히스부르크에서 1795년에 집필한 좬영원평화를 위화여좭라는 저서를 떠올려 보자.

거창하게 정치철학적 논리에 대한 해석 운운이라는 ‘위선’을 동원하기는 싫지만, 이미 200년전에 제안한 칸트의 논리에는 이번 ‘재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칸트는 바르고 맑은 이성의 합리성, 스스로 이성적일 줄 아는 인간을 각성시키며 보편적 인류애를 자각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정교하게 칸트의 제안을 설명하기는 시간이 걸리지만, 적어도 칸트의 저서 속에는 ‘타자’이해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듯하다.

그 ‘해석’속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와 국민사이의 친연성을 꿰뚫게 해 주고, 그것을 폭로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2010년 1월에 2주 정도 센다이(仙台)에 체류한 적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토로 천하통일을 이룬 곳이 바로 동북지방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메이지기(明治期)에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해 번(蕃) 재편과정에서 정부에 대해 많은 저항이 있었고, 막대한 사상자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동북지방’으로 중앙에서 보면 언제나 ‘로컬’로서 존재하는 ‘열등지역’이었던 것이다. 바로 일본 국가 이데올로기에 동원되지 않은 오히려 일본의 전쟁 이데올로기, 합리적 국민국가 창출 논리에 ‘희생된 지방인, 시민’이 거주하는 곳인 것이다.

이번 일본 대재앙은 바로 한국의 시민의식을 보여줄 기회이다. 국가, 민족, 혈연을 극복한 ‘탈’국민국가의 논리를 실천해 보일 순간인 것이다. 그것은 과거를 용서하고 면죄부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민과 시민의 연대를 통해, 시민에게 폭력을 가한 ‘국가’를 오히려 흔들어 놓고, 로컬과 로컬이 만들어 놓은 평화가 인간의 보편적 이상인 평화세계를 어떻게 구현해 내는지 그 ‘어떻게’를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언급한 내면적 구원을 믿는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생각하는 찰나를 ‘유지’하는 순간만이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휴머니즘인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이 한국에서 부르짖는 세계성을 가진 ‘인문학적 소통’의 실천성을 재발견하는 소박한 현실이라고 본다. 이 소박함을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또 다른 재앙’에 대한 영원평화론은 다시 망령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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