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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한없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병애(4)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93

그 이듬해인 1959년에는 서울의 육촌 오빠 집에서 지내던 언니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니는 전도관에 다니지 않았지만 몸이 많이 쇠약해져서 부모님이 병간호를 하기 위해 소사신앙촌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시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으로 계시면서 각자 집에 떠 놓은 물에 영적으로 축복해 주실 때였습니다. 그렇게 축복받은 생명물을 언니에게 주었더니 언니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앙상하게 말라 음식을 거의 못 먹던 언니는 어머니가 쑤어 주는 미음을 먹으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에는 자꾸만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닭을 삶아 주었는데, 닭고기를 한 점 먹은 것이 그만 탁 막혀서 심하게 체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언니는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급격히 쇠약해졌으며,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지내면서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생명물을 마신 시신은 아름답게 피어
볼품없이 말랐던 얼굴엔 살이 오르고
피부는 배꽃같이 환하게 피어
입술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손발을 씻겨 달라고 하여 깨끗이 씻겨 주었는데, 다음 날 심하게 숨을 헐떡거리며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이 아무래도 언니가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가족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저와 형제들은 주일예배를 드리러 가고 부모님께서는 언니 곁을 계속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숨을 헐떡거리던 언니가 갑자기 “어머니, 나 생수 좀 주세요.”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생명물을 주어도 먹지 않았던 언니가 그때는 본인 스스로 생명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생명물을 조금씩 떠서 입에 넣어 주었더니 언니는 한 대접을 다 받아서 먹고는 “이제 됐어요.”라고 했습니다. 생명물을 마신 뒤로 호흡이 편안해진 언니는 잠시 후 잠이 드는 것처럼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배를 마치고 올 때 언니가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니가 살아 있을 때도 그렇게 냄새가 심했는데 숨을 거둔 후에는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더할 수 없이 맑고 상쾌한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다녀 봤던 산이나 바다, 어느 곳보다 그때 집 안의 공기가 깨끗하게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 안은 너무나 시원하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이 저희 집에 오셔서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수의를 입히셨습니다. 그때 시신을 봤더니 볼품없이 말랐던 얼굴에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있는 것이었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피부 또한 배꽃같이 환하게 피어서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으며, 입술이 불그스름하게 물들고 손가락 끝에도 발갛게 혈색이 감돌았습니다. 서울에서 언니와 함께 지냈던 육촌 올케언니가 장례식에 와서 그 모습을 봤는데, 불과 두어 달 전에 앙상하게 말라 있던 언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영락교회에 다녔던 그 올케언니는 너희 언니가 천당에 갔나 보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언니였지만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를 주셔서 아름답고 편안한 모습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동생이 휘발유를 붓다 불꽃이 튀어
얼굴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급히 생명물을 끼얹고 생명물로 치료
이후 흉터 하나 없이 깨끗이 나아

그 후 1962년에 덕소신앙촌이 건설되어 저희 가족도 덕소에 입주해 생활했는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동생 병랑이가 바지에 묻은 때를 지우려고 부엌에서 대야에 휘발유를 부었을 때, 옆에 있던 연탄아궁이에서 불꽃이 튀어 휘발유에 불이 확 붙으면서 얼굴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때 막내 동생이 급히 생명물을 가져와서 얼굴과 팔에 끼얹어 주었습니다. 살이 빨갛게 되고 물집이 많이 잡힌 것을 보면서 얼굴에 흉터가 남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얼마 동안 생명물로 계속 치료하고 나자 얼굴에 상처 하나 없이 아물었습니다. 언제 화상을 입었던가 싶을 만큼 깨끗이 나은 것을 보며 하나님께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동생이 피부병에 걸리고
두통으로 고생한다고 편지 와
축복 솜을 정성껏 포장해 부쳐줬더니
나약했던 마음 돌이키고 건강히 귀국

덕소신앙촌 직조 공장에서 근무했던 저는 1971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도 계속 직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즈음 군에 입대했던 막내 동생이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는데, 얼마 후 동생이 많이 아프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원래 피부가 예민한 편인 동생이 무더운 베트남에서 피부병에 걸린 데다가 머리까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은 마음마저 약해졌는지 여기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편지를 받고 보니 몹시 걱정이 되어 저는 축복 솜을 정성껏 포장해 동생에게 부쳐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편지가 오기를, 동생은 축복 솜을 조금 뜯어서 물에 담갔다가 그 물을 발랐는데 그 후로 피부병과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통신병으로 차출되면서 개인 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일요일이면 혼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1년 후 건강하게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모직 공장을 거쳐 1981년부터 간장 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분 중에 정영숙 집사님이라는 분과 가깝게 지냈는데, 그분은 소사신앙촌 시절부터 말없이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신앙생활에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생활하던 정 집사님은 1999년에 운명하시기 전까지 작은 일에도 보탬이 되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정 집사님이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기고 나자 참으로 곱고 아름답게 피어서 입관예배를 인도하셨던 관장님과 장례반 권사님들이 “정말 잘 피셨네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집사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허락해 주시는 시간 동안 건강한 몸과 바른 정신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구원의 말씀을 따라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생활하다 가끔씩 일이 있어 바깥에 다녀오면 녹음이 우거진 신앙촌의 공기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구어 주신 귀한 이곳에서 올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봅니다. 돌아보면 긴 세월 동안 따라오면서도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지만, 지금도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금 소망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도 구원의 말씀을 따라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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