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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면 다 같은 길이지 왜 꼭 전도관이 살길인가?’

김귀임 집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77

1920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의 농가에서 태어난 저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때는 어려운 시절이라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며 열심히 일해도 끼니 걱정을 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논밭으로 다녔던 저는 교회나 절에 가 본 적이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종교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6·25 전쟁이 끝나고 서른네 살 무렵에는 저 스스로 교회를 찾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집안에서 속상한 일을 겪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는데,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을 듣고 함평읍 장로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열일곱 살에 시집간 후 늘 괴로운 나날
하나님 믿어 편안한 마음 얻고 싶어서
장로교회에 나갔지만 여전히 괴롭고
슬픈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아

그 교회에서 교인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며 이모저모로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출산하고도 양식이 없어 굶고 있을 때 교인들이 찾아와서 밥을 해 주고 몸을 추스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고마웠으나 괴롭고 슬픈 마음이 편안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열일곱 살에 시집간 후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남편은 해마다 추수한 곡식을 팔아 탕진해 버렸고, 6·25 전쟁 때는 남편이 집을 저당 잡히고 혼자 피난 가는 바람에 저는 어린 딸을 데리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오랫동안 앓아 왔던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한 후로는 매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저에게 심한 매질까지 하면서 하루하루가 힘겹고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편과 아들딸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에 나가 장사를 했고, 교회에 계속 다니며 하나님을 믿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1955년 광주 공원에서 열린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시누이 남편이 말하기를
옳은 길을 알았다며 그분을 따르는 길이
살길이라고 함평읍에 임시 전도관 세워

저희 집과 한동네에 살았던 시누이와 남편은 저와 같이 함평읍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1955년 겨울로 기억되는데 시누이 남편이 광주 공원에서 열린 박 장로님 집회에 다녀와서는 이제 옳은 길을 알았다며 그분을 따르는 길이 살길이라고 했습니다. 또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을 함평읍에도 지어야 한다며 자기 집에 임시 전도관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 다 같은 길이지 왜 꼭 전도관이 살길이라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열심히 장로교회에 다녔던 시누이 남편이 눈앞에 둔 장로 임명도 마다하고 전도관으로 갔기 때문에 그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임시 전도관에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마당에 큰 천막까지 치게 되자 장로교인들이 천막 안에 쓰레기를 갖다 버리며 방해한다고 했습니다.

장로교회와 전도관에서 서로 오라고 하여 난감했던 일 떠올라 안 내켰는데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치실 때마다 불덩어리가 확확 쏟아져 나온다거나
집회장에서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한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귀가 솔깃해지고 신기하게 느껴져서 전도관에 나가겠다고 말해

어느 봄날 저에게도 전도관에 오라고 하여 한번 가 봤더니, 찬송을 부를 때 힘차게 손뼉을 치고 성경 구절을 조목조목 풀어 주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또 가고 싶었지만 장로교회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는 전도관이 이단이라며 절대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전처럼 장로교회에 나가려 해도 시누이와 남편이 계속 전도관에 오라고 하니 거절하기가 난감했습니다.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듯 서로 오라고 하는 바람에 저는 차라리 다른 동네로 이사하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시 전도관에 나가는 사람이 늘자
장로 교인들이 전도관 못 가게 방해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듯 서로 오라고
차라리 이사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그 후 서울에 사는 조카가 함평에 잠깐 다니러 왔을 때 저에게 서울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골보다 서울에서 돈 벌기가 훨씬 쉽다고 하여 저는 고민 끝에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천호동 셋방에 살면서 직장을 구하게 되었고 고향에서처럼 장로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상 좋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제가 고향에서 장로교회 다녔는데, 여기 가까운 교회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했더니 아주머니는 장로교회에 다녔냐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이야기를 하는데 알고 보니 그분도 전도관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신과 함께 전도관에 나가자고 했지만 저는 장로교회와 전도관에서 서로 오라고 하여 난감했던 일이 떠올라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에 와서까지 전도관 사람을 만나는구나!’ 하며 낭패스러웠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직장에 다니면서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가까운 교회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자 박 장로님의
집회 이야기하며 전도관 가자고 해

그런데 몇 시간 동안 계속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치실 때마다 불덩어리가 확확 쏟아져 나온다거나 집회장에서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한다는 이야기가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몇 시간이나 설득하며 이야기하시는 것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집에 살면서 다른 교회에 다니면 안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전도관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김귀임 집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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