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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자 관장 편 ① 선뜻 방을 내어주신 관장님

김양자 관장 1편
발행일 발행호수 2329

23년 교역자의 길을 걷는 내게 고마우신 여성회 관장님이 계시다. 한 번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못했지만 늘 존경하고 있는 그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20여 년 전 춘천교회 학생관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춘천관장이 인제, 사창, 춘천 세 군데를 관할했었다.

축복일에 가려면 원통지역 학생들이 춘천으로 오고 인제, 사창, 춘천, 원통의 학생들이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 5중앙 전농교회로 가서 대절버스를 타고 신앙촌에 갔었다. 축복일 말씀이 늦어지면 상봉 터미널에서 춘천으로 가는 막차를 놓치기도 했다.

그날도 막차를 놓쳐 다시 5중앙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가려는데, 많은 학생들과 있어서 그랬는지 어느 남자분이 “무슨 일이세요?”하고 물었다. “춘천으로 가려는데 막차를 놓쳐서요”하자 “잘 됐네요. 춘천에서 서울로 올 차가 없어서 지금 춘천으로 가는데 담배 값만 주고 타세요. 주말에는 배차 때문에 막차를 놓쳐도 종종 이런 경우가 있으니 기사들에게 물어보세요” 하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찬송가도 부르고 아저씨에게 재미난 이야기도 해주며 그날로 춘천에 올 수 있었다.
그 후 서울 5중앙에 숫자가 늘어 우리가 함께 갈 수 없어서 원주까지 가서 마지막 기차 통일호를 타고 기장에 갔었다.

처음 춘천으로 발령났을 때 인제까지 예배드리러 가면서 하늘하고 땅, 소양강 줄기뿐인 이런 곳에도 천부교회가 있다니 새삼 초창기 전도관의 위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민들레 씨앗처럼 퍼져있는 생명력에 놀라웠다. 사창도 마찬가지다. 가도 가도 산 하늘 군인 차밖에 지나가지 않는 이런 곳에도 천부교회가 있다니….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방학 때만 되면 춘천교회에서 살았다. 그러다 기차 타고 신앙촌에 가는 것은 그 아이들의 특별한 문화 생활이었다.

축복일을 마치고 올라올 때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원주까지 와야 했었다. 그러면 새벽 4시30분에 원주역에 도착. 원주교회로 가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면 원통지역 학생들은 8시 첫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다. 추운 겨울에는 갈 데가 없어서 원주교회에서 첫 차를 기다렸어야 했다.

원주교회 학생들은 학생관장 방으로 들어가 쉬고 있고, 춘천 학생들과 제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원주 여성회 관장님이 “관장님, 아이들 데리고 내 방으로 오세요. 나는 사찰 권사님 방에 가서 쉬면 돼요. 들어와요.” 하고 당신의 방을 내주셨다.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철없는 아이들은 벌써 들어가서 따뜻한 방 담요 속에 발을 집어넣고 잠이 들었다.

한참 후 “관장님 식사하세요. 얘들아 아침 먹어라” 하시며 아침밥까지 해주셨다. 그 많은 학생들에게 손수 아침 밥을 해서 주셨다. 반찬이래야 김치찌개밖에 없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아이들은 8시에 첫차를 타고 원주에서 원통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을 가면 학교 수업이 이미 시작되었었다. 그래도 축복일에 빠지지 않은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손녀 뻘인 학생관장한테 깍듯이 예의를 갖춰서 대해주신 관장님!! 선뜻 당신의 방을 내어주신 관장님. 추운 날 손수 아침밥을 차려주신 관장님! 지금까지 교역 생활을 하면서 ‘내가 그런 관장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해 보면서 그 분에게 못했던 말 이제야 해본다.
“조계수 관장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늘 잊지 않겠습니다.”

/소사동교회 여성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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