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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신앙촌 다시 찾아

발행일 발행호수 2664

의정부교회 김옥자 씨

1970년대 신앙촌 농구팀 선수로 활약했던 김옥자 씨가 이슬성신절 예배 참석을 위해 50년 만에 신앙촌을 찾았다. 의정부에 사는 동생이 신앙촌을 먼저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크게 달라진 신앙촌의 모습을 보며 김옥자 씨는 벅찬 감격에 차 있었다.

“굉장히 마음이 들떠서 왔어요. 몰라보게 변한 모습에 많이 놀랐고, 아름답게 발전해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감탄하던 김 씨는 그가 어린 시절 땀 흘리며 운동했던 옛 건물, 지금의 학생강당 앞 롤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시 추억에 잠겼다.

“롤러장 쪽 초소를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요. 나무들 빼고는 옛날 모습 그대로예요. 옆 마당에서는 노루, 토끼, 닭도 길렀는데, 저희는 어리다고 구경도 자주 하곤 했어요.”

김 씨의 신앙촌 생활은 유년 시절 뜻밖의 기회로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할머니를 도와 들에서 일하며 자라던 김 씨는 전도관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신앙촌에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한다고 해서 저와 친구, 동네 언니가 신앙촌에 오게 됐습니다.”

허락을 받긴 했지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김옥자 씨는 너무 어린 나이 탓에 신앙촌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김 씨가 돌아가지 않겠다며 울며 매달린 끝에 겨우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맡게 되면서 신앙촌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15명을 뽑아 농구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때 선수로 선발되었던 것이죠.”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던 농구팀 선수들은 부산 구덕체육관이나 마산, 삼천포 등에서 실업팀 경기가 열리면 오픈게임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촌 응원단을 데리고 오셔서 경기를 지켜보셨다.

“당시 하나님께서 본부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시다가 선수들이 다치면 ‘쉭’ 하고 축복해 주셨는데, 그러면 선수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어요. 하나님께서 일반인 오비(OB)팀과 경기를 같이 뛰실 때도 다친 선수들에게 똑같이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외롭게 자란 김 씨와 그의 친구를 유독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엄마 없는 친구와 저를 참 잘 챙겨주셨어요. 운동화부터 옷, 운동복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께서 다 마련해 주셨고, 직접 어느 공장에 가서 옷을 맞춰 입으라고도 하셨어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아기들아 모여라’ 하시면 과잣값이라고 봉투에 3,000원씩 넣어 주셨는데 그때는 그 돈이 정말 컸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집회가 열릴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교인들이 가져온 생수통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고, 저희도 생명물과 눈 안찰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단에 서시면 주변으로 광채가 정말 대단했어요. 항상 주변에 빛이 나니까 ‘어떻게 저렇게 빛이 날까’ 늘 생각을 했지요. 하나님께서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납니다.”

19세 무렵, 더 큰 일반 실업팀에서 운동하고 싶다는 마음에 신앙촌을 떠났지만 농구를 계속하지는 않았다. 김 씨가 나가고 얼마 후 농구팀도 해체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 사회에 나가 살면서 신앙촌과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며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김 씨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왜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럴 때는 내가 신앙촌에서 직접 살았기 때문에 내가 증인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부분을 얘기해 줍니다. 본 그대로를 말해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50년 만에 다시 찾은 소회를 전했다.

“살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신앙촌에 있을 때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 신앙촌을 최고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부모님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과 신앙촌 사람들에게 받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런 복을 어디서 또 받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랑은 여태껏 어디에서도 못 받아봤습니다. 그래서 신앙촌 입구에 있는 하나님 사진을 보고 옛날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좀 더 빨리 이곳을 찾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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