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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갈때나 일을 할때나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 임하시고

인천교회 허삼임 권사(2) / 인천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02

<이어서>
집회가 열린 일주일 동안 계속 철야를 한 저는 비좁은 자리에서 밤을 새워도 전혀 불편한 줄 모르고 너무나 좋은 향기 속에서 기쁘고 즐거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박 장로님의 설교를 들으며 그 향기와 뽀얗게 내리는 이슬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훨훨 나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달라진 저를 보고 자식들이 좋아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온 동네 사람들도 다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전주 집회에 다녀온 사람들끼리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저도 그들과 함께 모여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논산 성결교회에 다니는 20대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폐병에 걸려 한창 꽃필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고 몸이 비쩍 말랐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그 아가씨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역시 딸과 함께 성결교회에 다니는 분이었는데 저에게 하는 말이, 자기 딸이 전주 집회에 다녀와서는 폐병이 다 나아 못 먹던 밥을 한 그릇씩 다 먹고 백일 된 아기 얼굴처럼 보기 좋게 살이 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참 잘된 일이라고 대답했더니, 아주머니는 성결교회 목사가 이상하게도 딸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박 장로님 집회에 가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무척 좋아하더니, 요새는 쉬쉬하고 아무 말도 못하게 한다며 목사님이 왜 갑자기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시 박 장로님 집회에는 성결교회, 감리교회 할 것 없이 기성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제 생각으로 성결교회 목사는 교인이 줄어들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주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집집마다 심방을 다니며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되어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서 얼마 후에는 제단 건물을 마련해 논산전도관이 생겼습니다. 제 병이 말끔히 나은 것을 보고 너무나 좋아하셨던 저의 친정어머니를 비롯해 언니와 언니네 아홉 식구, 제 자식들까지 모두 논산제단에 다녔습니다. 저는 저희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전도를 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때마다 계속 전도해서 저희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다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30대 젊은 나이에 한두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던 제가 이렇게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도를 하는 것이 그렇게 신나고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나 집에서 일을 할 때, 제단에서 예배를 드릴 때 언제든지 너무나 향긋하고 좋은 향취 은혜가 맡아지곤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 냄새도 그 향취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은 후부터는 기분 좋은 일이 없는데도 공연히 웃음이 나오며 언제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또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안 먹어 본 약이 없었던 제가 너무나 건강해져서 약이라고는 소화제 한 알도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1962년 친정어머니가 7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을 때 일입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날 귓가에 찬송 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논산제단 교인들과 관장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에는 얼굴이 뽀얗게 피어나고 온몸이 노긋노긋한 것이 너무나 고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에 오신 어느 친척 분이 어머니의 손을 잠시 잡았다가 놓았더니, 그 부위가 시커멓게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뽀얗게 피었던 손이 시커멓게 변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생명물을 그 부위에 바르며 예배를 드리니 처음처럼 뽀얗게 피어나 어머니는 고운 모습으로 입관할 수 있었습니다. 논산제단에 다니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셨던 어머니는 하나님 은혜로 편안하고 아름답게 가셨습니다.

그 후 1978년 저는 덕소신앙촌에 입주해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인천 지역에서 시온 제품을 판매했는데, 당시 신앙촌 이불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객에게 이불을 가져다주는 것만 해도 무척 바빴습니다. 인천역에서 장사하던 어떤 사람은 그런 저를 보고, 제가 인천역에 도착할 때는 이불을 많이 가지고 내리는데 돌아갈 때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소비조합을 하는 동안 무거운 이불을 들고 다녀도 힘든 줄 모를 만큼 즐겁게 장사를 했습니다. 신앙촌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나 믿고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 은혜가 담긴 물건을 전한다는 생각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면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그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얻었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때 그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의 기도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귀한 은혜 속에 거하며 하나님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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