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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을 떠올려도 구원을 주시고자 애쓰시고 희생하신 모습뿐

오경근 관장(5) / 죽성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58

저는 1983년에 교역자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 발령지인 진주제단에 도착하여 교환원을 통해 하나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하나님의 음성은 참으로 인자하고 부드러우셨습니다. “그래, 거기가 교육 도시야. 잘하라고. 전도 열심히 하라고.” 교역자가 되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저는 여러 모로 부족한 것뿐이었으나 따뜻하게 격려해 주시는 음성을 들으며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1990년 제가 밀양제단에서 시무할 당시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왜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까. 왜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하며 밀려드는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며칠간 계속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용무가 생겨서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기장신앙촌에 갔을 때였습니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뜨거운 불덩어리가 위에서부터 확 내려오면서 가슴이 말할 수 없이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초창기 하나님을 뵙고 불성신을 받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같이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금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밀양제단에 돌아오니 제단이 너무도 허술해 보여서 ‘하나님의 성전을 제대로 가꾸지 못했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해야 할 일을 안 했구나.’ 하는 생각에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다음 날부터 수리를 계획하며 분주하게 뛰어다녔는데, 수리를 진행할 때 저도 벽돌을 나르며 있는 힘껏 일을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에도 변함없이 은혜를 주시니 열심히 살아 보자고 다짐하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 밀려드는 후회와 안타까움에 며칠간 눈물만 흘려
간신히 추스르고 신앙촌에 가서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초창기에 받을 때와 같은 느낌으로 뜨거운 불덩이가 위에서부터 내려와

저는 초창기 발안제단에서 처음 시신을 씻긴 후로 지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신을 씻기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서너 시간씩 찬송을 부르며 입관예배를 드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로 시신이 더욱 빨리 피는 것을 확연히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낙원 가신 후에 제가 처음 장례를 치렀던 분은 1991년 밀양제단의 원 집사님이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앉아 있다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양반다리를 한 채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고인의 오빠는 장로교회에 다니는 분이었는데 시신을 보더니 “이래서는 어떻게 관에 넣지요?” 하며 크게 걱정을 했습니다.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서 그 상태로는 도저히 관에 넣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시신을 씻기기 전에 우선 생명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고인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축복 비누로 시신을 씻기기 시작했는데, 오므린 채로 뻣뻣하게 굳었던 다리가 어느새 부드러워져서 반듯이 펴지게 되었습니다. 환갑이 다 된 고인은 피부가 몹시 거칠었으나 축복 비누로 씻긴 후에는 피부가 아주 뽀얗고 곱게 피어서 20대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다 씻긴 후에 고인의 오빠에게 보여 주었는데, 불과 몇십 분 전만 해도 다리를 오므린 채로 굳어 있던 시신이 다리를 반듯이 펴고 얼굴 또한 생전보다 훨씬 예쁘게 핀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천부교회에 이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군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앉아 있다가 숨을 거둔 채로 굳어서 뻣뻣해진 시신을
축복받은 비누로 씻기자 다리가 반듯이 펴지고
거칠었던 피부는 뽀얗고 곱게 피어 20대처럼 보일 정도

그 후 1999년 제주 일도교회에서 시무할 때였습니다. 저의 친아버님께서 운명하시기 며칠 전에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시다가 계속 망설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있잖니.” “네 아버님 말씀하세요.” 몇 번이나 여쭈어 본 후에야 아버님은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얘야, 네가 따르는 그분한테 나를 좀 맡겨 다오.” 간곡한 아버님의 음성을 들으며 저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며칠 후 아버님이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수원 집에 가서 아버님이 남기신 유언을 형제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기장교회에 다니던 언니와 함께 신앙촌에서 떠 온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게 되었습니다. 수건에 생명물을 적셔서 온몸을 닦아 드렸는데, 핏기가 없던 얼굴에 어느새 발그스름한 화색이 돌고 뻣뻣했던 다리가 노긋노긋 피어서 아주 부드럽게 움직여졌습니다. 뽀얗게 피어 홍조를 띠는 아버님의 얼굴은 여든이 넘은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올케들도 그 모습을 보고 아버님이 청년처럼 젊어 보이신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장례예배 중에는 2002년 기장제단 여정자 권사님이 돌아가셨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10년 동안 당뇨병과 신장병으로 고생했던 권사님은 항상 몸이 부어 있었는데, 운명하신 후에는 부어서 터진 살갗에서 진물이 흐르고 썩는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습니다. 먼저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에 생명물로 닦아 드리자 방 안 가득히 풍기던 악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썩어서 진물이 흐르던 피부도 어느새 아물었습니다. 피부색이 뽀얗게 피고 심하게 부었던 몸도 가라앉아서 고인은 편안히 주무시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입관을 했습니다. 다만 팔에 있던 푸릇푸릇한 주사 자국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게 남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입관을 마친 후에야 유족들이 사망진단서를 끊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의사를 불러 와 다시 관을 열었는데 그때 보니 놀랍게도 팔에 푸르스름하게 남아 있던 주사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고인의 얼굴 또한 입관할 때보다 더욱 뽀얗고 곱게 피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의사도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고인의 몸에 청진기를 대 보며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생명물에 대해 설명하며 ‘운명하신 지 17시간이나 지난 시신인데 생명물로 씻어서 이처럼 예쁘게 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관한 후에 더욱 예쁘게 핀 시신을 보면서 ‘입관한 다음에도 계속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생명물로 씻긴 후 편안하게 주무시는 듯한 모습으로 입관 후
사망진단서를 떼지 않았다 해서 의사를 불러 와 관을 여니
고인은 입관할 때보다 더 뽀얗고 곱게 피어 있어

30년 가까운 교역자 생활 동안 저는 제주 일도교회와 기장교회를 신축한 일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당하여 하나님께 매달릴 때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하는 찬송이 귓가에 울려서 다시 힘을 얻은 적도 있었고, 진눈개비와 우박이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서 무사히 종각 공사를 마치고 우뚝 솟은 비둘기상을 보며 감사를 드린 때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자 교인 한 분 한 분이 진심으로 기도하며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이겨 나갈 힘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함께해 주신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어느 순간을 떠올려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구원을 주시고자 애쓰시고 희생하시는 모습이셨습니다. 구원을 주시려고 오신 하나님이시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어느 한순간도 가지들을 잊지 않으셨음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됩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이 그토록 희생하셨는데 구원을 받을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저 자신에게 물어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시는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천국을 향하게 해 주신 하나님. 가르쳐 주신 대로 사는 것이 가장 복되고 행복한 길임을 매일매일 느끼며 살아갑니다. 오늘도 교인들과 한마음이 되어 이 길을 열심히 달려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이 모든 은혜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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