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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남산집회(1955.3.26.~4.5.)편(1)

"생명이 소생한 사람들은 기뻐 뛰며 춤을 추고"
발행일 발행호수 1998

1955년 3월 26일부터 4월 5일까지 개최된 남산집회. 연인원 60만이 참석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였다.

수많은 교회에 초빙되어 각 교회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는 1955년 3월부터 수십만 군중이 운집하는 대 집회를 가지시고 이슬성신의 은혜를 부어 주셨다. 즉 1955년 3월 26일부터 4월 5일까지 남산집회,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영등포집회, 5월 12일부터 19일까지 안동집회,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부산 공설운동장집회, 6월 9일부터 16일까지 대구 칠성동집회, 6월 23일부터 7일간 용산 군인교회집회, 7월 4일부터 11일까지 한강 모래사장집회,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인천 동산학교집회, 9월 30일부터 10월 6일까지 대구 칠성동집회,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부산 초량동 삼일교회자리 집회, 10월 25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제2운동장 집회, 11월 초순의 원주집회, 11월 25일부터 일주일간 광주공설운동장 집회, 12월 8일부터 일주일간 순천 철도국광장 집회,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목포집회 등이 그것이다.

8개월 동안 전국 10개 도시에서 15회에 걸친 대 집회에 모여 은혜 받은 수는 연인원 수백만 명에 달하였으니 이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당시 서울의 교회 수는 200여 개였는데 남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연 60만 명에 달하였으니 서울의 기성교인 거의 전부가 참석한 셈이었다. 집회는 새벽기도회에 8천4백 내지 만 명, 낮 집회에 2만 내지 2만5천명이 모이고 밤에는 3만 내지 3만5천명이 모였다. 당시의 신앙신보 기사에 의하면 “그 중에는 경관들도 끼어있어 집회의 인상은 더욱 흥미를 끌고있다.”고 하였으며 “남자는 전 회중의 약 30퍼센트이며 70퍼센트가 여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른 집회와 마찬가지로 남산집회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은 병자의 치유에 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이슬성신 은혜가 어떠한 큰 은혜인지 아직 깨달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참석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가장 잘 목격할 수 있는 것은 병고침의 권능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집회장에는 불치병을 고치려는 중환자들이 혹은 기차로 혹은 트럭으로 몰려와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윤치영, 임영신, 최창순, 박현숙, 황성수, 정기원 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 지도자들 받은 은혜를 간증
죄타는 냄새에 이어 성신의 향취가 집회장에 진동해

남산집회를 비롯한 서울 집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회 각계 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이 솔선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증거 하였다는 사실이다. 지적 수준이 높은 엘리트일수록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중에는 UN대사 윤치영 선생, 중앙대학교 총장 임영신 박사, 사회부장관 최창순 박사, 무임소 장관 박현숙 여사, 국회 부의장 황성수씨, 3대 민의원 정기원 박사, 사회부장관으로 있던 이윤영 목사, 서울대 경제학과 홍우 교수, 서울대 심리학과 장병림 교수, 수도공대 홍경섭 학장, 국방장관 손원일 제독 부인 홍은혜 여사, 해병대 사령관 부인 어권사, 해군참모차장 부인 최권사 등 사회 유명인사들이 있었다.

문헌에 나타난 당시의 집회장 주변 광경을 인용해 본다. “눈보라와 비가 뒤섞어 치는 남산광장에는 200평의 대 천막을 중심으로 소 천막 10여 개를 연결 가설하였고 중앙은 노천으로 하였다. 첫날부터 모여오는 신도들의 손에는 성경과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은혜를 사모하여 모여온 신도들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불철주야 자리를 뜨지 않을 계획으로 간단한 물과 먹거리를 준비해야 했으므로 ‘보따리’를 들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난데없이 썩은 뼈가 타는 화장장 냄새가 가득하여 운집한 신도들의 비위를 거스리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 악취는 꽤 오래 계속하더니 아는 듯 모르는 듯 사라지며 고상한 향기로 일변하여 백합화 꽃동산에 파묻혀 앉아있는 것 같이 변하여 찌푸렸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고 속죄함을 받은 자의 기쁨은 충천하였다.”

참석자들은 죄 타는 냄새와 성신의 향취를 맡은 것이었다. 죄 속함을 받는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만 알았던 교인들은 실제 이슬성신이 비 오듯 임하여 죄를 태우고 소멸해 주시는 체험을 한 것이다.

‘지혜와 명철’이 있었다면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내리는 분은 하나님 바로 그분 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으리라. 그러나 누구도 그분의 존재를 아는 자 없었다. 다만 병 고침을 받은 자와 하늘의 기쁨을 받은 자들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24시간의 연속집회동안 문자 그대로 열광적’이었을 뿐이었다.

남산집회의 증언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

윤치영 선생의 간증

윤치영 장관

“저는 작년에 UN본부에 갔다가 금년 정월에 돌아와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 아내는 지금까지 33년이라는 긴 세월을 앓아온 병자였습니다. 지금까지 대수술 세 번, 소 수술 세 번을 복부수술을 받았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였던 제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딴 사람으로 변해있는 제 아내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완전히 병마를 물리친 건강체를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제 아내는 박장로님의 안찰을 받고 하루에도 5, 6차례 약을 먹어야 살수 있던 사람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다고 제게 말하였습니다.

일기도 몹시 추운 남산집회때 저는 제 아내의 집회참석을 방해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건강을 매우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집회를 열 하루 동안이나 지내고 돌아온 그의 얼굴빛은 전보다 더 좋아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집에는 그전에 의사가 한 주일에 서너 번씩은 찾아오던 것이 박장로님의 안찰을 받은 후에는 의사를 구경 못합니다.

제가 안찰을 받은 후부터 느끼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느껴오던 노여운 마음과 증오심이 없어지고 사랑과 동정심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윤치영(1898~1996) 선생은
정치인, 외교가, 행정가로
한국 현대사에 굵은 족적

동산(東山) 윤치영 선생은 1922년 일본 와세다대(早稻田大) 법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 하와이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조지워싱턴대등에서 수학하며 신지식을 배웠다. 이후 건국 초기의 이 땅에 돌아와 정치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45-1948년 이승만 박사의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1948년 국회 외무 및 국방위원장, 1948년 제1대 내무부 장관, 1951년 민의원 부의장, 제헌동지회 회장, 1953년 UN총회 한국대표, 1963년 민주공화당 의장, 동년 서울시 시장, 1968년 제5대 민주공화당 의장 서리, 1970년 민주공화당 총재상임고문, 1982년 국회의원동우회 회장, 1985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등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국가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건국포장(독립유공)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민족의 갈길’,  ‘대한민국 건국청년운동사'(1989), ‘윤치영의 20세기'(1991)등이 있다.

선생은 부인 이은혜 여사의 불치병이 완쾌되는 기적을 목격하고 일생 하나님을 믿었으며 많은 유명인들을 전도하기도 하였다.

1996년 9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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