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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건설의 신화(5) 건설의 과정

건설 시작 3개월만에 입주 시작
발행일 발행호수 2090

`언론과 기성교회에서는 ‘천년성’이라고 음해, 건설 시작 3개월만에 입주 시작`

1957년 12월 2일자 신앙신보는 소사 신앙촌 건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한동안 ‘천년성’으로 오인되어 많은 파문을 교계에 던진 바 있는 소사신앙촌은 날로 눈부시듯 발전하고 있어 뭇 교우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신앙촌은 신앙의 울타리로서 신앙의 도장이 될 것이다. 동 건설공사는 박태선 장로의 오랜 구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소사의 광대한 토지를 매수함과 동시에 지난 여름동안의 농장 경영을 거쳐 지난달에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때까지 주택하나 볼 수 없었던 이곳에 아담한 문화주택이 줄을 지어 나날이 건설되어가는 것을 보고 인근부락의 주민들은 경악을 나타내고 있거니와 앞으로 주택공사가 완료되는데 따라 입주자 및 입주일자도 결정될 것이지만 우선 당면문제인 입주자들의 생업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일용품 생산공장과 농지관리 및 교육시설 등을 설치할 것이라 하는데 현재 수백을 넘는 교우들이 유토피아 건설을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 쏟고 있다. 동 신앙촌은 신앙성장을 위한 울타리로 건설되고 있으며 앞으로 박태선 장로의 지도에 의하여 제2의 울타리도 건설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신앙촌의 본격적인 착공으로 말미암아 전국 전도관 교우들은 물론 일반 교계와 사회전체의 시선이 일제히 당지에 집중되고 있는데 그들도 멀지 않은 장래에 입주의 영광을 갖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입주하기를 열망하는 교우들은 더욱 신앙생활에 매진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신앙촌이 건설되고 있는 부천시 일대의 지명(地名)이 우연치 않은 것에 대하여 가십란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한 후 건설의 면모는 너무나도 놀랄만한 것이었다. 무변광야의 잡초밭이 수없는 벽돌 양옥주택에 우렁차게 돌아가는 공장의 엔진소리, 유치원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의 교육시설로 변모한 것이다.

어떻든 신앙촌 건설은 건설시작 3개월만인 1958년 2월에 주택 70여동이 준공되고 같은 해 4월에는 초 중 고등학교, 5월에는 합숙소 및 제과부, 양재부, 메리야스 등 생산시설과 공장이 건설되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300여동의 주택과 30여개의 공장 및 보건소, 직매소 등 생산시설과 공공 복지시설 그리고 서비스 시설이 완공되었다. 엄동설한에 시작하여 현대식 건설장비도 없이 주택과 공장 그리고 각종 공공시설을 이와같은 단기간에 건설한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앙촌의 주택들은 당시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빨간 벽돌로 된 양옥의 모습이었는데 그 아름다운 모양은 처음 보는 사람들의 혼을 빼고 호흡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소사 신앙촌의 구성은 크게 1구, 2구, 3구로 나뉘어졌다.

1구에는 보건소, 무인 판매점(제1직매소), 공업용 수로, 시온학원, 각종 생산공장, 이발소(1,2,3구), 우체국, A,B,C,D형 주택 등이 자리 잡았고 2구에는 자유시장, 운수부, 연탄공장, 건설과, 파출소, 사진관 2곳, 양복점, 발전실, 이발소, 각종 생산공장, 미장원, B,C,D,E,F,G형 주택이 있었으며 3구에는 오만제단과 C,D,E,F,G형 주택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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