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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받아 죄 씻어야 구원 얻는다는 말씀에 깨달아

이재숙 권사(2) / 기장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00

<이어서>
그 후 부산진 장로교회에 계속 다녔던 저는 대신동 간장공장에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번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도관과 장로교회를 오갈수록 마음속에 고민이 점점 커졌습니다. 전도관에 가면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고, 장로교회에 가면 전도관은 이단이니까 절대 가지 말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옳은 것인지 하나님께서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대신동전도관에 예배드리러 간 날이었습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이 모였던지 신발 벗을 자리도 제대로 없어 간신히 신을 벗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돌개바람 같은 것이 불어오더니 너무나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제 몸을 확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박 장로님께서 예배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성신을 받아 죄를 씻어야 하는데, 사람이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 책을 많이 보았다 해도 성신을 받지 않으면 죄를 씻을 수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과연 옳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많이 했다는 장로교회의 목사님이나 그 누구도 성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성신을 받을 수 있는지 말해 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참길이라는 확신을 얻은 저는 그때부터 장로교회를 떠나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남편을 전도할 마음으로 골초인 남편이 담배를 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담배를 끊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며 콧방귀만 뀔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를 드리며 얼마가 지난 때였습니다. 남편이 담뱃대를 입에 무는 순간 깜짝 놀라 담뱃대를 떼 내더니 콜록콜록거리면서 아주 메스껍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종이에 담뱃잎을 말아서 피워 보더니 또 금방 떼 버리고, 몇 번인가를 계속 피워 보던 남편은 도저히 못 피우겠던지 결국 담배와 담뱃대, 재떨이까지 모두 갖다 버렸습니다. 그 후부터 담배를 완전히 끊은 남편은 대신동제단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1957년 영주동 산에 터를 마련해 제단을 새로 짓게 되면서 저는 많은 교인들과 함께 건축 일을 도왔습니다. 당시는 다들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강냉이 가루를 배급받아 죽을 쑤어 먹으며 겨우 허기를 채우곤 했는데, 그곳에서 일할 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커다란 돌을 들어도 전혀 무겁지가 않았고 훌훌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돌을 주우러 다니는 중에나 물을 길어 나르다가도 사람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 하나님을 믿어 보라며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분명하기에, 이 길이 참길임이 확실하기에 누구에게나 이 진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 제가 살고 있는 좌천동에도 자그마한 전도관이 마련되었는데, 어느 날 저희 집 주위에 폐병을 앓고 있는 30대 여자 분이 이사를 왔습니다. 그분의 친척들은 폐병이 옮을까 봐 두려웠던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찾아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이 딱하고 불쌍해서 자주 찾아가 식사를 차려 주고 쇠약해진 몸을 부축해 좌천동전도관에도 함께 다녔습니다.

얼마간 살았던 그분이 결국 숨을 거두었을 때 좌천동제단의 교인들이 모여 정성껏 예배를 드렸는데, 향긋한 향취 은혜가 예배드리는 내내 계속 진동했습니다. 폐병을 앓아 비쩍 마르고 보기에 안쓰러웠던 고인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뽀얗고 환하게 피어나면서 귀와 볼, 눈두덩에 발그스름한 핏기까지 감돌며 너무나 곱게 변했습니다.

생전에 고인의 얼굴을 알았던 제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며 외롭게 살았던 고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너무나 평안하고 아름답게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1980년에는 남편이 노환으로 숨을 거두게 되었는데, 온몸이 가지색으로 변하며 뻣뻣하게 굳어서 다리 한쪽을 들면 몸 전체가 다 들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시신이 있는 방에 하나님 찬송 테이프를 틀어 놓고 그 옆에서 저도 계속 찬송을 불렀습니다.

밤새 찬송을 부르던 중 어느 순간부터 가지색을 띠었던 피부색이 점점 옅어지면서 뽀얗게 피어나기 시작했고 굳었던 몸이 노긋노긋해지는데, 그 피어난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깨끗하게 목욕한 후 달게 한숨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너무나 편안해 보였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린 후에 큰아들의 친구가 여러 명 찾아왔는데, 시신이 곱게 핀 모습을 보고는 너무 좋게 가셨다며 모두들 감탄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다섯 살 때,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그때는 참으로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살고 싶은 희망도 없이 죽기 전에 고향 땅을 한번 밟아 봤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토록 외롭고 어두웠던 제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로 포근히 감싸 주셨던 기억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드리면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한평생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하나님 뜻만을 온전히 따르며 성결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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